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3
00003 장자지몽 =========================
한참동안이나 눈물을 흐느끼며 내 몸상태를 살피던 아버지는 나와 유모의 만류에 간신히 진정하셨다.
눈시울이 붉어진게 계속 보고 있으면 더 우실 것 같다.
그런 아버지를 보니 나도 눈물이 핑 돈다.
“그럼 푹 쉬거라.”
“도련님…”
“흑…”
“도련님. 울지 마세요…”
“아냐… 그리고 건드리지 말아줄래?”
건드리려면 좀 씻고 오든가.
“…..”
내 손을 잡으려는 유모의 손을 휙 피한 후 난 옷 소매로 쓱쓱 얼굴을 닦았다.
내 얼굴도 딱히 깨끗하지는 않다. 옷에 땟구정물이 묻어나는 것이 참 답이 없다.
아니야.
지금 이렇게 울고불고 질질 짤 때가 아니야.
최대한 빨리 정리를 해야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놔둘 수 없어.
“도련님…”
“혼자 있고 싶으니 나가줬으면 좋겠어.”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여기서 유모가 옆에 있어봤자 별 도움도 안되고 정신만 사납다.
내 말에 유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연신 뒤를 돌아보며 밖으로 나가자 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뒤통수가 욱씬거리는게 거슬리기는 하지만 지금 이런 것 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만약 이유하의 꿈이 진짜고… 그때의 삼국지라는 것이 사실에 기반한 역사라면 아버지는…”
진유하의 기억과 이유하의 기억을 대조해보면 확실히 삼국지에서 나오는 이들과 상황이 지금의 상황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당고의 금이 일어났고 장각을 필두로 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으며 십상시는 존재하고 그리고 하진 역시 권세를 펼치고 있었다.
“…여포와 동탁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지만 조조에 대해서는 들어 봤지.”
십상시 건석의 외삼촌이 통행금지 시간에 낙양의 북문을 오가려다가 북문 경비대장인 조조에게 두드려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일 이후로 조조는 북문 경비대장이 아닌 다른 현의 현령으로 승진했고 장각이 일으킨 난때 공을 세워 지금은 높은 관직을 얻었다고 들었다.
“흠… 아무튼.”
조조까지 나오고, 유비 관우 장비는 모르겠고. 여포나 동탁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그래도 지금까지 상황만 본다면 충분히 삼국지의 시대가 아닐까. 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럼 내가 뭘 어째야 하지?”
첫번째 방법은 다 필요 없으니 아버지를 꼬셔서 남쪽으로 튀는거다.
아예 조조나 여포와 관련되지 않게 아버지가 강남으로 도망친다면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아버지가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사가 편할까?
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버지는 현장의 직위에 있지만 딱히 부자가 아니었다.
현장의 녹봉과 현에서 수확한 농작물이나 생산품이 있지만 세금을 내고 현장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태수에게 바쳐야 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남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고 볼 수 있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하진과 십상시가 죽고 천하는 각지의 군웅이 할거하는 시대가 된다.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짓밟고 빼앗는 것이 일상이 되며 유교적 도리를 논하지만 검과 병사를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난세가 되는 것이다.
그때 아무런 힘이 없다면? 아무런 관직도, 재산도, 병력도 없다면?
결국 짓밟히고 빼앗기게 될 것이다.
현장이 아닌 아버지는 징집되어 끌려가거나 패잔병으로 이루어진 도적떼, 아니면 살기 위해서 도적이 된 이들에게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운 좋게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농민 이상은 되지 못할 것이다.
사장님이나 이사님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그 당시 이름을 날린 이들은 다들 끗발 있는 가문의 사람들이거나 어느정도 정통성과 명분을 유지하고 있는 인사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조조를 봐도 그렇다.
조조는 비록 내시이기는 하지만 중상시라는, 지금 권세를 누리고 있는 십상시마저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의 높은 위치에 있는 조등의 후광을 가지고 있다.
원소나 원술도 삼공을 지낸 원가의 후손이라는 타이틀이 있었다.
손권 역시 손견이라는 강남의 강력한 호족인 후손이며 유비는 황가의 후손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정당성을 가지려 했다.
그 외에 삼국지에서 유명했던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이라는 나라를 세운 유방처럼 맨주먹으로 일어선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아버지가 하야하고 함께 남쪽으로 도망가는 것은 허황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잘하면 농민이 되어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겠지만 삼국지가 진짜라면 그 꿈도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 천하는 전란의 땅이 되어 힘을 가진 이들에게 수탈당하고 이용당하기만 할테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나 내가 무사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기는 힘들었다.
“그럼 두번째.”
두번째 방법은 아버지가 조조와 관계되지 않는 것이다.
