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94
94화 출구를 찾다
카이루스는 갈림길의 선택지를 타냐에게 넘겼다. 정작 권한을 부여받은 타냐 같은 경우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경험으로 미루어 비춰봤을 때, 타냐는 신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운이 좋다.
경험으로 미루어 비춰봤을 때, 타냐의 행운은 어디까지나 그녀만을 돌보고 있었다.
전장에서 타냐 라이샌드는 언제나 살아남았고, 다치는 일이 없었다.
그녀만 안전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떤 비참한 꼴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
누군가는 운이라고 부르고, 타냐는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여태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비슷한 결과를 불러오지는 않을까.
타냐는 그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왼쪽이 좋을 것 같아요.”
어쨌든, 바톤을 넘겨받은 이상 타냐는 갈림길 앞에서 계속 선택을 내렸다.
카이루스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이 탐색이 진행되는 것은 분명하다. 타냐는 확신하고 있었다.
“…조금 주변 분위기가 바뀐 것 같은데.”
아래층으로 두 번 내려가고, 다시 위층으로 세 번 올라갔다. 탐색을 진행하는 와중 허기를 느낀 게 여덟 번이다.
“우리는 커다란 나선 형태를 그리며 조금씩 아래로 향하고 있어.”
영양블럭을 씹던 카이루스가 짤막하게 말했다.
“나선 형태로? 하지만 우리는 계단으로 내려간 게 두 번에, 위로 올라간 게 세 번이잖아.”
일레나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질문했다.
단순히 숫자로 따지면, 위로 1층 올라간 것과 마찬가지다. 나선을 그리며 내려가고 있다는 카이루스의 말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카이루스는 대답 대신, 수첩에 기록할 때 사용하던 볼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볼펜은 또르르 굴러 주저앉아있는 일레나의 발끝을 툭 쳤다.
잠깐 카이루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들인 일레나가 움찔하고는 카이루스를 바라봤다.
“기울어져있구나.”
“아주 묘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이 미로에는 경사가 있다.
“우리는 나선을 그리며 지하로 내려가고 있어. 근데 신기한 점이 뭔지 알아?”
카이루스는 잠깐 고민하고는 타냐를 바라보다가 그녀가 앉아있는 쪽으로 향했다.
타냐는 카이루스의 정 반대편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간 카이루스는 다시 볼펜을 내려놓았다.
다시금 볼펜이 또르르, 굴러 일레나의 발뒤꿈치에 닿는다.
“경사가.”
일레나가 뭔가를 깨닫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카이루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레나, 지금 네가 서 있는 곳이 중심이야.”
이 미로의 바닥은 거대하면서도 완만한 고깔 형태다. 모든 고깔은 최종적으로 모든 것이 모이는 꼭지점이 있다.
일레나가 서 있는 곳이 바로 그 위치다.
“아마, 네가 서 있는 곳에서 곧게, 수직으로 이 미로의 밑바닥까지 파고 내려간다면.”
카이루스의 말에 멜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폰투스의 입구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멜빈의 외침에 일레나가 음,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내가 폰투스의 입구를 밟고 있다는 소리네.”
위치는 정확하지만, 높이가 다르다. 폰투스의 입구는 일레나가 서 있는 곳 아래에 있다.
문제는 얼마나 더 내려가야 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카이루스 씨가 가진 배틀기어로…!”
잔뜩 흥분한 멜빈이 카이루스를 바라봤다.
“진정해. 미로를 파훼할 방법은 찾아냈지만, 네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카이루스 일행이 있는 층 바로 아래에 또 다른 미로공간이 있다면 명멸로 바닥을 지우고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딛고 있는 발아래에 또 다른 미로가 없다면 명멸을 사용해도 의미가 없다. 그냥 맨땅을 파낸 셈이니까.
‘좌표는 알아냈어.’
쉽게 말하자면, 보물지도의 X자가 표시된 장소에 도착한 격이다.
다만, 보물이 얼마나 깊이 파묻혀있는지 알지 못할 뿐.
