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92
00192 환상 속의 그대 =========================
“그래서… 원술은 어찌할거요?”
“어떻게든 되겠지.”
“아니 무슨…”
비록 이번에 한번 꺽었다고는 하지만 원술을 무시할 만한 단계는 아니었다.
아직 그의 저력은 남아 있었고 그는 여전히 서주를 노릴테니까.
아니, 더 위험해졌을 수도 있다.
이번에 원술군에 참전한 장수 중에 기령이라는 장수는 원술을 어렸을 때부터 모셔 온, 나에게 있어서 요화와 같은 관계라고 한다.
그런만큼 그의 죽음은 원술을 더더욱 분노케할 것이다.
잘하면 원술이 여기서 명분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돌격할 수도 있겠는데…
“그에 대한 것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넌 네 할 일이나 해.”
손책은 지금 원술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원술과 엮이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었다.
“맞아. 우리는 지금 원술을 적대할 수 없어.”
내 말에 동의한 주유는 원술을 치고싶어 하는 손책을 달랬다.
아무리 원술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얼마 전까지 원술을 모시다가,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배신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어차피 안면몰수 한 거 아예 손책이 끝장을 내도 상관이 없겠지만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인면수심이라고.
어찌 자신이 모시던 사람을 공격할 수 있냐고.
이번 원술의 서주 침공은 제대로 된 명분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러니 위대한 영웅 손견의 아들인 손책은 하비성주와 협상을 하여 친우를 구출해내었다.
비록 원술이 아버지인 손견의 상급자이기도 하지만 이번 일은 그의 실수다.
친우의 목숨을 양도받은 이상 하비성주에게 명분 없는 싸움을 걸 수는 없다.
그렇다 하여 원술을 칠 수도 없으니 우리는 이대로 떠나겠다.
대외적인 명분을 이렇게 해놓으면 손책이 원술에게서 벗어난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확실히 이번 원술의 서주 공격은 누가 보아도 억지에 가까운 명분에 의존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손책이 나의 힘을 받아서 원술을 치면 어떻게 되느냐.
그 순간부터 손책은 신뢰나 의리따위는 없는 이가 되어버린다.
손책은 지금까지 쭉 원술에게서 독립을 하고 싶어했다.
그런 그가 기회를 얻자마자 원술을 공격한다?
아무리 원술에게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원술군 내면의 일이고 원술과 손책의 일일 뿐이다.
대외적으로 보았을 때 아무리 손견이 키운 부하라고 하나 손견은 원술의 부하였으니 손견의 사후 원술의 힘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힘들때는 원술에게 붙어 있다가 다른 힘이 생기니까 손견의 부하만 챙겨 하비성주와 연합하여 원술을 친다?
손책은 차후 강남을 제패해야 하는 일을 해야한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의리가 없고 은혜를 모른다는 악평은 앞으로 그가 나가야 할 행보에 발목을 잡는 것이 된다.
나와 주유는 그것에 동의했기에 연합하여 원술을 치는 대신 손책이 그냥 장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할 수 있겠소?”
하지만 손책은 걱정스러웠나보다.
얘가 날 너무 만만하게 보는데!?
의미없이 싸우기 싫을 뿐이지 결코 원술에게 질 것 같아서 이러는게 아닌데도 내가 원술을 겁내는 것처럼 말한다.
“딱히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데.”
손책의 질문에 화를 내기보단 느긋하게 답했다.
원술을 상대하는 것은 힘으로 하면 곤란하다.
다른 방법을 써야한다.
바로 원술의 관심을 돌리는 것.
방통과 이야기를 하다가 떠올라서 알아봤는데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수가 하나 있었다.
손책이 오기 전에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준비하던 것인데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오히려 더 잘 먹힐 수도 있겠다.
난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주유는 날 빤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성주님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나도 너희들이라면 충분히 강남을 제패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는데… 한가지 주의를 주고 싶은 일이 있어. 어지간하면 좀 지켜줬으면 한다.”
“뭡니까?”
“주유한테 들으니까 너 사냥가거나 전투때 혼자 튀어나간다면서? 그러다가 너 죽는다. 사냥도 작작 가고. 어디 갈때 반드시 다른 이들과 같이 다녀.”
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주유는 어리둥절해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제가 어떻게든 막겠습니다만… 마치 알고 있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알고 있는 사실 맞다.
삼국지에 따르면 손책은 허공의 복수를 하려는 이들에게 당한 상처가 덧나 죽으니까.
비록 지금의 천하가 삼국지와는 조금 다르게 되었지만 그렇다해서 방심할 이유는 되지못했다.
“용맹을 이유로 혼자 독불장군처럼 튀어나갈까봐 겁나서 그런다. 넌 강남을 제패해야할 의무가 있어. 그런 사람이 혼자 움직이는건 용기가 아냐. 만용이지.”
“으음… 알겠소.”
“성주님이 맞는 말씀을 하셨네. 너나 손 장군님이나.너무 무모해.”
