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91
00091 그저 떼를 쓰는 것에 불과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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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동평군수의 증언을 받아내더라도 원소는 부정할 것이다.
하지만 진위여부는 상관이 없다.
어쨌든 원소가 하는 짓은 사람들이 보기에 치졸하기 그지 없는 짓이니 말이다.
“원소가 가장 쉽게 기주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한복에게 강제로 기주목의 자리를 강탈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한복이 스스로 바쳤고 자신은 천하와 한 황실의 미래를 위해서 기주를 받았다. 라고 말할 것이구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입니다.”
“맞다. 그렇기에 동평군수는 아주 중요하지. 귀걸이가 코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니까. 명분과 사람들의 시선을 중시 여기는 원소로서는 우리와 거래를 하고 싶을 것이다. 동평군에 원소의 사람이 있었다면 이 일이 반드시 전해질테니까.”
아버지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운 것은 여포가 걸리지 않은 것인데…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그 자는 누구냐?”
“그러게요.”
아버지가 말한 그자는 동평군의 옥에 갇혀 있던 이다.
그에 대한 조사는 아직 하지 못한지라 난 고개를 가로저었고 아버지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에 대해서 알아보거라. 이런 시기에 옥에 갇혀 있었다는 것은 어쨌든 동평군수에게 저항하려 하던 사람일 수도 있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그 자의 심문은 제가 하겠습니다.”
각지로 흩어져 있는 반란군을 받아들여 산양군의 병사로 편입시키든, 아니면 다 찢어 죽이든 그건 나중의 일이다.
일단 해야 할 일은 그자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
난 웃으며 말했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홀짝였다.
동평군 관아의 지하감옥에 들어간 나는 옥에 갇힌 채 날 빤히 바라보는 청년에게 시선을 보냈다.
의자를 끌고 들어가 옥 안에 놓고 거기에 앉은 나는 검집을 들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내 시선을 마주하며 한점의 두려움이 없어보이는 그에게 물었다.
“빨리빨리 끝냅시다. 뉘신지?”
“…내가 먼저 묻겠소. 당신들은 누구요? 연주목의 부하요? 아니면 서주? 그것도 아니면 청주요?”
“상황파악을 못하시네. 지금 당신이 물을 처지라고 생각하는 건가? 지금 상황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단 하나야.”
손을 움직여 포박되어 있는 그의 멱살을 잡아 당긴 후 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내 질문에 당신은 대답한다야.”
“…..”
“자. 그럼 다시 해볼까?”
난 히죽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이름.”
“…….”
“당신같은 사람. 싫지 않아.”
난 히죽 웃은 후 손을 들어 올렸고 흑귀대원들은 물이 담긴 나무 대야와 한지를 가지고 왔다.
찰랑거리는 물과 한지가 들어오자 내가 뭘 하려는 것인지 눈치챈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여기저기 두드려 맞아서 많이 아픈 것 같은데 난 그렇게 야만적이지 않아. 그냥 깔끔하고 얌전한 것을 좋아하지.”
한지를 들어 그의 얼굴에 가져갔다.
내가 무엇을 할 지 안 그가 고개를 저으려 하자 흑귀대원들은 그를 꽉 잡았다.
“지금이라도 빨리 대답하는게 좋을텐데.”
“당신은… 누구요. 당신이 연주목의 부하가 아니라면 말할 수 없소.”
“연주목의 부하 맞으니까 말하쇼.”
“…어디 소속의? 현재 연주목이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없을텐데?”
그가 의심을 하자 난 어깨를 으쓱이고 내 패를 보여주었다.
산양군 소속 창읍현의 현령을 증명해주는 패를 본 그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소. 산양군의 진 현령이라니…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 수경원을 졸업한 기재 중의 기재라고. 나는 장현의 현령. 장제. 장 자통이라 하오. 동평군수가 반란을 일으켜서 그에게 저항하느라 이렇게 잡소이다.”
장제라.
사마의의 고변릉 사변때 조상의 움직임을 막았던 이다.
합비 전투에서도 계책을 부려 손권을 물러나게 했고.
괜찮은 인물이다.
