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66
“전하, 조만간 북비가 퇴군을 결정할 것 같습니다.”
유엽의 보고에 나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하기야,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긴 합니다만.”
“세작의 보고에 따르면 황하에 걸친 항구들에 공병들이 대거 포진해있다고 합니다. 나무를 베는 걸로 봐서는 부교(배다리)를 건설하여 퇴각할 심산인 모양입니다.”
“싱겁게 되었군요.”
유엽은 미소를 지었다.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냥 물러날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건 또 무슨?”
“적의 포진에 다소 변화가 있었습니다. 선봉에 있던 우금과 악진, 전예, 왕릉 등의 병력이 뒤로 물러나고 요동과 오환의 병사들이 선봉에 섰습니다.”
“음?”
“귀한 것을 숨기고 하찮은 것을 내세운 것입니다. 버려도 아쉽지 않은 것들을요. 우금과 악진, 전예, 왕릉이 서쪽의 진으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적들은 아마 낙양을 노리는 것이 아닐까 판단됩니다.”
나는 손을 모아 턱을 괬다.
“낙양이라……”
조의 주동이 낙양 방면으로 이동하자, 낙양을 지키고 있던 곽원도 모든 전력을 낙양에 투입했다. 그는 사수관 동쪽에 개미떼처럼 운집한 조의 병력을 보고 이를 딱딱 부딪쳤다.
“젠장, 이 곽원의 운은 끝까지 풀리질 않는구나!”
그때 홍농에서 전령이 당도했다.
“도독! 홍농에서의 전갈입니다!”
그는 전령을 돌아보고 눈빛을 쏘았다.
“홍농에서의 전갈이라니! 어째서!”
홍농은 낙양의 서쪽이다. 그곳에서 전갈이 왔다는 것은 서쪽에서 변고가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홍농의 서쪽은 장안이었다. 즉, 장합이었다.
“기어코 준예(장합의 字)가 나를 배반하는가!”
그러나 전령은 그 한탄을 즉각 부정했다.
“아닙니다!”
이제 막 가슴을 쾅쾅 치며 본격적은 한탄에 들어가려던 곽원은, 의외의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배반이 아닙니다!”
곽원은 동그랗게 뜬 눈을 날카롭게 벼렸다.
“원래 동지가 아니었으니 내 뒤를 쳐도 배반이 아니라는 개소리를 지껄일 거라면 관두는 게 좋을 거다. 네놈의 그 망할 혓바닥을 만 갈래로 찢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전령은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도 제 할 말을 분명히 했다.
“그, 그런 것이 아니오라, 장안의 장합 장군이 도독의 뒤를 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치려는 것이 아니다?”
곽원의 말씨가 다소 누그러지자 전령도 예의 씩씩함을 되찾았다.
“예!”
“허면 무엇이냐.”
“장합 장군은 도독을, 아니 정확히는 신왕 전하를 돕겠다고 했습니다!”
곽원의 콧구멍이 웃을 듯 말 듯 벌름거렸다.
“뭐라?”
“지금 장합 장군이 장안에서 출정, 홍농을 경유하여 이곳 낙양으로 오고 있습니다! 도독과 병력을 합쳐 과거 은왕부를 허물어트렸던 원수 조조를 토벌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그, 그래?”
곽원은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목을 한껏 뒤로 젖히고 그제야 맘 놓고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준예 이 친구! 이제야 정신을 차렸군! 그렇지, 그렇지. 이래야 나의 벗 장준예가 아니겠는가!”
기실 장합이 귀부를 택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있었다. 량왕부의 모험이 처참한 패배로 끝나고, 송경의 천자마저 몰락한 상황이었다. 세자를 인질로 잡히고 전력의 막대한 손실마저 입은 량왕부는 이제 더 이상 신왕부에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니, 량왕부에 의지하여 신왕부에 강짜를 부려봤던 장안의 장합도 이제는 비빌 언덕이 사라져버렸다.
이 상황에서 괜한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조조가 낙양을 향해 병력을 움직이자,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장합은 얼른 전 병력을 이끌고 위기에 처한 곽원을 원호하기로 결정했다. 만일 곽원과 장합이 힘을 합하여 조조의 주동을 물리친다면 그 공이 적지 않다고 할 것이며, 자칫 불경죄를 물어 엄혹하게 다룰 수 있는 여지를 없앨 수 있었다.
저간의 사정이 어찌되었건, 옛 친우가 자신과 다시 의기투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만으로도 곽원은 기뻤다. 게다가 조조의 주력이 낙양으로 쏟아져 위기감이 한껏 고조되었던 터라, 장합의 지원은 그야말로 절실했다.
“준예, 준예! 정말 와주었군! 자네와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마주한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사수관 밖에는 적들이 득시글거린다지만 자네를 이렇게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나는 기쁘기 한량없네.”
곽원의 환대를 장합도 기쁘게 받았다.
“변함없이 나를 받아주니 더 없이 기쁘네.”
“변하다니, 변할 리가 있는가!”
