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886
가정성에서 출발하고부터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새로운 말로 갈아탄 후 말을 버리고 달린다.
속도가 더 빨라지자 하후상이 차분히 말했다.
“그 놈들과 협상하길 잘했군요.”
“그러게 말이야. 곽회가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했어.”
곽회가 가르쳐 준 길로 들어갔을 때 도적들이 나타났다.
원래라면 토벌의 대상이지만 지금 그들과 놀 시간따위는 없었다.
결국 돈을 주고, 길을 이용하려고 할 때 그들은 오히려 거래를 제안했다.
내가 경조윤인 진유하라면 자신들을 좌풍익의 백성으로 받아줄 수 있냐고.
단순한 토벌이 아니라면 대화를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내 입장에서 나쁠 일은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기뻐하며 우리에게 자신들의 말을 제공해주었다.
꽤나 튼튼한 서량의 말이었다.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었다.
거기에 산적들만 알고 있는 비밀 길을 이용했기에 시간을 더욱 단축할 수 있었다.
“개똥도 어딘가에는 쓸 곳이 있다더니.”
“도적이 마냥 나쁜 놈들은 아니라니까. 우리도 도적 출신이유. 먹고 살기 힘들어서 도적 된 놈들은 이해해줘야지. 물론 처벌은 하고.”
“하하. 그렇지.”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상규하의 다리를 지나게 된다.
그러면 바로 임진현으로 들어간다.
이곳까지 오면서 아직 적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대군이 움직인 흔적은 있었다.
그렇기에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다.
“주군!!”
선두에서 달리던 관평의 외침이 들렸다.
빠르게 말을 몰아 앞으로 간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기겁했다.
“뭐야!?”
원래라면 논농사를 위해서 상류를 막고 저수지를 준비한 것 때문에 강이 얕아야 했다.
그런데 이건 뭐란 말인가.
“상규하가 범람했나!? 그럴리가 없는데? 어째서…?”
저수지가 있는 이상 비가 와도 어느정도는 막을 수 있을텐데?
내가 당황했을 때 백귀대원 중 하나가 다급히 외쳤다.
“여기 군이 이동한 흔적이 있습니다!”
“…설마.”
저수지를 막아 놓은 수문을 터트린 건가?
이런 결정을 내리다니.
저수지를 만드느라 들어간 돈이나 노력을 생각하면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적을 막을 수 있다면?
“누군진 몰라도 아주 잘해줬네!”
아주 훌륭한 결정이다.
논과 밭?
다시 만들면 된다.
저수지?
다시 채우면 된다.
물길?
다시 막으면 된다.
하지만 잃은 사람은 다시 되찾을 수 없다.
나에 대한 증오가 강한 이엄이다.
그 이엄이 미쳐 날뛰면서 만들어낼 피해가 어떨지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것에 비하면 상규하의 수문을 터트린 것 따위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
“가자!!”
생각없이 수문을 열었을리는 없다.
분명 적을 막기 위함일 것이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속으로 칭찬하며 군이 움직인 흔적을 쫓았다.
그렇게 상류로 이동했을 때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도하를 하려는 군을 이끄는 자.
그를 향해 난 힘껏 외쳤다.
“이엄 이 개새끼야아아아!!!”
강 건너편에 있는 건 누구지?
하나는 주령, 그리고 하나는 저유다.
그들의 옆에 있는 소년은?
“성아!”
“주군!! 위험합니다!”
내가 앞서 나가는 것을 본 관평과 하후상, 요화가 바로 나선다.
성급하지 말자.
침착하자.
이엄은 저기 코 앞에 있다.
그 역시 나를 발견하고 순간 당황했지만 곧 무기를 잡았다.
“빌어먹을 노망난 노인네가!! 날 팔아서 퇴각했구나!”
“죽여버린다!! 이엄!!”
감히 내 가족들이 있는 곳에 흙발로 들어와?
용서 못한다.
너는 반드시 산채로 등골을 뽑아주겠다.
관평과 하후상, 요화 역시 같은 마음이었는지 가타부타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무기를 뽑았다.
“얘들아!! 쳐라!!”
적의 수는 고작해야 천오백 남짓했다.
뭐야.
오면서 탐문하며 흔적을 찾아 봤을 때는 오천정도였는데?
왜 저정도지?
아니.
지금 그건 중요한게 아니지.
“하후상! 우측으로! 요화!! 이엄을 잡앗!!”
“예!”
“관평! 돌파해!! 요화가 이엄을 상대할 수 있게 적의 수를 줄엿!!”
관평을 중심으로 흑귀대가 뭉친다.
기병의 태세를 갖춘 그들이 적의 진형을 한방에 무너트렸다.
휘둘러지는 참마도를 막지 못한 익주병사들이 처참히 짓발히고 쓰러지는 동안 우측으로 빠졌던 하후상이 그들의 옆을 친다.