그리고… 이 꼬장꼬장함.
포로로 잡혀 있는데도 한점의 물러섬이 없는 그 기개.
탐이 난다.
난 그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래? 젊은 나이인데 대단하구만. 나야 아버지를 돕느라 현령의 자리에 올랐지만. 누구 추천을 받았수?”
“추천은 아니고… 경서시험을 통과하여…”
백달 형님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건가?
경서시험을 통과하여 관직을 얻은 것이면 머리는 확실히 좋다는 것이다.
더 탐이 난다.
만약 진짜라면 말이지.
“그렇소. 그러니 이것 좀…”
의자에 앉힌 채 안도하면서 자신을 묶고 있는 줄을 풀어달라 말하는 장제를 향해 난 피식 웃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좀 곤란하군. 확인될 때까지 당신을 풀어 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건 왜…!?”
“왜는 무슨 왜야. 당신이 동평군수와 짠 것일 수도 있잖아.”
장현의 현령이라고 하나 신분을 증명할 패도 없고 그를 알아 볼 사람도 없었다.
만약 그가 원소와 내통한 자라면 지금 풀어줬다가 통수 맞는 것 밖에 없다.
내가 미쳤다고 확인도 되지 않은 이를 풀어주겠나.
“무, 무슨 말씀이오! 진 현령! 나는 진짜…!”
“당신이 진짜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게 아니야. 중요한 것은 지금의 당신은 내통자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지. 나로서는 그것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
억울해하는 그를 보며 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시작해볼까?”
“…무엇을 말하는 거요?”
“동평군에 있는 현에서 동평군수의 반란에 가담한 이도 있지만 저항하고 있는 이들도 있지. 그런데 왜 당신은 여기 잡혀 있는거야?”
“그건… 업무의 보고차 이곳으로 왔을 때… 잡혔기 때문이오.”
“그래? 그렇다면 동평군수가 누구와 내통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나?”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그가 어떤 사람에게 쩔쩔매는 것을 보았소. 신 선생이라 불리며 깍듯하게 대하는 것이 동평군수보다 훨씬 높은 사람으로 보였소. 허나 그가 입은 옷은 그리 귀해보이지는 않았소만…”
“아는 사람인가?”
“아니오. 나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소.”
“반란에 가담한 현은 어떤 현이지?”
표면적으로 알려진 것은 있었지만 원소가 무슨 개수작을 부렸을지 모르니 확실하게 조사를 해봐야 할 것이다.
반란에 가담하지 않는 척 잠자코 있다가 나중에 뒤통수를 냅다 후려칠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것은 잘 모르겠소… 계속 이곳에 잡혀 있던 터라…”
그가 떨떠름히 말하자 난 한숨을 내쉬었다.
“아는지 모르는지는 고문을 해봐야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아니오!!”
“아니라고 떠들어봐야 증명할 길이 없잖아. 당신이 당신 스스로를 증명할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나는 내 방식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어.”
내가 한지를 다시 그의 얼굴에 가져가려 하자 그는 당황하며 몸을 흔들었다.
흑귀대에게 시선을 보내자 흑귀대원은 그의 머리를 꽉 잡았고 그의 얼굴에 난 한지를 가져다 대었다.
“날 원망하지 말라고. 만약 당신도 내 처지였으면 이렇게 했을테니까. 나는 억울한 사람을 구원할 생각따위는 없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안정을 추구하는 것 뿐이니까.”
“이… 이러고도 당신이 한을 따르는 신하요!?”
“응. 잘 어울리지 않아? 그… 아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군.”
만약 그가 진짜 결백하다면 여기서 빠져나가 내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떠들고 다닐 수 있고 그리 된다면 상당히 골치아픈 일이 발생할테니까.
“그럼 가볍게 시작하겠어. 아까도 말했지만 나도 나름 유학을 공부한 학자인데 무식하게 쥐어 패는 짓은 하지 않을 거야. 그냥 간단하고 빠르고 깔끔하게. 이해하지?”
“이… 이…! 읍!”
그의 얼굴에 한지를 가져다 댄 후 물을 뿌렸다.
