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315
00315 역사를 마주하면 =========================
“어서오시오. 장군.”
“방금 전에 황보 장군님을 만났습니다만… 제가 방해한 것이 아닌가 싶군요.”
날 반기는 주준을 향해 인사를 하고 물었다.
황보숭의 표정은 좋지 않아보였다.
무척이나 딱딱하게 굳어 내 인사를 대충 받아버리고 거친 발걸음으로 멀어졌다.
주준과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본데.
“별 일 아니니 신경쓰지 말아주시오. 자자. 어서 앉으시지요. 이거 참. 공사가 다망한 장군을 모시는 일인데 제대로 된 자리조차 마련할 수 없는 것이 죄송스럽구려.”
“괜찮습니다.”
뭐지? 이 인간.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지?
“원래대로라면 저녁 즈음에 연회를 열어 반기고 싶지만, 이렇게 되어버리니 아쉽구려.”
“그렇습니까…”
연회는 무슨.
나 연회 싫어한다.
차라리 돈으로 주지.
그걸로 애들 장비나 맞춰주게.
날 데리고 와 준 하인이 허리를 숙인 후 뒤로 물러나고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자 주준은 차를 한모금 마신 후 말했다.
“지금의 천하를 어찌 생각하시오? 장군께선?”
“이제부터 좋아지겠지요.”
“물론 그렇겠지. 나도, 그리고 문화도 그리 생각하고 있다오.”
“문화라면…”
예상 밖의 이야기가 나온다.
난 그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는 내 인상이 변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이야기는 들었소. 문화와 그대가 동문이라고.”
“…..”
가 사형이 그걸 주준에게 말했다는 건가?
주준은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오랜기간동안 자신의 신분을 숨기며 밑바닥에서 뒷공작을 해왔던 사형이 주준과 손을 잡았다면…
난 그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별 건 아니오. 이보오. 진동장군. 어제도 말했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갈 생각이오?”
“이렇게 살아가는게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이 사람 보게. 하하하.”
주준은 낮게 웃은 후 천천히 말을 꺼내었다.
“솔직히 말하겠소. 나는 사공을 부정하지 않는다오. 오히려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황실에 충성하는 주준답지 않은 말이다.
지금은 누가 봐도 조조가 황실을 잡아먹기 위해…
“….어?”
정현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한 황실과 한이라는 나라만을 중시 여기고 있었다.
만약 주준이 정현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천하를 어찌하니 마니, 그런 것은 솔직히 중요하지 않소. 강한 신하가 흔들리는 천하를 바로 잡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겠지.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소. 다만 문제는…”
“동탁과 이각처럼만 되지 않기만 바라신다는… 것입니까?”
그들은 황제의 권위를 무시하고 자신 스스로가 황제가 되려 했었다.
동탁은 황제의 위인 상국의 자리에 올랐고 황제를 갈아치웠으며 이각은 황제의 궁녀를 건드려가면서 자신이 황제보다 위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조조는?
지금까지 황제를 모셔다 놓은 뒤 새로운 황궁을 세워 줌과 동시에 황제가 원하는 것은 어느정도는 들어주려고 하고 있었다.
즉 교섭과 타협이 가능한 상대라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무도한 동탁과 이각과는 확연히 다르지. 사공은 말이야.”
대장군이나 상국의 자리가 아닌 사공의 자리에 만족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나 주준의 호감을 받은 모양이다.
스스로 어느정도의 선을 그어 놓고 그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은 꽤나 중요한 것이었다.
“확실히 그렇지요.”
“장군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다행이구려.”
“다만 문제는…”
“다른 이들도 모두 그리 생각하느냐이지.”
주준의 미소를 보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조조는 황실을 따르는 신하들 중에서 끌어오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조조가 원소를 쓰러트리고 나면 하북일대와 중원을 손에 넣게 된다.
거기에 사마의와 조앙이 이각을 잡으면 강남을 제외하고 과거 한이라는 나라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대부분의 땅을 손에 넣게 된다.
지금이야 연주와 서주, 청주 정도에 불과하지만 기주와 유주, 병주까지 손에 넣게 되면 가뜩이나 사람이 없어서 허덕거리고 있는데 거기에 추가적으로 엄청난 인력난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아무나 넣을 수는 없었다.
