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84
184
홍화문은 유일한 기회를 잃었다.
이제 수교빈은 최강이다.
혈황검이 검이란 검은 모조리 잘라버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혈황검은 무적으로 군림했다. 어느 누구도 혈황검 앞에 검을 들이대지 못했다.
수교빈이 그런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
“그럼 저는 이만!”
보고하던 무인이 포권을 취했다.
그때, 마출성은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인검과 천살검이 부딪치면 누가 이길까? 혈황검을 잘라낸 천살검과 인검의 승부…… 전설의 인검이라면 천살검도 능히 잘라버릴 수 있어야 하는데.
“아니, 잠깐!”
마출성은 물러가려던 무인을 불러 세웠다.
“교빈이가 비성검문 제일검의 검을 가지고 있다고 했더냐?”
“네, 그렇습니다.”
마출성은 검가(劍架)로 가서 투박한 검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해과월이 이문장에서 만든 검이다.
천살검과 부딪치고도 잘리지 않은 보검 중에 보검이다.
살기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검가에 걸어놓고 있기는 하지만 명인의 손에 들어가면 당장 자신의 목숨을 협박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검이다.
그는 그 검을 무인에게 내밀었다.
“오귀에게 전해라. 교빈이를 베라.”
“네? 진심이십니까? 그 검은 천살검에도 잘리지 않은 검인데…… 수교빈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오귀의 무공이라면 수교빈을 벨 수 있을 것…… 아니, 이제는 베지 못하겠군요. 인검을 완성했으니. 그래도 그 검을 쥔다면…… 하! 모르겠습니다.”
무인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수교빈이 대공을 이루기 전이라면, 오귀가 이긴다. 오귀는 그녀를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대공을 이룬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오귀는 수교빈의 먹잇감에 불과하다.
헌데 여기에 보감을 손에 쥔다면?
이때는 또 승부를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어쩌면 인검이 잘리는 수도 생긴다.
수교빈은 강하지만 오귀는 살인 경험이 풍부하다.
마출성이 웃으면서 말했다.
“교빈이가 인검을 이뤘다면 이까짓 검에 잘려서는 안 되겠지. 이런 검 따위에 잘리는 인검이라면 쓸모도 없고. 두고 보자고. 교빈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겠습니다.”
무인이 검을 받아들었다.
“할 수 있으면 교빈이 손에서 제일검의 검을 빼내. 그 검…… 그 검 역시 해과월이 만든 것. 보나마나 보검이겠지. 인검이 보검을 쥐고 싸우는 건 반칙이야.”
무인은 즉답을 하지 못하고 잠시 고민했다.
“수교빈의 손에서 검을 탈취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그런 일을 할 만한 자들이 있기는 있습니다만…… 알겠습니다. 탈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인이 자신 있게 말했다.
“검을 훔쳐서 그 검도 오귀에게 줘. 검 두 자루와 인검의 승부가 되는 건가? 볼만하겠군. 아! 이 싸움은 나도 봐야겠어. 검을 탈취하면 말해. 나도 가볼 테니까.”
“그럼 이 검은……”
무인이 손에 들고 있는 검을 다시 내밀었다.
“그건 오귀에게 줘. 그 동안 손에 익혀 놓으라고 해. 후후후! 그렇군. 그 검, 오히려 오귀는 좋아할 지도 모르겠군. 음자에게 살기 없는 검이라…… 제 격이지 않나. 허허허!”
무인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해과월이 이문장에서 만든 검은 마출성이나 주한극 같은 패장(覇將)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음자들, 살수들에게는 썩 잘 어울릴 법하다.
살기 없는 검…… 살수들이 임자였던가.
‘허허허! 상당히 재미있는 싸움이 되겠어.’
마출성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4
지이이잉……!
혈황검이 운다.
혈황검은 강적이 나타났을 때, 검주가 위험하다고 느낄 때, 구슬픈 검명(劍鳴)을 흘린다.
그 울음은 참으로 고마웠다.
혈황검이 있었기 때문에 잠시라도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었다. 그의 무공과 본능으로 감지하지 못할 경우에도 혈황검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강적들을 기습 사실을 알려주었다.
혈황검은 독도 알아본다.
독기가 침습하면 혈황검이 먼저 눈치 채고 검신을 파르르 떨어댄다. 그리고 그는 검의 떨림을 감지하여 어떤 독이 어느 강도로 퍼져오는지 파악한다.
아주 고마운 울음이다.
헌데 지금, 아무 일도 없다. 강적이 있을 리 없다. 독기도 없다. 가장 편안한 곳에 있다. 긴장을 모두 풀어버리고 낮잠을 자도 좋을 곳이다.
