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297
296화 하룻밤에 세운 다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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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노성 전투가 한창이던 무렵. 연국 계성의 자사부는 승패의 향방을 알지 못해 무거운 침묵 속에 어수선함마저 깃들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초선은 자사부의 안주인으로 자사부를 잘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군리부에 들러 보급에 관한 사항을 확인하고 있었다.
“서 대인, 군량의 현황은 확인하셨나요?”
초선이 묻자 서황은 죽간을 펼쳐 보이며 답했다.
“전수조사를 했습니다.”
“양곡이 이제 일만석도 남지 않았군요. 콩도 칠천여 석 뿐이고······ 이러다간 병사들이 목숙으로 연명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연국 일대의 백성들에게 구휼미를 푼 것이 여포군 군량사정을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백성들로부터 민심은 얻었으나 이러다가는 초선의 말대로 여포군 장졸들이 목숙을 말과 나눠먹어야 할 판이었다.
“부인, 너무 심려 마십시오. 살림이 빠듯하기는 하나 여차하면 병주의 장 자사나 엄 사마께 손을 벌릴 수도 있습니다.”
장양과 엄상은 그나마 형편이 나으니 그들에게 군량을 융통할 수도 있었다. 이는 초선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리적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군량을 빌릴 수 있다고 해도 가지고 오는 동안 군량이 동날 수도 있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겠습니까?”
“지금 보유한 군량이면 연국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정군은요? 상공과 그분의 군사들이 굶주린 채로 싸우게 할 수는 없어요. 배가 든든하지 않으면 싸울 힘이 나질 않을 테지요.”
초선은 자나 깨나 여포 걱정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안주인이 된 이상 끼니를 걱정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절감하고 있는 듯했다.
“부인, 아직 소출을 기대하기에는 시기가 이릅니다. 당장에 조달할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니 괜한 걱정 마십시오.”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야 있나요? 우리부터 아낍시다.”
초선의 말에 서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도 충분히 힘듭니다. 자사부 숙위들도 고깃국을 구경한지가 오랩니다. 장군께서 계실 때도 콩국수 먹는 날이 잔칫날 아니었습니까?”
서황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전쟁을 하려면 많은 재물과 군량이 필요한 법이 아닌가. 하지만 병주와 유주는 소출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땅이다. 자사부의 살림살이는 하루하루 간신히 이어나가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초선은 자사부의 안주인임에도 식사 때마다 반찬이라고는 거친 나물 하나만으로 끼니를 때워야만 했다. 하물며 초선이 이런 상황인데 다른 자들을 말해 무엇하랴.
“더 졸라매야 합니다. 가짓수를 줄이고 더 줄일 수 없다면 그 양이라도 줄여야지요.”
초선은 서황이 뭔가 불만을 제기하려 입을 열기가 무섭게 말을 돌렸다.
“옹노에서 연일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지요?”
“예, 부인. 벌써 나흘째 밤낮으로 싸우고 있다합니다.”
“부상자가 많겠어요. 금창산을 좀 보내야겠는데······.”
초선의 관심사는 옹노로 보낼 금창산을 향해 있었다.
“비 도장이 자사부에 머무르고 있으니 기별을 넣어두겠습니다. 어차피 하루 세 번 그 실성한 자를 보러 가는 일 말고는 약초와 씨름하는 분이니 제법 만들어 놓았을 겁니다. 제가 한번 보고 오리까?”
“아니에요. 서 대인도 할 일이 많으실 터. 대인께선 군리부의 일을 계속 해주세요. 비 도장께는 제가 다녀오겠어요.”
* * *
자사부 별채에는 약향이 진동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비장방이 연단을 하느라 오만가지 약초를 다리고 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장방은 자신이 직접 지은 다 쓰러져가는 초옥 안에서 거무튀튀한 단약을 동그랗게 만드느라 손바닥으로 비비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초선이 초옥의 문 앞에 서기가 무섭게 초옥 안에서 비장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시오.”
인기척도 내지 않았건만 비장방은 초선이 왔음을 알고 들어오기를 권했다. 초선은 그의 선법에 내심 감탄하며 초옥 안으로 들어섰다.
“어찌 누군지 묻지 않으셨습니까? 나쁜 사람이면 어쩌려고······.”
“오실 줄 알고 있었소.”
“비 도장, 그럼 제가 무엇 때문에 왔는지도 아십니까?”
초선은 비장방의 영험함을 다시 한 번 시험하려 했다. 그러자 비장방은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물론이오. 부인께서 본 도장을 찾으신 까닭은 크게 두 가지 일 터. 하나는 금창산 때문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대인의 상세가 어떤지 묻기 위함이 아니오?”
