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912
술상이 차려졌다.
어지간하면 거절하겠지만 여기서 거절했다간 조조가 난리를 칠거다.
차려진 술상 앞에서 나는 조조와 술을 마셨다.
쌉싸름한 술의 향이 날 어지럽게 한다.
“그래… 이제 속이 좀 편한가?”
두병의 술이 비워질때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던 조조가 입을 열었다.
편하냐고?
솔직히 완전 편하다.
이제야 거슬리는 존재 하나를 치워버린 셈이니까.
“글쎄요…”
여기서 솔직하게 답할 필요는 없지.
내 말에 조조는 피식 웃고 날 바라보았다.
나를 원망하는 것일까?
그의 눈은 날 대하던 시선 그대로였다.
그것을 마주하며 난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시원섭섭할 뿐 입니다.”
“자네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 벌어진 것 아닌가.”
조조는 술병을 들어 내 잔에 가득 채웠다.
찰랑거리는 술잔 속에 달 하나가 자리를 잡았다.
달과 함께 맑은 술을 단번에 마신다.
차가운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아들이 죽었는데 웃기게도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더군. 비 녀석의 어미는 대성통곡을 하는데도 말이야.”
“그렇습니까…”
“그래.”
그는 내게 돌려받은 술을 한모금 마셨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조조는 차분히 말했다.
“얼마 전 비 녀석이 조가에 왔었지.”
“그렇습니까.”
“그 녀석이 하던 말이 왜 자신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느냐고 하더군.”
“기회요…”
“제 형보다 잘할 자신 있다고. 한번만이라도 괜찮으니 믿어달라고. 내 앞에서 울부짖었어.”
“그랬습니까.”
조조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지쳐있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답해줄 수 없었지.”
“하아…”
“그 녀석이 마지막으로 말하고 바로 떠나더군. 이럴거면 차라리 허락을 해주지 마시지 그랬냐고… 그 말이 비수가 되는구만. 차라리… 차라리 자네 말대로. 예전에 그를 잡았더라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거야.”
조조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저 눈만 감고 있었을 뿐.
“차라리 그때… 자네와 화타가 은퇴하라고 종용했을때. 그 말을 들을 것을 그랬어. 그랬더라면… 비 녀석이 나를 믿고 그리 날뛰지는 않았을텐데…”
후회.
그리고 자책.
조조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늘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던 조조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나 역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사위.”
“예.”
“자네는 나처럼 되지 말아줬으면 하네. 이렇게 되고나니…”
조조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대의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대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 생기는구만.”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조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를 탓하지는 않겠네. 자네 말대로… 나도 눈치챘으니까.”
“그러십니까…”
“그래. 비 녀석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절대 내 뜻을 따르지 않았을거야. 결국 그 상황에서도 문제를 일으켰겠지. 능력 하나만은 괜찮은 놈이었으니까.”
술잔을 잡은 채 조조는 힘없이 말했다.
이것이 천하의 절반을 넘게 차지한 위국의 왕이다.
이렇게 힘없이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 위국의 왕이다.
늘 패기넘치던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조조는 씁쓸해하며 술잔을 내려 놓았다.
“자네 말대로야. 자네 말대로 그 녀석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것임을 알고 있었지. 나 역시… 선택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전에 왕부에 들어갔을 때 조조가 나에게 조비를 만나보라고 했던 것.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솔직히 나도 조비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를 유배보내는 정도로만 넘어가려고 했었다.
어쨌든 그의 손 발은 다 잘린 셈이었으니 말이다.
양 사형과 나, 그리고 조앙에게 이번 일에 대한 전후처리가 넘어 온 이상 조비의 잔존세력들도 함께 엮어 보내버릴 수 있었다.
당장 조비와 함께 온 조진과 위풍 역시 지금 뇌옥에 갇혀 있다.
그 외에 조비와 관련되어 있던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
물론 위국 중신들의 아들이나 친지들 중에 잡힌 이들이 꽤 있었다.
조비와 엮였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잡힌 것이다.
그런만큼 차후에 조비와 그들이 다시 손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정도면 되었다.
이정도면 조비도 정신을 차리고 다 포기할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옥연에 갇혀 있는 조비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되어서도 조비는 자신만만했고, 또 포기할 생각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 자식은 진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놈이구나.
