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278
277화 단병(短兵)의 학살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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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또 있었다. 여포가 상곡으로 간다는 것. 그것은 전력의 큰 손실이라 할 것이다.
여포의 용맹과 무예는 가히 천하제일을 입에 올릴 만 했다.
혼자서 일천인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 용력이 있으니 군사된 입장에선 그의 존재만으로도 다양한 전술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포가 상곡으로 간다면 반대로 여포를 염두해두고 세웠던 수많은 군략들이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게 된다.
가후는 돌연 실소를 흘렸다.
‘그동안 여 장군의 용맹과 무예를 믿고 너무 편하게 군략을 세워왔는지도 모르겠구나.’
가후는 울료자를 익힌 병법가였다. 울료자야 말로 육도와 삼략, 사마법은 물론 손자서와 오자서의 절묘한 도리를 하나로 엮은 병법서이자 진(秦)을 천하의 주인으로 만든 병법. 일개 나라의 힘으로 천하를 상대하는 병법이 바로 울료자인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여포의 싸움 중에서 쉬운 싸움이 한 번도 없었지만 항시 여포의 존재로 인해 패배를 생각하지 않았다. 무난하게 이기는 것만 생각하는 것은 가후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 다시 전선은 길어지고, 적은 예상보다 영리하다는 것을 안 이상 가후는 다시 한 번 승부사가 되려 하고 있었다.
‘하나의 책략이 전세를 뒤집는다! 지금의 위기를 단번에 역전해보이겠다.’
가후가 난 사람은 난 사람인 것이 그 짧은 시간에 책략의 윤곽을 만들어놓고 장졸들을 부리기 시작했다.
“고순 장군.”
“예, 군사 선생.”
“오환병을 맡아 이곳을 지키도록 하시오. 놈들이 다시 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만약 다시 온다면 결코 놈들의 유인에 걸려들어 산으로 들어가선 안 되오.”
“명심하겠습니다.”
고순에게 명을 전한 가후는 나머지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성렴 장군과 위월 장군, 장합 장군은 나와 함께 지금 바로 연국으로 돌아가십시다.”
가후의 명이 떨어지자 세 명의 장수들이 정중히 읍하여 명을 받들었다. 여포가 없는 지금이야말로 가후가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이니 여포를 받들 듯 가후를 받들어야 했다.
생각 같아선 여포의 뒤를 쫓아가 연산병들과 일전을 벌이고 싶었으나 적토마를 따라갈 방도가 없었다.
이곳에 남는다고 해도 할 일이 없으니 연국으로 돌아가자는 가후의 말이 반가웠다. 하지만 연국으로 돌아간다 한들 당장에 할 일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연산병이 이미 움직였으나 공손찬군은 원소군과 여포군의 싸움을 지켜본 후에야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 * *
여포는 적토마가 흘린 피땀에 바지가 흠뻑 젖을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연산병은 산융족의 후예이니 그들이 상곡의 마을을 습격한다면 살아남을 자들이 없을 것이다. 야인들이란 사내는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그 씨를 말려버리고 계집도 동녀나 처자만을 잡아가는 자들이다.
여포는 자신의 땅에서 그런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연산병이 상곡을 치려들 줄이야!’
여포는 마음이 급했다. 연산병이 상곡의 군현을 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보다도 더 두려운 것은 그들이 대군은 물론 안문까지 진출하는 것이었다.
병주는 산지가 대부분이니 그들이 마음먹고 산지를 낀 채 유격전을 벌이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넓은 땅을 모두 지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어느 마을 하나도 버릴 수가 없었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하면 나라도 반드시 지켜주겠다 결심했거늘······. 유주든 병주든 내 품에 들어온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리라.’
결심에 결심을 거듭하며 여포는 반나절을 꼬박 쉬지 않고 달렸다.
마을 하나쯤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나 여포는 그 옛날, 자신의 고향 마을이 선비병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던 일이 떠올라 그러지 못했다.
상곡 땅에 주둔하고 있던 철능이 한 무리의 오환병을 이끌고 여포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여 장군!”
철능이 마상에서 두 손을 모아 들어 예를 표하자 여포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소왕야, 상황이 다급하니 인사는 나중에 합시다.”
“여 장군, 인근 마을의 백성들은 모두 대피 시켰으니 너무 걱정 마시오.”
철능과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여포의 시선은 저 멀리 떨어진 연산산맥의 산기슭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토록 먼 거리였으나 아직 해가 걸려 있는 때인지라 연산병이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포는 그곳을 가리키며 철능에게 물었다.
“소왕야, 저 산 너머에 마을이 있소?”
철능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포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곳의 백성들은 대피시켰소?”
