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523
00523 내 생각은 다른데 =========================
유복이 돌아왔다.
갈때는 손관만 데리고 갔던 그가 한명을 더 데리고 돌아온 것에 우리는 당황했다.
사람 한명?
뭐 유복이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괜찮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데려 올만 하지.
그런 유복이 데려 올 만한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
다만 우리가 놀란 것은 그가 누굴 데려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데려 온 사람의 첫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 거지.
“저… 뉘신지?”
아무리 봐도 한족 같지는 않은데.
피부가 검고 머리는 갈색이다.
흐트러진 머리에 대충 다듬은 수염, 얼굴에 나 있는 잦은 흉터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터질것처럼 부풀어 있는 문관복이었다.
아니 근육을 보아하니 아무리 봐도 이민족 장수처럼 보이시는데.
덩치도 굉장히 커서 우리 중 가장 큰 몸집을 가지고 있는 하후돈보다 머리 반개는 키가 더 컸다.
그의 모습에 하후돈은 거의 허리의 검에 손까지 가져간 상태였다.
혹시 저 이민족 장수에게 유복이 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긴장하고 있을 때 유복은 껄껄 웃었다.
“으하하하! 다들 뭘 그리 겁을 내십니까?”
“겁… 은 무슨. 겁 같은 소리 하지 마시오. 그저 유 군수가 걱정되어 그런 것이니. 혹여…”
“안녕하십니까. 거기장군님. 처음 뵙겠습니다.”
“…모, 목소리가 좋구만.”
덩치와 얼굴에 정말 맞지 않은 차분한 저음의 목소리다.
무척이나 예의바른 태도로 그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자 정욱은 떨떠름히 물었다.
“예를 배운 사람 같은데… 혹 흉족인가?”
“어머님께서 흉노의 피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저의 아버님의 함자는 겸으로 하진의 장사였고, 또한 저희 가문은 삼공의 가문으로…”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처음이 아닌가보다.
어찌보면 무례하다고 할 수 있는 정욱의 질문에도 그는 웃으며 상냥히 답했다.
“흠. 삼공의 가문이라… 왕 장사라면 나도 만난 적이 있는데…”
하후돈은 그를 위 아래로 흝어보다가 나를 보았다.
나보고 어쩌라고.
그가 나서라는 듯한 손짓에 난 한숨을 내쉬었다.
“음. 반갑소. 진유하요.”
“진동장군님에 대해서는 늘 듣고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치 너의 목을 지금 따주마. 라고 하는 것 처럼 들리는 것은 착각일까?
“다들 왜 그러시는 지 모르겠군요. 이 친구는 왕찬이라는 사람으로 채 태보께서도 이 사람의 재능을 무척이나 칭찬하셨을 정도지요.”
“그, 그렇습니까?”
그런데 왜 난 들은 적이 없지?
나중에 명사들을 만나면서 괜찮은 사람없나 좀 알아봐야겠다.
“재능이라… 아. 무관으로?”
“문관으로. 이 친구는 아무리 봐도… 무관처럼 보이지만요. 더 잘 보면… 후후. 아시겠습니까들?”
유복은 말하려다가 빙긋 웃었다.
그 웃음에 왕찬은 싱글거리며 즐겁게 말했다.
“제 생김이 흡사 산도적 졸개와 같이 생겼지요? 절 보신 분들은 다들 비슷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산도적 졸개가 아니라 산도적 두령 같구만.”
“그렇습니까? 하긴. 졸개보다는 두령이 낫지요.”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는 듯한 하후돈의 말에도 왕찬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의 웃음을 마주하던 순유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서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아. 그렇군.”
안그래도 많은 이들이 왕찬의 외모를 보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혹여 유복이 무뢰한에게 잡힌 것이 아닐까 싶어 병사를 부르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다.
“아무튼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군. 왕…”
“중선이라 불러주십시요. 장군님.”
“아. 그래. 중선. 말 편하게 해도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싱글거린 그는 날 향해 또박또박 한글자씩 내뱉었다.
“저와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으신데요. 관직도 높으시고. 얼마든지 편하게 불러주십시요.”
“…응?”
진짜?
그 얼굴로?
