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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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유비가 형양을 노린다고 판단을 내린 종요는 권에서 출정하였다. 그는 손건을 웃는 낯으로 돌려보내자마자 잰걸음으로 형양을 향했다. 황개가 거느린 병마가 일만에 이른다면, 종요가 지닌 오천의 병력을 보낸다 한들 중과부적이었다. 정공법으로 맞서자면 그랬다. 용케 이긴다고 하여도 내상이 깊을 터, 종요는 기습을 선택했다. 양무에서 형양으로 내려오는 길은 대체로 평지였으나 도중에 험준한 산지를 필연적으로 한 차례 지나가야만 했다. 그곳에 매복했다가 기습을 가한다면 황개의 병력은 와해되는 줄도 모르고 순식간에 와해될 것이었다.
“승상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하리라……”
종요가 형양을 향해 나아갈 때쯤, 산양에서 출발한 전예의 병력은 성공적으로 수무를 우회하여 소수의 치중대만 남아있던 급현을 들이쳤다. 번개 같은 진격에 고간은 손 써볼 틈도 없이 급현을 내주고 말았다. 전예는 악착같이 급현의 치중물자를 모조리 불태우고 보급선을 차단해버렸다. 전풍의 의지대로 뒷길을 차단당한 고간의 진영이 크게 동요했다. 획가를 매섭게 들이치던 기세도 한풀 꺾이고 말았고, 이에 고람은 더욱 굳게 농성하니 전황은 고간의 기대와는 달리 지구전의 양상으로 변해갔다.
“상당공, 획가의 좌장군(장연)으로부터 물자를 추가로 보급해달라는 전언이 당도했습니다.”
두기가 보고하자, 고간은 탁자를 탕탕탕 내리치며 애꿎은 두기에게 성질을 부렸다.
“보급이 차단되었으니 아껴 먹으라고 하질 않았는가! 열흘 전에 잔뜩 받아 가놓고는 또 달라고?”
“어찌할까요.”
“못 준다! 도적놈들이 제대로 싸우지는 않고 배불리는 데만 혈안이 돼서는… 병신들!”
“그러나 보급에 응하지 않으면 좌장군의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고간은 뻐근해지는 뒷목을 잡으며 하는 수 없이 명했다.
“요청한 양의 절반만 내려라! 그리고 속히 급현의 쥐새끼를 치워버려!”
괄괄한 명령과 달리 두기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존명.”
종요는 산지에 병력을 엄폐시킨 채 한참을 기다렸지만 황개의 병력은 다다르지 않았다. 음전한 성품의 종요도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정도였다. 종요가 부관에게 물으니 부관이 답했다.
“놈들의 행진속도가 지나치게 느립니다. 일부러 느리게 행진한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으음……”
종요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목소리에 결기를 실었다.
“인내 없이 결실 없다. 놈들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종요는 몸을 숨기고 얼굴에 분을 칠한 먹잇감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산음(山陰)에 의지하여 한여름의 땡볕을 모면하며 차분히 기다렸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럼에도 속에서 짜증이 솔솔 피어오르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웬 늙은이들이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것도 아니고 군의 행진이 이토록 느리단 말인가?
황개가 종요의 매복지 근방에 등장한 것은 사흘이나 지난 후였다. 종요는 시시각각으로 보고를 받으며 완벽한 기습을 위해 긴장하고 또 긴장했다.
“적군의 몸통이 지나갈 때까지 결코 들켜서는 안 된다.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
“알겠습니다, 광록대부.”
저 멀리서 누를 황 자를 쓴 황개의 대장기가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병졸들의 얼굴에 칠한 희고 붉은 분이 어렴풋이 섞여 분홍색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종요는 숨소리에 적들이 달아날까 호흡도 간헐적으로 했다. 마구 달음박질하는 박동소리를 적들이 들을까 두 손을 모아 제 가슴에 갖다 댔다.
황개는 진의 선두에 서서 느릿느릿 접근해왔다. 그의 표정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올라탄 늙수그레한 전마도 주인을 닮아 수더분한 눈빛을 한 채로 약한 투레질을 했다.
“와라… 와라……”
종요는 입술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거의 다 왔다. 황개의 병력이 오롯이 협곡에 담기면 화살 비를 퍼부어 피로써 푹 적셔주겠다. 종요의 숨이 점점 가빠졌다. 그런데 협곡의 초입에 다다른 황개가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고삐를 확 잡아당겨, 편안한 눈빛을 하던 말은 눈알을 뒤집으며 앞발을 들고 길게 울었다. 말울음이 협곡에서 공명되어 크게 울렸다. 황개는 갑자기 목을 젖히고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어리석은 종요야!”
숙장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협곡을 흔들었다. 그 목소리는 종요의 몸을 한바탕 쓸고 지나갔다. 종요의 동공이 일순 수축되었다. 그때 후방을 지키던 부관이 외쳤다.
“광록대부! 불입니다! 불입니다!”
“뭐, 뭐라고……”
황개는 참을 수 없는 짜릿함을 만끽하며 주먹을 쥐었다.