군수라는 자리는, 현령이라는 자리는 어중간한 자에게 맡길 수 없는 자리였다.
잘못 맡겼다간 장억 꼴이 나버린다.
아니, 그냥 사치를 부리고 뇌물을 받는 정도면 다행이겠지.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마구 넣었다가는 반란만 일어날 것이 뻔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안정화될 때까지는 능력이 있는데다가 그나마 신뢰가 가능한 이들을 넣는 것이 좋은데 그것을 생각한다면 황실을 따르는 신하들을 데려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그들을 포섭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흐음…”
“내가 돕겠네.”
“예?”
주준이 진심으로 돕겠다고 한다면 충분히 좋은 이야기였다.
황실을 따르는 장수들 중의 필두라고 할 수 있는 주준이 나선다면 황실의 신하들을 끌어오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
그렇지만 과연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내 의심에 가득 차 있는 시선을 마주하던 주준은 껄껄 웃었다.
“날 의심하는게요?”
“부정할 수는 없군요.”
황제를 모시고 특별한 제제 없이 그가 하고 싶은대로 하게 놔둔 것이 유효한 것일까?
황실을 따르는 신료들이 슬금슬금 조조를 믿고 그의 밑으로 들어오는 낌새를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정현이나 주준의 발언을 생각하며 나는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보았다.
주준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주시오. 나는 한 황실을 따르는 자로서 한 황실을 지키고 싶을 뿐이니까.”
세상을 살다보면 정말 쓸데없는 것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있었다.
눈 앞에 있는 이 남자는 그런 부류의 사람으로 보였다.
돈이나 권력이 아닌 신념을 지키려는 사람.
주준과 정현이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나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는 그것이 당연한 것인 듯 무덤덤해했고 그를 이해하지 못한 나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 저은 후 물었다.
“이해할 수 없군요. 폐하가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정현이나 주준이나.
간이 부었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내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지금 그가 하는 말은 자칫 잘못하면 황제에 대한 불충과 필요하다면 황제마저도 갈아치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하는 주준을 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이것으로 당신을 감옥에 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왕자복의 옆방에 자리 하나 만들어 드려야 합니까?”
“농담도. 그런 발언은 장군에게나 사공에게나 도움이 되지는 않을거요.”
그는 입가에 띄우고 있던 미소를 지운 후 몇번이나 본 탓인지 손때가 잔뜩 담겨 있는 서찰을 보여주었다.
여기저기에 손기름과 얼룩이 있었지만 소중히 간직한 그것을 나에게 보여 준 주준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나와 뜻을 함께 하기로 한 사람들의 연판장이요.”
“……”
주준이 보여 준 서찰을 보았다.
한 황실을 지키는데 있어서 무슨 짓이든지 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글귀였다.
그 밑에 있는 첫번째 이름.
그것을 보고 난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가 사형이…?”
이 인간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곳에 이름을 올려놨지?
일이 잘못된다면 이 연판장이 만들어낼 타격은 굉장할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이름을 선뜻 올려 놓은 가 사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을 심각하게 바라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노식 장군, 그리고 주 장군, 가 사형, 거기에… 꽤나 많군요.”
열명을 훨씬 넘는 사람들 중에서 이름이 낮은 이는 없었다
다들 한자리씩은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름이 담겨져 있는 연판장을 받은 나는 머뭇거렸다.
“이것을 저에게 보여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장군께서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신다면 우리는 장군을 지원하겠소.”
“지원이라는 것이 무슨…”
“장군께서 오르실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도록 우리가 돕겠다는것이오.”
“….”
대장군의 자리를 말하는 건가?
난 주준을 말없이 바라보았고 주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뭡니까?”
“부마도위의 자리도 겸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소.”
이젠 하다하다 별 꼴을 다 당하는구나.
부마도위라면 황족 여인을 내 아내로 주겠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네.
난 뒤통수를 긁적거린 후 떨떠름히 말했다.
“저는 이미 결혼을 했습니다만.”
“알고 있소.”
그렇겠지.
정략혼 시키려는 자들이 내가 아내가 있든 말든 신경이나 쓰겠나…
주준은 대수롭지 않아하며 말했고 난 한숨을 내쉬었다.
