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꼬리깃 (1)
신나게 기사들을 두들기고 있으려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카이루스는 한 번 항복한 다음 다시금 저항의지를 불태웠던 기사들을 재즈 박자로 두들겨 팼다.
참으로 스윙스러운 시간이 끝나고 난 다음, 카이루스는 꼬리깃을 확보할 수 있었다.
“요양 잘 하고. 병신으로 만들지는 않았으니까.”
카이루스는 제미니에게 심심한 위로의 한마디를 건넸다. 병신이 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지금 두들겨 맞은 면상 상태는 그가 보낸 혹독한 시간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감사인사 해야지?”
“감… 사합니다.”
폭력은 사람을 굴복시키고, 공포는 그 굴종심을 유지하게 만든다. 제미니는 적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잠깐 사이에.’
제미니의 시선은 방금 전 카이루스와 도로시가 싸웠던 전장을 흘긋 살피고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파괴는 끝났지만, 그 흔적은 남아 있다. 상처가 치료되어도 흉터가 남는 것처럼.
저기에 휘말렸다면 제미니는 물론이고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저항조차 못 하고 모조리 분쇄되었을 거다.
‘그냥 놀았던 거였어.’
역습의 기회를 노리기 위해 카이루스의 돌격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수십의 기사들은 어찌 되었건, 그래도 카이루스와 싸움 비슷한 것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이루스는 그냥 그들의 장단에 맞춰서 놀아준 것에 불과했다.
나만 진심이었지? 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니지만, 또한 적절한 표현이기도 했다.
“잘들 지내라. 다시 볼 일 없었으면 좋겠어.”
카이루스는 그 말을 끝으로 터빈음과 함께 공중에 떠오르더니, 굉음과 함께 날아가버렸다. 제미니를 비롯한 기사들은,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렵네.”
목적한 물건을 얻은 카이루스는 농조연운의 출력을 이용해 하늘에서 이것저것 실험해보는 중이었다.
반투명한, 자신의 의지대로 형태를 바꿀 수 있는 판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냥 날아다니는 게 더 도움이 되는데?!”
농조연운이 만들어내는 추진력만 활용하는 편이 더 간단했다. 지금까지의 비행방식은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밀어내는 힘을 뿜어내 하늘을 난다.]이토록 직관적이었다.
하지만, 꼬리깃을 이용하려 들자 그 직관적인 비행에 판단과 이해가 요구되었다. 그리고….
‘훈련통본에 관련된 훈련법이 있었어.’
답공을 수련하기 위한 방법들 중, 꼬리깃을 활용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연 날리기.’
훈련법은 간단했다. 이 상황에서 농조연운의 비행을 중지한다.
그리고, 꼬리깃이 생성하는 판을 이용해 활공한다.
“음속을 뚫는 건 아닌데.”
그래도 대충 짐작했을 때,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활공하는 짓거리다.
“으… 아아?!”
아차 하는 순간, 허공에 흐르는 기류에 휘말린 카이루스는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터빈음이 울려퍼지며, 추락하던 카이루스는 가까스로 멈춰서는 데 성공했다.
“조, 조지는데 이거.”
온몸의 털이 바짝바짝 서는 느낌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형태를 다듬어야 한다.’
효율적인 활공이 가능해지면, 농조연운을 활용한 비행에서 가장 많은 분량의 출력을 잡아먹는 한 가지를 극복할 수 있다.
‘중력.’
땅이 카이루스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농조연운의 출력 중 상당량은 대지가 카이루스를 잡아당기는 힘을 버티는 데 소모되고 있다.
꼬리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소모량이 비약적으로 감소될 것이다.
“무조건 해내야 한다.”
많은 경험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 꼬리깃을 다듬어야 하는지 알아내고, 이걸 거의 본능의 영역에서 이를 실행할 정도로 무수한 반복을 이어가야 한다.
비행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꼬리깃을 타고 흐르는 공기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이 텅 빈 허공을 배회하는 공기의 형태 중 어떤 것이 위험하고, 어떤 것을 활용할 수 있는지.
“왔어?”
