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09
비현으로 갈 수록 엄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오면서 본 피난민들, 그리고 남만군에 습격당한 현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잔혹 무도한 남만인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밭을 불태우고 식량을 게걸스레 강탈해간다.
하지만 백성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것만은 감사해야 하는 것인가.
‘우습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옛날에 남만의 적들은 그저 가볍고, 하찮은 도적에 불과하다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감당하기 힘든 적들이 되어버렸다.
‘아니. 내가 늙은건가…’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과거 젊었을 때 보였던 의협의 시대는, 무의 시대는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소문으로 듣던.
천하 최강이라던 여포가 조조와 진유하의 군에 쓰러졌을 때부터 무의 시대는 끝났을지도 몰랐다.
찾아 온 것은 군사의 시대, 그리고 정치가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립구나.”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노인의 특권이다.
그가 옛날을 떠올리며 작게 눈을 감았을 때 황권이 말했다.
“엄 장군. 이제 비현에 도착했습니다.”
“그런가…”
성도에서 오일을 행군하여 도착한 비현 성을 보며 엄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입성을 하기 위해 성 앞에 자리를 잡은 군의 선두로 나선 엄안은 경계하고 있는 현의 병사들에게 말했다.
“익주목 휘하 도위 엄안이 비현에 물자 수송을 위해 찾아왔다.”
“엄 장군께서?”
“어… 들어오십시요.”
병사들이 허둥지둥 움직이며 문을 열어준다.
그들의 얼굴을 본 엄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들의 얼굴은 좋구만.”
“예? 아… 예. 아직까지 남만 놈들의 습격이 없어서…”
“그런가… 그나마 다행이구만. 남만인들이 공격해온다면 반드시 막아주게나. 자네들처럼 강해보이는 병사들이 있음으로써 백성들이 사는 거니까.”
“예. 엄 장군님.”
엄안이 이끄는 군이 성 안으로 들어갔다.
외성에서 병사들이 쉬게 하고 곧장 관청으로 향한다.
거리를 걸으며 황권은 입맛을 다셨다.
“백성들의 표정이 그래도 좋아보이는군요.”
작년까지만 해도 성도도 이런 분위기였는데.
추수가 가까워지면 백성들의 삶은 즐거워진다.
익주는 비옥한 땅.
거기에 위국에서 쓰는 농법을 도입한 이후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백성들의 삶은 윤택해지고 좀 더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성도의 백성들도, 익주의 백성들도 그 삶을 지속할 줄 알았거늘.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황권이 입술을 깨물자 엄안은 그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괜찮네. 금방 괜찮아질거야.”
그저 입바른 위로에 불과했다.
아마 상황은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위국에게 항복을 하겠는가?
그것만큼은 할 수 없었다.
‘한을 능멸하고 천하를 훔치려는 도적놈들에게 고개를 숙일 수는 없지.’
유장은 한 황실의 후손으로 황족이다.
그런만큼 한을 제멋대로 이용하는 위국에게 고개를 숙일 수는 없었다.
당연히 유장을 따르는 신료들 역시 마찬가지.
오랫동안 유장의 밑에서 일한 이들은 다들 같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죽었으면 죽었지 위국을 따르지는 않겠다.
“오셨습니까.”
상념에서 깨어난 엄안은 고개를 들었다.
몇해 전에 보았던 비현 현령이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오래간만이군. 조설”
“예. 삼년… 사년만인가 싶습니다.”
“그렇군… 하하. 벌써 시간이 그리 지났나.”
“시간의 흐름은 화살과 같아서 순식간에 지나지 않습니까.”
“그렇지…”
엄안이 씁쓸해하자 비현 현령 조설은 엄안과 황권, 유순을 데리고 관청 안으로 들어갔다.
“오시느라 시장하셨을텐데 식사부터 하시지요.”
성도보다 훨씬 잘 차려진 밥상이다.
그것을 본 엄안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바로 돌아가봐야 할 것 같네.”
“예? 하지만 기껏 차렸는데…”
“그냥 자네들이 먹게나.”
생선구이부터 시작해서 나물, 고기전.
그릇에 가득 담겨져 있는 쌀밥은 군침을 돌게 했지만 성도에서 많은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었다.
관리된 이로서 백성들이 굶는데 어찌 이런 호화스러운 밥상을 취하겠는가.
엄안이 냉정히 말하자 조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왜 그러는 겐가?”
“하하하. 현령께서 밥에 약이라도 타신 것 같습니다.”
“그, 그럴리 있겠습니까?”
황권의 농담에 그는 움찔 어깨를 떨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것을 마주하던 엄안은 한숨을 쉬었다.
“이보게. 조설.”
“…예.”
“우리가 알고 지낸지 몇년이나 지났지?”
“한… 칠년 쯤 되었지요.”
“그래. 오래 되었지. 그때 자네는 꽤나 패기 넘치는 사나이였는데.”
“제가…그랬습니까?”