비장방이 말하는 ‘이 대인’이란 이이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일족의 수급이 가득 든 상자를 보고 실성한지도 벌써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도장,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찌 그걸 훤히 꿰뚫고 계십니까?”
초선은 비장방이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비장방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귀하신 분이 본 도장을 찾으실 때는 본 도장이 필요한 일 뿐인데 이 몸의 재주라고는 약을 만드는 것과 병증을 돌보는 일 뿐이지 않겠소?”
“도장, 영명하십니다. 그럼 본녀가 왜 왔는지 알고 계시니 답을 듣고 싶습니다.”
“금창산이라면 뒤편 창고에 쌓아 두었으니 당장이라도 가져가시면 될 일. 그리고 이 대인은······.”
비장방은 이이자의 상세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별 차도가 없소.”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보시는 거야 어렵지 않으나 보셔봐야 실망만 클 게요.”
말은 그리 하면서도 비장방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초선을 데리고 초옥의 맞은편에 자리한 이이자의 처소로 안내했다.
초선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이자의 상태가 어떨지 궁금증이 더해갔다. 의형인 공손찬에게 일가족이 모조리 목이 달아났으니 동정하는 마음도 컸다.
이이자는 등을 보인 채 돌아 앉아 있었다.
“이 대인, 비장방이오. 잠은 잘 주무셨소?”
비장방이 말을 걸어보지만 이이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비장방은 초선에게 턱짓을 하며 보란 듯이 말했다.
“이렇소. 암만 불러도 대답도 없고, 떠먹여 주지 않으면 음식은커녕 물도 입에 대지 않소. 이대로라면 사람 구실하기는 글렀소.”
비장방의 소견은 그랬다. 침구에는 재주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모조리 써보았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다.
결국 노식이 말한 것처럼 시간이 약이라 생각하고 기력을 보하는 탕약 정도나 지어주며 이이자가 정신을 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늘로 찌르거나 하면 아픔은 느낍니까?”
“다행히 통증에 대한 반응은 돌아왔소이다. 하지만 그것은 육신만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고, 정신은 아직······. 헛!”
비장방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돌연 헛바람 빠지는 소리를 터뜨렸다. 초선이 이이자의 앞으로 가 얼굴을 마주하자 그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초선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고, 초선은 그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비장방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이이자를 떼어내려 손을 뻗었으나 초선이 살짝 눈짓을 하자 더는 관여치 않았다.
비장방은 여유 넘치는 초선을 보며 내심 혀를 내둘렀다.
‘간도 크다. 여 장군의 처라 다르긴 다르구나.’
사실 실성한 사람의 손길에 얼굴을 맡긴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사람이니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고운 얼굴에 자칫 상처라도 남는다면 대체 누구를 탓할 것인가.
“옥방······! 옥방이가 아니냐? 아이고, 내 이쁜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이이자는 초선을 자신의 딸 옥방으로 착각했다. 그러자 비장방은 실소를 머금었다.
‘그대가 무슨 수로 부인과 같은 천하절색의 용모를 가진 딸을 둘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편으론 이이자의 행동이 이해되기도 했다. 비장방은 도를 구하는 자로 처자식을 두지는 않았으나 딸이 있다면 어찌 생겼건 천하에서 가장 이쁘다 여길 것 같다 여겨졌다.
천하절색의 초선이 아비로서의 이이자를 자극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장방은 잠시 동안 행복에 빠진 이이자를 다시 현실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 대인, 정신 차리시오. 당신 딸은 이미 죽었소. 이분은 여 장군의 처요.”
“거짓말! 내 딸, 옥방이 이렇게 내 눈 앞에 있거늘······!”
“공손찬에게 당신의 일가가 도륙났거늘······ 벌써 그 일을 잊은 거요?”
비장방이 공손찬의 이름을 들먹이자 이이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공손찬!!!”
그제야 그간의 기억이 이이자를 다시 현세의 지옥으로 내몰았다.
“공손찬! 네놈이 내 집안을 멸했듯 나도 놈의 집안을 멸할 것이니라.”
이이자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 마치 흉신악살을 방불케 했다. 복수심으로 불타던 그가 비장방을 노려보며 말했다.
“붓과 죽간을 다오. 내 비록 창칼을 휘둘러 놈과 싸울 수는 없으나 여포의 칼을 빌려 놈의 목을 치리라!”