연습을 반복하며, 카이루스는 베넷 시에 도착해 둥지라고 불리는 자신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앗! 내 과자!”
곧바로 카이루스는 물을 마시고 노라가 선반에 쟁여놓은 과자를 털어먹었다. 지친 몸에 설탕과 물이 돈다.
식사라기보다는, 기관차에 석탄을 때려넣는 것 같은 행위였다.
“한동안 나 보기 힘들 거다.”
카이루스의 선언에 일레나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또 뭘 하려고.”
“훈련.”
대답을 들은 일레나가 에휴, 하는 소리를 냈다.
“그 책을 얻을 때부터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했지.”
훈련통본은 온갖 훈련법이 전부 담겨있는 서적이다. 카이루스는 얌전이 이걸 책장에 보관하기 위해 확보한 게 아니다.
“너도 할 일 많잖아?”
“그렇지.”
카이루스도 훈련통본을 활용하고 있지만, 그건 일레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도 시도해보고 싶은 훈련법이 한가득 있었다.
“언니랑 오빠 모두 한동안 바쁜 거야? 사고 칠 생각은 없는 거지?”
자신의 과자가 모조리 사라진 슬픔을 극복한 노라가 카이루스와 일레나에게 확인하듯 질문했다.
“그래.”
한동안 일을 벌일 생각은 없다. 카이루스는 꼬리깃의 활용법에 익숙해지고, 훈련통본에 기록된 것들을 시도하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그럼, 나도 잠깐 자리를 비워도 되려나.”
“넌 또 왜?”
카이루스의 말에 노라가 대답했다.
“추가 시술이랑 훈련. 사장님이 제안한 거야.”
카이루스는 그 말에 노라를 바라봤다.
“넌 요원이잖아. 루나시커의 시술은 완성되었다는 뜻인데.”
카이루스의 말에 노라가 검지를 까닥거리며 대답했다.
“완성과 완벽은 다르지.”
저 말뜻은 제풍을 완성한 카이루스도 잘 알고 있다.
“한 번 싹 가다듬고, 안정화를 시키고… 몇 가지 추가하고.”
이미 성공한 시술이다. 추가로 손을 댄다고 노라가 켁 하고 죽어버릴 일은 없을 거다.
“그것뿐은 아닌 것 같은데.”
카이루스의 말에 노라가, 간만에 미소를 위장하며 대답했다.
“맞아. 내 애인이 기다리고 있어. 공화국 재벌가 2세인데, 어릴 때 같이 학교를 다녔던 소꿉친구야.”
재벌가 2세가 노라와 같은 학교를 다닐 리가 없다. 재벌가 2세라면 한 학기 등록금이 수천만 드램에 달하는 사립학교를 다녔을 테니까.
아니, 그걸 떠나서 애초에 루나시커 요원으로서 양성된 그녀가 학교를 다녔을 리가 없다.
그냥 개소리고, 알려줄 수 없으니 묻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래, 돌아올 때는 뱃속에 새 생명이 깃들어 있으면 좋겠다.”
노라가 개소리를 했으니, 카이루스도 개소리로 응답했다.
“불가능해. 우린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성별이 같거든. 양자를 들이려고.”
노라는 한술 더 뜬 개쌉소리를 끝으로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한마디를 안 져요.”
카이루스는 닫힌 문을 향해 한마디 한 다음, 심호흡을 했다.
“너도, 고생하고 있어라.”
“마찬가지로 고생해.”
카이루스와 일레나도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다. 카이루스는 다시금 하늘로 날아올랐다.
만족하기 전까지는 비행을 멈추고 땅에 발을 딛는 시간은 거의 없을 예정이다.
‘이렇게 된 이상 끝장을 본다.’
이후, 카이루스의 두 다리가 땅을 딛고 있는 시간은 하루에 2시간이 채 넘지 않았다. 그가 만족하기 전까지 이런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베넷 시에서는 새로 자리 잡은 종양이 서서히 핏속을 파고드는 맹독처럼 자라나는 중이었다.
“378번째 실험.”
지하실 안에서, 멜빈 이스토반은 연구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나정. 당의정. 트로키제. 발포정. 정맥주사. 동맥주사. 근육주사. 좌약. 수액.