“밟아버렷!!”
“진유하!! 죽여버리겠다!!”
“감히 너 따위가!!”
관평과 하후상의 공격에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이엄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요화에 의해서 막혀버렸다.
하후상과 관평도 이기는 요화다.
미친듯이 검을 휘두르는 그를 침착하게 막아내던 요화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던졌다.
나에 대한 증오가 강하다.
거기에 좌풍익에 대한 공격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덕분에 이엄은 흥분할 대로 흥분했고 요화가 던진 주머니를 검으로 후려쳐버렸다.
전에 관평이 그랬던 것처럼.
“크엑! 컥! 쿨럭!!”
터져버린 주머니에서 나온 분말.
그것을 들이마신 이엄이 거친 기침을 토해내며 멈칫한 사이 요화는 이엄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죽이지마!!”
내가 죽일거다.
어지간해서는 그냥 죽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감히 건드려서는 안될 것을 건드린 놈이다.
결코 곱게 죽이지 않을거다.
내가 일갈하자 요화는 검의 방향을 틀었다.
“크억!!”
견갑을 부수며 이엄의 어깨가 반쯤 잘려나간다.
피분수가 터져나오며 이엄이 무릎을 꿇자 요화는 발을 들어 그의 머리를 걷어 차버렸다.
“쓸어버렷!!”
이엄이 별반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지자 요화는 단호히 외쳤다.
그의 외침에 요화를 따르던 백귀대가 움직인다.
이엄을 구하려던 익주군들이 백귀대의 창에 쓰러지는 것을 본 나는 어깨의 깊은 상처 때문인지 창백해진 이엄에게 다가갔다.
“개자식.”
“크… 누가 할 소리를…”
“기대하라. 절대 곱게 죽이지 않을테니까.”
“흐… 흐흐… 누구 마음대로.”
나를 노려보던 이엄이 혀를 빼물었다.
그리고 요화는 잽싸게 밧줄을 들어 그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읍! 으읍!”
사정 봐줄 생각 따위는 없었던 요화가 거칠게 그를 잡는다.
이엄의 입에 밧줄이 물리고, 그가 저항한다.
하지만 크게 베인 어깨를 꽉 누르니 그의 저항도 금방 잦아들었다.
“감히 어디서 자결을… 정리해!!”
이미 적들의 사기는 떨어질대로 떨어져 있었다.
항복하는 이들이 늘어났지만 이엄을 제외하고는 한놈도 살려 줄 생각따위는 없다.
아니, 이엄도 사실은 살려 줄 생각따위는 없고.
관평과 하후상이 적들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부들부들 떨며 날 노려보는 이엄의 머리를 꽉 잡았다.
“그동안 너무 길었지? 네놈과의 악연.”
“크…으읍…”
“기대하는게 좋을거다. 길었던 만큼 끝내는 것도 쉽게 끝내지 않을테니까.”
이엄과의 악연.
유표와 싸울 때 전홍성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연이다.
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지.
만약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았을 텐데.
나를 향한 이엄의 시선을 느끼며 난 이를 갈았다.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될테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써서라도 네놈에게 살아있는 지옥이 뭔지 보여주마.”
전투가 끝났다.
살아남은 적은 이엄 뿐.
관평에게서 화타의 환약을 받은 후 그의 입에 넣어 준 후 어깨의 상처를 치료했다.
이엄이 예뻐서?
아니다.
출혈로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해주고 싶은게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이겠나.
“주군.”
안도감에 물든 목소리로 하후상이 말을 걸었다.
난 이엄의 어깨를 다 꿰맨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아… 그래.”
물줄기가 약해진 강을 넘어 주령과 저유가 다가왔다.
그들의 얼굴에 있는 반가움을 보며 난 안도했다.
“다행이다. 늦지 않아서.”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이거 이렇게 보니 경조윤의 얼굴이 잘생겨보입니다.”
“뭐래. 난 원래 잘생겼거든?”
겨우 여유가 생기니 농담이 나온다.
난 한숨을 내쉬며 그들을 한번씩 안아주었다.
“성아.”
성이는 그들의 뒤에서 머뭇거렸다.
왜 저러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령이 떨떠름히 말했다.
“이번 작전… 진 도련님께서 결정하신 겁니다.”
“저수지를 이용한 것?”
“예.”
“흐음…”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훌륭한 판단이었다.
비록 상규하를 범람시켜 많은 피해가 생겼지만 그때 당시의 상황에서라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었다.
가르치지 않아도 수경원의 방식을 알고 있다니.
모든 것이 허용된다.
책임만 질 수 있다면.
성이가 시무룩해져 있는 것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여보.”
영이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 응. 성아. 이리 오렴.”
“아버지…”
“왜 그러는 거냐?”