언젠가 반드시 일을 낼 놈이구나.
그것을 안 것은 나보다 조조가 먼저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조가 쓸데없이 그를 만나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난 조조를 향해 힘없이 웃었다.
“잘못된 선택이다, 잘된 선택이다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고맙군.”
열 손가락을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겠나.
결국 조조는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내버렸다.
그런 사람에게 뭐라고 하겠나.
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조조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내가 자네에게 비 녀석을 제거하라 시킨 것일지도 모르겠군… 내 손으로 차마 할 수 없어… 자네에게 시키고 나서 모른 척, 자신의 아들을 생각한 척… 도망치려 한 것일지도 모르겠네. 아니. 그렇지… 그저 외면하고 도망친 것에 불과해.”
조비는 죽어도 자신의 방식을 바꾸지 않을 놈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형 뿐만 아니라 동생, 그 외의 가족들마저도 제낄 놈이고.
그저 시기가 빨랐을 뿐이다.
조비는 조앙을 향해 칼을 들이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조앙을 위해서 그와 싸울 것이고.
결국 집안싸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결과는 나의 승리가 되었겠지.
조비를 내버려둬봤자 결국 그가 죽을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 정도는 그도 알았을 것이다.
힘없이 중얼거린 조조는 고개를 들고 처연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미안하네. 사위. 그간 힘들게 해서.”
“…아닙니다. 제가 말이 너무 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으음… 아닐세.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을 뿐이야. 내 아들이라고, 반드시 내 뜻을 알아줄 것이라고 그리 욕심을 내었을 뿐이야.”
“저보다 사람을 더 잘 보시는 아버님이십니다.”
“그렇지.”
“그런데 왜… 그 녀석을 포기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좀 더 일찍, 몇년만 더 빠르게 이런 결정을 내리셨다면… 그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조조가 냉정하게 조비의 모든 가능성을 배제해두었다면, 그랬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수학하는 것을 막고, 그가 그저 사공의 아들로서만 살아가게 했다면 조비 역시 조식이나 조창처럼 신하의 꿈을 꾸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내 말에 조조는 놓아져 있던 술을 단번에 들이마셨다.
“그게 아비일세. 위국의 왕이며, 대업을 이루려는 자이지만… 나는 아비야. 어떤 방탕한 아들이라도, 어떤 못된 아들이라도 그저 예뻐보일 수 밖에 없는, 아들의 꿈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결국 조조의 눈에서 한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아비에 불과했기에 그런 것이야.”
그의 말에 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승상부주의 집무실에서 밤을 새고 겨우 집에 들어왔다.
집에 들어오니 다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
“그래.”
성이의 얼굴을 보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성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았다.
“괜찮으십니까?”
“하하. 성이가 다 컸구나. 제 아비를 걱정할 줄도 알고.”
“아들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뭐.”
싹 웃는 성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것이 기분 좋았는지 성이는 베시시 웃었다.
“오셨어요?”
“피곤하시죠?”
희아와 완이가 나온다.
둘이 안고 있는 내 아들들.
석이와 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요?”
“아냐. 안아보려고. 이리 줘봐.”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는 석이와 유를 양 손에 안았다.
세상 모르고 잠든 것이 바깥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보였다.
아무런 걱정없이, 아무런 생각없이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내 아들들을 보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우으…”
“아…”
내게 안겨 있는 것이 불편했나보다.
찡그린 얼굴로 울려고 하는 것을 본 나는 다시 완이와 희아에게 돌려주었다.
“후후. 아직은 당신 손이 익숙하지 않은가보네요.”
“어쩌겠어. 아비라고 하나 있는 놈이 매일 일만 하니.”
“그렇지만 나중되면 정말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할걸요? 우리 성이도 그러잖아요.”
완이가 흐뭇하게 웃으며 성이를 본다.
그 시선에 성이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히죽거렸다.
“아이 참. 어머님도.”
“그래. 아. 아침 드셔야지요?”
“응.”
“영이 언니가 지금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어서 가서 먹어요.”
“그래. 옷만 좀 갈아입고 갈게.”
불편한 관복을 벗어야겠다.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청이와 마주쳤다.
청이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아보였다.
