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295
00295 당신의 시간 =========================
“그 말씀은…?”
“만약 공자께서 그리 말씀하시고, 그렇게 자신만만해하시니 저로서도 무시할 수는 없지요. 한번 해보시지요.”
“고맙습니다! 장군!”
조비는 이것만으로도 꽤나 만족한 듯 싶었다.
당장 한번의 만남으로 날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욕심이지.
그저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되었다.
라고 생각하는 듯한 그를 향해 선선히 웃으면서 난 속내를 감췄다.
“장군께서 지지해주신다는 약속을…”
“아, 너무 나가시는 것 같군요. 공자께서 그만큼의 능력을 보이신다면 도움을 드릴 수는 있지만 지지니 뭐니를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좀…”
“아아. 그렇지요. 죄송합니다.”
흥분을 한 것일까?
아니면 은근히 확답을 받으려 한 것일까?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조비가 보통 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버님께 항상 도움을 드리는 분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용기를 내길 잘 한 것 같군요. 저 역시 장군의 앞날에 늘 탄탄대로만 펼쳐져 있기를 빌겠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조비에게 도움을 받을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장 그의 적이 될 필요는 없다.
백명의 아군을 만드는 것보다 한명의 적을 줄이는 것이 처세에는 더 이득이 된다.
그렇기에 난 조비에게 이렇다 할 대답을 하는 대신 아직은 지켜보기만 하겠다는 대답을 한 것이다.
그는 만족스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더 장군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제가 계속 잡고 있을 수는 없겠지요?”
“예. 여독이 쌓이기도 했고… 또 오늘 조공께서 연회를 여실 것 같으니 그때를 대비해서 조금이라도 쉬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제가 눈치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 그리고 다음에 뵐때는 말씀 편히 해주십시요. 가족이지 않습니까.”
조비는 씩 웃으며 말했다.
가족임을 내세우며 좀 더 친근감을 표시하려는 걸까?
그의 말에 나 역시 웃어보였다.
“그리하지요. 그럼 저는 이만.”
조비와의 만남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 온 나는 바닥에 엎드려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조청을 보았다.
원래 입고 있던 갑옷은 벗은 모양이다.
치사한 기집애.
자기만 보고.
내가 나간 동안 훈련을 한 것인지 그녀의 비단옷은 땀으로 젖어 은근히 달라붙어 있었다.
“앗. 오셨습니까?”
방문을 열고 들어 온 나 때문에 훈련을 멈춘 조청이 일어나자 난 의자에 걸려 있는 수건을 그녀에게 던져주었다.
“뭔 훈련을 그렇게 해?”
“매일 매일 단련을 해야지요. 이렇게 짬을 내서 단련하지 않으면 약해집니다. 저는 여자라서 남자들보다 근력이 약하기 때문에 최대한 단련을 해야 합니다.”
얼굴에 송글송글 매달린 구슬진 땀방울을 수건으로 닦아낸 그녀는 내 표정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흠… 아냐. 하던 훈련이나 마저 해.”
“예.”
내 대답을 받은 조청은 고개를 갸웃거린 후 가볍게 몸을 비틀어 몸을 풀고 다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천천히 근육을 자극해나가며 훈련을 하는 그녀를 보았다.
여유있게 몸을 움직이는 그녀를 보며 난 피식 웃었다.
“앉아도 괜찮아?”
“예? 아. 물론입니다.”
위 아래로 움직이는 조청의 등 위에 앉았다.
내가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혀 무게를 느끼지 못한 듯 여유롭게 훈련을 계속했다.
“무슨 복잡한 일이라도 있으셨나봅니다.”
“음… 뭐 좀 그렇지.”
“무슨 일이십니까?”
“너랑의 결혼 문제. 그걸 파기해야 할 것 같아.”
“우왁!”
내가 싱글거리며 말하자 조청의 몸이 푹 처졌다.
힘이 풀린 듯한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킨 후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저, 정말입니까!? 왜요!? 어째서!?”
그녀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마주했다.
진심으로 당황한 듯한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거짓말이야.”
“하아아…”
“육체의 단련도 좋지만 마음의 단련도 필요하겠네. 우리가 싸워야 할 적들은 거짓말 따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들이야. 고작 이런 위보 하나에 흔들리지 말라고.”
“예에…”
겨우 안심이 된 조청은 힘이 빠진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날 잡아 먹을 것 같던 시선은 사라졌다.
그저 결혼이 취소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만 남아 있는 그녀를 마주하며 천천히 손을 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냥.”
조청의 볼을 잡고 만지작거렸다.
그 손길을 기분 좋게 느끼는 조청의 모습을 보니 마치 한마리 고양이같다.
고양이 치고는 좀 크고 무섭지만.
“결혼이라.”
“싫…으신겁니까?”
“그런 거 아니야.”
다만 조청과의 결혼으로 점점 귀찮은 일이 생겨나는게 문제지.
