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91
00191 너를 믿는게 아니야 =========================
세상에.
신념을 믿는다니.
아무리 노리고 한 말이라지만 이게 말이여 방귀여.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완전히 쪼그라지겠다.
그래도 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손책에게 족쇄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은 그 스스로가 제어하고 스스로가 인정하게 하는 것 뿐이니까.
원술처럼 옆에 묶어두고 이거해라 저거해라 해봤자 쟤는 기회만 보다가 뒤통수를 치고 도망갈 것이다.
그에게도 그 나름대로 이뤄야 할 것이 있을테니.
그러니 난 오그라든 손을 소매 속에 숨긴 채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모험이나 도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놓고 지르기는 했지만 손책이 나중에 뒤통수 칠 수도 있었고 주유가 꼬드겨서 그냥 배신하자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해야한다.
지금 손책을 받아들여 끌고다니는 것은 오히려 손해다.
손책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그가 강남에서 날뛰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신념을 배신하지 못하고 결국 내 밑으로 스스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
“대답해보라니까.”
“…그건.”
“그건 제가 대답.”
“넌 빠져. 난 지금 손책에게 묻고 있는거니까.”
주유가 개소리를 하며 방해하기 전에 차단을 걸었다.
그가 당황하며 손책을 보는 동안 난 탁자 밑에 내려 놓은 손에 힘을 넣어 주먹을 쥐었다.
손바닥이 축축하다.
만약 여기서 손책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내 말에 반박하기라도 하면 내 일들이 뻘짓이 될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손책과 다른 손가의 장수들에게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나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고 나라고 해서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이런 순간에는 긴장이 된다.
그런만큼 더더욱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스스로 긴장을 보인다는 것은 여유를 잃는다는 것.
협상에서 여유를 잃는 것은 큰 손해다.
가 사형의 말을 떠올렸다.
웃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웃으며 본심을 숨겨라.
그것이 책사고 그것이 수경원의 가르침이다.
그러니 숨겨라.
손책은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일까?
손견이 부르짖었던 대의에 대한 정체를?
결국 그 대의라는 것도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은, 백성들은 멍청하고 딱하니 우리가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바꿔말하면 반역이라고 한다.
성공하면 혁명이라고 하고.
하지만 절대 손책은 그것을 말할 수 없다.
알든 모르든.
그걸 입 밖에 내버린 순간 손견이 가진 대의는 숭고하고 위대한 영웅의 의지가 아니라 천박하고 악질적인 악당의 선언에 불과해지니까.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손책은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 하겠지.
자신이 배신을 한 순간 손책 뿐만 아니라 손견이 반역을 저지른 쓰레기가 되어버리니.
내가 걸어 둘 수 있는 족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인 족쇄에 불과했다.
하지만 손책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원술처럼 그를 강제하는 것보다는 이게 잘 먹히지 않을까?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하며 손가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있는 손견이다.
그렇기에 병력을 되돌려 달라는 말 대신 ‘손가의 힘’ 을 되돌려달라고 그토록 말했던 것이겠지.
“나에게 널 신뢰하냐고 묻지 말고 너 스스로에게 물어라. 너는 그 신념을 신뢰하나? 너는 네 아버지를 존경하나? 그것이면 된거야. 그리고 내가 보기에 넌 절대 그것을 배신하지 못할 것이고.”
손책이 고민하자 난 그에게 한번 더 쐐기를 박았다.
어쩔거냐.
거절할 것이냐?
“…그.”
“자. 그럼 손책이 고민하는 동안 주유. 넌 나와 거래 이야기를 해볼까? 내가 지원해 줄 수 있는 치중은 지금 손가의 힘… 이라 할 수 있는 강병들이 적어도 일년 정도는 아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식량과 어느정도는 운영할 수 있는 자금, 그리고 무기와 방어구 정도야. 나머지는 알아서 구하도록 해. 그정도면 충분히 장사에 돌아가서 손가를 다시 재건할 수 있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만.”
“가는 길에 도적도 좀 잡고. 유요도 쳐 줬으면 좋겠는데 그건 만만치 않을테니 그냥 얌전히 돌아가. 그리고… 강남을 어떻게든 제패해봐.”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군요.”
주유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이게 어렵나?
강남은 지금 거의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데.
강북 제패하라고 하면 그냥 혀깨물고 자살하겠네.
누군 지금 원소 상대하느라 등골 빠질 것 같구만.
“못할 것 같으면 때려치든가.”
“저희가 먹고 도망간다면 어찌됩니까? 저희가 당신을 배신하고 독자적인 세력을 꾸민다면 어쩔겁니까?”
