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885
전의는 높지만 의구심 역시 있다.
과연 적이 저게 다일까?
진짜로 저들이 그저 우회한 것일까?
불안해하는 주령을 향해 진성은 힘없이 웃었다.
“아버님께서 당하지는 않으셨을 거야. 어쩌면 이곳으로 오고 계실지도 모르지.”
진성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항상 어머니들에게 당하는 아버지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또 적들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 되는 이다.
그런 분이 당했을리 없다.
진성의 위로에 주령과 저유는 애써 담담해 대답했다.
“분명히 이 일을 알고 구원군을 보내셨을거야. 그리고 어머님들도 연작현으로 가셨으니… 연작현까지 가는 길에 초소도 있으니 금방 지원은 온다. 그때까지만 버티자.”
피신을 간다고 하더라도 어머님들이 그냥 가실리는 없었다.
아마 현의 다른 여인들이나 아이들도 데리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된다면 피신의 속도는 늦어진다.
그런만큼 사람을 먼저 보내 현과 현 사이에 있는 초소에 알릴 것이고 그들이 급히 달려 연작현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것과 연작현에서의 지원이 오는 시간을 대충이나마 잡으면 아무리 빨라도 하루는 잡아야 한다.
진성의 예측에 주령은 입맛을 다셨다.
“안정적으로 피난을 갈 때까지는 우리가 막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군요.”
“고작 하루뿐이지. 불가능하지는 않을거야. 작전은 세웠으니까.”
진성은 지도를 보았다.
조부인 진궁은 전장의 모든 답은 지형에 있다고 했었다.
지형을 완벽히 알고, 그 지물을 이용할 수 있다면 절반의 승리는 이미 얻은 것이라 배웠다.
그렇다면 적에 비해서 꽤나 유리한 상황이다.
“솔직히 적장은 나보다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을거야. 하지만 이곳은 우리가 저들보다 더 잘 알아.”
진성은 지도에 있는 평원과 저수지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을 가리켰다.
“지금 지형으로 적들을 무력으로 막아내는 것은 쉽지 않아. 수도 적고, 지휘력도 솔직히 자신은 없어. 그러니 최대한 시설을 이용하자. 첩보에 따르면 적들이 오는 경로는 이곳이야. 즉 상규하를 지나치게 된다는 거지.”
상규하라는 말에 주령과 저유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상규하는 논을 확장하며 가뭄을 대비하기 위해 진유하가 꾸준히 사람을 써서 저수지를 만든 곳이다.
진성이 그곳을 언급하자 주령은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수원을 막고 있는 수문을 파괴하실 생각이십니까?”
“응. 지금으로는 그게 답이야. 비록 그 수원을 이용하는 논과 밭을 잃겠지만.”
진성의 과감한 결정에 주령과 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따르지요.”
“지휘관은 도련님입니다.”
“응. 고마워.”
진성이 웃으며 대답하는 사이 주령은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을 눈치챘다.
저수지를 터트려 물을 쏟아내게 되면 최악의 경우 기껏 만들어 놓은 논이나 밭이 망가질 수 있었다.
아니 그 뿐만 아니라 다리, 수로 등 많은 것이 무너질 수 있었다.
“저들이 들어오면 어차피 짓밟히고 무너질 것입니다.”
진성의 떨림을 보며 주령은 그를 위로해주었다.
주령을 잠시 바라보던 진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작하자.”
“예.”
상규하의 상류로는 진성이 가기로 했다.
최악의 경우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를 살리기 위한 주령의 주장이다.
결국 그들에게 밀려 진성은 오십여명의 병사들과 함께 상류로 향했다.
상류에 도착하자 저수지, 그리고 상규하와 통하는 커다란 수문을 확인한 진성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래에 많은 것들이 보인다.
논, 밭. 그리고 모여 있는 아군들.
이게 지휘관이 봐야 하는 풍경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해야 할 일은 알지? 수로는 만들어져 있으니까 수문만 부수면 되는거야..”
상류의 물줄기들을 막아 이 저수지로 모이게 해서 상규하의 넓이가 많이 줄었다.
그 덕분에 설치할 수 있게 된 다리나 하류의 많은 이들이비옥한 논, 밭도 이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잘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네.”
수문을 파괴해야 하는 입장이 되자 진성은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이게 전장이구나.”
한번의 판단을 위해 잃는 것과 얻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생각보다 그 중압감이 보통이 아니다.
진짜 전장에 서 있다는 사실에 진성이 긴장하자 병사 하나가 진성의 팔을 잡았다.
