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237
236화 무신불립(無信不立)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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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는 유비가 나타났을 때보다 더 깜짝 놀랐다.
수시로 매질을 하는 바람에 노모의 병환을 핑계대고 도망치듯 유비의 휘하를 떠났을 때도, 말도 안 되는 패전으로 이곳에 갇혔을 때도 지금보다 마음이 더 떨리지는 않았다.
“전 국양이더냐?”
전해의 목소리에 전예는 옆 옥사와 자신의 옥사를 가로지르는 격자창살에 매달렸다.
“전 형,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오? 그 손은 또 왜······?”
전예는 전해의 오른손이 없음을 보고 물었다. 전해의 무예는 공손찬 휘하의 장수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수만을 휘하에 거느리며 장군 소리를 듣는 무장이었다.
그런 그가 오른손을 잃고 죄인의 몸이 되어 옥사에 갇힌 것이다. 그것은 곧 전해의 군대가 누군가와 싸워 대패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거?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무명의 장수에게 깨끗하게 패했다. 목숨 대신 오른손만 잃고 돌아왔지. 아직도 오른손이 있는 것 같아. 그런 느낌이 든다. 내게 수족을 잘린 자들도 이 같은 느낌을 느꼈을까?”
전해는 분명 오른손이 없건만 마치 자신의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 형은 그런 사람이 아니잖소?”
“싸우다 죽을 지언정 치욕을 안고 살아 돌아올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인가?”
“꼭 그런 얘기가 아니잖소?”
전해는 벽에 기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주공께 알려야 할 두 가지 얘기가 있다. 하나는 전했는데 다른 하나는 전하지 못했다.”
“주공께 숨길 것이 있소?”
전예의 말에 전해는 코웃음을 쳤다.
“전 국양, 너도 주공께 숨기는 것이 있지 않느냐?”
“그거야 말씀드려도 믿어주시지 않을 것이니······.”
“나도 그래서 말씀드리지 못했다.”
전예는 전해의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이미 전 형도 알고 있잖소. 유비가 두 얼굴을 지닌 자라는 것을······. 심기가 조금만 뒤틀려도 매질을 하는 자가 세인들에게는 한 황실을 부흥시킨다느니, 세상은 인의로 다스려져야 한다느니 헛소리를 하고 다니지 않소.”
“네 녀석도 매질을 피해 도망쳐왔잖느냐? 그 얘기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전 형에게는 몇 번이고 얘기했지만 주공에게 말씀드릴 수는 없었소. 결의형제를 맺지 않았을 뿐 주공과 유비는 형님 동생하며 지내는데다가 동문수학한 처지이니 내 말을 믿겠소?”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지. 실은 나도 그렇다.”
전해가 뭔가를 털어놓으려 하자 전예의 눈빛이 반짝였다.
“실은 노식 장군을 만났다. 계성에서 여포군과 대치하고 있던 중에 나를 찾아왔더군.”
“노식 장군께서 은거를 깨고 나오셨단 말이오? 오오! 드디어 장군께서 주공께 힘을 보태주시려······.”
이 때까지만 해도 전예는 노식이 전해를 찾아왔다는 얘기를 노식이 공손찬에게 힘을 보태려 찾아온 것으로만 생각했다.
“헛소리! 노식 장군께서 나를 만나러 오신 까닭이 무엇인지 듣는다면 내 말이 무슨 얘기인지 알 것이다.”
“뭐 때문에 전 형을 찾아오셨다하오?”
“여포에게 투항을 권하셨다.”
전해의 말에 전예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어찌 노식 장군께서······?”
“내가 이 말을 주공께 전한다 한 들 내 말을 믿어주시겠느냐? 네놈이 유비의 얘기를 해도 믿어주시지 않는 것처럼 내 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실 거다.”
이제야 전예는 그가 말하지 못한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전해는 생각에 잠긴 전예에게 턱짓을 하며 말했다.
“내가 비밀 한 가지 더 알려주랴?”
* * *
하지만 전예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곳으로 악하당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만 온 것이 아니었다. 공손찬의 병사들도 아니었다. 그가 거느린 무사들이었다.
악하당은 전예를 보며 손으로 자신의 두 눈을 가렸다가 두 귀를 막는 시늉을 하고는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세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을 손가락으로 긋는 시늉까지 해보였다.
전예는 악하당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 수 있었다.
– 넌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으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이를 어길 시에는 목이 달아나리라.