“뭘 어째. 그냥 손책은 위대한 아버지이며 영웅인 손견의 뜻을 무시하는 개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거지. 실질적으로 내가 그것에 대한 제제를 할 방법은 없어. 그냥 손책이 죽을 때까지 굉장히 괴로워할 뿐이야. 자신의 아버지는 쓰레기였고 자신은 사람의 호의를 원수로 갚아버리는 개망나니가 될 뿐이니까.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 너희들이 배신하여 독자적인 세력을 꾸민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으니까.”
한번 더 쐐기를 박았다.
내 말을 들은 손책이 움찔하는 모습에 하마터면 웃을 뻔 했다.
주유의 말대로 손책이 먹튀를 하면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거다.
매우 큰 문제가 되어버리겠지.
그래도 내색하지 말자.
원래 거래란 이렇게 해야 한다.
누가 보면 사기 아니냐고 하겠지만 이건 절대 사기가 아니다.
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그들은 내가 필요한 것을 준다.
합당한 거래 아닌가?
그러니 절대 내 속내를 드러내면 안된다.
난 웃으며 여유롭게 말했고 주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이 알려질 일은 없겠지. 하지만 적어도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알거야. 그렇지 않나?”
“…하아. 차라리 모르는게 낫겠습니다.”
주유는 무거운 한숨을 연신 토해냈고 손책은 갈등했다.
“그냥 우리 편하게 살자. 응? 좋잖아. 나랑 손잡으면 넌 강북쪽은 신경 꺼도 된다니까? 강북은 우리 연주목께서 다 알아서 하실테니까.”
“그동안 당신은 뭘 하려고…”
“나도 연주목 도와야지. 지금 연주목 최대의 적은 원소다. 원소를 모르지는 않겠지?”
사마의는 우유부단하다고 무시했지만 난 절대 원소를 무시하지 않았다.
원소?
솔직히 무섭다.
그냥 만만한 동네 호족이면 무시하고 공격해버리겠는데 원소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데다가 지금 조조가 열심히 영향력을 끼치려 하는 사예주쪽에서도 원소에 대한 호응이 대단했다.
나와 방통이 고생해가면서 서주에서 죽어라 공연해가며 원소의 명성을 깍아내리려고 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원소의 인기는 대단했고 명사들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지극한 효심을 가지고 청렴한 행동을 하는 원소를 좋아한다 말할 정도였다.
서주에서나 인기가 없지 당장 그가 다스리는 기주만 가도 전 기주목인 한복보다 원소가 훨씬 낫다는 소리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당장 원소가 천명을 표하며 천하를 구하고 한 황실의 천자를 부정하는 격문을 써서 공표하면 난리가 날거다.
아마 각지의 지방 호족들은 신나하며 원소를 인정하자고 할걸.
어차피 명사들은 원소를 지지하고 있으니 나는 그들이 아직 건드리지 않은 백성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아무리 명사들이 난리를 피우며 원소를 부르짖어도 그 밑의 백성들이 시큰둥하면 별반 힘을 발휘하지 못할테니까.
그렇기에 당장 들어오는 것 없는데도 난 공연에 필사적이었고 천하를 떠도는 보부상들에게 공짜로 술과 음식을 줘가면서 그들이 하비에 대해서, 그리고 연주목과 나에 대해서 천하에 알리기를 원한 것이다.
“한가지 더.”
“말해봐.”
“만약 당신이 실각하면? 조조가 당신을 버리고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하려고 한다면? 아버님의 대의와 어긋난 방향으로 가려 한다면 어쩔 것이지? 조조 역시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당신이 지금까지 서주에서 한 일들에 대해서는 인정하겠어. 하지만 그건 당신을 인정하는 것이지 조조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야. 그렇다면 어쩌겠나?”
“그럼 다 때려치우는거지. 조조가 날 버린다면 나도 딱히 조조의 밑에 있을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그때는 좀 부탁하자.”
“…응? 뭘?”
“우리 좀 받아주라.”
“….”
내 말에 손책과 주유는 어이없어하며 입을 쩍 벌렸다.
아니.
당연한 것 아닌가?
난 충신도 아니고 내가 꾸민 모든 일이 나가리가 되어버리고 조조가 조앙이 아닌 다른 엄한놈을 후계자로 내세우며 우리를 잡아 죽이려고 한다면 나도 순순히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조앙과 친해지기 전부터 조앙은 조조의 적자로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었고 군 내의 많은 이들에게도 인정받고 있었다.
소탈한 성격과 활발함.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심하기는 했지만 그냥 상대를 안하는 정도로 넘어가지 그자를 죽이려 발버둥치는 소인배가 아니었다.