온갖 형태의 약물들이 온갖 방법과 분량으로 사람의 몸에 주입되는 중이다.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은 저항하지 못하고 계속 몸으로 파고드는 약물을 받아내는 중이다.
불경한 실험은 도시에 썩어넘치는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 중이다.
긴 쇠바늘이 눈꺼풀 아래를 쑤시고 들어가 전두엽을 아작낸다. 정과 망치를 활용하는 건 고고학자의 필수교양 중 하나이기에 어렵지 않았다.
성별, 나이, 몸무게와 키, 지병의 유무, 혈액형… 온갖 수치들이 세월 속에 정보가 되어 멜빈의 수첩에 차곡차곡 쌓여나간다.
“가능해. 원하는 결과는 아니지만.”
트랜스 상태에 빠져든 사람의 몸은 항정신성 약물에 저항하지 못한다.
극도의 피로감 속에서 뇌가 무수한 약물을 받아들이는 사이, 지하실에 틀어놓은 축음기의 바늘은 레코드판을 괴롭히며 결혼행진곡을 토해내고 있다.
아주 간단한 명령을 머릿속에 박아넣는 데 성공했다.
음악과 행동. 특정한 노래를 들으면 광란과 착시, 공포에 빠져 주변의 모든 것을 공격하게 된다.
지금은 이 정도 성과가 고작이다. 하지만, 와인이 숙성되는 것처럼 이 지하실에 흘러내린 피는 분명히, 어떠한 성과를 향해 부지런히 숙성되고 있었다.
“성과만 나오면 충분해. 흐, 그래. 성과 말이야.”
한 걸음에 배부를 생각은 멜빈도 하고 있지 않았다. 남들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도시에 미친놈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그들 중에 도를 넘은 방법으로 사람의 몸을 연구하다 공권력에 쫓겨 도망친 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미친 사람은 지남철과 같아서, 다른 미친 사람을 끌어들이는 법이다.
멜빈은 그중에서도 미친놈을 끌어들이는 아주 강한 자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녀석들이 관심을 보일지는 알고 있다.’
멜빈은 이미 건축사로서 나름의 성과를 냈다. 나름의 인맥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중에서는 더 신선한 내장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산 사람의 배를 가른 녀석도 있다.
어린아이들이 약에 취한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껴, 필요 이상의 약을 주사하던 간호사가 있다.
세 치 혀를 놀려 아버지가 자신을 어린 시절 강간당했다고 믿게 만들었던 심리학자가 있다.
“빛나는 사람들.”
순수하게 자신의 욕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위선이나 거짓 없이, 세간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참으로 아름다운 색으로 빛나는 사람들이다.
뭐, 멜빈의 시선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가 무수한 실험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가능성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트랜스 상태에 빠져든 사람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조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간단한 성과지만 그 성과가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가.
멜빈이 이 빛나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니까.”
죽은 듯 잠들어 있는 사람의 뺨을 멜빈은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었다. 이게, 멜빈이 만들어낸 성과물이다.
다른 자들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물건이다.
“모든 위대한 일의 시작은 미약한 법이지. 그래, 하지만 결국….”
위대한 일은 그 위대함을 드러낸다.
자동차가 그랬고, 백신이 그랬다. 아주 볼품없고 효용성이 의심되는 수준의 어설픈 물건들.
그 속에서 가능성을 읽어낸 재능있는 자들의 손길을 거쳐 마침내 본모습을 보이는 거다.
대리석을 깎아 조각을 만드는 게 아니라, 대리석 안에 그 조각이 갇혀있는 것뿐이다.
막대한 고양감 속에 멜빈은 취한 것처럼 편지를 작성해나간다.
은밀하게 진행해야 한다. 그의 시도는 세간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은 그 비판을 닥치게 할 힘과 권세가 없다. 하지만….
“곧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멜빈 이스토반, 베넷 시에 우뚝 선 위대한 박물관장!
이미 고고학과는 상당히 먼 연구를 진행하게 되어버렸지만, 멜빈에게 있어 이제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고고학적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위대한 인류의 발자취를 품게 하는 과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