그러자 비장방은 즉답을 피하며 초선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결정은 초선이 하라는 무언의 압박. 이에 초선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내 비장방은 죽간과 필묵을 가져와 이이자에게 건넸다. 그리고 방 한 켠에 작은 향초를 태워 방안을 은은한 향기로 채웠다.
초선이 먹을 갈자 이이자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붓을 들었다.
“후우~!”
이이자는 길게 한 숨을 내쉬고는 일필휘지로 글을 써내려갔다.
그는 토은과 무종 땅을 비롯해 포구수 너머 공손찬의 영향력 아래 있는 땅에 관한 정보를 막힘없이 썼다. 어디에 군영과 요새가 있는지, 주둔하고 있는 병사는 얼마나 되는지 그곳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지 낱낱이 써내려갔다.
그가 자리를 비운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병력의 수는 변동이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한 때는 공손찬의 군사였으니 다른 정보들의 정확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리라.
그는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반시진 동안을 오직 글을 쓰는 데에만 매진했다. 그리고 그가 붓을 놓고 허리를 폈을 때 그의 눈빛은 예전의 그로 돌아가 현기를 흘리고 있었다.
이이자는 정성드레 쓴 죽간을 돌돌 말아 내밀었다. 그러자 초선은 그 죽간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들었다. 이 죽간이야말로 공손찬의 목을 옥죄일 보물이기 때문이다.
* * *
옹노 공방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여포군은 사흘간의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포구수를 넘기 위해 배를 모았다.
무종진에 주둔했던 전예대가 선발대의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수차례 배를 보냈으나 모두 포구수를 넘지 못하고 뱃머리를 돌려야만 했다.
포구수 이쪽 편을 우적군이 지키고 있다면 너머에는 공손찬군이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루터마다 공손찬군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으니 배로 강을 넘어야 하는 여포군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아잇!”
여포는 다시 또 돌아온 선발대의 배를 보며 한탄했다. 그러자 가후는 고개를 들 낯이 없었다.
‘물길이 앞길을 막는구나!’
이 상황에선 가후로서도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옛 이야기처럼 물고기와 거북이가 수면 위로 올라와 다리를 만들어 줄 리도 없었다.
“저 선생, 선생을 볼 낯이 없소.”
가후는 목소리를 낮춰 저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원소보다 공손천을 먼저 쳐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군사의 권한으로 저수의 의견을 눌러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지 않았던가.
하지만 일이 이 지경에 처했으니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물길은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 괘념치 마십시오.”
하북에선 배를 타고 싸운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말을 타며 활을 쏘는 자들이 배가 좀 흔들린다고 해서 활을 쏘지 못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기야 세곡선을 터는 수적들조차도 뭍에서 갈고리를 던져 배를 묶으려 할 정도이니 해상전을 그 누가 생각이나 할까.
여포군이 그렇게 또 하루를 공치려 할 때 희소식이 왔다.
“보고요!”
전령의 우렁찬 목소리가 가후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전령은 품속에서 두 개의 죽간을 꺼내 가후에게 바치며 말했다.
“초 부인께서 군사 어른께 보내시는 죽간입니다.”
“여 장군께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내게······?”
가후는 초선이 여포에게 보낼 연서를 자신에게 잘못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쉽사리 봉인을 뜯지도 않았다. 하지만 전령의 대답은 의외였다.
“반드시 군사 어른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래?”
가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죽간의 봉인을 뜯었다. 그렇게 가후는 죽간을 펼쳐들었다.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단숨에 몇 줄을 읽어 내린 가후는 전율에 휩싸였다.
가후는 죽간을 쥔 손을 파르르 떨며 전령에게 물었다.
“초 부인의 글씨가 아니다. 누가 쓴 것이냐?”
“비 도장께서 돌보는 환자가 쓴 죽간이라 합니다.”
전령의 말을 듣자마자 가후는 이이자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이이자? 이 대인은 실성했는데······?”
“초 부인께서 그자의 상세를 살펴보러 가셨는데 그 때까지 멍하니 있던 자가 초 부인을 보자마자 정신을 차렸다고 합니다.”
전령의 말에 가후는 무릎을 치며 쾌재를 불렀다.
“핫하하! 하늘이 돕는 구나!”
고개도 못 들던 가후가 돌변하여 크게 웃음을 터뜨리자 저수가 끼어들었다.
“선생,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그리 기뻐하십니까?”
“이 죽간을 좀 보시오.”
가후가 저수에게 죽간을 내밀었다. 그러자 저수는 죽간을 받아들고 작은 글씨에 초점을 맞추었다. 몇 자 읽지도 않았거늘 그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이······ 이럴 수가!!!”
저수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내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도! 지도를 가져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