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850
“아율! 살아 있었나!”
“죽기를 바랬냐?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지붕 위에서 뛰어내린 아율은 관우와 방덕이 달려 온 쪽을 가리켰다.
“한가롭게 잡담할 여유 없어. 바로 지척에 있다.”
“음. 그럼 가지.”
사마의는 검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길을 열어라! 바로 탈출한다!”
“예!!”
그의 외침에 흑귀대와 마초, 그리고 문흠이 무기를 휘두르며 적병을 밀어낸다.
사마의는 주저앉아 있는 방덕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목숨을 구원해 줬으니 이 빚은 어떻게 갚을 생각이지?”
“아. 빚?”
그의 내밀어진 손을 보며 방덕은 이를 드러내었다.
“그 빚은 좀 나중에 갚아야 할 것 같은데.”
“음?”
“먼저 진 빚이 있어서 말이지… 이래저래 빚만 쌓이는구만… 하. 진짜 천하의 방덕이 꼴이 말이 아니구만… 빚쟁이가 다 되었네.”
계획했던대로 마굿간에 불이 나 말들이 도망가는 것을 잡기 위해 병사들이 움직였다.
덕분에 빠져나올 틈을 얻어낼 수 있었던 사마의 일행은 임무의 성공을 알리기 위해 산길을 통해 빠지는 흑귀대원 몇명을 제외하고 그가 계획했던 탈출로로 빠르게 도망칠 수 있었다.
“삭주로 진입하기만 하면 적들의 추격에서 그나마 안심할 수 있겠어.”
“삭주도 그리 안심할만한 곳은 아닌 듯 싶은데…”
“적어도 저들의 추격은 없을테니까.”
삭주와 양주의 관계를 생각하면 함부로 군을 보내지는 못하겠지만 삭주에 있는 이들까지 생각한다면 쉽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삭주는 현의 구분도 거의 없을 뿐더러 대부분 유목민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자칫 잘못하면 전원이 노예로 팔려갈 수도 있는 위험한 곳인데다가 물이 있는 곳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별다른 걱정없이 사마의는 지도를 펼칠 뿐 이었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이동한다.”
“대평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까?”
“그래.”
대평원으로 향한다는 그의 말에 문흠은 살짝 눈쌀을 찌푸렸다.
그런 그를 향해 웃어보인 사마의는 지도를 접었다.
“그쪽에 우물이 있다.”
“대평원에 가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몇번.”
과거 여포와 함께 북방을 돌 때를 떠올리며 사마의는 무덤덤히 말했다.
사마의를 따르는 입장인 문흠은 별다른 불만을 보이지 않았고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관우라고 했던가?”
“그렇소.”
“내가 알기로 한때 진유하의 밑에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
“후. 댁은 사마의라고 했지? 과거 그 이름을 문서에서 본 적이 있소.”
흑귀대원들 중 몇몇이 관우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 역시도.
예전 서주에서 일할 때 보고서에서 그 이름을 본 적이 있었던 사마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물었다.
“어쩌면 한번 정도는 만났을지도 모르지.”
“그런가.”
하지만 그 뿐이다.
사마의도, 관우도 과거의 이야기에 대해서 굳이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목에 걸려 있는 패를 보면… 진유하와 그다지 나쁜 사이는 아닌 듯 싶고.”
관우의 목에 있는 패를 가리키며 사마의가 묻자 관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밑바닥에서부터 구원하는 자로서 살아가려면 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것을 대비하라며 정북부의 패를 받았었던 관우는 자신의 패를 툭 쳤다.
“불만이라도?”
“아니. 그냥 궁금할 뿐이다. 왜 그놈과 함께 다니지 않지? 당신 정도라면 충분히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을텐데. 그놈이 사람 보는 눈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게 싫소.”
“음?”
“3층 전각에 올라갔을때… 당신은 1층에 있는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소?”
“흐음… 그런 의민가?”
“그런 의미요.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밑에는 거의 없지. 그러니 나는 밑에서 할 뿐이오.”
관직에 있는 자들은 관직을 가짐으로써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관직에서 멀어저 백성의 위치에서, 밑바닥에서 백성들을 구하겠다.
“하긴. 관직에 있으면 이런 저런 제약이 많지.”
관직에 있으면 이리 재고, 저리 재며 백성을 구하는 것보다 이득을 위해서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관우의 행동도 같다.
고작 열댓명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장수가 목숨을 걸고 적진에 침입한다?