“이제 시작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물이 흘러가는 속도, 그리고 적들이 상규하를 지나는 것까지 계산을 해야 한다.
예전 마량이 실험을 하여 얻은 결과대로라면 이곳을 무너트리면 적어도 일각이면 상규하의 물은 예전 수준으로 불어나게 된다.
“…준비하자.”
이 강을 막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던가.
이 저수지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진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
어쩌면 적과 그냥 싸우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이기고, 시설들의 피해가 없을 수도 있을테니까.
하지만 그리 되면 주령, 저유, 혹은 자신 아니면 병사들 중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선택.
그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것.
진유하가 말했던 것이 무엇인지 진성은 알 것 같았다.
전장에서는 항상 선택을 해야 한다.
‘아버지. 아버지라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 것 같습니까…’
“수문을 부숴!!”
오십여명의 사내들이 철제 둔기로 물을 막아 놓은 벽을 부수기 시작한다.
그것과 밑의 아군, 그리고 상규하를 향해 접근하는 적들을 지켜보며 진성은 작게 중얼거렸다.
“제발 생각대로 되어야 할텐데…”
저유는 멀리 보이는 흙먼지를 발견했다.
꽤나 많은 수다.
분명 좌풍익에 있는 많은 것을 날로 먹기 위해 오는 놈들이겠지.
저유는 피식 웃었다.
“어이. 주씨.”
“뭐냐.”
“우리의 작은 도련님 생각대로 될 수 있을까?”
“그저 믿을 뿐.”
자신의 도끼를 잡으며 주령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군 병사들 역시 마음을 다잡은 상태였다.
이곳에서 자신들이 밀리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비록 여인들과 아이들이 피난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속도는 느리다.
적들이 단순한 도적이라면 모르겠지만 익주군까지 있다는 것은 추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 추격의 대상에 임진현의 백성들이 대상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었다.
“열 한살짜리 지휘관의 계획과 결단대로 움직인다라.”
“불만이라도?”
“그럴리가. 난 진 도련님 좋아하는데. 대단하다고 생각도 하고.”
씩 웃으며 저유가 창을 잡았다.
강 건너편에서 보이는 흙먼지가 강해진다.
“너무 넘어가진 마.”
“그나저나 여기가 맞는거야?”
“음… 혹시 몰라서 좀 더 뒤로 왔는데… 얼마나 강의 범위가 넓어질지는 의문이다.”
주령은 고개를 숙여 밑을 보았다.
얕은 강줄기가 흐르고 있다.
원래라면 강물은 이곳까지, 수심은 성인 남자의 키는 훨씬 넘는 깊이를 가진 강이다.
상류를 막고 그곳에 저수지를 만듬으로서 걸어서 건널 수 있을 정도로 강이 얕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수문을 연다고 해서 다시 강물이 깊어질지는 의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여기까지도 강물이 찰 수 있는 거구만.”
“그렇지. 아예 실패할 수도 있고. 요 근래 비가 많이 왔지만… 불안하군.”
“늑대신께 제사라도 지내고 올 걸 그랬나.”
작정을 하고 달려드는 듯한 적을 보며 저유는 애써 농담을 꺼냈다.
그를 향해 주령은 피식 웃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믿는 것 뿐. 만약 실패한다면 적을 막아라. 나는 도련님을 모시고 피신할테니까.”
“음. 그러는게 낫겠다. 온다. 집중해.”
적들이 아군을 발견한 모양이다.
달려오는 속도가 강해진다.
이제 슬슬 터트려야 할텐데.
주령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상류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상류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것이 보였다.
“시작됐다.
혹시 상류의 수문을 부수며 진성이 다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적들이 저것을 발견하고 저기를 노리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이! 주씨!”
“큭.”
날아 온 화살에 하마터면 맞을 뻔 했다.
저유의 창이 그것을 막아낸 것에 안도하며 주령은 도끼를 잡았다.
“정신 차리라고. 우리가 할 일은 저들을 유인하는 거지 활맞고 죽는게 아니야.”
저유가 화살을 쏘며 적들을 끌어들인다.
강 건너편에 자신들을 발견한 적들이 신나하며 달려든다.
적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어느정도 성공한 듯 보였다.
“아아. 그래.”
주령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강하게 물어 피가 나온 입술에서 통증이 나와 정신을 일깨운다.
“온다…”
적들의 움직임, 그리고 쏟아지는 물.
이미 저들이 상규하에 근접했다.
아직인가?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주령은 전투를 각오하며 도끼를 잡았다.
그때.