물을 머금은 한지가 그의 얼굴에 찰싹 달라붙고 그가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차분히 지켜보던 나는 그가 괴로워하자 천천히 한지를 떼어낸 후 물었다.
“반란에 가담한 현령은 누구지?”
“허억…헉… 모르…오. 하지만…”
“하지만?”
“하나는 알겠군…”
“뭘?”
“당신이 좋은 사람이… 허억. 아니라는 것을.”
눈을 희번뜩 뜨며 날 노려보는 그를 향해 난 피식 웃었다.
예리한데?
“이봐.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없어. 좋은 사람이 있으면 죽은 사람 뿐이겠지. 결국 사람의 색은 회색이야.”
“그러고도 잘도 한의 신하라고… 헉.. 할 수 있겠소. 성현께서 말씀하시길 억울한 이를 돕는 것은 성인의 일이오, 그것을 따르지 않는 자는 악인이라 하였으니. 일의 진위여부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이리 고문하는 당신이 어찌…!”
아…
이 꼬장꼬장함.
마음에 든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이다.
이 꼬장꼬장함과 성실하고 성현의 뜻을 따르는 성격이라면 잘 쓰면 큰 도움이 될 듯 싶다.
이 사람을 어떻게 꼬실까…
난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군. 이봐. 장현령. 당신은 아주 큰 것을 착각하고 있어.”
성인은 자신의 뜻이 아닌 대의와 천하의 흐름을 읽어야하고.
그것을 따라 개인의 영달과 욕심에 충실한 이는 악인이 될 뿐이다.
그 악에 물든 이는 하는 행동에 거리낌이 없으며.
자신의 행동에 망설이지 않으니.
이를 일컬어 간인이라 하노라.
맞다.
나 간인이고 악인 맞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더라고. 이봐. 장현령. 올해로 나이가 어떻게 되나?”
“…스물 다섯.”
내가 나이를 묻자 장현령은 이를 갈며 차분히 내뱉었다.
나보다 확실히 많군.
하지만 그런데 때묻지 않았어.
보아하니 죽어라 경서 공부만 한 사람 같다.
고지식한게 아주 그냥 딱 판에 박힌 모습이다.
양양에서 세상에 물들어 별에 별 짓을 다 한 나다.
하나의 상점을 현 내 최고의 상점으로 만들고 그것을 건드리는 이들을 제거하며 손에 피와 오물을 잔뜩 뭍힌 나와는 다르게 하얗기 그지 없었다.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것 같군.”
“그러는 당신은 경서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것 같소만.”
솔직히 인정한다.
나 경서 공부 별로 안했다.
아무리 해도 나랑은 안맞더라고.
성현의 말씀에 대해 미주알 고주알 떠들라면 저 사람보다 내가 훨씬 못할거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데?
“……”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각과 곽사가 동탁을 죽이고 황제를 협박하여 난세가 펼쳐졌어.”
“그건 알고 있소. 그러니 우리 신하들이 힘을 합쳐…!”
정말 이상만 꿈꾸는 인간이다.
난 이렇게 이상을 꿈꾸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나와는 다를 뿐이지.
그리고 이렇게 머릿속이, 이유하의 말로 해피밀이 펼쳐져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도움이 된다.
왜냐?
이런 꼬장꼬장하고 성현의 말씀을 따르며 자신의 뜻을 대쪽같이 주장하는 인간들의 특징은 하나로 정의할 수 있다.
의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비록 내가 실수를 하든, 잘못을 하든 죄를 짓게 된다면 이런 자는 내가 베푼 은혜를 갚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관중과 포숙아처럼 말이다.
관중의 죄를 포숙아는 자신의 가치를 깍고, 목숨을 걸어가며 막아내고 그를 지키려 했다.
만약을 대비해 이런 사람을 하나 만들어 놓고 키운다면 나에 대한 경계를 함과 동시에 내 의를 지키려 할 것이다.
물론 진짜라면 이렇겠지만 진짜가 아니라도 흑귀대와 함께 양양에서 극단들에게 욕먹어가며 연기 훈련을 했던 나도 인정할 정도니 배포도 마음에 든다.
