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73
0074 / 0284 ———————————————-
23. 욕쟁이 황조
나의 명을 받은 허저와 만지가 군사 1만을 이끌고 진격했다. 그러자 호위 몇 기만을 대동했던 황조는 황급히 본진으로 물러났고, 황조의 진에 비상이 걸렸다. 오랜 세월 황조와 합을 맞춰온 강하병은 황조의 군령에 맞추어 그의 수족처럼 행동했다. 황조의 군령은 엄하고 빡빡했는데도 강하병은 단단한 결속을 이뤄 허저, 만지와 부딪쳤다. 전국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고 얽히고설킨 난전이 전개되었다. 숱한 목숨들이 죽어나갔다. 나는 군령을 발해 좌군의 노숙으로 하여금 적의 허리를 치게 했는데, 이에 형주치중 등희가 출군하여 노숙을 공격, 저지했다. 한참 얽혀 싸우던 황조는 전군에 철군령을 내려 물러나는데, 허저와 만지가 이를 따르지 않으니 그의 철수로 그날의 전투는 종결되었다. 전투의 결과로 양측 심대한 타격을 입은, 뺄셈의 병법이 구현되었다. 나는 허저와 만지의 갑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병사들에게 밥을 부르게 주었다.
날이 밝고 황조는 다시 우리를 도발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것에 응하지 않았다. 첫 번째 도발에 응한 것은, 계속 적의 주둥이를 나불거리도록 두면 병사들이 지휘관을 신뢰하지 못하며, 그들의 사기도 덩달아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번 응전을 해주어 내가 마냥 물렁하게 구는 지휘관이 아님을 각인시키고 병사들에게 한바탕 얽혀 싸울 기회를 주어 낙망의 염려를 덜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요격을 택한다면 이겨도 상처투성이인 상태로 이길 것이므로 이제는 응전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 황조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목이 쉬어 침을 뱉고 돌아갔다.
한편 소비와 맞붙은 장노의 전선도 교착상태에 빠졌다. 애당초 둘 다 빼어난 무장은 아닌지라 쉬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공방전이 이어졌다. 속된 말로 싸움은 못난 놈 싸움이 재미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들의 싸움은 예측불허하고 진지한 이전투구였다. 물론 내가 봤을 때는 실익 없는 싸움이었지만.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드니 자연히 진영의 긴장감이 풀렸다. 인간의 타고난 물성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전시에 긴장의 해이는 심대한 타격으로 돌아오는 까닭으로 나는 군율을 엄히 적용했다. 군대에서 실컷 굴러본 나로서는 영 내키는 판단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승리가 우선이었다. 승리해야 나의 병력들이 살아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부모, 처자식 얼굴을 마주할 테니. 대신 나 또한 그들과 일과를 같이했다. 엄정한 대비태세를 강조하고 뒤돌아서면 부대 내 골프장으로 직행하는 배나온 대대장노릇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밥과 소금으로만 만든 주먹밥을 먹고 밤샘 군략회의를 했다. 그렇게 해야만 나는 내 병졸의 목숨을 저당 잡아 작전을 펼칠 당위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그렇게 해야만 수염이 뻣뻣하게 난 청장년의 병졸들이 새파란 소년의 갓 변성기 가신 군령을 받들지 않겠나.
오자병법으로 유명한 명장 오기는 병졸의 누르스름한 고름까지 손수 빨아내는 쇼맨십으로 인심을 얻었는데 소금 주먹밥이나 쪽잠이 대수랴. 나는 내가 바라는 바를 이룩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합비후는 똥별이라는 소리만큼은 면하고 싶었다.
그렇게 이날도 참모들과 군략을 논하는데, 남쪽에 주둔하던 장노의 둔영으로부터 급한 전령이 도달했다.
“합비후께 보고!”
“말하라.”
“남쪽 장강의 순류를 타고 적선 십 여 척이 빠르게 동진! 아군의 주사가 제어하려 했으나 실패, 환구(晥口, 환현 남쪽의 항구)가 돌파당하고 동쪽의 호림(虎林)마저 떨어졌습니다! 호림에서 건너오려던 치중물자가 적습으로 약탈당했습니다!”
“뭣이!”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대응하였기에 고작 적선 십 여 척에 돌파 당한단 말인가!”
전령은 머리를 조아렸다.
“송구합니다!”
만지는 이 급박한 상황에도 느릿한 말투로 물었다.
“적장이 누구라고 하던가?”
“그것은 알지 못합니다! 무명의 무부(武夫)라고만 알려져 있고 그가 지나갈 때마다 방울소리가 난다고 했습니다!”
만지는 눈을 치떴다.
“방울소리……?”
만지는 혀를 찼다.
“파군의 감흥패로군.”
나는 만지를 바라봤다.
“감흥패라니, 노인장이 아는 자인가.”
“감녕, 자는 흥패를 쓰는 무부올시다.”
감녕이라! 손권의 상장으로 무명이 드높았던 이가 아닌가. 고작 열 척의 배로 환구를 돌파한 까닭이 이해가 되었다. 만지는 나에게 그의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익주 파군 출신으로, 장강의 상류에서 익주와 형주 사이의 물길을 막고 유협 행세를 하던 자이올시다. 본디 성품이 괴팍하여 타인의 재물을 겁박하여 뺏기를 잘했는데, 경전을 터득하고 깨달은 바가 있어 개심하여 천 명에 달하는 빈객을 이끌고 형주의 유표에게 의탁했었수. 그 이후로 행방을 알지 못했는데 황조의 밑에서 구르고 있었구먼. 이름도 없이.”