그리고 좌표를 알아낸 이상 카이루스는 지하로 아무리 내려가도 이 위치를 잊지 않는다.
“최대한 이곳과 멀어지지 않는 선에서 계속 지하로 내려갈 예정이다.”
무작정 명멸로 땅을 제외하며 기도하는 건 현실적인 방면에서 제약이 있다.
“그나저나, 확실히 도움이 되긴 했네. 나도 종교를 믿어봐야 하나.”
카이루스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타냐를 바라봤다. 카이루스의 말에 타냐가 곧바로 웃었다.
“언제나 환영이에요.”
“그냥 감사 인사 대신으로 예의상 한 말이야.”
곧바로 타냐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실망은 타냐의 몫이기에 카이루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염없이, 뭔가 얻어걸리길 바라며 미로를 헤메이던 와중 구체적이고 성공 가능성 높은 목표가 생겼다.
비록 식사는 비루하고 몸은 피로하지만, 가능성의 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활력을 되찾기도 한다.
카이루스 일행이 나름의 힌트를 찾아내 탐색에 박차를 가하는 사이 노라 갈라테아는 마침내 문을 때려부수는 데 성공했다.
“잘 썼어요. 문짝이 생각보다 엄청 단단하네.”
항복한 세 명의 배틀기어의 출력이 고갈될 정도로 문짝을 두들겨 팬 결과였다.
“방전시켜서 미안. 하지만 기다리면 다시 충전되잖아요? 그럼 나는 먼저 가 볼게요.”
노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박살난 문 너머로 진입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다는 점에서 노라는 약속을 지킨 셈이다. 문짝이 박살난 자리에 남은 세 명이 멍하니 서로를 바라본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레아의 말에 더블린이 자기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긴 뭘 어째.”
일을 실패하고 돌아가면 더 이상 지금처럼 많은 보수를 받으며 일할 수 없다.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생활에 적응하기는 쉽다. 한 달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생활에 적응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몇 년이 지나도 과거의 빛나던 시절을 잊지 못한다.
“뒈져도 여기에서 뒈질 거다. 산 채로 썩어들어갈 생각은 없으니.”
더블린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돈이 절실하다.
온몸에 마구잡이로 박아넣은 시술로 인해, 매달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하는 안정제를 섭취하지 않으면 부작용으로 전신이 썩어들어간다.
지금의 수입을 유지할 수 없다면 어차피 죽는다.
“나도.”
다른 두 명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어서 지금 이상의 수익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폭주기관차와 비슷하다.
멈추는 방법이라고는 결국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전복되거나, 벽에 스스로를 들이받아 박살 나는 것 말고는 없다.
배틀기어의 충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다음,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입체미로 안으로 진입했다.
“그 꼬마 계집은 못 이겨.”
더블린의 말에 허수아비가 동의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높은 건 고고학자를 데리고 다니는 녀석들이지.”
비록 소아성애증에 걸린 변태 곱추는 뒈졌지만 여전히 이쪽은 전투인원이 세 명이고, 카이루스 일행은 두 명이다.
게다가 처음 마주쳤을 당시 허수아비가 제법 괜찮은 성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나머지는 다 죽여버리고 고고학자 놈을 생포한 다음 길을 찾게 하면 되는 거잖아.”
레아의 말에 더블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녀석들은 지금까지 입체미로 안을 돌아다니며 나름대로 자료를 쌓아두었을 것이다.
그것까지 가로챌 수 있으면 최고다.
“추격할 수 있겠어?”
“제아무리 노력해도, 흔적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어.”
더블린이 자신의 코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더블린이 시술받은 것 중에는 곰의 후각도 있다.
뇌와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시술이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안정제를 사용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안정제는 고용주로부터 충분히 공급받았다. 장물아비 집단인 아름드리 전당포가 더블린이 필요로 하는 안정제를 구해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써보겠냐.”
더블린은 병을 꺼내 안정제를 들이켠 다음 코를 벌름거렸다.
“따라와.”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환경으로 인해 더블린은 상당히 난처해져버렸다.
“이런 씨발… 이게 다 뭐야?!”