“오환용사들을 보내긴 했으나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어서 그리로 가고 있는 중이외다.”
철능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여포를 태운 적토마가 순식간에 속도를 높여 빠르게 치고 나갔다. 철능의 말은 지금도 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적토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더니 지금이 딱 그 판이었다. 멀리 마을의 모습이 보일 때쯤 여포는 마을에서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포가 마을의 초입에 이르렀을 때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곳곳에 시체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마치 사냥을 하듯 쫓아가는 연산병들, 그리고 이미 미동조차 없는 어미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울어대는 아이의 모습까지. 지도에서 여포의 고향 마을이 사라졌던 그날과 꼭 같은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여포의 눈두덩이가 노기를 이기지 못하고 파르르 떨어댔다. 여포는 속도를 유지하며 적토와 함께 마을 안으로 뛰어들었다. 계집아이의 머리채를 붙잡고 음욕을 채우려 끌고 가던 연산병의 화극의 첫 제물이 되었다.
스릉!
화극의 월아가 번뜩이는 순간 계집아이의 머리채를 쥐고 있던 연산병의 팔이 끊어졌다.
여포를 태운 적토의 신형이 놈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팔 하나로 끝날 리가 없었다.
여포는 화극을 한바퀴 크게 돌려 창대와 월아를 잇는 부분을 이용해 놈의 목을 걸었다.
크엑! 으드득!
칼날이 있는 부분이 아니라 목이 달아나지는 않았으나 단번에 목뼈가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그 때부터 여포의 화극은 다음 제물을 찾아 분주히 바람을 갈랐다.
“여포가 왔다!”
여포의 사자후가 마을 곳곳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는 구원의 목소리였고, 마을을 습격한 연산병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그 한 마디.
거치도로 마을 사람들을 잡아 찢듯 베고 있는 연산병 하나의 등판에 화극의 창극이 파고들었다.
끄르륵!
핏물을 게워내며 놈의 고개가 축 늘어지자 여포는 더 볼 일이 없다는 듯 놈의 시체를 던져 버렸다. 그렇게 몇 명의 연산병들을 고혼으로 만들어버린 후에야 인근의 연산병들이 여포에게로 몰려들었다.
“하아-!”
청량한 일기가성과 함께 여포의 방천화극이 수 명의 연산병을 향해 날아들었다. 단 일합에 화극은 놈들을 동강 내버리고 말았다.
몇 명을 해치우긴 했으나 연산병들이 이곳의 일을 알아차리고 여포를 향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얼마든지 오너라! 내가 여포 봉선이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적병을 향해 쉴 새 없이 화극을 휘둘렀고, 여포가 지나온 길은 연산병의 시체로 뒤덮였다.
하지만 좁은 길에 많은 적을 상대하다보니 여포는 어느새 오도가도 못할 처지에 놓였다.
* * *
‘화극으론 무리다. 이대로는 적토가 당한다!’
연산병의 거치도는 스치기만해도 살점을 뜯어가는 흉기. 적토를 노린다면 부상을 피할 수 없었다.
처저적!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러 개의 거치도가 화극과 톱니처럼 맞물려 화극을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어버리고 말았다. 화극이 묶인 틈을 타 지붕 위에서 적병 하나가 뛰어내려 여포를 덮쳤다.
여포는 적토의 등에서 떨어져 놈과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여포는 창졸지간에 위험에 처했으나 허리춤에 패용한 짧은 패검을 뽑아 놈의 가슴팍을 비집었다.
하남의 사내들이 패용하는 긴 패검과는 달리 황하 이북의 사내들은 짧은 비수를 패검으로 쓰는데 그것이 오늘 여포를 크게 도왔다.
짧은 패검이 놈의 등을 뚫고 나와 피묻은 검신을 드러내보였다.
타앙!
노는 손으로 지면을 강하게 후려치며 여포는 용수철처럼 일어섰다. 연산병들의 거치도가 여포를 향해 쇄도해들었다. 그러자 여포는 아직까지 패검으로 이어져 있던 시체를 방패로 삼았다.
후웅!
일순간 흙먼지가 크게 일며 잠깐 시야를 가리며 누군가의 몸뚱아리가 토막나며 이리저리 뿌려졌다.
먼지가 가라앉고 다시 시야가 밝아졌을 때 여포와 적병들은 서로 칼끝을 겨누며 대치하고 있었다.
그 사이 적토가 명마임을 알아본 적병들 중 하나가 적토의 고삐를 붙잡았다. 그러자 적토는 크게 고개를 내저어 놈을 뿌리치고는 제자리에서 높은 담을 훌쩍 뛰어넘어 사라졌다.