“노인장은 그런 이름 없는 자의 전력을 잘 알고 있구려.”
만지는 입술을 씰룩였다.
“뭐, 실력은 있되 크게 쓰이지 못한 자들끼리 소문이 돌고 도는 법이우. 감흥패 그 자도 나이가 쉰 가까이 됐을 텐데 출세 길이 제법 팍팍한 편이지. 그 자가 깃털로 장식하고 방울을 허리춤에 차기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십 여 척으로 항구를 돌파하고 방울소리가 들렸다고 하니 감흥패가 분명하오.”
청년장수의 이미지로 박힌 그가 이때 벌써 쉰 가까이 된 숙장이었다니. 의외였다. 어쨌거나 그 장수가 감녕이든 아니든 환구와 호림이 돌파되고 치중까지 빼앗긴 것은 큰 타격이었다. 열 척의 전선이라면 아무리 많이 잡아도 오백에 불과한 병력인데, 그 소수에 의해 후방이 교란당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고, 실질적인 손해를 따져도 중대한 문제였다. 열대야의 모기처럼 그들은 낮에는 은신하고 밤에는 우리의 후방을 마음껏 휘젓고 다닐 테니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나는 좌군의 노숙을 중군으로 소환했다.
“노별가, 전군의 지휘를 맡기겠습니다. 저는 병마 일천과 만지, 허저를 대동하고 늙은 모기 한 마리 좀 잡아와야겠습니다.”
“모기 한 마리라도 손가락에 물리면 아픕니다. 단번에 잡아들이십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감녕을 상대하는 데 일천이 넉넉한 수효는 아니었지만 이미 황조의 3만 군세가 버티는 고로 그 이상의 차출은 곤란했다. 게다가 아무리 감녕이 날고 기는 인물이라지만 허저와 만지를 거느린 나 또한 못지않으며 인근의 성들은 모두 유훈의 영향 하에 있으니 협조하여 잡는다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군을 이끄는 노숙의 재주가 나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으므로 나는 안심하고 그에게 통수권을 일임했다. 게다가 영자와 성렴 등이 그를 받들 것이니 염려할 바가 없었다.
나는 급히 호림으로 떠났는데 내가 호림에 당도하기도 전에 급박한 전령이 당도했다.
“합비후께 아룁니다!”
전령의 표정이 딱딱하게 얼어있는 것을 보고 나는 벌써 질려버렸다.
“말하라.”
“적장이 배를 버리고 남릉(南陵)에 상륙하여 다시 우리의 치중을 공격하고 산세에 의지하여 저항하니 기세가 자못 거셉니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물론 수전에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사를 동원하여 강의 동서를 틀어막고 상륙을 불허하면 감녕은 쉽게 잡힐 터였다. 그러나 험준한 산지에서 몸을 숨기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무리를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막강한 규모의 군대가 연약한 나라의 끈질긴 게릴라에 당한 허다한 역사를 우리는 알지 않은가. 황조의 일이 급한데 감녕에게 허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시간이 없으니 그냥 불을 질러버리시우.”
남릉에 도착하며서 만지는 나에게 그렇게 조언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그가 웅거한 곳을 에워싸고 불을 지르는 것이 가장 빠른 방책이었다. 그러나 수풀의 불이 빠르게 번지면 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데다가 감녕이 우리의 치중을 빼앗아 보유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나는 감녕을 얻고 싶었다. 그러기에 만지의 안을 채택하지 않았다.
“정히 감흥패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시거등 그저 남릉을 에워싸고 세월을 낚으믄 되지 않겄슈?”
이번엔 허저가 제안했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을 너무 지체하게 되고, 이미 감녕은 우리의 치중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으니 그가 숨어 군량이나 축내기로 결심한다면 그를 잡기 전에 늙어죽고 말 테니.
“침투하여 적을 치겠어.”
만지가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나를 공격했다.
“미쳤수?”
상관한테 미쳤다니…… 나는 숨을 한번 쉬었다.
“침투하여 적을 치겠소.”
“어려운 지형에 의존한 소수의 적을 직접 치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우. 지나가던 황건적도 아는 기본 중의 기본을 어찌 합비후께서 어기려 하시는지……”
노인네가 점점 따따부따 말이 많아지네. 여기에 허저까지 거든다.
“글게 말유… 병법 안 깨친 지두 아는디 합비후껴서 대장군의 사위 노릇 허시느라 병법 공부를 게을리하셨는갭쥬?”
이 돼지까지 진짜. 나는 괜히 심술이 나서 볼에 바람을 넣었다.
“하라면 하시오! 그냥!”
만지는 툴툴거리면서 수풀을 향해 들어갔다.
“변했어……”
나는 지끈지끈 오르는 두통에 다시 이마를 짚었다. 나는 만지를 대할 때 쓰는 말씨를 하오체에서 강력한 명령조로 바꾸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변했슈……”
허저를 대할 때 경어체가 아닌 강력한 명령조로 바꾸는 것 또한 아주 진지하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검토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