“적을 막았지만… 그 피해가 상당합니다. 전답들이라든가… 많은 이들이 만든 수로들이…”
다가오지 않는 성이에게 내가 다가갔다.
그리고 이 작은 아이를.
훌륭한 판단을 하여 많은 이들을 지켜낸 내 사랑스럽고, 또 자랑스러운 아들을 꽉 끌어안았다.
“잘했다. 네가 모두를 지켜냈구나.”
성이의 몸이 떨린다.
나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아버지… 흑… 아버지…”
“그래. 그래.”
작은 등을 토닥여주었다.
계속해서 떨리고 있는 성이를 꽉 끌어 안은 채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관청으로 복귀하자. 다들 어디에 있지?”
“연작현으로 보냈습니다. 혹시 몰라 전투가 불가능한 백성들도…”
“잘했다.”
그렇기에 임진현에는 그저 도적 몇 정도만 들어 올 것이라 생각해 따로 지시를 하지 않았는데.
성이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에 난 안심했다.
“언제 떠났나?”
“아까 아침에…”
“하후상. 피곤하겠지만 가서 데리고 오도록 해. 이쪽 일은 얼추 마무리 된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그가 말을 타고 흑귀대와 함께 떠나는 것을 보며 난 성이를 안은 채 말에 올라탔다.
“성아.”
“예에…”
아직까지 몸이 떨리고 있는 성이를 보며 난 천천히 말했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결국 좌풍익을 지켜낸 네가 누구보다도 자랑스럽다.
오래간만에 관청에 들어오자마자 성이는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지를 가졌다고 한들 아직 열한살 밖에 되지 않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수문을 파괴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적과 교전을 준비하다니.
연신 감탄이 나온다.
“어린 나이에는 욕심이 많아 모든 것을 손에 쥐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이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복귀하고, 또 복귀하자마자 전투를 치뤘지만 잠 따위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영이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배웠으니까요. 그리고 그 중 가장 잘 배운 것이… 욕심을 다스리는 법이지요.”
아이가 태어날 때 주먹을 꽉 쥐고 태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혹자는 그것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심 때문이라고 한다.
그 욕심은 어리면 어릴 수록 크다.
“성이 정도라면 상규하의 수문을 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을텐데 말이야.”
“그러니까 대단한거죠.”
임진현의 사람들과 친한만큼 그들의 사정 정도는 전부 알고 있을 성이다.
수로의 중요성, 그리고 저수지를 왜 만든 것인지 정도는 그도 안다.
“더 중요하고, 더 소중한 것을 아니… 성이는 크게 될거에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영이가 내 어깨에 기댄다.
그녀를 안아주며 난 긍정했다.
슬슬 피로함이 몰려오는 것이 느꼈다.
그럼 피로회복하러 가자.
“어디가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영이가 물었다.
어디 가냐고?
뭘 그런 걸 물으시나.
“피로 회복하러.”
“당신의 피로회복제는 여기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말하다니.
방실거리는 영이의 입술에 살짝 입맞춰 주었다.
“또 다른 피로회복제가 있거든. 조금만 하고 올테니까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
영이가 못말리겠다는 듯 쓰게 웃자 그녀의 볼에 입맞춰 준 후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요화가 고개를 숙인다.
“지하감옥에 가둬놨습니다.”
“그래? 잘했어. 상처는 치료해놨지?”
“예.”
“그럼 일단… 피신한 이들이 돌아오면 쉬게 하고… 그리고 피해를 정리해봐. 복구 방안도 생각해야 하니까. 아, 그리고…”
“더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엄안에게 선물을 좀 보내주도록 해야겠군. 산양군에서 생산한 죽엽청을 이십, 아니 오십통 보내주도록 해. 또 화신주도 같이 보내. 사실 더 보내주고 싶지만.”
만약 엄안이 그런 결정을 내리고,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엄에 의해서 성이와 주령, 그리고 저유가 죽었다면.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갔겠지.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최고급 죽엽청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받았으면 갚아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난 지하감옥에 다녀올테니까 일 봐.”
“예.”
요화와 헤어지고 지하감옥으로 내려가자 기다리고 있던 흑귀대원들과 교사원의 요원이 문을 열었다.
벽에 묶여 잡혀 있는 이엄이 날 보자마자 눈에 핏발을 세우고있다.
어디서 눈을 부라려?
교사원의 요원이 준 날카로운 칼을 잡았다.
“시작해볼까? 전에 말했던 산채로 등골 뽑는 것은 마지막으로 남겨둘테니까… 일단은 손톱부터 시작하자. 부디 네가 오래 살아줬으면 좋겠다.”
익주에 대해서 알아내고 싶은 것은 많았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경로, 혹은 산길, 그 외에 편한 길이라든가 암구호 같은 것들.
하지만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분노가 좀 사그라 들때까지 부디 버텨다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분노를 삭히는 일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