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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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그것으로 다시 일상이었다. 가후는 그 꼿꼿한 표정을 유지한 채 뭐라 뭐라 참 장황하게도 말했다. 아무튼 대단한 양반이야. 나는 턱을 괴고 그를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서 픽 웃었다. 가후도 이쪽을 보고 언뜻 웃는 낯인 것 같기도.
서량에서 날아온 한수의 전갈은 한중을 발칵 뒤집었다. 관중제장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일은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기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유장이 세작을 심어 반란을 획책했다는 사실은 그냥 넘기기 어려웠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뒤로는 이런 못된 꿍꿍이를 품고 있었단 말인가?”
마등은 죽간을 내팽개치며 눈에 쌍심지를 켰다. 이래서야 마음 놓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서량의 정세도 불안한 마당에 유장에게 배후를 타격당하면 마등의 세력은 그대로 증발해버릴 터였다. 마등의 참모 노릇을 하는 천만도 이 소식에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익주의 순둥이라고 하더니 마냥 그렇지도 않은가봅니다.”
“성도로 사자를 보내 이 일을 질책하는 것은 어떻겠느냐.”
마등이 말하자 천만이 펄쩍 뛰며 이를 만류했다.
“아니 됩니다. 그 순간 동맹은 끝장입니다!”
“이미 끝장난 것과 다름이 없질 않느냐!”
“우선은 참으셔야 합니다. 섣불리 군대를 움직이지 않는 선에서 일은 마무리하시지요. 놈들의 동태를 살펴야 합니다.”
마등은 좀체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괘씸한 것들!”
잠자코 듣고 있던 마초가 끼어들었다.
“아버지, 유장도 유장이지만 이감, 양추, 마완, 양흥 이 배신자들을 어떻게든 조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 머저리들도 어떻게든 다스려야 한다.”
천만이 말했다.
“그들을 처벌해서는 아니 됩니다. 서량의 인심이 흉흉해질 겁니다.”
“허면 그냥 둬야한단 말이냐!”
천만이 눈을 번뜩였다.
“그들의 영지를 전봉(轉封)하십시오.”
마등이 천만을 바라봤다.
“전봉?”
“그렇습니다. 이감은 양흥의 영지로, 양추는 이감으로, 마완은 양추로, 양흥은 마완의 영지로 전봉하십시오. 허면 그들은 새로이 부임한 영지에 익숙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에 익숙하지 않으니, 쉽게 일을 벌이지 못할 것입니다.”
“옳거니, 묘계로다.”
마등은 천만의 계략을 그대로 채택하여 반란을 획책한 관중제장의 영지를 모두 전봉시키고, 죽은 정은, 성의, 후선의 영지는 한수와 함께 둘로 나누어 가졌다.
그 후에 마등은 상용에 주둔하고 있던 방덕의 일만 병력을 한중으로 철수시켰다. 익주의 유장을 경계하여 한중의 방비를 강화하고 섣불리 앞으로 나서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내내 잘 버티고 있던 방덕이 하루아침에 한중으로 퇴각하자 상용의 호족인 신탐은 머리를 긁으며 그 행렬을 불안하게 바라봤다.
“송경에 사자를 보내라.”
나는 마등이 상용에서 발을 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명령했다. 눈치 빠른 량이가 이 말을 받았다.
“장제를 치실 생각이시군요.”
나는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렇다.”
남양의 장제는 서쪽으로는 마등, 동쪽으로는 원소에 의지하고 있었다. 기실 장제의 세력 자체는 보잘 것 없었으나 촉왕과 량왕, 은왕과 담왕을 연결해주는 가교로서 구실했고 천하의 거성인 장안을 보유한 것에서 그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마등이 유장을 의심하여 상용의 병력을 거두어들이니 이는 장제를 토멸할 절호의 기회였다. 비록 원소가 장제를 돕는다지만 마등이 참전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었다.
“북부교위(왕수)께서 송경에 가주시지요.”
왕수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허리를 숙였다.
“존명.”
“송경의 윤허가 떨어지는 대로 북진하도록 할 것이오. 형주자사 노숙은 계속 한중의 마등을 경계하도록 하고, 서부교위 좌자를 주장으로 삼고 주환과 가후를 부장으로 삼아 병력 이만을 맡겨 치도록 하겠소.”