장제에 대한 탐욕을 생각하며 난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를 탐낸다는 것을 들키면 안된다.
그저 의를 베푼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를 딱한 눈으로 바라보며 난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지. 당신같은 사람은 싫어하지 않아… 뭐 이런 상황에서도 그 대쪽같음을 보일 수 있다니. 그게 연기든, 진짜든 말이지.”
“연기라니!!”
“워워… 소리지르지 마. 자꾸 그러면 비명을 지르게 할지도 몰라.”
난 빙긋 웃은 후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이 원하고, 또 말하고자 하는 것을 관철할 수 있는 힘이 있느냐지.”
“힘만을 이야기하는 것이오!? 힘을 추구하는 것은 저 북방의 이민족들이나 하는 이야기요! 그것을 어찌 명예로운 한의 신하로서 언급한단 말이오!!”
정말 꽉 막힌 사람이다.
그렇기에 난 웃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물론 당신 말이 맞아. 오로지 힘만 추구해서는 안되는 법이지. 하지만 한가지 말해줘야 할 것이 있군. 이봐. 장현령. 이미 난세는 찾아왔고 그 난세에 사람들은 적응해가고 있어. 이곳 연주에도 말이지. 저 먼 북방도 아니고. 이 중원에서 말야.”
“……”
“당신이 성현의 말씀을 목놓아 부르짖으며 세상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고 하더라도 힘이 없으면 그것은 인정되지 않아. 봐봐. 지금을 보라고. 당신은 열심히 성현의 예를 들어 나를 훈계하려 하고 있지. 하지만… 이걸 봐.”
난 물에 젖은 한지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것을 보며 장현령이 이를 꽉 깨물자 난 쓰게 웃으며 그것을 바닥에 떨궜다.
물에 젖은 한지는 바닥에 축 떨어졌고 그것을 짓밟으며 장현 현령에게 다가갔다.
“당신이 그토록 주장하고, 추종하는 성현의 말씀은 이 한장의 한지에 막힐 수 밖에 없어. 왜? 당신은 힘이 없으니까. 힘없이 떠들어대는 것으로 변할 정도로 세상이. 이 난세가 되어버린 천하가 만만한 줄 아는가?”
“그것을 막기 위해서 힘있고 뜻 있는…!”
“맞아. 힘이 있고, 또 뜻이 있는 이라면 가능하겠지.”
난 부드럽게 웃으며 장현령에게 다가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지금의 당신에게는 힘이 없어. 오로지 높은 뜻과 이상만 있을 뿐이지.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은 저잣거리에서 어미에게 과자를 사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의 울부짖음에 불과해. 당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논리도, 방법도 없이 그저 투정만 부리는 것에 불과하다고. 과자를 먹고 싶으면 일을 해서 돈을 벌든, 아니면 돈을 가진 이를 설득하여 돈을 내주게 하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
“내가 지금까지 본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어. 이봐. 장현령. 세상은 성현의 말씀에, 경서에 있는 것이 아니야.”
천천히 고개를 뗀 나는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상은 사람에게 있다. 난세가 펼쳐졌다면 사람의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그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 것 같나?”
“…그건.”
장현령이 눈을 질끈 감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비록 꽉 막힌 사람이지만 바보는 아니다.
바보였으면 현령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저 세상에 대한 경험이 없고, 사람의 악에 대한 경험이 적을 뿐이다.
“힘이 중요한거야. 힘이. 자신의 의지와 뜻을 관철할 수 있는 힘이.”
“…그것은 패도요.”
“맞아. 패도지. 하지만 이 난세를 제압할 이도 패도를 걷는 이 밖에 될 수 없어.”
“그러나 그것은 패도요! 사람의 마음을 짓밟으며 강제하는 길이오! 그것이 진시황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이오!”