조앙과 조비.
둘 중 하나를 내가 지원함으로써 후계자 자리를 확정지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단순한 신하였다면 모르겠지만 조청과 결혼을 하는 이상 나도 조가에 한발 들이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조조가 후계자를 결정할 때 어느정도 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지금까지야 조앙이 꾸준히 후계자로서 활동하고 많은 일을 했으니 인정한다고 치더라도 조비의 말대로 그에게 지배자의 자질은 별로 없었다.
특히 이런 난세에는 말이다.
“나한테 가장 좋은 건…”
조비?
아니면 조앙?
둘 다 나쁠 것은 없었지만 나는 조앙에 더 무게를 실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조비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은 조앙이 지배자가 된다면 그에게 나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겠지만 조비가 지배자가 된다면 과연 내가 그에게 필요한가에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권력을 원하는 자가 나에게 태사의 자리를 준 후 군사권에도 영향력을 끼치게 할까?
내가 보기엔 그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조비가 하는 것을 봐야 정확해지겠지만 그를 완전히 믿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무슨 고민을 하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음?”
“장군님의 선택은 항상 옳다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신뢰군. 어깨가 무거워지는데?”
만지작거리던 조청의 볼을 놓아주었다.
아쉬운 모양이다.
그녀의 은근한 시선을 응시하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어쨌든 지금 당장 결정할 일은 아니니까.”
만약 조비가 후계자 결정권에 난입할 정도로 다른 사람들과 조조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이건 그냥 헛소리에 불과했다.
조비의 제안은 끌리지만 그것이 진짜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좋아.
결정했다.
일단은 기다리자.
그가 틈을 보일 때까지 움직임은 삼가도록 하자.
내가 생각을 마쳤을 때 조청은 탁자 위에 놓여진 소검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변 어머님께 받으신 겁니까?”
“응.”
“창이가 그토록 원하던 검이었던 것 같은데.”
“어? 그래?”
“예.”
조창.
조비의 친동생.
다른 조가의 사람들과 다르게 곽거병이나 위청같은 무공을 세우는 것을 원한 자.
조비가 왕위에 올랐을 때 자신 역시 왕위에 오르고 싶어 옥새를 찾았던 자.
지금은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할 것이다.
“이거 일이 점점 재밌어지는데…”
이래저래 생각해보면 후계자 자리를 원하는 것이 조비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조비, 그리고 조창.
조식도 아니라고 볼 수 없었다.
“남 욕할 때가 아니었군. 여기나 거기나. 참나. 권력이 도대체 뭐라고.”
피식 웃으며 검을 챙겨 짐꾸러미 안에 넣었다.
내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조청은 고개를 갸웃거린 후 나에게 차를 따라 주며 말했다.
“고민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누가 그런 말을 하디?”
“순 숙부님께서…”
“하긴.”
후계자 결정권에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그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순욱, 그리고 하후돈과 하후연도 그렇고 조인, 조홍, 그 외에 다른 많은 이들이 조조에게 후계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난 쓰게 웃으며 조비와 나눈 이야기를 일단 뒷켠에 밀어 놓았다.
어쨌든 지금 당장 결정할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조앙을 계속 밀어왔는데 조비가 그런 거래를 제안했다고 해서 얼씨구나 하고 그의 손을 잡는 미친 짓을 할 정도로 난 막나가지 않았다.
곽가, 그리고 순욱, 정욱.
그 외에 장수진들
그들의 의견을 전부 확인해봐야 했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사람을 후계자로 미는 것이 편해질테니까.
“장군님. 아가씨.”
문이 열리며 진월이 들어왔다.
그녀는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조심스레 말했다.
“조 교위께서 오셨습니다.”
“벌써 오셨나?”
“나가봐야 할까요?”
“그럴 필요 없다.”
진월의 뒤로 조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성큼성큼 걸어 안으로 들어 온 그는 자리에 앉은 후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왜 저러나.
“이보게. 조카사위.”
“예.”
“음… 뭐라고 해야하나.”
“편히 말씀하시지요.”
“잠깐 시간을 내어 줄 수 있겠나?”
“왜 그러십니까? 숙부님께 시간을 내어드리는 것이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그렇다면 잠시라도 괜찮네. 내일 황궁에 함께 가세나.”
사정을 들어보니 젊은 나이에 진동장군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대단한 인물인 나를 황제가 꼭 좀 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어지간하면 그냥 무시하겠지만 황제가 직접 이야기를 할 정도였기에 무시할 수 없었던 조인은 난감해했다.
“아니 뭐 어려울 것 있겠습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라서 그러지. 이 사람아.”
황제가 나를 부른다.
그냥 얼굴 한번 보자고 하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지금 황제의 입장에서는 바짝 똥줄이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데려 온 장억과 왕자복이 자신의 목줄을 잡을테니까.
그러니 나를 어떻게든 포섭하려고 할 것이었다.