“미련한 놈! 제 딴에는 허를 찔렀다고 생각했겠지만 허를 찔린 것은 바로 네놈이다!”
부관의 목소리가 더욱 다급해졌다.
“불길이 없는 곳은 유비의 병력이 지키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뭐라고…… 그것이 종요가 내릴 수 있는 군령의 전부였다. 교왕과직(矯枉過直)이라고 하는데, 종요에게는 교직과왕(矯直過枉)이 되고야 말았다. 곧은 선비의 기질을 버리고 굽은 책략을 구사해보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굽고 굽어서 도리어 자신을 해치는 책략이 되고야 말았다.
여름이라 공기가 물기를 많이 머금었지만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이니 제 아무리 여름날이라도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종요의 병력은 완전히 평정을 잃고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데, 불길이 없는 곳은 유비가 지키고 있었다. 용문(龍門)을 오르려는 잉어를 낚아채는 맹수처럼, 살 길을 찾아 뛰쳐나오는 종요의 병력을 찔러 죽였다.
“대, 대체 어찌된 일이냐……”
종요의 두뇌는 사고가 정지되었다.
영천에서 합비로 가후의 보고가 당도했다. 정보가 지키는 전선에서 일만이나 되는 병력이 빠져나갔다고 했으니,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는 보고를 기대했다. 그러나 보고는 영 내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정보의 병력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가후는 보고했다. 그러면 그 일만씩이나 되는 병력은 씨 뿌리고 물 줘서 거뒀단 말인가?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나. 가후의 다음 전언은 내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황개가 이끌고 갔다는 일만의 병력은 이름만 병력이되 실은 병력이 아니었다. 다만 퇴역한 노병이라든지 귀머거리라든지, 손이 한 쪽 없다든지, 소년병이라 하기에도 과소하다든지, 심지어는 제법 몸이 푸진 여인들도 섞여 있다고 했다. 그들은 비전투전력으로도 쓸 수 없는 자들이었다. 물론 춘군 같은 여인은 일기당천의 전력이 되겠지만 통상 여인들은 창칼 쥐는 법을 배우지 않으니까.
그들은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눈 주위는 붉게 칠했다. 적들에게 허약한 병력이 아니라, 만이의 만용을 뽐내는 사나운 병력이라 기만하기 위해서. 그들의 행진속도가 더딘 것은 고의인 까닭도 있고 능력의 한계인 까닭도 있었다. 퇴역 노병이나 몸이 성치 못한 이들, 지나치게 어린 소년병과 여인들은 필연적으로 오래 걷지 못하고 빨리 걷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느린 속도는 도리어 유비와 황개가 바라는 바였다.
그래야 봉구에 머물고 있던 유비가 전속력으로 나아가 종요의 뒤통수를 후려치니까. 유비는 오천의 병력을 필사적으로 기동시켜 높은 산지에 진을 친 종요의 뒤에다가 불을 지르고 생로를 막아 그들을 몰살시킨 것이었다.
“…봉추가 과연 봉추로군.”
가후는 적의 방비가 물 샐 틈 없이 단단하니 섣불리 칠 수 없다고 알려왔다. 나는 프로메테우스가 된 듯, 봉황새끼가 내 간을 쪼아 먹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내 옆을 지키던 량이가 싱긋 웃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뭘 그렇게 속 쓰려 하십니까. 아직 싸움은 시작도 안 했는데요.”
나도 그의 위로가 퍽 마음에 들어 살짝 웃어보였다.
“그렇지?”
“형님은 너무 남의 떡을 크게 보시는 경향이 있어요. 방통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지만, 형님의 손에 쥔 떡이 결코 유비가 든 것보다 작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내 떡이 얼마나 안 작은지 한번 만져볼까?”
내가 음흉하게 웃으면서 량이에게 손을 뻗자 량이는 질색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체면 좀, 체면 좀!”
나는 흐흐 웃으면서 딴청을 피웠다. 그래도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래, 봉황새끼가 다 뭐냐. 만천과해의 가후가 나에게 있고 봉추에 대립하는 와룡(臥龍)이 있다. 지금은 누운 용이지, 곧 떨치고 일어나리라. 와룡이 아니라 입룡(立龍)이 되리라.
종요의 병력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저마다 꽥꽥 절규하며 오로지 자신만의 판단으로 살 길을 찾아갔다. 이대로라면 전멸이 확실했다. 그러는 와중에 황개가 아랫배에서 끌어올린 묵직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형양을 무너뜨렸다! 다음은 은왕부다! 은왕부로 가자!”
황개의 외침에 그들의 병력 아닌 병력이 복창했다.
“은왕부로 가자! 은왕부! 은왕부! 은왕부!”
은왕부, 은왕부, 은왕부. 거센 외침이 종요의 마른 몸을 뒤흔들었다. 종요는 그 목소리에 사로잡혀 넋이 완전히 소멸될 지경이었다. 그는 부관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그의 얼굴은 완전히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은왕부, 은왕부, 은왕부. 적군의 외침이 그의 두뇌를 갉아먹는 듯했다. 나 때문에 은왕부가 넘어가게 생겼구나.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유비는 종요의 막사를 다 태우고 잦아드는 불길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바라봤다. 한껏 고무된 유벽이 유비에게 아뢨다.