“진시황은 그렇기에 중화를 통일할 수 있었다. 그의 패도가, 그의 법도가 있었기에 중화를 통일하여 분할된 나라간의 싸움을 말릴 수 있었다. 패도가 나쁜 것인가? 왕도가 좋은 것인가? 그 어느 것도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는 없는 거라고. 사람은 모두 다르고 세상은 언제나 변화한다. 그것을 잡지 못한다면 당신이 그토록 맹신하고 떠드는 성현의 좋은 말씀도 결국은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해.”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맥빠진 어조로 그가 말하자 난 이를 드러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힘을 가지든가. 힘을 가지지 못하겠다면…”
한차례 숨을 멈춘 후 난 최대한 즐겁게 웃었다.
“힘을 가진 자와 함께하는 것이지. 만약 당신이 원소의 첩자가 아니라면… 나와 함께 하자. 난 당신같은 사람. 싫어하지 않아. 어때?”
“나에게 당신의 부하가 되라는 말이오? 허나 싫소. 나는 한의 신하이지 당신 같은 악인의…”
“오해하지마. 난 당신이 나의 부하가 되라는 말을 한 것이 아니니까. 그저 당신과 친해지고 싶을 뿐이야. 지금의 당신은 고작해야 현령이고, 이 난세에서 당신의 대쪽같음은 사람들의 발목을 잡겠지. 평안한 세상이라면 당신은 반드시 높게 올라갈 수 있을거야. 하지만 지금은 난세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지켜주지. 어때?”
난 양 팔을 벌리며 여유롭게 웃었다.
“내가 당신의 힘이 되어주겠어. 그 대가로 당신은 날 도와주면 되는거야. 당신의 충성? 물론 한 황실에 바쳐. 당신의 열정? 그를 돕는 연주목에게 바쳐. 나는 그저 당신을 이용할 뿐이니까. 그러니 당신도 나를 이용하라고. 어때? 이런 것이라면 괜찮지 않은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
이 사람이 진짜 장제라면 내 손을 잡을 것이다.
정의를 부르짖고, 성현의 말씀을 부르짖으며 충을 지킨 자신이 결국 이렇게 묶여 고문을 당한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낄테니까.
이 사람이 가짜라면 그래도 내 손을 잡을 것이다.
스스로 이런 것을 연기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내 손을 잡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난 그렇기에 그를 향해 웃을 수 있었고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날 올려다보았다.
만약 그가 날 거절한다면?
이런 말이 있다.
내가 갖지 못한다면 남도 갖지 못하게 하라는 말.
나와 한동안 시선을 교환하던 장제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당신과 한편이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오.”
“딱히 해 줄 일은 없어. 당신이 날 위해 악행을 저지를 필요도 없고. 그저 당신은 당신의 뜻을 펼치면 되는 거야. 내가 그 발판이 되어주지. 우리가 그 발판이 되어주지. 그리고 내가 필요할 때 당신은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거야.”
내 제안을 받아들인 그를 향해.
차후 나의 행동을 감싸줄 대쪽같은 방패를 향해.
그에게 다가간 후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세상에 악같은 것은 없다고 말이야… 그저 도움이 되는 길이 있었을 뿐이다… 라고 말해주면 되는거야.”
“그건… 거짓을 말하라는 것이오? 당신이 악행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막아달라는 거요?”
“뭐 그런 건 아니고.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달라는 것이지. 이봐.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 법이야.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맑음을 내가 지켜줄게. 그 대신 그 맑은 물을 조금만 나눠줬으면 하는데… 어때?”
“…..”
장제가 입을 다물자 난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옥에서 나갔다.
“생각할 시간은 주지. 어차피 당신에 대한 신원 확인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한가지만 알아줬으면 해.”
그를 향해 난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의 미소를 지었다.
“한번만. 딱 한번만 받아들여. 지금 당장 하라는 것도 아니잖아. 그것을 해야 한다는 보장도 없고. 운이 좋다면 한번도 안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나와 거래를 받아들이면 말야. 현명하게 생각해봐. 이것은 어쩌면 당신에게 있어 평생 한번 잡기 힘든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난 내가 그리 좋은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충성심이 많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악행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 천적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난 오늘 내 천적이 될 가능성을 가진 사람을 만났고, 그 천적이 자라날 싹에 독을 뿌렸다.
그 천적이 오히려 날 지켜주게 만들 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