그런데 검이 운다. 울음을 쏟아낸다.
‘어떤 놈이 침습을!’
그럴 리 없다. 누군가가 침습했다면 벌써 비성검문 검사들이 손을 쓰고 있을 게다. 그들이 죽은 듯이 조용하다는 것은 아무도 침습한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혈황검이 울어댈 때, 항시 문제가 생겼다.
혈황검의 신묘함을 알고 있기에, 이 울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주변을 살폈다.
혈황검이 왜 울지? 혈황검이 울기 직전에 한 행동이라면 광검을 소지한 것뿐이다.
‘광검이?’
그는 광검을 놓고 물러섰다.
……
혈황검이 울음을 멈췄다. 거짓말처럼 울지 않는다.
그는 다시 광검을 잡았다.
지이이잉……!
어김없이 운다.
‘광검에 문제가 있단 말인가!’
광검을 허리에 두른 지 한 달, 그동안 혈황검은 전혀 울지 않았다. 지금 울기 시작했다.
스릉!
그는 광검을 뽑아서 검신을 살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누가 좋지 않은 뜻으로 손을 댔는지 알아내고자 구석구석을 살폈다.
광검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는 광검을 검집에 꽂고, 명했다.
“이 검을 조사해라. 이상이 있는지 샅샅이 살펴보도록!”
광검을 조사했다. 의원, 독인, 그 밖에 각종 암계에 밝은 사람들을 총동원해서 조사했다.
광검은 하자가 없다.
한 가지,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벌어지긴 했다.
광검을 조사하라고 검을 내주면 무공을 아는 자건 모르는 자건 두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린다.
마음을 숨기고 속으로만 탐내는 게 아니다. 아예 노골적으로 탐욕을 드러낸다. 만약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면 당장 검을 가지고 도주했을 게다.
실제로 광검을 훔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다.
그런 시도가 성공할 리 없지만…… 주한극이라는 무신의 손에서 검을 도둑질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웃기지 않은가.
그만큼 광검의 먀력은 치명적이다.
광검은 언제나 살기로 번뜩인다.
혈황검도 피를 원하는 검이지만 광검의 날카로움에는 비길 바가 못 된다.
광검은 아무 이상이 없다. 그런데…… 혈황검이 운다.
이제는 혈황검이 우는 이유를 짐작한다.
혈황검은 광검을 시기한다. 질투한다. 그래서 광검을 가까이 하면 미친 듯이 울어댄다.
아무 이유도 없다. 단지 시기, 질투다.
오늘도 광검을 허리에 찼다. 광검의 날카로움이 마음에 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손이 갔다. 그러자 혈황검이 운다. 광검에 독이라도 묻은 것처럼 치열하게 울어댄다.
광검을 총애할수록 혈황검의 울음은 슬퍼진다. 혈황검 대신에 광검을 차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울음이 거세진다.
혈황검이 질투를 한다.
지이이이잉!
혈황검이 문풍지 떨리는 소리를 흘렸다.
검이 구슬프게 운다. 겨울바람에 문풍지 떨리듯이 거친 울음을 쏟아낸다. 한 여름철, 매미 날갯짓 소리보다 더 요란하게 신경을 건드린다.
“또…… 우는 것이냐.”
주한극은 애처로운 눈길로 혈황검을 들어올렸다.
지이이잉……!
“그만해라.”
그는 웃었다. 검이 검을 질투하다니. 과연 영물들!
지잉! 지잉! 지이잉!
혈황검의 울음은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원래 검의 울음은 검주인 주한극만 전해 듣는 비밀스런 소리였다. 헌데 이제는 너무 울어대다 보니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알아챘다.
“오늘도 우네.”
“검이 질투를 다 하고.”
“광검이 신묘하긴 신묘한가봐. 그런데 광검은 영험함을 보인 적이 없잖아.”
“영험함을 보인 적은 없지. 당장 달려들어서 목줄을 물어뜯을 듯이 노려보기만 하지. 휴우! 광검 봤어? 그놈의 검을 보면 어찌나 소름이 돋는지.”
사람들은 광검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혈황검의 울음을 안스럽게 쳐다봤다.
지이이이잉!
검이 운다.
‘저 놈의 검!’
드디어 주한극의 눈가에 분노가 치밀었다.
혈황검이 닥쳐오는 위기를 말해줄 떼, 혈황검은 보검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때는 보검 열 자루를 줘도 바꾸지 않을 명검 중에 명검이 된다.
혈황검은 영험한 검이다.
거기에 그 어떤 검도 가지지 못한 강함까지 지녔다.
검사로써 혈황검과 한 시대를 함께 지냈다는 것은 행운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 다 옛날이야기다.