그가 진중히 고개를 끄덕이자 나와 주유는 만족했다.
이정도면 됐겠지?
“그럼 이만 가보겠소. 그… 뭐라고 해야하나.”
말에 오르려던 손책은 팔짱을 끼고있는 날 보고 머뭇거리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얘가 왜 이러지?
손책은 손가의 가주이며 손가의 병사들이 있는 곳에서 함부로 남 앞에 이렇게 무릎을 꿇어서는 안된다.
주유라면 그것을 알고 있을텐데도 그는 그것을 막지 않았다.
“고맙소.”
“뭐가?”
“아버지의 대의가 이룰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어서. 솔직히 아들로서 불안했소. 아버지의, 영웅 손 문대의 고귀한 뜻은… 그저 이룰 수 없는 이상이라 생각했소. 허나 하비에서 그것을 보았으니… 반드시 이룰 수 있겠지. 고맙소. 나에게 길을 보여주어서.”
“너 손가의 가주 아니냐? 이렇게 막 무릎 꿇어도 괜찮아?”
손책이 일어나지 않자 난 웃으며 물었다.
손가의 가주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딱히 나쁜 기분은 아니다.
그래도 그는 위엄을 보여야하는 자다.
아직 나를 군주로 인정하지도 않았으면서 무릎을 꿇는 것이 다른 이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알고 이러는 걸까?
“이건 손가의 가주로서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니 괜찮소. 그저… 아버지를 따르는 아들로서 감사인사를 하는 것 뿐이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만…”
손책의 말에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손책이 나에게 꽤나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니 여기서 더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었다.
“뭐 어쨌든 지금 해야 할 일을 착각하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돌아가면 서찰 좀 보내. 적당히 연락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필요하니까.”
슬슬 나도 독자적인 연락 체계를 구축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까지야 같은 곳에서 일을 꾸미고 도모했으니 문제가 없지만 내가 중앙으로 가게 되면 양 사형이나 사마의, 가 사형. 거기에 손책까지.
전국적으로 협력자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행보를 다른 이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따로 독립적인 정보망과 체계를 갖춰야 할텐데…
할 일 많구만.
비용도 엄청 들테지만 어쩔 수 없지.
해야 하는 일이니 미뤄 둘 수만은 없다.
“알겠소.”
빙긋 웃은 손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손책의 대담을 차분히 보던 주유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해야 할 말이지.”
손책과 주유가 잘 해줘야 향후의 일이 줄어든다.
현재 파촉을 다스리고 있는 유장에 대한 처분은 강남지방을 완전히 차지하고 나서 생각해도 된다.
난 웃으며 말했고 손책과 주유는 나에게 마주 웃어주었다.
“그럼 가겠소.”
말에 오른 손책은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았다.
지금 저들이 갈 곳은 손가가 있는 장사.
그곳에서부터 손가는 움직일 것이다.
“아. 야.”
“뭐요?”
“이거 마음에 들어했잖아. 가다가 마시라고.”
병 하나를 내밀었다.
죽엽청이 담겨 있는 병.
그것을 보며 손책은 키득거렸다.
“이거 가는 길에 좋은 선물을 주는군. 고맙소.”
죽엽청을 단번에 들이마신 그는 병을 흔들어 술이 남았음을 확인시켜주고 그 병을 주유에게 넘겼다.
그것을 받으며 주유는 미소지었다.
“말 위에서 이런 독한 술을 마시고 취해 떨어지기를 기원하시는 겁니까?”
“손가의 앞날과 우리의 미래를 위한 건배라고 해줘. 고작 그정도 마시고 말에서 떨어질 정도면 그냥 다 때려치우고 집에가서 농사나 짓고 살아라.”
“하하하하하!!! 못 당하겠군요.”
크게 웃어제낀 주유는 병에 남은 모든 술을 들이마신 후 크게 숨을 내쉬었다.
죽엽청을 저렇게 마시다니.
쟤들도 확실히 주당이구나.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손책과 주유가 말을 몰아 일행들에게 향했다.
점점 멀어지는 붉은색 군대를 지켜보던 나는 시종일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방통에게 물었다.
“넌 또 뭐가 불만이냐?”
“…저 죽엽청. 산양군에서 가져 온 것 중에 마지막이었다고.”
“나중에 산양군에 얘기해서 보내달라고 그래.”
방통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난 웃었다.
“그리고… 수춘에 사람은 보내놨겠지?”
“응.”
손책과 주유가 갔다고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움직이자.
조금이라도 더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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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나?”
하비에서 떠나며 손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불만스러운 표정은 아니었다.
손견이 죽고 손가라는 거대한 책임을 등에 지며 항상 무리하는 모습만 보여줬던 손책은 오래간만에 미소짓고 있었다.
과거 손견의 밑에 있을 때 그와 함께 전장을 달릴 때.
아무런 생각도, 걱정도 없이 아버지의 그늘에서 힘을 쓸 때의 모습을 발견한 주유가 웃으며 묻자 손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뭔가 되게 우습네.”