주기적으로 꺼졌다 켜지는 조명은 괜찮다.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하지만 냄새.
코를 찌르는 짙은 향기가 계속해서 종류를 바꿔가며 더블린의 혼을 쏙 빼놓는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후각이 도리어 함정이 되어, 더블린의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
그리고, 그런 더블린의 모습을 레아는 못마땅한 모습으로 쳐다본다.
“표정 풀어 이 년아. 추격할 수 있으니까. 좀 어지러울 뿐이다.”
“다행이네. 그리고 걱정한 거야.”
당연히 레아는 더블린을 걱정한 적 없다. 애초에 이들이 동료애 같은 게 있을 리 없으니까.
그저,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하는 중이었다. 물론, 옆에서 침묵하고 있던 허수아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따라와.”
이내 정신을 차린 더블린이 앞장서 길을 안내한다.
어디로 갔는지 확실히 안다는 전제하에, 뒤따르는 사람들은 앞서가는 사람들보다 이동이 더 빠른 법이다.
먼저 나아갔던 길을 따라 이동할 뿐이니.
게다가 이들의 목표는 최대한 빨리 카이루스 일행과 조우해 멜빈을 확보하고 나머지는 전원 제거하는 것이다.
배틀기어의 출력까지 사용해가며 고속으로 뒤를 쫓으니, 카이루스 일행과 이들이 조우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야, 거기 허수아비 양반은 구면이잖아.”
잠깐 쉬고 있던 카이루스는 얼굴을 팍 구긴 채 자신들을 추격하는 데 성공한 세 명을 응시했다.
“우리 평화롭게 말로 해결할 수 있을까?”
“그것도 좋지. 멜빈 이스토반 박사를 내놓고 너희는 자결해라.”
레아의 말에 카이루스가 입맛을 다셨다.
“염치없는 건 알아서 면상을 마스크로 가리고 다니는 모양이군.”
카이루스의 대꾸에 레아는 대답하는 대신, 주머니에서 녹슨 닻을 꺼내 크기를 확 키웠다.
“그래, 난 염치는 없지만 실력은 있거든.”
세 명이 달려들면 빠르게 정리하고 멜빈 이스토반을 확보할 수 있다.
레아와 허수아비, 더블린은 그런 계산 하에 활동 중이다.
“흠, 그렇단 말이지.”
카이루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어차피 멜빈 이스토반이 녀석들의 목표라면, 안전은 확보된 셈이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있긴 하다. 왜 갑자기 모두 죽인다! 라는 전략을 포기하고 멜빈 이스토반을 확보하려 드는 걸까.
한 가지 생각이 카이루스의 머리를 스쳤다.
‘루나시커를 만난 건가?’
하지만, 카이루스는 자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을 무시했다.
‘지랄.’
이 환경에서 루나시커를 마주했으면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가 없다.
지금까지 살아있으려면 루나시커가 이들을 살려줬다는 건데….
‘루나시커가 적을 살려줬다는 말을 믿느니, 남자가 임신했다는 말을 믿겠다.’
이게 루나시커에 대한 카이루스의 인식이었다.
루나시커가 가장 효율적으로 이번 의뢰를 달성하는 방법은 모두를 죽이는 거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들이 갑자기 방침을 바꾼 이유는….
“초롱불 갱단에서 고용한 녀석들이 그 정도로 강했나?”
“뭔 소리야. 만난 적도 없는데.”
더블린의 대답을 들은 카이루스는 한층 더 강렬한 혼동에 빠졌다.
진짜 루나시커를 만나고 살아남은 건가?
“아무리 봐도 네놈들, 루나시커를 만나고도 살아남을 정도의 실력자는 아닌 것 같은데.”
카이루스의 말에 녀석들이 움찔했다. 그 반응이, 마침내 카이루스에게 모든 것을 알려줬다.
“와 씨발. 진짜 루나시커 요원이 살려줬다고? 환장하겠네.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상황인 거냐.”
카이루스는 오늘, 임신한 남자를 만나버린 셈이다. 그 충격과 놀라움은 헤아리기 힘들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