자신이나 진유하, 아니 조조라고 하더라도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려면 관직에는 뜻을 두지 않아야 한다.
말로는 쉽지만 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걷는 관우를 응시하며 사마의는 맥빠진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등용을 제안해봤자 거절하겠군.”
“후… 그럴 것이었다면 이미 관직을 가졌겠지.”
“그런가.”
무뚝뚝히 대꾸한 관우는 수레에 앉아 있는 부하들을 보았다.
꽤나 많은 이들이 다쳤다.
그리고 죽은 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씁쓸한 눈으로 응시하던 관우는 손을 들어 가리켰다.
“부탁이라고 해야하나. 이번 일에 대한 대가를 원하오.”
“뭐지?”
“저들을 데려가 쉬게 해주시오. 그리고 노예로 잡혀 온 백성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주고.”
“그거면 되나?”
“그거면 되오. 이왕하는 것 이번 일을 하다가 죽거나 다친 이들의 고향에 가서 그 보상을 내어줬으면 싶지만… 과한 부탁인가?”
“해주지. 의인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것은 백성들을 돌보는데도 주요한 방법이니까. 나 사마의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다.”
“좋소. 믿음직스럽군.”
그 외에는 별다른 욕심이 없는 듯 하다.
초탈한 얼굴로 심드렁히 대꾸한 그를 보던 사마의는 양 손을 가볍게 들었다.
이런 이는 데리고 다닐 수 없다.
관의 뜻이나 나라의 뜻보다 오로지 자신이 세운 정의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
분명 큰 도움이 되지만 자신의 정의와 부합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런 것이라면 이정도의 연을 담는 것으로 충분하겠지.
고개를 끄덕인 사마의는 관우가 말을 타고 앞으로 걸어가자 입맛을 다셨다.
“이거 괜찮은 인재를 놓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구만.”
사마의가 말한대로 북방 대초원의 입구를 지나 한참을 걸었을 때 야영장에 도착했다.
초원을 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이나 전사들을 위한 휴식처였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이용하는 이가 없었기에 그들은 지친 몸을 편하게 눕힐 수 있었다.
“일단 밥부터 하자! 배고프다!”
“다친 놈들 빨리 와! 치료해야 하니까!”
아율의 외침에 흑귀대와 그의 부하들도 움직인다.
탈출을 하며 제대로 상처를 치료할 수도 없었고 먹고 마실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지급된 마비산만으로 고통을 잡을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은 부상자를 치료하며 정비를 시작했다.
휴식을 취하는 이들을 지켜보던 사마의는 우물에서 퍼올린 물을 한모금 마셨다.
갑작스러운 습격, 그리고 적의 추격을 경계하느라 긴장한 목에 차가운 물이 들어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겨우 여유를 가지게 된 사마의는 긴장을 풀며 물었다.
“양주목의 상태는?”
“진정은 되었습니다만…”
기력이 많이 약해진데다가 양 팔과 양 다리의 상처가 심각하다.
반쯤 썩어가는 살점을 보며 사마의는 눈쌀을 찌푸렸다.
“이래가지고는 화타가 와도 무리겠군.”
“저, 정말이십니까?”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된 마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마의는 주머니에서 날카로운 단검을 꺼냈다.
희미하게 눈을 뜬 마등은 사마의를 보자 작게 말했다.
“흐… 고맙구려. 좌풍익…”
“고맙다는 인사는 좀 나중에 했으면 하는군. 아직 우리는 쫓기고 있으니까.”
“…그래도…”
“이거나 드시고 입 다무시오. 응급조치이기는 하지만 바로 치료할거요. 제일 좋은 것은 서주로 당신을 보내는 것이지만 서량의 일이 끝나기 전까지 당신은 움직일 수 없소.”
“알고… 있소…”
“그럼 됐군.”
품에서 꺼낸 진통제를 그에게 먹인 후 약효가 돌 때까지 기다린다.
여기저기를 누르며 고통이 억제됐는지 확인하고 사마의는 그의 곪은 상처를 칼로 잘라내기 시작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의 상처를 치료한 사마의가 봉합을 시작하자 마초는 놀라며 물었다.
“의술에도 조예가 있으십니까?”
“기본은. 그리고 너희들도 배워두는 것이 좋아. 위국의 의술은 대단하다. 배워두면 반드시 쓸 곳이 많아.”
“위국은 대단하군요…”
의원이 아닌데도 이 정도의 솜씨.
거기에 정예병들은 숙련된 기술까지 가지고 있다.
