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477
476화 손문대차중유경승(孫文臺借重劉景升)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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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는 비장방의 말을 듣자마자 옛 기억을 들췄다. 충해가 아니라도 기근이 지나면 돌림병이 도는 악순환이 이어졌던 것들이 생각났다.
시체를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백성들도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황이니 하찮은 질병에도 이기지 못한다. 뭐든 먹을 수 있는 거라면 아무거나 주워 먹으니 병을 불러들이는 일이다.
산자가 어제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돌림병을 미리 막을 수가 있단 말이오?”
“그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리 약초를 준비해두면 어떤 질병이 유행했을 때 약을 만들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이오. 숨만 붙여 놓는다고 구휼이 아니지. 못 먹어서 배고픈 것도 서러운데 아프기까지하면······.”
여포는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그 때 문 밖에서 위월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형, 나 위월이오. 들어가오.”
위월은 예의가 없었지만 흠을 잡을 사이는 아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여포가 반겼다.
“아이쿠! 새신랑 오셨소?”
“눈 밑이 거무죽죽한 걸 보니 신혼은 신혼인가보오.”
왕진까지 가세해 위월을 놀렸다. 그러자 위월은 의자에 몸을 묻었다.
“말도 마오.”
위월은 손사래를 치며 목에 주름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용성비기의 대가인 왕진이 그의 사정을 속속들이 꿰뚫었다.
“이런······ 이런······! 속궁합이 안 맞는구먼.”
“아니 그걸 어찌······?”
“방중술만 반평생을 익혔는데 그걸 모르겠소?”
“오오! 무슨 방도가 없겠습니까?”
위월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왕진에게 매달렸다. 그러자 왕진은 뜬금없이 노래를 불러댔다.
“중문 금첩에 빗장을 걸고 등불을 환히 밝히겠소. ······(중략) 옷고름 풀고 밤화장을 하고······(중략) 즐거움 중에는 밤의 즐거움만 한 게 또 어디 있겠소.”
“아이쿠! 망측스러워라. 갑자기 남사스런 노래는 어찌 부른단 말입니까?”
위월은 노골적인 가사에 기겁을 했다. 음담패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친분이 있는 자들 사이에서만 그런 것이다.
“이게 바로 동성가(同聲歌)라는 노래요.”
“누가 노래 이름을 물어봤습니까?”
위월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성질을 부렸다. 하지만 왕진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이런 노래가 있는 것은 여인도 방중비기를 익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오. 합이 맞지 않는 것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고, 이를 고치지 못하는 것은 용성비기를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이외다. 게다가 제대로 가르쳐 줄 사람이 없지.”
“남에게 내 부인을 어찌 맡기겠습니까?”
외간남자에게 부인을 맡겨 방중술을 가르치게 할 사내가 있을까? 있다면 변태적인 성향을 가진 자라고 밖에 달리 말할 수 없으리라.
“그래서 환관이 있는 게 아니겠소? 조 대인이 그런 일엔 전문이니 상담을 한 번 받아보시오. 도움이 될게요. 이참에 말 나온 김에 같이 갑시다. 어차피 나도 돌아가려는 참이었소.”
* * *
끼니때가 되어 소부가 직접 음식을 가지고 여포의 방을 찾아왔다.
소부가 음식을 내놓고 있는 와중에 한호 일행이 들이닥쳤다.
“음······? 무슨 일이오? 식전이면 함께 드십시다.”
여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인지 장왕은 소부를 밀치고는 음식이 든 나무통에서 그릇을 꺼내는데 열중했다.
그는 여포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는 아니라도 혼자만 좋은 음식을 먹을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장왕이 꺼낸 음식은 고작 두 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하나는 호병이고, 나머지 하나는 목숙으로 만든 박채였다.
장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빈 나무통을 뒤집어 털기까지 했다. 하지만 더 나올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이게 여 장군이 먹는 음식이란 말이오?”
장왕이 놀라며 묻자 여포의 대답이 더 가관이다.
“아아! 너무 많아서 그러는 모양이구려. 하루 두 끼나 먹으면서 한 끼에 이리 많이 먹다니 지금도 굶고 있을 백성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긴 하지.”
“아니 그 말이 아니외다. 우리집 종복도 이렇게는 안 먹소. 이런 걸 먹고 어찌 산단 말이오?”
“흠! 흠!”