“여보…”
“응.”
난 더 말하지 않고 청이를 안아주었다.
내 품에 안긴 청이가 작게 몸을 떨었다.
미우나 고우나, 이복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동생이다.
그 동생이 죽은 것이니 슬플 것이다.
청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며 난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괜찮아.”
“우응…”
훌쩍거리며 내게 안겨 있던 청이가 천천히 몸을 떼었다.
그녀의 이마에 입맞춰 준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당신이 왜요?”
“…내가 설득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니에요…”
청이는 내 손을 잡았다.
그녀를 향해 난 쓰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실패가, 조비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것이 결국 청이를 울게 만들었다.
난 그것이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다.
식사를 마치고 방에 돌아와 침상에 누워 생각했다.
이번 일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나를 보자.
조비를 제거한 것.
미래의 화근을 제거한 일이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조비를 쳐낼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조비를 쳐내지 못했고 그를 돌볼 수 밖에 없었다.
이만큼 했다면 솔직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하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처음 조비를 만났을 때부터 그 자식을 완전히 짓밟아서 그런 꿈을 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아니면 조앙을 앞세워 빠르게 조조를 은퇴시키는 것이 나았을까?
정답따위는 없다.
“돌겠군.”
난 몸을 일으킨 후 한숨을 내쉬었다.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
“음? 성이냐. 들어오거라.”
문이 열리며 성이가 들어왔다.
성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작은 약사발이었다.
“뭐냐? 그건.”
“어머님께서 드리라고…”
“그래?”
영이가 만든 보약인가보다.
한모금 맛을 보았다.
무지하게 쓰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도 쓰답니다. 다 드세요.”
내가 인상을 쓰는 것을 보며 성이는 씩 웃었다.
그 미소에 난 마주 웃은 후 단번에 약사발을 비웠다.
“자. 여기요.”
당과를 입에 넣고 씹으며 성이를 보았다.
약사발을 접시에 담고 나가려던 성이가 발걸음을 멈췄다.
“무슨 걱정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응?”
“방 밖에서 아버지의 한숨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그랬냐.”
“예. 아버지.”
쟁반을 탁자 위에 올려 놓고 성이는 의자에 앉아 날 마주보았다.
“전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의 편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하하…”
이거 나도 다 됐군.
아들의 위로를 이렇게 받을 줄이야.
———
성이의 곧은 시선이 눈이 부시다.
난 그를 마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헤헤…”
“그럼 나가보렴. 이 애비도 조금 쉬어야겠구나.”
“저녁에 다시 관청에 가보셔야 하나요?”
“그래.”
“제가 도울 일은 없습니까? 장 서관의 아들도 얼마 전에 관에 들어갔다고 하던데…”
성이는 기대감을 품고 나를 보며 물었다.
그 질문에 난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성이는 나를 존경한다.
아마 유나 석이도 나를 존경하겠지.
그리고 나 처럼 되고자 할 것이다.
“아니. 마음은 고맙지만 지금은 괜찮다. 네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부르도록 하마.”
“예.”
성이가 나가고 잠시 후 난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방에서 책을 읽고 있던 아버지는 내가 들어오자 웃으며 물었다.
“어이구. 이거 위국 권력의 중심이신 진 가주께서 여기까진 무슨 일이신가?”
“놀리지마세요.”
“하하. 그래. 앉거라.”
관청에서 다른 이들과 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내가 자리에 앉자 아버지는 나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어제 밤새고 들어 온 것 아니냐? 밤에 또 나가봐야 할텐데 좀 자지.”
“예. 자는 건 자는거고… 아버지.”
“왜.”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버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대충은 눈치채셨을거다.
조비가 우리 모두에게 걸림돌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결국 손을 쓰고 말았다는 것을.
아버지는 나를 지그시 응시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예.”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칭찬하기는 힘들구나.”
“그렇겠죠…”
어쨌든 나는 조조의 명령을 어긴 셈이다.
조조는 조비를 살리고 조가의 모두가 화목해지기를 바랬다.
그것은 실패했다.
나도.
그리고 조조도.
아버지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착찹한 표정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너무 잡고 있지 말거라.”
“예…”
짧은 위로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난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성이를 제 후계자로 정식으로 공표하려고 생각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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