효심이 깊고 동생들을 생각하며 그 유쾌한 성격 덕분인지 백성들과 병사들에게도 인망이 대단하다.
정치적인 식견이나 움직임이 부족하다지만 그것은 내가 지원해주면 된다.
조조로서는 후계자인 조앙을 완벽하게 보조해 줄 수 있는 나를 버리지 않겠지만 문제는 조앙이 죽기라도 하면 일이 굉장히 꼬여버린다는 거다.
삼국지에 따르면 조앙은 조조의 후사를 잇지 못하고 죽는다.
그리 되면 다음 후계자는 조비인데…
조비가 후계자가 된다면 그에게 있어서 나는 엄청난 눈엣가시가 될 것이다.
조앙을 따르던 엄청난 세력.
서주의 영웅이기도 한 나.
그런 나를 가만히 둔다면 자신의 후계권과 정치적 안정, 권력의 독점이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겠지.
또한 내 정적들도 조비를 따르며 조비에게 날 제거하라고 바람을 넣을 것이다.
결국 조조의 세력권 안에서 대차게 싸워야 하는데…
그때 싸우느니 그냥 내 사람들 데리고 튀는게 나을 것 같다.
그리고 튄다면 아무래도 손발이 좀 맞고 안면이 있는 곳으로 가는게 더 좋고.
향후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한 대비책인 손책을 응시하며 난 싱글벙글 웃었다.
“당신에게 충 따위는 없소? 조가의 가신 아니오?”
손책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충.
나 그런 거 없다
“없어. 그런거.”
“…..”
“난 나의 사람을 믿을 뿐이야. 조가에 충성하는게 아니야. 연주목 조조를 따르고 지원하는 거지.”
“…하아. 진짜 당신은 예측하기 힘든 사람이군…”
“만약 내가 연주목에게 배신당하고 온다면 좀 많은 선물을 들고 올 테니까 두 팔 벌려 받아주길 바래. 혹시 이번 일로 나한테 원한 품은거 있으면 오늘 다 풀어버리자고.”
“흐음…”
“뭐냐?”
주유는 팔짱을 끼고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행여나 그 일이 생기면 당신을 좀 괴롭힐 수 있겠다 싶어서… 흐흐. 군자의 복수는 십년도 이르다고 했지요? 두고 봅시다.”
“와… 후환을 없애려면 그냥 여기서 널 찢어죽이는게 낫겠다.”
주유의 얼굴에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저 말도 결국은 농담이라는 거다.
“그래서 손책. 결정은?”
주유와의 이야기는 끝났다.
나에게 농담을 건넬 정도라면 주유는 나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남은 것은 손책 뿐이다.
갈등과 고민이 끝났는지 손책의 표정에는 허탈한 미소만이 걸려 있었다.
“말해봐. 너의 대답은 뭐냐?”
“이미 알고 있잖소.”
쓰게 웃으며 손책은 차분히 말했다.
“당신의 손을 잡겠소… 다만. 나에게 존대나 존경을 바라지는 마시오. 당신의 말대로 당신은 먼저 기회를 잡았을 뿐이니까. 아버지의 의지를 강남에서 실천하고… 그것이 천하를 뒤덮는다면.”
“흐으음…”
“그때 당신을 진심으로 모시지. 나의 주군으로.”
“좋아.”
난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지금은 일단 자존심을 내세우겠다는 거지.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내 목적을 위해서는 지금의 방식을 바꿀 수 없었다.
내 무기, 내 도구들.
나의 힘이 되어 줄 백성들
그들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내 대답에 손책은 일어나 내 손을 맞잡았다.
그의 눈에는 후회가 없었다.
결정을 했다면 그것을 수행한다는 것인가.
확실히 나와는 다른 인물같았다.
갈등과 고민을 하지만 그는 행동함에 있어서 망설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사람들을 생각해야 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선택은 두렵다.
그 결과는 무섭다.
어찌보면 난 누구보다 겁쟁이일지도 몰랐다.
손책의 올곧은 시선을 마주하며 난 쓴 입맛을 다셨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화해를 하고 연합을 하게 되었으나… 그걸 공표하기는 좀 그렇네.”
“음. 아무래도 강남의 호족들이 우리를 경계할테니까.”
손책의 말대로다.
손가가 나와 연합하여 내 도움을 받고 향후 조조가 자리를 완전히 잡았을 때 내 밑으로 들어온다는 약속을 한다면 손가에 반발하는 이들은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그것에 대해서 축하하고 공표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간단한 연회… 뭐. 이별연이라고 해둘까? 그렇게만 하고 각자 할 일 하자고. 서로 바쁜 몸일텐데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