연의든 정사든 아버지는 조조의 부하가 된다.
그리고 그 수완을 이용해서 조조의 신뢰를 얻고 조조가 서주를 공격할 때 장막과 여포를 끌어들여 배신을 한다.
그 결말은?
조조에게 패배하여 여포와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그렇다는 것은 아예 조조나 장막, 여포와 관계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이게 좋은데 내 생각처럼 되는지가 문제겠네…”
연주 동군 동아현.
연주라는 것이 중요하다.
아버지는 동아현의 현장이고 연주는 차후 조조가 차지하는 세력의 기반이 된다.
비록 이천호에 불과하다지만 한 현을 다스리는 현장씩이나 하는 아버지를 조조가 과연 신경쓰지 않을까?
만약 조조가 아버지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아버지를 끌어들일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아버지를 자르고 다른 이를 현장의 자리에 올리겠지.
그렇게 되면 다시 첫번째 상황이 되어버린다.
“하아… 그럼 차라리 조조를 죽여버리면…?”
만약 미래가 삼국지 연의처럼 흘러간다면 동탁을 암살하는데 실패한 조조는 아버지에게 잡히게 된다. 그때 뒤도 보지 말고 슥삭해버리면 안전해지지 않을까?
“이건 좀 그렇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조조를 죽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능성이 희박해서 그런다.
연의에서 조조가 잡히는 곳은 동아현이 아니다.
여기서 한참 떨어져 있는 중모현이다.
조조가 쫓기는 시기에 맞춰 아버지가 중모현의 현령으로 가면 모를까 그것 역시 가능성이 희박하다.
중모현의 현령은 아버지가 잘 아는 사람으로 현재 연주 자사 가유의 아들이다.
복양현과 비교해서 그 크기가 크게 뒤지지 않는데다가 들어오는 수입이 상당한 알짜배기 현인데 돈도, 백도 없는 아버지가 그 현의 현령이 될 가능성은 희박을 떠나서 없다고 보는게 맞았다.
만약 만에 하나 조조가 아버지에게 잡히면?
그럼 뒤도 안보고 슥삭해버리는게 옳을 것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세번째군… 이건 좀 내키지 않는데.”
내가 조조의 관심을 끌고 신뢰를 얻는 것이다.
그의 신뢰를 얻고 절대 없어서는 안될 정도의 부하가 된다면 나중에 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난 공부 별로 안좋아하니까.
머리도 나쁘고.
하지만 지금 시대는 천거제도와 명사에 의한 인물평을 기준으로 인간의 기준을 정한다.
즉 공부 잘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거다.
효렴이니 무재니 하며 각 지역에서 천거된 자들이 관직을 얻고 명사들에게 좋은 인물평을 받은 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시대다.
하지만 일단 천거는 무리다.
애초에 천거 자체가 있는 놈들끼리 돌려먹기 위한 제도이니 말이다.
효심이 깊고 청렴하다 하여 효렴으로 천거된 이가 부모님을 홀대하는 것은 일상이고 무재로 천거된 이가 칼 한자루를 들지 못하고 문관으로 벼슬을 얻은 이가 까막눈인게 지금의 천거제도다.
결국 그런 방식으로 관직을 얻고 이름을 날리는 것은 아예 손도 못댄다고 생각을 하는게 나을거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나를 추천해 줄 사람은 없을테니까.
거기에 추가적인 문제는 나이다.
천거를 받으려면 적어도 15세는 지나야 하는데 난 아직 9살 밖에 되지 않았다.
즉 천거 자체는 아예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 관직에 나갈 수 조차 없다.
그렇다면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바로 명사들에게 인물평을 받는 것이다.
조등이라는 막강한 백을 가진 조조가 왜 죽어라 허자장을 쫓아다니며 ‘치세의 역적, 난세의 영웅’이라는 인물평을 받았겠는가. 그게 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인물평을 받으면 세간의 인식이 달라진다.
허자장에게 그런 인물평을 받은 조조가 세를 규합하고 거병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인물평을 통해 다른 이들의 지원을 쉽게 받았기 때문이다.
명사들에게 인물평을 받는다는 것은 그들과의 인맥을 드러내는 것과 같았다.
타인에게 많은 존경을 받기에 명사라 불리는데 그 명사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그 자가 좋은 이라는 검증을 받았다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었다.
잘만 하면 좋은 인물평을 받은 것만으로도 관직까지 노릴 수 있는데다가 부수적으로 다른 이들의 인정까지 받으니 어떻게든 명사들에게 인물평을 받으려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명사들에게 좋은 인물평을 받으면 조조의 관심을 끌고 신뢰를 얻는 일도 쉬워지겠지.