주인을 버리고 내뺀 것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적토가 곁에 있어봐야 여포에게 득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여포 하나를 상대로 고전하고 있던 연산병들은 이 하찮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저 놈이 여포다! 놈의 수급을 베어 공손 장군께 바치면 큰 상이 있으리라!”
“말이 주인을 버리고 도망쳤으니 네놈은 살 길이 없다! 어서 순순히 목을 바쳐라!”
여포는 그들 말을 몰라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순 없었으나 기분이 언짢았다.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덤벼라.”
여포는 손가락을 까딱여 놈들을 도발했다. 그러자 연산병 하나가 동료들을 헤치고 뛰어올랐다.
휘리릭! 퍽!
일순간 여포의 신형이 휙 돌며 창을 던지는 듯 발을 뻗었다. 그러자 여포의 백화전포가 펄럭이는 소리에 연이어 둔탁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푸흡!
여포를 노리며 뛰어오른 적병은 가슴팍을 얻어맞아 뛰어오를 때보다 더 빠르게 뒤로 튕겨져 나갔다.
놈의 몸뚱아리가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기도 전에 여포의 신형이 반대로 뻗어나갔다.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기민한 움직임, 등을 내주지 않는 자리선점과 지형지물을 이용해 포위를 피하며 여포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놈들의 수가 어마어마하다는데 있었다. 아무리 죽이고 또 죽여도 좀처럼 수가 줄어들지 않았다.
게다가 연산병의 용맹은 말에 오르지 않고도 오환돌기와 맞먹을 정도였다. 적병 하나하나가 정병 두 세 사람 몫을 하니 여포 홀로 이 많은 적들을 상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서 단병(短兵)은 큰 이점이 있으나 놈들의 거치도를 온전히 막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긍! 그릉!
거치도의 톱날 같은 칼날이 여포의 갑주를 긁고 지나치며 요란한 쇳소리를 냈다.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갈 것이나 다행히 아직까지는 진대의 갑주 덕분에 큰 부상을 피할 수 있었다.
‘철능이 곧 당도할 테니 그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적토를 타고 마음대로 화극을 휘두를 수 있는 상황이라면 ‘버틴다.’는 생각 따위를 할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상황이 여포에게 불리했다.
적병을 얼마나 베었던지 그들이 뿌린 피 때문에 패검의 손잡이가 미끄러웠다.
여포는 거치도의 도풍에 못 이겨 넝마나 다름없어진 웃옷의 아랫자락을 길게 찢었다. 핏물에 미끄러져 패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손과 패검을 묶기 위해서였다.
한쪽 끝을 이로 물고 빈손으로 반대쪽 끝을 잡아당겨 단단히 묶고서 다시금 치열한 혈전을 이어나갔다.
뿌우우- 뿌우우!
갑작스레 들려온 뿔피리소리에 연산병들이 돌연 퇴각을 시작했다. 여포는 포위가 느슨해지는 걸 느끼자 그제야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산을 끼고 있는 마을인 탓에 지대가 높았다. 덕분에 지대가 낮은 곳의 시야가 탁 트여 있었다. 저 멀리 흙먼지를 일으키며 두 무리의 기병들이 이곳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할조의 깃발을 든 오환돌기는 분명 철능이 이끌고 온 것일 테고, 다른 방향에서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무리의 깃발은 익숙하기 짝이 없는 당예 깃발이었다.
‘드디어 당예기가 돌아왔는가!’
당예기가 돌아온 건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연산병들은 그들이 두려워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 여포에게 이미 기백을 잃고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여포가 지칠 때까지 싸움을 이어나가려 했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산으로 퇴각을 시작한 것은 분명 기병들을 산으로 유인하려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 때 산으로 속속들이 모습을 감추던 연산병들에게서 비명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무려 반각 동안이나 산 곳곳이 들썩거렸다.
생각 같아선 울창한 수풀 안으로 들어가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여포는 먼저 온 오환병들을 멈춰 세우기 위해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여포는 적토를 부르곤 화극을 찾아 갈무리 한 후에 혹시 있을지 모를 다음 싸움에 대비했다.
어차피 연산병의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으니 원병으로 수천이 더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수풀 사이를 뚫고 연산병들 수십여 명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들은 오환병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허겁지겁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꽁지가 빠져라 도망쳐 나오며 무기를 놓치고도 다시 잡지 않으며 오직 도망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연산병들은 여포를 보자마자 달려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자비를 구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여포의 궁금증은 그리 오래지 않아 풀렸다. 짙은 피비린내와 함께 숨막히는 살기를 뿌리며 누군가가 골짜기의 울창한 수풀을 헤치고 걸어 나왔다. 그리고 이내 비슷한 모습을 한 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