“그래. 도적놈들을 함께 쓸어버렸을 때가 그립구만.”
“하하… 저 역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그립지요.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데…”
“그래…”
엄안은 밥그릇을 잡았다.
하얀 쌀밥을 내민 그는 표정이 딱딱해진 조설에게 말했다.
“왜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인가.”
“제가… 엄 장군님을 해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자네는 모르는 듯 하지만 자네를 잘 아는 이들은 항상 같은 말을 하지. 조설의 얼굴이 붉어지면 뭔가 사기를 치려는 것이다고. 지금 자네의 얼굴에서 붉은 물이 떨어질 것 같네.”
황권과 유순은 당황했다.
설마 조설이 배신한 것일까?
엄안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조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죄송합니다. 엄 장군님.”
“그런 것인가…”
“예…”
“조설!! 어찌 당신이 배신을 할 수 있소!?”
“이보게… 공형. 배신… 이것을 배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입가에 걸려 있는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조설은 물기 가득한 눈으로 엄안과 황권을 보며 말했다.
“그저 살리고 싶었을 뿐.”
“비현 현령!! 아버님께 은혜를 받아놓고 어찌 배신을!!”
유장의 장남인 유순인 분기탱천하며 외쳤다.
그가 허리에 걸려 있는 검을 뽑아내며 겨누자 조설은 고개를 저었다.
“익주목의 은혜… 그래. 익주목께 은혜를 받았지. 하지만…”
조설은 한걸음 뒤로 물러난 후 창 밖을 보았다.
물자의 수송을 위해 관청의 창고에 있는 곡식을 수레에 담는 하인들을 안타깝게 응시하던 그는 이를 드러내었다.
“은혜를 저버린 배신자가 되더라도. 나는 저들을 살려야겠네. 비현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것을 봐야겠어.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날 원망하고, 욕하려면 얼마든지 하시오.”
“조설!!”
“시작하라!!”
조설은 빠르게 창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바삐 움직이던 하인들은 숨겨둔 검을 뽑았다.
수레에 실려 있던 짐에서 무기를 꺼내들며 그들이 관청 안으로 달려오자 황권은 이를 갈았다.
“개자식!!”
“이해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소!! 나는 내 자식들! 내 가족들! 내 현의 백성들을 위할 뿐!!”
“제길! 엄 장군님! 탈출하겠습니다!”
오랜시간 유장의 밑에서 일한 충신인 그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방 안으로 들이닥친 적의 목을 베어넘기며 황권이 외치자 엄안은 눈을 감았다.
“엄 장군!! 병사들이 있는 곳 까지만 가면 됩니다!”
“…그래. 가세.”
추하다.
정말이지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다.
오랜 시간 함께 해왔던 의리와 충심은 이제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씁쓸하다.
‘나도 늙었구나.’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에게 욕이라도 한바가지 뱉어내고 싶다.
엄안은 자신을 노리는 적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돌덩이 같은 주먹에 맞은 이들이 하나둘 씩 쓰러지자 엄안은 바닥에 있는 검을 주워 들었다.
“가자!!”
관청 바깥에서 전투를 치루고 있던 병사들은 엄안과 황권, 유순이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했다.
“본대와 합류한다!!”
현 바깥에 있는 본대와 합류하는 것이 우선이다.
다행히 이곳은 관청.
말은 꽤 있었다.
곧장 마굿간으로 가 말을 탈취한 엄안 일행은 관청 바깥으로 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어안이 벙벙할 뿐 이었다.
그들에게 해명할 시간도, 설득할 여유도 없었다.
일단 본대와 합류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 생각한 황권이 앞서 움직이는 사이 엄안은 이를 갈았다.
“피해!!”
“커억!!”
말 위에 있던 황권이 낙마한다.
그의 어깨에는 아까까지 없었던 화살이 박혀 있었다.
“아악…윽…!”
고통 섞인 비명을 내지르며 황권이 신음하자 엄안은 빠르게 말에서 내려 그를 잡아 올렸다.
또다시 쏘아지는 화살.
그것을 완갑으로 막아낸 엄안은 지붕 위를 보았다.
등갑옷을 입은 여인 세명이 활을 들고 있었다.
“축융부의 갈보년들이!!”
“엄안이 저기 있다!! 쳐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엄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적들은 병력을 많이 넣지 않았다.
그저 관청에 조금, 그리고 민가 근처에 조금.
그정도라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다.
“유순!”
“예!!”
불의의 습격을 당한 황권을 지켜야 한다.
유순이 방패를 들어 화살 공격을 막는 사이 엄안은 골목에서 튀어나온 이들을 향해 검을 들었다.
“오늘로 네 목숨도 끝이다! 엄안!!”
어색한 한어.
그리고 기묘한 움직임.
이들은 아마 맹획의 부하들일 것이다.
예전에 상대해 본 적이 있던 이들이다.
열댓명의 남만 전사들이 달려들자 엄안은 포효하며 검을 휘둘렀다.