“뭐가?”
“나보다 어린데다가… 너처럼 명가의 자식도 아니지. 그리고 솔직히 보자면 호인도 아니고. 굉장히 기회를 따르고 그것에 집중하는 자다.”
“그렇지.”
“어떻게 보면 소인이라고 볼 수 있겠지.”
“맞아.”
손책의 평가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주유는 눈치챘다.
진유하.
하비성의 성주.
현재 임시 서주목이며 자신들보다 어린 자.
눈에 띄는 경력이라고 해봐야 수경원을 빠른 시기에 졸업했다는 것과 마마를 퇴치했다는 소문 뿐이다.
“전체적인 움직임을 봤을 때 군재도 별로 없어.”
“그 외에 다른 재능도 없지.”
투덜거림이 실린 악평이다.
그 악평을 늘어 놓으면서도 손책의 입가에 걸려 있는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주유 역시 마찬가지.
“그래도 싫은 사람은 아니야.”
“단순하게 아버지의 뜻을 실현시켜서가 아니라…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자다.”
손책과 주유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말 그대로 흐르는 강과 같은 사람이군.”
“음.”
손책의 평에 주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유하에 대한 감상.
그는 강이다.
유유히 흐르는 강.
강은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강은 자신의 흐름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풍요를 내린다.
허나 그의 흐름을 방해했을 때 강은 분노하여 그 힘을 드러낸다.
하비의 백성들이, 서주의 백성들이 그를 따르는 이유에 대해서 손책은 자신이 느낀 대략적인 느낌을 말했다.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강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쉬운 일이지. 그 거대한 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결국 우리의 문제다. 백부. 넌 어쩔 생각이지?”
“글쎄…”
그는 자신의 주군에게 하나의 족쇄를 걸었다.
보이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다.
하지만 평생을 걸어도 풀 수 없는 족쇄일 것이다.
어찌보면 끔찍한 저주이기도 했지만 손견의 뜻을 따를 생각을 하고 있는 손책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지침일 수도 있었다.
아버지의 대의.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며 그들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
고통받는 강남의 백성들을 보고 자란 손책이기에 그는 손견의 대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희망이며 신념이고 정신인 손견의 대의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손책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주유는 손책을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손견의 대의.
그 진정한 의미를 주유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지만 손책은 순수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의 천하에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사람은 욕심을 가진다.
그 욕심은 끝이 없기에 황건적의 난이라는 거대한 실패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자는, 힘있는 자는 백성들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배를 불린다.
민초가 왜 민초인가.
밟아도 살아남기 때문에.
잡초처럼 끈질기기에 그들을 마음껏 짓밟는다.
그런 이들이 천하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기에 손견의 대의가 어떤 것인지 주유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하비는 달랐다.
그곳의 백성들은 적어도 내일을 걱정하지 않았다.
자식의 배고픔에 우는 아이를 달래는 대신 마음껏 먹였고 힘없는 부모를 버리는 대신 그들을 공경하려 하였다.
곳간 속에서 인심이 나는 법.
백성들의 부를 인정하고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진유하는 그런 정치를 하고 있었다.
또한 그의 부하들 역시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절대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욕심을 절제할 수 있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한 것을 실천하는 것에 얼마나 놀랬는지 몰랐다.
그리고 자신이 놀란만큼 손책 역시도 무척이나 놀랐겠지.
만약 그가 진유하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을 것이라면 손견의 대의가 가진 본질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 것이다.
만약 그가 진유하를 인정하고 그와 손을 잡아 손견의 순수한 대의를 따르기로 했다면 온 힘을 다해서 그를 도울 것이다.
진유하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니까.
그가 쉽게 했다고 해서 욕심을 절제하는 일이 모든 이에게 쉬운 것은 아니다.
손책이 마음에도 없는데 그 고생을 하게 냅두느니 차라리 본질을 가르쳐 주는 것이 낫다고 주유는 생각했다.
“너는 나의 군주다. 나의 군주는 진유하가 아니야. 그러니 너에게 맡기겠다. 백부. 어쩔 생각이냐? 만약 진유하를 배신하겠다면…”
싱글거리며, 이미 자신의 대답 정도는 예측하고 있는 주유를 향해 손책은 손을 뻗었다.
“그건 여기에 물어라.”
주유의 가슴.
자신과 같은 이상을 품고 있는 자에게 손책은 웃어보였다.
“너 역시 나와 함께 아버지. 손 문대의 뜻을 따르던 자니까. 너 자신한테 물어보라고. 나만 족쇄에 묶여 있는 건 싫으니까.”
“하… 이거 너무한 주군이구만.”
실망은 하지 않았다.
손책은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했고, 그의 깊은 뜻을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그것을 지켜준다.
그것 역시 나쁜 것은 아니니까.
“이봐. 친구. 우리는 어디서든 함께라고~”
능글맞게 웃으며 손책이 말하자 주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어디 한번 강의 곁에서 움직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