쉬운 예로 예형 같은 자가 있지 않은가
관직도 하지 않은 주제에 인물평은 좋아서 조조의 관심을 끌었다.
“그럼 나도 명사들에게 인물평을 받는 것이 낫겠는데… 내가 조조처럼 돌아다니면서 인물평을 받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인물평이 해주세요~ 한다고 해서 해주는 것도 아니고… 방법이 뭐가 있을까?”
예전 아버지가 얼큰히 술에 취해 이야기하던 기억이 난다.
실제의 재능, 노력. 그런 것 따위는 관계없이 타인의 평가만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자신의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고작해야 동아현이라는 작은 현의 현장 밖에 될 수 없었다고 자조했었다.
아버지 정도 되는 사람도 제대로 된 인물평을 받지 못했는데 과연 내가 인물평을 쉽게 받을 수 있을까?
“으으음…”
결국 그렇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에만 집중했다.
“도련님! 일어나세요!”
유모가 흔들며 깨우는 소리에 난 천근짜리 눈꺼풀을 간신히 들었다.
아침이 되었다. 분명히 밤새 생각해서 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어린데다가 다친 몸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면을 요구했고 결국 그대로 곯아떨어져버렸다.
“도련님!”
“으으… 잠깐만…”
“어휴. 현장님께선 벌써 기침하셨다구요. 어서 일어나세요.”
“난 환자잖아…”
“예?”
“아프다고… 아직…”
“그래도 약 바르시고 아침 식사하셔야죠.”
“으…”
결국 일어나야 하는 건가?
꿈지럭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 유모는 비틀거리는 내 손을 잡고 이끌어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아직은 아침 바람이 차다.
몸이 절로 떨리는 것을 느끼며 내가 도착한 곳에는 커다란 나무통이 있었다.
약간 김이 나는 것이 따뜻한 물 같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자 유모는 머뭇거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어제 도련님이 저 더럽다고 하셔서…”
“아아. 그랬지. 어디 손 봐봐.”
“여기요.”
어제보다는 좀 낫다.
하지만 땟국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유모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도련님… 갑자기 왜 이러세요?”
“그러게… 아. 이걸로 씻으면 되지?”
“네. 평소에는 잘 안씻으시던 분이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네.”
“으응…”
이유하의 꿈을 꿨기 때문이라고 해봤자 믿을리도 없으니 유모의 투덜거림은 그냥 무시하는 수 밖에 없다.
따뜻한 물로 손과 얼굴을 벅벅 씻고 팥가루를 비벼 거품을 내 얼굴과 손을 씻었다.
“유모도 이걸로 씻었어?”
“아뇨.”
“그럼 뭐로 씻었어?”
“그냥 물로만…”
“유모도 이걸로 씻어.’
“예? 하지만 그건…”
“나 안만질거야?”
“으… 알겠어요.”
팥을 가루로 만들어서 거품을 만들어 세안을 할 수 있지만 그건 어느정도 지체가 높은 사람들이나 가능한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팥은 먹을거다.
당장 입에 넣을 것도 모자란 판국에 그거 가지고 씻을 수 있는 사람들은 삶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거지.
비록 내 유모이기는 하지만 사는게 넉넉하지 않을테니 이런 걸로 씻는 것은 유모로서도 무리일 것이다.
“푸후후…!”
따뜻한 물로 씻는 것도 흔치 않은 경험인가보다.
유모는 따뜻한 물로 얼굴과 손을 대충 비비고 팥가루를 눈꼽만큼 퍼서 비벼대기 시작했다.
“장난해?”
“예?”
“팍팍 해. 그래가지고 씻겨지겠어?”
“하… 하지만…”
“아. 좀 하라면 하지 그래?”
“알겠어요…”
결국 내가 짜증을 내고 나서야 유모는 울상이 되어 팥가루를 한움큼 집어 얼굴과 손을 씻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라도 씻어야 내가 좀 편하지.
유모와 함께 세안과 세면을 마치고 나서야 난 정신이 어느정도 드는 것을 깨달았다.
“으… 뒤통수가 깨질 것 같네.”
“아직도 아프세요?”
“응.”
“어서 식사하시고 의원에게 가요. 제가 모시고 갈게요.”
“그래. 아버님은?”
“방에 계세요. 어서 가요.”
유모의 손에 이끌려 아버님이 계신 곳으로 걸어갔다.
이유하로 살았을 때와 비교하면 한참 작은 발걸음이지만 그래도 어색함은 없었다.
어찌어찌 걸어 아버지의 방에 들어 간 나는 이미 준비된 아침식사와 벌써 앉아 계신 아버지를 보고 움찔했다.
“어… 그 기침하셨습니까. 아버지.”
“어서 앉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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