“꽤나 유명한 이야기잖소. 장군의 처가 임신을 하였다는 것은. 그대의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면 천하의 모든 이들이 그대의 아이의 이름을 부를 것이오.”
지금 허도에 영이가 임신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니까.
영이와 나의 아이가 나오면 그 아이의 스승이 되거나 혹은 정혼, 그것도 아니면 태중 의형제를 맺고자 연락을 하는 이들은 넘쳐났다.
안그래도 오늘 아침에 나올 때 날 만나고자 하는 이들 때문에 골치아팠는데.
괜히 신경써야 할 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투덜거렸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 아직 혼약을 하지 않은 황족 여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물론 그것도 그렇소.”
“그런데 어찌?”
“황족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잖소.”
“허…”
아니 그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가지고 결혼을 시키니 마니 하겠다는거야?
지금 내가 18살이니까 아무리 적어도 18살 차이?
이 인간이 미쳤나.
“장난하십니까?”
내가 어이없어했지만 그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심이오. 과거를 보면, 역사를 마주하면 스무살이 넘는 사이라도 결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오. 영웅에게는 삼처사첩이 흉이 아니라오. 이미 장군에게는 처가 있지만 또다른 처가 생길 예정이지 않소? 그렇다면 한명 더 추가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이오?”
한명 더 추가 되는 문제가 아니다.
영이와 청이, 그리고 강남의 일을 생각하면 교완까지.
이미 삼처 채웠다.
여기서 뭘 더 채우라고.
“첩은 안되겠지요?”
“당연한 이야기를.”
그냥 일반 기녀나 아무것도 없는 백성 중 어여쁜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라면 그렇다고 치더라도 황족이다.
그런 황족을 받아들이는데 첩은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아내로 받아들이라는 건데.
“죄송하지만 듣지 못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주준은 쓰게 웃었다.
“그리 거절만 하지 말고 생각해보시오. 장군께선 너무 작은 것에 집착을 하고 계시오.”
“작은 것에 집착이 아니라… 하아.”
황족과의 결혼은 일단 제쳐두자.
난 내 손에 들려져 있는 연판장을 보았다.
“이들이 전부 동의한다고 하여 제가 대장군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충분히 가능성은 있소. 또한… 사공이라면 이 뜻을 이해할 수 있을거요.”
“뭔가 이야기라도?”
“아니. 딱히 나눈 것은 없소. 내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장군께서 사공과 우리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라오. 사공과 함께 하는 그대라면 충분히 가능하잖소.”
주준은 담담히 말했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대로이기는 했다.
내가 대장군이 되어 황실쪽을 담당하고 조조가 그 외의 부분을 담당한다면 충분히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었다.
다만 지금 대장군이 되는 것은 굉장히 이른 일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주준의 제안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나는 고민했고 주준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구려. 원한다면 다음에 답을 주셔도 좋소.”
“중요한 것은…”
“이각과 원소요?”
“예.”
이각과 원소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대장군이고 나발이고 다 의미가 없는 일이다.
나는 동구항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대장군이 된다면 허도에서 함부로 움직이는 것 조차도 힘들다.
내가 그것을 언급하자 주준은 손을 내밀었고 난 그의 손 위에 서찰을 올려주었다.
“시간은 아직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주시기 바라겠소. 정 뭐한다면… 원소나 이각을 쓰러트린 후에 말씀해주셔도 좋소이다.”
“그런 것이라면 그때 이야기를 하시지요.”
이미 연판장의 존재를 나에게 알린 순간부터 주준은 많은 것을 양보한 것이었다.
거기에 시간까지 준다?
내가 이 연판장의 존재를 조조에게 알리기를 오히려 바라는 듯 싶었다.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미안하구려. 한참 바쁘실터인데.”
“괜찮습니다.”
“다음에는 허도에 있을 장군의 집으로 내가 찾아가리다.”
내가 여기저기로 직접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허도에 내 거점이 조가라서 그렇다.
그저 손님에 불과하기에 따로 손님을 부를 수 없었던 나는 주준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대장군이 되어 허도에 머물러 조조가 한 황실을 능멸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주준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마주하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언제든지 환영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