장합은 미소를 지었다.
“장안의 병력 일만오천을 이끌고 왔으니, 이 병력도 모두 사수관에 집중하여 적을 제어하도록 하세.”
“암, 암! 그렇고말고. 그래야지! 내 자네의 공훈은 신왕 전하께 잘 아뢰겠네. 필시 기뻐하실 걸세.”
장합은 멋쩍은 웃음만을 지었다.
장합의 뜻밖의 가세에, 사수관에 집중된 조의 병력은 쉽게 사수관을 돌파해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수관 자체가 좁은 지대에 놓인 천혜의 관문이어서 아무리 많은 병력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관문의 공격에 참여하는 병력은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사수관을 지키는 병력이 수만에 달하니 아무리 조의 주력을 배치했고 전쟁이 치열함에도 적의 병력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힘센 장사 두 명을 싸움 붙이는데, 그 사이에 벽을 세워놓고 작은 구멍만을 내어 그 사이로 손가락 씨름을 시키는 격이었다. 그러하니 싸움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조가 아니라 신의 편이었다.
공손강과 답돈은 호랑이 앞에 내던져진 조무래기의 신세였다. 물론 공손강과 답돈은 북방에서 방구깨나 뀌는 세력의 수장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조무래기에 비길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나선 신왕부의 장군들이 호랑이 정도는 위압할 수 있을 정도의 용맹과 지모를 갖춘 까닭이었다.
“누구를 보내야 한번에 야코를 죽여버릴까.”
나는 이번 전쟁에 참전한 장군들의 이름들을 보면서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공손강이나 답돈이나 머리를 굴려서 승리를 따내는 부류는 아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건드리면서 혼자 꿍얼거렸다. 결룡안사 왕평이 옆에서 잠자코 차를 우려내고 있었다.
“그럼 우리도 머리가 아니라 힘으로 눌러줘야지. 그러므로 노숙, 육의, 등애 등등은 탈락.”
왕평은 숨소리마저 죽이면서 내가 혼잣말을 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최선의 배려를 했다.
“정말 무식하게 밀어붙여주지. 아주 오줌을 지리도록 말이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차를 우리는 왕평에게 말했다.
“평아.”
나의 부름에 왕평이 이쪽을 바라보며 응답했다.
“예, 전하.”
“양주도독 장패, 좌장군 허저, 전장군 조운, 화평장군 황충, 예주도독 고순을 들라하라.”
“옛.”
왕평은 잽싼 걸음으로 막사를 나가 그들을 모두 청해 불렀다. 장패, 허저, 조운, 황충, 고순이 차례대로 나의 넓은 막사에 들어왔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으로 나는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도깨비 같은 눈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찾아계십니까, 전하.”
나는 무의식적인 위압감을 느끼고 땀을 삐질 흘렸다.
“그대들을 모두 선봉에 내세우도록 하겠소.”
“저희 모두를 말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주동이 낙양을 공략하고 있소이다. 고작 공손강, 답돈 같은 촌뜨기를 내세워 우리를 막겠다고 하는군.”
나의 말에 다섯 장군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참으로 가소롭습니다.”
“고도 그렇게 생각하오. 고와 그대들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허저가 더운 콧김을 훅훅 뿜으면서 나섰다.
“맡겨만 주셔유! 당장 달려나가 공손강과 답돈의 모가지를 창 한 자루에 꿰어 오겠슈!”
허저의 의욕 넘치는 포부를 조운이 은근슬쩍 견제했다.
“답돈의 목은 이 자룡에게 양보하시오.”
황충도 헛기침을 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뭐 하러 귀찮게 창을 쓰려 하시오? 이 황한승의 화살 한 대면 충분하오!”
장패도 지지 않았다.
“형양까지 오는 동안 선봉은 이 장선고가 맡아왔소. 그대들은 차례를 지켜야 마땅하오.”
고순도 눈을 빛냈다.
“오래 모시던 태위께서 이번에 비명에 돌아가셨소. 이는 어찌 보면 북비의 농간이라 할 수 있소. 이 고순이 나서서 북비의 수족을 잘라 태위의 영전에 바칠 것이오.”
나는 난처하게 웃으면서 그들을 다독였다.
“걱정들 마시오. 그대들을 동시에 출진시킬 것이니 공을 다툴 까닭이 없소이다.”
나는 맹렬한 기운을 뿜는 이 장군들이 한시라도 빨리 내 막사에서 나가줬으면 했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약한 질식감이 느껴지고 몸이 더워지는 것 같았으니까.
그들이 각자 나의 명령을 받들어 퇴장하자마자, 나는 왕평을 재촉했다.
“차를 어서 다오! 목이 타는구나.”
왕평은 얼른 잔에 차를 담아 나에게 건넸다. 그러나 한여름 열대야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차를 먹자니, 더 질식할 것 같았고 열병에 걸린 것처럼 몸이 뜨거워졌다.
“냉차가 먹고 싶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그렇게 중얼거리자, 왕평이 오만상을 쓰면서 나를 훈계하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