“전하! 종요를 쫓으면 잡을 수 있습니다! 소장에게 맡겨주십시오. 반드시 종요를 전하의 앞에 무릎 꿇리겠습니다!”
유비는 아량 넘치는 웃음을 지으며 유벽을 바라봤다.
“장군의 충심만 받겠소. 종요는 잡을 필요가 없소.”
그의 말에 공도가 물었다.
“전하, 종요는 은왕부의 거물입니다. 어째서 그냥 놓아준단 말입니까?”
그 물음에는 방통이 대신 대답했다.
“종요가 거물이라 하였소……? 종요는 거물이 아니오.”
공도는 물정 모르는 눈을 깜빡거렸다.
“전하께서 드리운 낚싯대는 종요 같은 피라미를 잡으려고 마련한 것이 아니오.”
“허면……”
“피라미는 월척을 잡기 위한 미끼로 삼을 것이오. 큰 것을 잡고자 하면 작은 것을 놓아주어라……”
방통은 유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국사무쌍이 전풍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곧 증명하겠습니다.”
유비는 입가를 벌리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조가 역적을 토벌하지 못한 고간을 도리어 역적으로 규명하고 병사를 일으켰다는 전언이 전풍의 귀에 들어왔다. 안량에 맞서던 고간의 수족들이 마침내 안량에게 투항을 선언하고 귀부의 뜻을 밝혔다고 했다. 기실 고간의 명령을 받들어 안량과 대적했으나 애초에 그다지 충심이 깊은 자들이 아니었다. 고간이 신뢰하고 아끼는 자들은 모두 획가와 수무 전선에 투입되었고, 그저 그런 찌꺼기 취급을 하던 이들만 태원에 남겨 안량과 대적하게 했던 것이었다. 보급로가 차단되고 내부에서 동요가 심하다는 소식을 들은 그들은 자신이 쥐고 있던 고간이라는 동아줄을 미련 없이 놓기로 결정했다. 전풍은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태원의 소식이 고간에게 전해진다면 그들 내부의 동요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고간의 몰락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이 없었다.
“조조는 병주를 먹어치울 생각에 한껏 들떠있겠지……”
헛꿈 꾸지 마라. 오환의 말발굽이 곧 너를 징벌하리니. 전풍은 답돈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더라는 안량의 밀서를 받고 조조에게 실컷 혀를 갈겨주었다. 만일 오환이 대대적으로 남하를 개시한다면 조조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병주에서 철수해야만 할 것이다. 조조가 아무리 매섭다고 한들 성문을 걸어 잠그고 안량이 농성으로 일관한다면 단기간에 병주를 평정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시간만 어느 정도 끌어준다면 오환의 대대적인 침략으로 조조는 병마를 거둘 수밖에 없을 터, 조조의 침입은 태원 일대에 있던 고간의 수족들을 안량의 수족으로 삼게 하는 순기능만 남기고 무위로 끝날 것이다. 다시 조조는 오환과 지지부진한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될 것이고, 고간은 곧 멸망하리니 은왕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체제를 구축하고 다시 내실을 다져 천하를 향해 포효할 날을 고대하리라.
모든 것이 전풍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것저것을 셈하느라 잔뜩 경직되었던 전풍의 표정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정은 찰나에 그쳤다. 동쪽 전선에서 날아온 급보는 지금까지의 호재를 모조리 무화(無化)시켰다.
“권을 지키던 광록대부 종요가 적이 형양을 노린다고 판단, 길목에서 매복하다가 도리어 적에게 당해 전멸하였습니다!”
“뭐라……”
“영천의 진등과 대치하던 전선의 병력 일만이 깊숙이 들어왔고, 봉구에 주둔하던 유비도 오천의 병력을 몰아 광록대부 종요의 뒤를 쳐 격멸한 것입니다!”
칼로 후비는 듯한 격통에 전풍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럴 리가 있느냐! 어찌 제갈찬과 대치를 하는데 일만이나 되는 병력을 낼 수가 있겠느냐!”
합비공은 청금을 통해 그들이 실은 전력 외의 인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전풍은 그것마저 파악할 정보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합니다!”
“이런 멍청한!”
전풍의 풍성한 턱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승상! 광록대부 종요가 뵙기를 청합니다!”
전풍은 눈에 힘을 주고 외쳤다.
“당장 들어오라고 해라!”
종요는 거지꼴을 해서는 전풍의 앞에 엎드렸다.
“승상!”
“이 멍청한 사람 같으니라고……!”
종요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우는 소리를 냈다.
“면목이 없습니다, 승상……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시생, 당장 그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으나 승상께 알려야 할 소식이 있기에 이렇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승상을 뵈었나이다.”
“그 소식이 무엇인가.”
“황개와 그 사졸들이 은왕부로 향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은 은왕부로 올 것입니다. 은왕부에 전력을 충원하여야 합니다! 전하가 위험합니다!”
전풍은 부러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냉철, 냉철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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