한호가 헛기침으로 주의를 주자 장왕은 입을 다물고 눈치를 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 셈이니 당황한 마음이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한 종사, 대체 무슨 일이오?”
여포가 묻자 한호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읍했다. 여포를 두고 내기를 한 것이니 수하된 입장에선 큰 잘못이기 때문이다.
“장군, 실은······.”
한호가 사실대로 고하자 장왕과 산본은 불호령이 떨어질까 두려워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여포의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하하하! 그거였소? 보니 어떻소? 장 대인, 한 번 말해보오.”
“그게······. 암만 생각해도 말이 안 되잖습니까? 천하 십삼 주 중에서 병주와 유주를 지배하고 있고, 하내도 평정했고, 벼슬로 따지자면 삼공에 준하는 어사대부의 자리에까지 오른 분이 어찌 이런 하찮은 음식을 드신단 말입니까?”
“이게 어디가 어때서 그러오? 이, 여포 봉선. 병주 출신이오. 이렇게만 먹어도 잘 먹는 거지.”
여포는 열국의 시절, 삼천 식객을 거느렸던 맹상군과 비슷한 일을 당한 셈이다.
맹상군의 식객 중 하나는 맹상군이 자신만은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는 걸로 오해하고 불시에 쳐들어가 맹상군의 밥상을 확인했던 일이 있었다.
맹상군은 식객과 자신이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 식객은 부끄러워 자결했다.
물론 여포는 병사들과 같은 음식을 먹었고, 여포의 밥상을 덮쳤던 장왕과 산본이 자결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대들은 귀한 집에서 귀하게 자라서 모르겠지만 이것도 못 먹는 자들이 지천에 널렸소. 그런 자들을 위해서 곳간을 좀 열라는 게 잘못 되었소?”
“베푸는 일은 강제로 하는 게 아닙니다. 어찌 남을 돕는 일을 강제로 하게 하십니까?”
여포는 장왕의 말에 불같이 화를 냈다.
“내가 왜 그대들을 살려두고 있는지 정녕 모르겠는가? 똑똑히 들어라. 내가 너희를 참하지 않고 오히려 한 장군과 혼연을 맺게한 것은 하내를 잘 아는 자들끼리 힘을 합해 하내를 부흥케하라는 뜻이다.”
여포는 장왕과 산본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하내 백성들이 다 굶어죽고 나면 그 때도 그대들이 하내의 명문입네 주장할 수 있을까? 아무도 떠받들어 줄 사람이 없을 텐데도?”
여포의 말에 장왕과 산본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포의 꾸지람은 끝나지 않았다.
“재물이 많다고 명문인가? 아니면 집안에서 고관대작이 나와야 명문인가? 내가 생각하는 명문은 그 집안이 모든 것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 땅에 사는 백성들에게 환대를 받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대들 가문은 과연 명문인가? 아니라면 이 참에 명문이 되어볼 생각은 없는가?”
여포는 장양의 일이 생각나 이 같은 말을 했다.
예전에 여포가 정원의 아장 노릇을 하던 시절이었다. 정원은 장양의 명성이 병주 내에서 날로 높아지자 이를 경계해 한동안 면직시킨 일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백성들에게서 자연히 그 이름이 잊히게 될 것이고 그리되면 제거하기도 용이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 때 장양이 자신의 고향 운중 땅으로 들어서자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나와 그를 환영했던가. 그 일로 인해 정원은 장양을 해치려던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하지만 장왕과 산본이 이 같은 일을 알 리 없었다.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오해 같은 이해를 했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의 고사로 우리를 깨우쳐주려 함인가? 말로는 설문해자만 깨쳤다고 하지만 이런 것까지 알 정도이니 어쩌면 여 장군의 학문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을 지도 모르겠구나.’
‘사마 가문의 도움 없이 하내의 진정한 명문으로 거듭나라는 주문인가? 그저 용맹한 무장에 불과하다 여겼는데······.’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꾀 많은 토끼는 도망칠 구멍을 세 개는 뚫어놓는다는 얘기다. 풀이하자면 미리 준비하여 환란을 피하라는 것이다.
맹상군이 풍훤이라는 식객의 기지로 고향 땅의 백성들에게 크게 베풀어 훗날 큰 화를 피했다는 고사가 있었다. 하지만 여포가 이를 알 리 없었다. 어쨌든 장왕과 산본은 여포의 말에 감복해 고개를 조아렸다.