좌자는 킬킬 웃었다.
“하도 나를 전장으로 안 내보내기에 내 이름 까먹은 줄 알았잖수.”
나는 좌자와 바라보며 말했다.
“술은 절대 드시지 말고.”
“노력하겠수.”
여전히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로 그들을 보내려는데, 내 곁을 지키던 황충이 앞으로 나섰다.
“황한승, 합비로 와서 녹슨 칼처럼 서있기만 하니 부끄러움을 견딜 수가 없소이다. 부디 이 몸 또한 남양으로 보내주시오.”
나는 빙긋 웃으면서 황충을 바라봤다.
“그대가 그리 말씀해주시니 든든하오. 서부교위 좌자를 주장으로 하고 주환, 가후, 황충을 부장으로 하겠으니 송경의 윤허가 떨어지는 대로 즉각 출정하라!”
“존명!”
가후는 이마를 탁 짚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고집불통을 셋이나……”
유총은 이례적으로 빠른 답신을 보냈다. 그 역시 마등이 주춤한 이때가 천재일우의 기회임을 알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밝혔다. 남양을 점령하면 온전히 천자의 직할로 삼을 것이라고. 장안 역시 그리할 것이라고. 다만 전략적 필요성이 제기될 경우 대장군부의 요인을 도독으로 삼아 일정한 병마의 주둔은 허용하겠다고 했다. 물론 남양과 장안을 내 몫으로 삼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유총의 입장도 생각해줘야만 했다. 나는 그것에 응낙하고, 즉시 좌자의 이만 병력을 남양으로 파견했다. 이만에 불과한 병력을 책정한 것은, 물론 내 피와 살 같은 병력을 아끼려는 것도 있었지만 유총이 남양과 장안을 직할로 삼을 명분을 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내가 만일 과도한 병력을 좌자에게 맡긴다면 아무래도 군공은 유총보다는 우리 쪽에 쏠릴 것이고, 그러면 남양과 장안을 두고 누구의 것이냐 다툼이 벌어지게 된다. 유총은 나의 든든한 우익으로 내내 있어야 하므로 불필요한 분쟁의 싹을 기르지 않기 위해 좌자에게 이만 병력만 남긴 것이었다.
“제갈찬 이 녀석이 순순히 남양과 장안을 넘겨주겠다고 하니, 이를 믿어도 될까?”
낙준은 유총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양과 장안이 중요한 땅이기는 하지만 제갈찬은 신경 써야할 곳이 너무 많습니다. 우선 제갈찬은 서쪽으로는 상용과 한중에, 동쪽으로는 원소와 유비가 합세하여 진군할 영천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작 이만의 병력만 이곳으로 보내는 것도 우리에게 순순히 남양과 장안을 넘겨줄 의중인 것입니다.”
낙준은 그렇게 말하고 내전에 한 젊은이를 들여 유총에게 소개했다. 젊은이는 유총의 앞에 예의를 갖추어 절을 올렸다.
“말쑥하니 잘생긴 청년일세. 누구인가?”
젊은이는 그에게 읍하며 아뢨다.
“소인, 영천 사람으로 성은 서(徐)씨를 쓰옵고 이름은 서(庶)이며 자는 원직(元直)이라고 합니다.”
서서의 목소리가 다부져서 유총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낙준이 서서의 어깨를 붙들고 말했다.
“걸물입니다.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이 있으니 황상께서는 중하게 쓰십시오.”
“경은 저런 인재를 곧잘 물어오시는구려.”
“흙 속에서도 밝은 빛을 발하니 어찌 발탁하지 않으리오.”
유총은 기껍게 웃으며 서서에게 말했다.
“너를 참군교위(參軍校尉)로 삼을 것이니 이번 남양으로의 원정에 동참하도록 하라.”
“수은망극하나이다!”
좌자는 송경에 이르러 천자를 알현하고 여대가 이끄는 천병과 합류하여 남양으로 진격했다. 이에 장제는 전 병력을 긁어모아 삼만에 달하는 병력을 남양에 집중하고, 마등과 원소에게 사자를 보내 원병을 급파해줄 것을 간청했다.