“뒤, 뒤로 빠져!”
강을 거의 넘어 이쪽에 접근하는 적들에게 화살을 쏘아 도발을 하던 주령은 저유의 외침에 고개를 돌리고 경악했다.
“모두 뒤로 빠져!!”
땅이 떨린다.
예상보다 물줄기가 강하다.
강해진 물줄기를 적들 역시 발견한 모양이다.
강에 들어와 있던 이들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지만 이미 거세어진 강물은 그들의 몸을 빠르게 덮쳐버렸다.
“으아아악!”
“사, 살려!! 어푸! 어푸!”
갑작스레 빨라진 물줄기에 넘어진 이들이 그대로 쓸려가고, 비틀거리던 말이 넘어지고 낙마하는 이들이 속출한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하지만 이미 물살이 빨라지고 깊어지는 강에서 탈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쉽다.”
“그러게 말이야.”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 아니 물구경이다.
그나마 안전한 곳으로 물러난 상태에서 적을 기다리던 주령과 저유는 강에 휩쓸려가는 이들을 구하지도 못하는 적군을 보며 싸늘히 중얼거렸다.
적들이 전부 도하를 하던 도중에 휩쓸렸다면 전투는 끝난 것일텐데.
하지만 이미 수공은 끝나버렸다.
무릎까지 오던 강은 크게 넓어져 수심이 깊어져 있었다.
강을 통과하던 이들은 거의 전멸.
남은 것은 강 건너편에서 죽일 듯 자신들을 노려보는 적들 천여명 정도뿐 이었다.
“하. 수공 한번에 적이 엄청나게 줄어들었군.”
“이왕이면 익주놈들도 잡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먼저 건너오던 것은 탐욕에 물들어 있던 도적과 유목민들 뿐.
남은 것은 익주군과 소수의 유목민 뿐이다.
“건너와보시지!!”
주령의 호탕한 외침에 적 대장으로 보이는 이는 크게 발을 굴렀다.
“우회할 수 있는 길이 있었나?”
“상류 쪽으로 간다면 힘들겠지만 건너는 것 자체는 가능할거야. 저들의 움직임을 보며 가자고.”
주령은 저유와 함께 적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렇게 더 당황해라.
계속 거기서 죽치고 있어라.
주령은 속으로 간절히 빌었지만 적 대장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남은 군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의 상류로 말이다.
“결국 붙기는 해야겠군.”
“그러게 말이야.”
적들의 움직임에 맞춰 주령과 저유 역시 움직였다.
천천히 이동한다.
넓어진 강줄기가 점점 작아질 때까지.
도하가 가능한 위치까지 올라가는 그들을 보며 주령은 침을 꿀꺽 삼켰다.
‘도련님… 빨리 오십시요.’
“저유! 주령!”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다.
위쪽에서 들려 온 밝은 목소리에 주령과 저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으음… 그렇지만. 전부 휩쓸지는 못했네.”
진성은 아까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강 건너편에 적군이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길 수 있을까? 지휘관은 무사한 것 같은데.”
“음… 그래도 이제 수는 저희가 더 많습니다.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습니다.”
한번의 수공으로 적의 수가 무척이나 줄었다.
강 건너에 보이는 것은 약 천 오백 정도.
그정도라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비록 강물이 상류로 갈 수록 얕아진다고 하더라도 건너는 것은 쉽지 않을거야. 그런만큼 활로 견제하며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옳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 해야겠구나.”
진성은 검을 잡았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무리 진유하의 아들이고 많은 현인들에게 배웠다 한들 아직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진성은 어떻게든 버티고 서 있었고 그것에 주령은 만족했다.
“그럼 갑… 어?”
결국 적들이 도하의 준비를 한다.
갑옷을 벗고 창을 손 위로 든 이들이 강으로 들어오고, 또 뒤에서 그들이 강을 건너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궁병들이 화살을 든다.
하지만 주령은 그것보다 더 뒤를 보았다.
상규하의 하류쪽이다.
그곳에서부터 거대한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제길. 증원인가?”
“아닌 것 같은데.”
적들 역시 당황한 듯 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쪽을 살피던 저유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뭐야? 같이 웃었으면 하는데.”
뚱한 표정의 주령을 향해 저유는 기뻐하며 외쳤다.
“오셨다!! 좌풍익의 주인이!!”
그의 외침과 동시에 강렬한 노성이 강 건너편에서 울려퍼졌다.
“이엄 이 개새끼야아!!!”
지금까지 항상 느긋하고 평화로웠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다.
하지만 진성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안심해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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