지금은 변한 게 많다. 무엇보다도 혈황검의 가치가 너무 많이 떨어졌다.
우선 혈황검은 패검(敗劍)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미 한 번 패했던 검!
혈황검은 천살검에 잘려서 반검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잘림은 검주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수차에 걸쳐서 위기를 알려주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딱 한 번의 실수가 검주를 죽음으로 치몰았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혈황검은 딱 한 번 실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실수 때문에 혈황검을 사용하기가 꺼려진다. 언제 또 반으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남아있다.
그런 불안감을 차지하고, 현재의 모습 자체만 놓고 봐도 가치가 떨어진다.
혈황검은 반검이기 때문에 초식을 전체적으로 펼쳐내지 못한다. 아무래도 온전한 검이었을 때보다 위력 면에서 많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 점까지도 못마땅하다.
혈황검은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독기를 탐지하고, 강한 자력으로 쇠붙이를 끌어당기고, 위기를 감지하여 울음을 흘려주고…… 그런 일만 해주면 지금까지처럼 상왕 대접을 해줄 게다.
싸우는 검은 광검에게 맡겨라.
광검은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났다. 날카로운 이빨과 패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무장되어 있으며, 거기에 광견들의 광기까지 가미되었다.
검중검이 되기에 어느 한 구석 빠지지 않는다.
실전은 광검에게 맡기고 혈황검은 뒤로 물러앉아서 점쟁이 노릇이나 하면 좋지 않은가.
‘자고로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아는 자가 준걸인 것을. 영물이라는 검이 그 정도도 몰랐던 게냐!’
혈황검은 물러설 때를 모른다.
패검이 되어 주인의 신뢰를 잃었는데도 여전히 검중검인 줄 알고 징징 울어댄다. 광검을 멀리하라고, 자신을 곁에 두라고 어린아이처럼 칭얼댄다.
주한극의 눈에 혈광이 번뜩였다.
“화로를 준비해라!”
혈황검이 비성검문 수호자의 손에 쥐어졌다.
제일검이 수교빈에게 죽은 후, 제일검의 자리를 이어받은 검두(劍頭)다.
“일초 어울림만 허락한다.”
“네.”
“혈황검의 간청을 들어주는 의미에서 일초를 허락하는 것이니 최선을 다하도록.”
“네.”
비성검문 수호자가 혈황검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오늘 여기서! 광검과 혈황검 중 하나만 살아남는다. 패검은 가차 없이 화로 속에 던져질 터! 한 줌 쇳물이 되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주한극은 손에 들린 광검을 들어 햇볕에 비춰보면서 말했다.
승부는 간단하다. 일초를 어울려서 잘린 쪽이 패검이 된다.
타격력이 비슷해서 양쪽 모두 잘린다면 두 검 모두 패검이다. 가차 없이 녹여버린다. 그때는 혈황검도 광검도 모두 필요 없다. 진 놈은 무조건 화로 속에 던진다.
혈황검에 대한 실망감은 주한극을 아주 극단적인 사람으로 치몰았다.
양쪽 모두 무사할 수도 있다.
격중한 후에 혈황검도 손상되지 않고 광검도 손상되지 않는다.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혈황검을 녹인다. 징징 울어대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녹여버린다.
혈황검이 존재하려면 무조건 광검을 잘라내야 한다.
“최선을 다해라!”
주한극의 말을 알아들었음인가.
지이이잉!
혈황검이 매미가 날개를 떨 때처럼 검신을 부르르 떨었다.
“일초 선동매직(旋動 直)을 쓰겠습니다.”
“나도 선동매직을 쓰마.”
“그럼!”
비성검문 수호자가 검을 들었다.
선동매직은 비성검문 검사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하초(下招)다. 검을 들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배우는 십이검로(十二劍路) 중 일곱 번째 초식이다.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서 팽이처럼 빙그르르 회전을 일으킨다.
검을 든 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올린다. 검을 잡는 악력(握力)은 있는 듯 없는 듯…… 허면 회전을 일으킬 때마다 검이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단지 이것뿐이다.
초식이라고 할 수 있나? 실전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허초(虛招)이다.
허나 이런 초식을 가장 처음에 수련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선동매직은 검 끝에 진기가 운집하는 과정을 가장 쉽게 설명해준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시행하는 게 이해가 더 빠르다.
회전을 일으키면 검선에 진기가 한층 강하게 운집된다.
진기를 쓰지 않아도 회전을 하는 동안에 진기가 흘러나가고, 그것이 검에 스며든다.
회전을 열 바퀴쯤 일으키면 검선에 모인 진기는 태산도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해진다.
이때, 이 힘을 온전히 거둬서 일직선으로 내리긋는 동작에 쏟아 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