마등은 단칼에 거절했다. 남양으로 병력을 보내자면 상용을 통해서 가야하는데, 거북이가 대가리와 사지를 껍데기 안으로 집어넣듯 마등은 이미 전 병력을 한중으로 거두어들인 후였다. 그래도 남양이 점령당하면 삼면으로 상용이 포위당하는 데다가 장안은 누구나 인정하는 요충지였으니, 병력 대신에 얼마간의 물자를 지원하였다.
원소도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남양과 장안은 원소의 영지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장제가 버텨야 동맹이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음을 알았다.
“준예(俊乂), 그대가 수고해주어야겠네.”
장합은 길게 대답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원소는 장합에게 병력 일만을 맡겨 급히 파견했다. 남양으로 떠나려는 장합의 팔을 전풍이 슬며시 잡았다.
“장 장군.”
장합이 전풍을 돌아봤다.
“말씀하십시오.”
전풍은 장합의 귓전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장제는 남양의 완성을 방어의 주축으로 하여 성 밖에 진을 쳤다. 맹장 호거아를 주장으로 삼고 여대가 이끄는 천병과 좌자가 이끄는 합비공의 정병을 맞았다. 천하에 이름 높은 명장들을 맞아 호거아는 주눅 들지 않고 면밀하게 진을 꾸렸다.
“오랜만이군.”
가후는 본래의 터전이었던 완성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호거아가 쳐놓은 진을 보고 수염을 쓰다듬었다.
“쉽지는 않겠어. 호거아는 진법에 능한 장수이니 많은 수효만 믿고 쳐들어갔다가는 졸전을 면치 못하리라.”
좌자는 가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의 등을 툭 건드렸다.
“그대는 훌륭한 미끼요.”
가후는 점잖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서부교위께서는 훌륭한 전략가이십니다.”
“실없는 칭찬은 관두구. 합비공 몰래 술을 먹게 해준다면 또 모를까.”
가후는 좌자의 말을 무시하고 적의 화살이 닿지 않는 한에서 가까이 다가가 호거아를 향해 외쳤다.
“나의 옛 벗이여! 잘 있었는가?”
가후가 뻔뻔한 웃음을 지으며 호거아를 향해 외치니 호거아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네 이놈! 남양왕 전하의 은택을 입고도 잘도 그 뻔뻔한 낯짝을 들이미는구나!”
가후는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뭐? 남양왕? 남양왕이 누구냐?”
“네가 옛 주인을 잊었느냐!”
호거아의 일갈에 가후는 고개를 젖히고 박장대소했다.
“난 또 누구라고! 설마하니 이런 궁벽한 땅을 차지해놓은 주제에 왕을 참칭할까 했는데 정말이었군!”
“이 자식……”
“남양왕이니 어쩌니 운운할 적에 그대는 얼굴이 달아오르지도 않던가?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할 텐데!”
호거아는 마침내 더 참지 못하고 칼을 뽑아들었다.
“쳐라! 저 망할 자식의 목을 베어 더 지껄이지 못하도록 하라!”
호거아의 명령에 그의 병력이 가후에게로 달려들었다. 가후는 치아를 딱딱 부딪치며 낄낄 웃었다.
“이크! 이러다 죽겠다.”
가후는 급히 고삐를 잡아당겨 본진으로 돌아갔다. 호거아가 출병하자 촘촘하던 진이 허물어지면서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미움 받는 데는 천하제일이야.”
좌자는 그렇게 궁싯거리고는 호거아가 먼저 나서면서 벌어진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호거아에게는 이제 수성군으로서의 이점이 사라지게 되었다. 전황을 관망하던 반장과 여대도 이에 질 수 없다는 듯 병력을 움직였다. 좌자는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다른 손으로는 제 허벅지를 북으로 삼아 장단을 두드리며 흥얼거렸다.
“제비 몰러 나간다― 제비 후리러 나간다― 이때 춘절 삼각 하사월 초파일 연자 나부는 펄펄― 수양버들에 앉은 꾀꼬리 제 이름을 제 불러 그물을 메어 들어 메고 제비를 후리러 나간다― 방장산으로 나간다―”
좌자는 말의 허리를 걷어차며 진의 선두로 나섰다. 그는 칼을 빼들고 이쪽으로 몰려오는 호거아를 바라봤다.
“제비 모가지 따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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