난 적어도 만총과 동갑인 줄 알았지…
몰려 온 병사들을 돌려보내고 우리는 관청의 회의실에 앉았다.
어지럽혀져 있는 자리를 치우고 나서 시녀가 차를 가져오자 왕찬은 다시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왕찬이라고 합니다.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어르신들을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입가에는 계속 미소가 그려져 있는 이다.
좀 무섭게 생긴 사람이 저렇게 웃으니까 오히려 더 무섭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이야기를 알 것 같다.
저 얼굴에 침 뱉으면 진짜 무서워서 잠 못 잘듯…
하지만 생긴 것과 다르게 왕찬은 무척이나 예의바른데다가 성격도 좋았다.
“거 참. 자네는 왜 그렇게 웃고 다니는 건가?”
“저도 제가 어떻게 생기고, 또 사람들이 저를 보면 어떤 느낌을 받는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무섭겠지요. 제가 흉측하다 생각하겠지요.”
“으, 으음.”
하후돈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참으로 솔직하고 소탈한 사람이다.
외모만 빼면 정말이지 훌륭하기 그지 없는 사람 같은데.
정욱과 만총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야. 그리 생각하지 말게나.”
“현인은 사람의 겉이 아닌 내면을 본다고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일단 겉을 보게 됩니다. 겉이 나쁘다면 결국 속도 나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요. 대사농 어르신이나 만 군수님같은 분들만 계신 것은 아닙니다.”
“어? 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하네. 겉을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순식간에 하후돈만 나쁜 놈이 되어버렸다.
그는 벌게진 얼굴로 당황하다가 외쳤다.
“나, 나도 딱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야!”
“에이~ 숙부님. 사람이 좀 솔직해집시다.”
“거, 진짜 거기장군님. 왜 그러십니까? 사람이 속물도 아니고.”
“적당히 합시다. 적당히.”
“에잉.”
나와 정욱, 만총, 순유가 혀를 차며 하후돈을 몰아갔다.
그는 더더욱 얼굴을 붉히다가 고개를 숙였다.
“끄응. 미안하네. 내가 초면에 자네에게 실례를 저질렀구만. 용서해주게나.”
왕찬도 그렇지만 하후돈 역시 사람이 솔직하고, 또 소탈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다.
스스로 실례라는 것을 알기에 거기장군이라는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고개를 숙일 줄 안다.
우리의 눈총을 받으며 그가 사과하자 왕찬은 오히려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보았다.
“왜?”
“아니… 유 군수께 듣기로 다들 좋으신 분이라 들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현인은 아니더라도 현인이 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만큼… 그나저나 아까의 질문에 답변은 없었던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웃고다니는 거지?”
“아. 하하하. 별 것 없습니다. 저를 보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 외모나 덩치때문에 말이지요. 사람을 두려워하면 선입견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제 겉모습을 미워하여 제 안까지 미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웃는 것입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나?”
난 그의 웃음을 보며 물었다.
“사람이 항상 웃고 다니면 실없어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어. 물론 마냥 무표정이거나 화를 내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만 말야. 그리고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자네 웃는 표정이 그리 보기 좋아보이지는 않는데.”
“그래도 다른 표정보다는 낫습니다.”
“봐봐.”
순식간에 그는 얼굴의 웃음을 지웠고 우리는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야~ 사람이 웃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자네는 항상 웃고 다니게.”
“웃으면 복이 온다는 이야기를 알겠구만.”
“그렇지요?”
다시 미소짓는 왕찬.
아까의 표정을 보니 오히려 지금이 좀 더 살갑고 좋아보인다.
“그래. 뭐 아무튼 그렇다고 치고. 자네가 여기는 무슨 일인가?”
우리의 대화를 즐겁게 보던 유복이 나섰다.
“여기 중선은 유표의 밑에서 한직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 재능이 뛰어난데도 고작 외면이 나쁘다는 이유로 유표를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미움받고 있더군요. 그래서 데리고 왔습니다.”
“아니 사람이 무슨 길가에 있는 동물도 아니고 그냥 막 데리고 오나?”
유복의 말에 정욱은 인상을 구긴 후 물었다.