전예는 이에 굴복할 마음이 없었으나 악하당이 손가락 세 개를 펴보이자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삼족을 멸하겠다.
그 사이 악하당이 데려온 자들이 전해의 옥사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전해는 그들의 모습으로 가려졌다. 악하당은 전해의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악 선생, 무슨 일로 소장을 찾으셨소?”
전해는 그를 올려보며 물었다. 그러자 악하당은 그를 딱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답했다.
“전 장군, 그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 지는 상관없다. 그대가 살아 있는 한 우리 사 형제의 결의가 위태로울 테니······.”
“이만 죽어줘야겠다?”
“말귀가 빠르군. 역시 전 장군이야. 어떤 방법이 좋겠소?”
악하당은 그리 말하며 품속에서 광목천 한 묶음을 꺼내 들고선 수하에게 턱짓했다. 그러자 무사들 중 하나가 검을 반쯤 뽑아 악하당에게 내밀었다.
전해는 자결할 방법을 고르라는 것임을 직감했다. 목을 맬 것인가, 아니면 칼을 물고 죽을 것인가.
“이, 전해. 패장이니 구차하게 살 생각이 없소. 다만 죽을 때 죽더라도 그 까닭이나 알고 죽읍시다.”
“그대가 대형께 전한 말 때문이지. 그대는 자결로 사죄하고 남은 사람들은 이 일을 덮어야지.”
“이이자의 이적행위가 사실이라면 어찌하겠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일도 세상에는 존재하는 법이 아닌가? 그대의 말 한 마디에 이이자의 삼족이 멸족당할 위기에 처했다. 게다가 그의 일천 식객들은 또 무사할 수 있겠는가?”
악하당의 말에 전해는 콧방귀를 꼈다.
“흥! 주공을 배신한 대가는 오직 피로서만 치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그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거두는 것보다 그대 한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것이 훨씬 더 쉽고 빠른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의제라는 자들이 주공의 눈과 귀를 막고 있구나. 패장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으나 주공께 충성하는 마음만은 그대로다. 결의형제를 핑계삼아 죄를 피해갈 생각인가본데 그리는 못할 것이다. 여봐라! 밖에 누구 없느냐? 주공을 뵙겠다!”
전해가 공손찬을 만나겠다 소리치자 악하당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암만 소리를 질러도 그대의 말을 듣고 찾아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 말하고는 수하들에게 턱짓을 했다. 그러자 무사들은 능숙한 움직임으로 전해의 목에 광목천을 묶었다. 왼손은 이미 제압 당해 있었고, 손목 아래가 허전한 오른팔로만 열심히 허우적거리며 켁켁거리다가 이내 전해의 고개가 축 늘어졌다.
전해의 교살에 쓰인 천은 그 끄트머리가 격자창살에 묶여 전해가 자살한 거짓 증거가 되었다.
무사들이 빠져나가자 전예의 눈빛이 흔들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전해의 시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예는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악하당에게 말했다.
“나는 칼을 주시오.”
전예는 조금 전 일을 소리로나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자진할 수단으로 칼을 선택했다. 하지만 악하당은 검지를 좌우로 까딱였다.
“그건 안 될 말이지. 대형 휘하의 장수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맹장인 그대에게 칼을 쥐어줬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흥! 악 선생. 이, 전 국양을 뭐로 보는 거요? 소장이 진짜 이곳에 갇혀 있는 것 같소?”
전예는 사실 이곳이 편했다.
처음에는 패전으로 인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억울한 마음도 있었고, 공손찬을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다.
들판을 질주하며 적과 싸우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이 좁은 옥사에 갇혀 하루종일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어찌 공손찬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유비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 전예는 이 좁은 옥사가 천국 같았다. 마음만 먹으면 이런 곳에서 탈출하는 것 따위 아무 일도 아니지만 밖에는 유비가 있었다.
“유 현덕과 사이가 좋지 않다더니 그것 때문인가?”
“웬만하면 여기 이대로 있고 싶소. 굳이 내 목이 필요하다면 말만 하시오. 그게 주공을 위하는 길이라면 기꺼이 내드리리다.”
전예의 말에 악하당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사람 목숨을 탐하는 괴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군. 비밀만 지켜준다면 굳이 그대의 목숨까지 끊어갈 생각은 없어. 나와 거래를 하지. 어때?”
“무슨······ 거래?”
“변방의 요새를 지키는 지휘관으로 보내줄 테니 조용히 떠나주었으면 좋겠는데? 물론 유 현덕에게도 비밀로 해주지. 흥정 해볼만 하지 않나?”