이래서야 서량은 평생가야 중원을 당해낼 수 없다.
막대한 생산량과 더불어 훌륭한 기술들을 보유한 이들을 어찌 이긴단 말인가.
유목민으로서 자신들의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봤자 결국은 그들에게 짓눌리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먼저 나서서 그들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것인데 어째서 그것을 모른단 말인가.
마초는 아쉬워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할 시간 있으면 정찰이나 다녀오는게 어때? 만약 적들이 추격해 온다면 요격하든, 아니면 도망치든 해야 하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정도로 감탄하지 마라. 양주목은 의술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하는 내가 봐도 복귀하기는 글렀어. 그런만큼 네가 그 뒤를 이어야 한다.”
“….”
“배울 것이 많을거다.”
개인의 무는 강하지만 그게 다인 마초다.
지금의 양주목을 화타에게 맡긴다 하더라도 일상생활이나 가능할까?
아무리 봐도 말에 타거나 전투를 하는 일은 글렀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의 양주목을 서량에서 받아들일리가 없었다.
최소한 서량이 안정화되기 전까지는 강한 이가 양주목의 자리에 있으며 성정이 강한 서량인들을 이끌어야 한다.
‘할 일은 태산인데 시간이 없군…’
힘없이 사마의를 바라보던 마등은 마초가 떠나가자 천천히 말했다.
“좌풍익…”
“뭐요?”
“미안하오… 신세를 졌소.”
“미안한 줄 알면 그 빚 갚을 생각이나 하시오. 톡톡히 받아낼테니.”
마등은 양주에서도 상징적인 존재다.
그 뿐만 아니라 숙련된 노장이기도 했다.
그런 이를 이렇게 허무하게 잃게 되다니.
사마의는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마등의 상태가 이렇다면 그를 쓸 수 있는 길은 상징으로서 밖에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조차도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별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흑귀대원들과 함께 말에 오르며 정찰을 나가려 하는 마초를 힐끔 본다.
마등에게 있던 위엄, 그리고 그의 지식과 인망.
그 모든 것을 마초에게로 옮겨야 한다.
흑귀대원들과 함께 말에 올라 경계를 나서려는 마초를 바라보며 사마의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아직 멀었군.’
저 녀석을 키워야 한다.
적어도 마등 수준의 식견과 지식을 갖추게 해야만이 양주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
최소한 마등이 말에 탈 수 있을 정도만 되더라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텐데 마등은 지금 걸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해보이는 마등을 계속 내세울 수는 없다.
결국 누군가는 도전하게 될 것이고 그리 된다면 공든 탑은 그대로 무너지게 된다.
‘뭐 부터 해야하나… 제일 좋은 것은 태학에 보내는 것인데…’
사마의가 입맛을 다시며 생각을 이어나갈 때 관우가 다가왔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소.”
“그러지. 나도 이야기하고 싶었어.”
자리에 앉은 관우는 안면이 있는 흑귀대원이 가져다 준 술을 한모금 마시고 육포를 물었다.
“나 역시 북방에서 꽤 오래 있었던 몸이오.”
“그래서?”
“당신들 입장에서는 당장 중원으로 내려가고 싶겠지. 좋은 길을 가르쳐주겠소. 지도를 보여주시오.”
“음.”
펼쳐진 지도를 보며 관우는 몇가지 길을 제시했다.
관우도 그렇지만 사마의 역시도 꽤 오랫동안 북방에서 살았던 몸.
그런만큼 어렵지 않게 관우가 제시하는 것 중 받아들일 만한 것을 골라낼 수 있었다.
“그럼 길은 이정도면 될 것 같고… 이렇게만 간다면 특별히 전투가 없을 시 사흘 안에 낙양으로 들어갈 수 있을거요. 다만 늑대들이 문제인데… 사람이 이렇게나 많으니 걱정은 없겠군.”
가정이나 안정으로 가는 것 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지금쯤이면 그 곳은 이미 적들이 보내 놓은 병사들이 쫙 깔렸을 것이다.
괜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기에 사마의는 관우가 제시한 길을 선택했다.
낙양까지만 가면 안정적으로 장안으로 복귀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낙양의 지원군을 이끌고 서량을 공격할 여유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정도면 된다고 생각한 사마의는 관우를 향해 물었다.
“같이 갈 생각 없나?”
“없소.”
냉정하군.
예상했던 답변이 나오자 사마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낙양까지는 동행하도록 하지.”
“그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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