“자네의 가문 이야기는 알고 있네. 비록 왕 장사께서 돌아가셨다고는 하지만 가문의 사람들이 있을 것 아닌가. 이렇게 우리와 만난 것이 알려진다면 자네 가족들이 위험할텐데…”
“왕가는 이미 꽤나 몰락해서 말입니다.”
“아니 그래도. 삼공을 지낸 가문인데 그리 쉽게 몰락할 수 있는 건가?”
정욱의 질문에 왕찬은 한순간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 거! 사람들이 왜 이렇게 섬세하지 못합니까!? 그렇게 상처주는 말을 휙휙 내뱉고. 자네가 이해하게. 대사농께서 악의가 있어서 하신 말씀은 아니야.”
기회는 살려야 하는 법.
하후돈은 한번 실수했고 정욱도 실수했다.
그럼 최대한 내가 나서서 인재를 잡자.
유복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고, 또 채옹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했으면 내거다.
“아니 악의따위는 없는데. 자네 이렇게 나오긴가?”
억울해하며 정욱이 말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정욱이 쓰게 웃으며 사과하자 왕찬은 웃으며 손사레를 쳤다.
“하하하. 알고 있습니다. 대사농께서는 그저 궁금하셨을 뿐이겠지요. 뭐, 이래저래 사정이 많았습니다. 하진의 일도 있고…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런가… 왕 장사께서 그리 병으로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내 한번이라도 찾아가뵙는 거였는데. 이거 안타깝게 되었군.”
“장군님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저희 아버님께서는 무척이나 기뻐하실 것입니다.”
생긴 것은 산도적이지만 예의를 갖추는 것이나 사람의 소탈한 모습을 따지면 진짜 괜찮은 사람 같다.
거기에 목소리도 좋고 말이지.
말투에 현기가 느껴지는 것이 반드시 잡아야 할 인재 같았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우리를 찾아와줬다는 것은 우리와 함께 하려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유표에게 몸을 의탁했지만… 이런 저런 사정이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
“음… 뭐라고 해야하나.”
머뭇거리던 왕찬은 볼을 긁적거린 후 천천히 말했다.
“행동이나 절차에 허례의식이 많았지요. 사람이 사람을 받아들이는데에는 복잡한 예와 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진솔한 마음, 그리고 의미를 담은 말과 행동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몇차례나 말씀드렸지만… 유표는 형주목에 오른 자신이 재능이 없음을 알고 또한 협잡과 모략으로 권력을 얻은 것을 알고 있기에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더군요.”
“흐음. 그래서?”
“황가에서나 할 법한 예와 식을 자꾸만 강요하는 것과 더불어 의미없는 행동만을 강요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지적을 하고, 또 제가 거부하니 점차 저를 미워하더군요.”
왕찬의 말을 받으며 유복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거기에 원래대로라면 왕찬과 자신의 딸을 결혼시키려 했지만 이 친구의 성품이 워낙 소탈하고 허례를 따르지 않아 결국 그 결혼을 취소했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화가 날 만하지요.”
“하하하. 저도 딱히 결혼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 부분은 오히려 유표에게 감사해야겠지요. 만약 결혼을 했다면 빼도박도 못하고 그의 허례에 따라야했을테니까요.”
“그래. 아무튼 온 것은 환영하네. 그런데 자네는 어디에 있었나?”
“아. 저는…”
왕찬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전홍성의 말단직에 재직 중이었습니다.”
“전홍성.”
“예.”
“우리가 그곳을 공략하려 하는 것 정도는 알겠지?”
“예.”
왕찬은 쓰게 웃었다.
“여러분께서 전홍성의 식량을 매입하려 하는 것 역시도 알고 있습니다.”
“…..”
하후돈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훌륭하다.
지금 당장 검을 뽑지 않은 것도 칭찬해 줄만 하다.
“그런 상황에서 이리 왔다는 것은… 우리의 작전을 방해할 생각은 아닌 듯 싶네만. 그런가?”
“오히려 피해가 적은 방법이 될테니까요. 현 전홍성주 이엄은 형주에서 지원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며 여유있게 물자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꽤나 많은 자금을 쌓게 되어 기뻐하는 듯 보입니다만…”
“그래서?”
“다만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걸리는 것이라면?”
왕찬은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전홍성의 부성주인… 곽준. 그가 마음에 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