노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힘이다.
일격 일격에 등갑이 박살나며 살이 터져나간다.
그의 힘에 놀란 남만인들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자 엄안은 부러진 검을 버렸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월도를 잡았다.
묵직한 것이 힘을 담기 좋다.
“와라. 남만의 짐승들아.”
“죽여!!”
상대는 혼자다.
그렇다면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엄안이라는 이름은 그리 쉽게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열댓명의 남만인들이 몰살당했지만 그들이 엄안에게 입힌 상처는 미미했다.
“바로 가세!!”
“예!!”
다시 뛰어간다.
대로에는 아마 적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골목을 통해서 가면 된다.
비현의 지리 정도는 잘 알고 있었던 엄안이 앞장서며 길을 안내하는 동안 몇차례나 남만인들과 마주쳤다.
숨어 있던 곳에서 나오며 그들이 습격을 했지만 좁은 곳이라 그런지 엄안을 쉽게 잡을 수 없었다.
수적인 이점을 살릴 수 없는 장소다.
엄안이 그렇게 좁은 길만을 통하며 성문 근처에 도착했을 때.
그는 쪼그려 앉아 기다리고 있던 외팔이 장수와 마주쳤다.
“…진짜가 나타났군.”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 엄안.”
한쪽 옷 소매가 펄럭거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를 노려보던 엄안이 만도를 잡자 외팔이 검사는 그에게 검을 던져주었다.
“뭐냐.”
“그 검은 익숙하지 않을 것 아니오. 만도는 그리 잡는 것이 아니오.”
엄안은 그가 던져 준 검을 꽉 잡았다.
묵직한 중검이다.
자신이 사용하는 검과 비슷한 검을 잡은 엄안은 만도를 옆으로 던져 버렸다.
“나를 넘으면 당신들의 본대와 합류할 수 있을거요.”
“그런가… 당신은 강자인가?”
“적어도… 당신보다는.”
한쪽 팔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자신만만해보였다.
그를 지그시 노려보던 엄안이 중검을 꽉 잡자 외팔이 검사는 차분히 말했다.
“위국… 아니, 손가의 후예인 손책.”
“손책이라… 손 문대의 아들이군. 하하… 한의 충신이었던 손 문대가 울겠구나. 손가가 결국 위국의 개가 되어버릴 줄이야.”
“위국의 개라 하지 마시오. 나는 그저 위대한 아버지의 뜻을 따를 뿐이니까.”
“손 문대의 뜻!? 네놈이 손 문대의 그 뜻을 알기나 하느냐!!”
“백성을 이롭게 하여 천하를 안정케 하라!!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오.”
“위국은 도적이며 한을 짓밟는 자들이다!! 그런 이들이 어찌 천하를 안정케 하겠느냐!”
“하하하하!! 엄안! 늙었구려!!”
엄안의 항변을 비웃으며 손책은 검을 까딱거렸다.
“왜 이 천하가 한의 것이라 생각하시오?”
“뭐?”
“나라따위가 뭐가 중요하오? 세력 따위가 뭐가 중요하오?”
한의 충신인 엄안은 그의 모욕에 몸을 떨 수 밖에 없었다.
나라가 없으면 백성도 없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손책은 그것을 정면에서 부정하고 있었다.
“한이니 위니! 그따위 것은 백성에게 중요하지 않소!! 그렇다면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는 나라를 백성들이 선택하게 할 뿐!!”
“닥쳐라!! 불충한 자여!”
“불충!? 충의를 바쳐야 할 대상을 잘못 골랐소! 엄안!! 한 따위는 쓰러져 무너져야 할 탑에 불과하오!! 그딴 탑에 무슨 영광과 충성을 바친단 말이오!?”
“네놈이 정녕!!”
노기에 차오른 외침을 그가 토해내자 손책은 이를 드러내었다.
“오시오. 탑을 지키는 자여. 그 탑을…”
손책은 손견의 고정도를 한 손으로 가볍게 잡고 휘둘렀다.
“이 소패왕이 무너트려 주리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레데에염 ㅎ
오늘을 오래간만에 본가에 내려왔네용
그래서 내일은 업뎃을 못할수도 있…
흐흐
그럼 대댓글 갈게용!
트릭스타 // 완결 전에 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네욬ㅋㅋ
윤하 // 왘ㅋㅋ 그런소리마요 ㅋㅋ 안그래도 더워뒤질듯ㅋㅋㅋ
Carmaster // 손책임당!
실버스타 // 아ㅠㅠ 안와요ㅠㅠ 진짜 더운데
Guaaaaak // 엌ㅋㅋ 그건 좀 ㅋㅋㅋ
Byrus // 더위에 정벌되기 직전임다..ㅠㅠ 너무 더워서 본가 왔네요…
Dunkel // 히히 훌륭한 배후자!!
Bobbylow // 아 안해요 안해 ㅋ
그럼 안녕~ 좋은 밤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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