“안가면 안가는데로 그것을 빌미로 삼을테니까요. 어차피 한번은 부딪혀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가는게 낫겠지요.”
“하지만…”
조인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황제에게 포섭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를 향해 난 빙긋 웃었다.
“황제 따위에게 포섭될 정도로 어리석지 않습니다. 또…”
조청의 손을 잡았다.
“나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이를 버릴 생각도 없구요.”
“그거 다행이구만!”
“장군님…”
그래도 당장 들어오라고 하는 게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나?
난감해하던 조인은 내가 흔쾌히 허락하자 싱글벙글 웃었다.
“그럼 내일 가는 것으로 알고 있겠네!”
조인이 웃으며 나가자 조청은 머뭇거렸다.
“죄송합니다.”
“응? 뭐가? 황제를 만나는 것 때문에?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어.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렇지만… 안그래도 고민이 있으신데 괜한 고민거리가 늘어난 듯 싶어서.”
미안해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 걱정은 말라고. 나도 가끔씩 너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잖아.”
산양군에서 태산군까지 치고 올라가는 일.
쉬운 일이 아닌데도 조청은 훌륭히 수행했다.
그렇다면 나도 해줘야지.
“감사합니다.”
베시시 웃은 그녀를 향해 웃었다.
우리가 서로를 보며 웃고 있는 동안 문이 벌컥 열렸다.
“아. 그리고…”
“…..”
“미안하구만. 좋은 분위기를 방해한 것 같아서 말야.”
조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여유롭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 연회를 열 것인데 자네는 참석하겠지? 청이도 오거라.”
“예.”
“알겠습니다.”
조청과 방에서 함께 뒹굴거리다가 조조가 오고 연회 준비가 끝났다는 부름에 연회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별로 없었다.
“사람이 왜 이것 뿐입니까?”
상석에 앉아 있는 조조에게 물었다.
지금 자리에 있는 것은 조조와 조인 뿐이었다.
부인이나 자식들은 둘째치고 다른 이들은 참석하지 않는건가?
내가 궁금해하자 조조는 피식 웃었다.
“다른 이들을 부를까도 생각해봤지만 그건 나중에 원양이나 다른 이들이 오면 한번에 소개를 해주고 싶어서 그렇지. 굳이 번잡하게 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지요. 뭐.”
“자네 부하들을 위해서도 자리를 마련했으니 그들은 걱정하지 말게.”
서황과 다른 병사들을 위해서도 준비를 해줬다고 하니 딱히 불만은 없었다.
조청과 함께 자리에 앉은 나는 조조가 잔을 들자 내 앞에 놓여진 잔을 들려다가 움찔했다.
“…저기 이거.”
“자네가 아주 좋은 술을 가져왔더군. 함께 맛봐야 되지 않겠나?”
짙은 호박색의 액체가 잔에서 찰랑거린다.
이거 그거잖아!?
독한 향기가 피어오르는 술잔을 잡은 내가 머뭇거릴 때 조조는 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조가의 영광과 진가의 영광을 위하여!!”
“위하여!”
이런 씨.
이거 마셔야 하는거지?
응?
환장하겠네.
조청은 그저 죽엽청이나 다른 증류주 정도라고 생각했는지 단번에 들이마셨다.
술이 그렇게 강한 감녕도 몇잔 마시고 얼큰하게 취할 정도인 술이다.
이걸 어떻게 마시지?
잔에 살짝 입술만 가져다 댄 정도인 나에 비해 다른 이들은 모두 한번에 마셔버린 것 같았다.
“크으으으!!”
“속이 뜨겁구만!”
“하아…”
뜨거운 한숨을 내쉰 조청을 힐끔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붉다.
“적당히 마셔.”
“예에…”
조청의 눈이 흐릿하게 변한 것을 보며 난 손을 내려 그녀의 손을 잡았다.
겨우 정신을 차린 듯한 그녀가 붕붕 고개를 젖자 난 안도하며 다른 이들을 보았다.
“굉장한 술이군.”
“화신주라고 하던데… 형님. 자 한잔 더 받으시우.”
“그럴까?”
조조와 조인은 즐거워하며 술을 나눴다.
주전자를 들고 조조가 싱글거리며 다가오자 난 잔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아, 전 아직 남았습니다.”
“사내가 그리 술이 약해서 어쩌려는 건가.”
아니 그걸 한번에 마시는게 신기한데…
조조는 조청의 잔이 비어있는 것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늘 네가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을 보니 역시 연은 확실히 있는가보구나.”
“네에.”
“자. 한잔 받거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야야. 적당히.”
“네. 조절하겠습니다.”
조조는 웃으며 나에게 주전자를 들어 올렸고 난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그만…”
“그래? 천천히 마시게.”
내가 조청의 손을 꽉 잡고 있는 것을 본 조조는 무척이나 즐거워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자! 그럼 다시 한번! 한의 부활을 위하여!”
“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