한호가 다시 한 번 헛기침을 하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았다. 약속한 삼고두를 행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장왕과 산본이 엎드려 절을 하려들자 여포가 이를 제지했다.
“지금 뭐하는 거요? 나는 식사를 해야겠으니 더 볼 일이 없다면 나가보시오.”
여포가 축객령을 내리자 이들은 여포의 방에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보게, 사위. 내가 잘못했네. 여 장군에게 크게 감복했으니 약속대로 곳간의 빗장을 풀겠네.”
방을 나서자마자 장왕이 말하자 한호는 산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산본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내놓겠네.”
여포의 뜻하지 않은 활약으로 한호는 평고의 장 씨와 회의 산 씨에게서 많은 양곡을 얻어내게 되었다.
하지만 수확은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장 씨와 산 씨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수확이라 할 터였다.
맹진을 기준으로 동쪽으로는 장 씨와 산 씨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특히나 장 씨 가문은 평고 뿐만 아니라 다른 땅에도 가세를 뻗고 있었다.
장 씨 가문에는 지모가 뛰어난 자들이 많았고, 산 씨는 학문이 깊은 사인들이 많았다.
북쪽에선 여포에게 거듭 운이 따라 내실을 다져가고 있을 때 남쪽에서도 알차게 실력을 쌓고 있는 영웅호걸이 있었다.
* * *
부춘의 손 씨 가문은 오나라의 후예를 자처해 왔다. 물론 한조에서 하급 관직을 맡아왔지만 오나라 부흥이라는 야심을 가지고 가세를 불려왔다.
누구는 이들을 일컬어 손자의 후예라는 자들도 있고, 오나라 왕실의 먼 핏줄을 이어받았다는 자들도 있지만 증명할 방도는 없었다.
이미 한조가 천하를 다스린 지도 수백 년이 흘렀는데 그 증거가 남아 있다면 어찌 손 씨 가문이 지금껏 존속할 수 있었으랴.
손종의 대에는 인근의 도적 무리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가세를 이루었고, 손견의 대에 와서는 중앙의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원 가와 연이 닿았다.
원술의 수족처럼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가며 해준 대가로 손견은 강남 전역에 이름을 날렸다. 손견의 군대가 뜨면 해적과 도적들이 도망치기 바빴을 정도이니 군세의 강함이 가히 짐작이 가리라.
이후 황건동란에서 큰 공을 세웠다. 잡호장에 불과하지만 파로장군이라는 장군직을 받았으며 허울 뿐이나 예주 자사 자리에도 올랐다. 부춘의 하급 관리나 하던 집안이 대 출세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손견에게는 ‘원술의 개’라는 기분 나쁜 별명이 붙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오군 부춘. 손 씨 고가.
손견은 아버지 손종과 독대하며 향후의 일을 논하고 있었다. 책사라 할 만한 사람이 휘하에 없었기 때문에 손견은 대소사를 손종에게 물었다.
“오늘내일 하는 이 늙은 아비를 찾아온 걸 보니 또 무슨 일이 생겼나보구나.”
손종의 말에 손견은 고개를 조아렸다.
“자식이 아비의 뜻을 좇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말은 잘하지.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어 나를 찾아온 것이냐?”
“원술이 소자에게 전서를 보내왔습니다.”
손견은 손종에게 원술이 보내온 전서를 바쳤다. 그러자 손종은 곧장 전서를 펼쳐 읽어내렸다. 손종의 눈동자가 아래위를 오고가길 수차례. 전서를 끝까지 읽고는 그대로 아무렇게나 놓아버렸다.
이런 저런 얘기들이 많지만 전서의 본론은 간단했다. 남양으로 와서 자신을 도우라는 것이었다.
“끈 떨어진 연 주제에 감히 내 아들을 오라가라 해?”
손종은 화를 내더니 손견과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너는 지금 갈지 말지를 결정하지 못해 이 애비에게 물으러 온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가자니 당당한 손 가의 자식이 꼴이 우습게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안 가자니 혹시나 원술이 재기했을 때가 걱정입니다.”
이에 손종은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원술은 이제 재기하지 못한다.”
“어찌 그리 확신하십니까?”
“북방의 여포에게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수만 정병을 잃었고, 구정을 얻으려다 상장 기령까지 잃었다. 교유 하나로 뭘 할 수 있겠느냐? 그는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이니 그의 뜻을 따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