악하당 역시 전해를 죽이고 싶어서 죽인 것은 아니었다. 전해 하나를 죽여 입을 막음으로서 이이자의 집안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만은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노식이 여포의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이 묻히고 말았다.
“그런 거라면 대 환영이오.”
전해는 자살로 위장되어 살해되었고, 유위대는 공손찬에게 집요하게 달라붙어 이이자의 가문을 처벌하는 것을 뒤로 미루었다.
무척이나 비밀리에 진행된 일이었으나 이이자의 가문은 호락호락한 가문이 아니었다.
이이자의 가문이 대대로 명가로 이름났다거나 그의 조상들 중에서 공신이 있어 공족이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이자의 가문에는 항시 일천의 식객이 있었다. 공손찬의 가까운 곳에도 그들의 입김과 연줄이 닿아있는 자들이 있었다.
이이자의 가문에서는 비밀리에 북평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공손찬 때문이었다. 유위대가 증거를 찾으면 그 때 처벌하자하여 공손찬은 그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철썩 같이 약속을 했다.
그러나 공손찬은 하루에도 열두번 이랬다 저랬다 마음을 바꾸어 이이자의 가문을 멸문시키려 했다. 결국 이에 위협을 느낀 이이자의 식솔들은 식객들의 도움을 받아 충분한 준비 없이 북평에서 도망쳤다.
공손찬은 크게 노해 직접 추격대를 꾸렸고, 결국 이이자의 가솔들 대부분이 붙잡혔다. 이이자의 식객들은 공손찬의 군대에 대적해 의리를 지키고자 했으나 수백이 목숨을 잃었다.
* * *
연국 계성 자사부. 여포의 처소.
저녁 식사시간도 지나고 이제 다들 자기 처소로 돌아간 시간. 여포는 잠들기 전까지 비는 시간 동안 붓을 들고 특유의 악필로 종이를 낭비하고 있었다. 설문해자를 깨친 지도 제법 세월이 지났건만 그의 글솜씨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분명 글이 맞기는 한데 읽으려 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는 여포의 서체. 후문이 ‘여포체’라 명명한 서체로 그가 써내려가고 있는 것은 초선에게 전하는 연서였다.
초선은 대주성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제 연국 일대가 여포의 땅이 되었으니 여포는 그녀를 이곳으로 불러들이려 한 것이다.
뭔가를 열심히 써내려가다가 내용이 막혔는지 어쨌는지 여포는 가후에게 물어보려 가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여포가 떠난 방. 위월이 찾아왔다. 책사들에게는 호위가 배속되었으나 여포의 처소를 지키는 호위는 없었다. 초선이라도 있다면 모를 것이나 여포 혼자 뿐이니 호위 역시 필요가 없었다.
만일 누군가가 여포의 목숨을 노리고 잠입해왔다면 그자가 불쌍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형, 안에 있소?”
분명 방안에 불은 켜져 있었다. 하지만 위월이 재차 인기척을 냈으나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대형, 나 들어가오.”
위월은 주인의 허락도 없이 여포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자오?”
침상이 있는 곳으로 가봤지만 여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벌써 잘 사람이 아니지. 보나마나 대업을 이루러 갔겠구먼. 그 놈의 대업은······.”
위월은 투덜거리며 서탁 위에 가져온 술병 하나를 올려두었다. 여포와 간만에 대작을 하려 이곳을 찾았던 것인데 여포가 자리에 없어 김이 새버렸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여포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는 무슨 생각인지 여포의 의자에 앉아 보았다.
“아이고, 엉덩이가 호강하네.”
하지만 위월은 천상 무인인지라 푹신한 의자보다는 딱딱한 말안장에 앉는 것이 좋았다. 그의 관심사는 이내 서탁 위로 향했다. 여포가 쓰다 만 연서가 눈에 들어왔다.
삐뚤빼뚤 어지럽게 쓰인 글씨지만 위월의 눈에는 대단한 명필로 보였다.
“오오! 이게 바로 글이란 말이지?”
다른 사람이 보면 악필 중의 악필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포의 서체가 아닌가. 하지만 위월의 입장에선 대단하게 보일 뿐이었다.
위월은 여포가 쓴 연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으나 글을 모르니 내용을 알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때 문이 활짝 열리며 여포가 나타났다.
그러자 위월은 화들짝 놀라 연서를 등뒤로 숨겼다.
“위월, 네 녀석이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