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935
하늘에 제를 지내고, 또 죽은 이들을 위한 제를 지내고.
꽤 많은 비용을 쓴 만큼 화려한 제사였다.
많은 이들이 땅을 밟았지만 이 밑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일부러 제사 지내는데 사람들을 불러 구경하게 한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과연 그들이 바닥에 있는 함정을 발견할까 라는 의문 때문에.
제를 지내기 전에 일부러 좀 지루하다 싶을 정도의 시간을 주었는데 의문을 품은 이들은 없었다.
이정도면 안심할 수 있겠다 싶다.
“금줄을 걸어라.”
함정이 있는 넓은 자리, 내가 신역으로 선포한 곳에 새끼줄이 걸린다.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허가 없이 들어갈 경우 극형에 처하겠다는 엄포까지 했다.
이정도 했으면 목숨이 여러개가 있지 않는 이상 합비에서는 함부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신역이라는 이름의 함정에 절을 하는 것으로 제가 끝났다.
간신히 숙소까지 오며 근엄함을 유지하던 나는 숙소의 침상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어이구 힘들어…”
제사만 몇번이냐.
한번은 그냥 하겠지만 다섯번이나 연속으로 하려니 죽을 맛이다.
관을 벗어 침상에 휙 던졌을 때 영이와 율이가 들어왔다.
“아버지~”
내 품에 폭 안긴 율이가 예쁘게 웃었다.
“멋있었어요!”
“그래?”
“예!!”
평소에 입지 않는 예복에 화장까지 하고, 또 그런 일들까지 했으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율이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다.
그녀의 볼에 입맞춰 준 나는 영이를 보았다.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마주하는 그녀에게 물었다.
“고생 많았어. 어땠어?”
“멋있던데요?”
“흐흐. 그렇지? 그래도 두번은 못하겠네.”
“왜요? 신년제때도 당신이 해보지 그래요? 당신에게 이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후후. 많은 예인들이 안도하겠는걸요? 당신이 예인이 되지 않아서. 좌중을 압도하는게 아주 멋졌어요.”
“안도는 무슨.”
제사를 지내는 일은 원래 엄숙하게 치뤄야 하는 일이다.
황궁의 예를 따른다고 하더라도 이정도로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백성들이 믿는 괴력난신에 대한 제사처럼 치룬 이유는 소문이 빨리 퍼져나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서황과 하후상의 검무.
화려하게 분장하여 백성들의 눈을 현혹하고, 그들의 마음을 빼앗게 만드는 것이다.
“뒤에서 지켜봤는데 많은 백성들이 기뻐하던걸요? 당신을 칭찬하고, 멋있다고 하고. 후후후~”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네.”
일단 백성들에게는 금방 퍼져나갈 것 같다.
다만 걱정되는 것이 계책이 실패할 경우다.
곽가는 호언장담을 했지만 만약 함정이 발동되었을 때 비가 내리면 어쩌나 싶다.
아무리 깊게 파뭍었다고 하더라도 물이 들어가서 망할 수 있었다.
으음…
걱정이 되는군.
지금 만들어 놓은 함정은 이유하의 세계에서 연탄보일러라는 물건을 수십개나 바닥에 설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안전장치 없이.
그런만큼 약점은 물이었다.
갑작스레 폭우가 내려 연탄이 다 젖어버리면 함정은 제대로 써버리지도 못하게 된다.
“승상복야.”
“음?”
영이와 율이를 데리고 쉬고 있는 도중에 문이 열렸다.
들어 온 것은 서황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성주가 찾습니다.”
“그래? 그럼 가봐야겠군. 밖에서 좀 기다리고 있어.”
성주가 찾는다라…
장료였으면 자기가 직접 오지 나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은 곽가가 나를 찾는다는 이야기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영이는 웃으며 물었다.
“이제 합비에서의 일은 끝난 건가요?”
“뭐 그렇지? 이제 슬슬 떠날 준비를 하자고. 서주에 가서 휴양지도 갔다 갈까? 전에 청이랑 가봤는데 진짜 좋더라고. 태원장이라고…”
“아! 들어봤어요. 헤에~ 그거 기대되네요.”
시찰은 끝났고 제사도 지냈다.
이제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없었다.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영이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갔다.
“스, 승상복야!”
“뭐야?”
시녀들이 얼굴을 붉힌다.
그녀들이 작게 싼 바구니를 건네주었다.
“오, 오늘 멋있으셨습니다…”
“허.”
세상에.
나에게 이런 일이!?
그동안 숱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많은 백성들을 살려왔는데 이렇게 젊은 시녀들에게 선물을 받아 본 건 또 처음이네.
보따리를 풀어보니 약과와 과자들이 들어 있었다.
“음. 잘 먹겠다. 영이랑 율이가 좋아하겠군.”
“그리고 이것도…”
작은 서찰이다.
받아 열어보았다.
연서다.
나를 동경하며 존경한다는 애틋한 마음이 구구절절히 적힌 연서였다.
“합비의 시녀들이 모두 승상복야를 동경하여… 한 마음으로 보낸 것이옵니다… 아까의 제사가 너무 멋져서…”
연서라니!
내가 연서를 받다니!
물론 그저 동경의 마음을 적은 정도에 불과했지만 연서를 받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내가 실실 웃으자 서황은 싸늘히 말했다.
“감히 승상복야께 이따위 것을 주다니. 승상복야께서 천한 예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것이냐.”
“아, 아니옵니다. 그게 그저…”
“어우야. 왜 그러냐~”
그럴 수도 있지.
이제서야 예인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인기 좋구나.
내가 예인 취급을 받은 것에 화를 내는 서황을 말린 후 난 연서를 돌려주었다.
“선물은 잘 받으마. 다만 연서는 받기 힘들겠다. 내가 보는 것은 오로지 내 아내들 뿐이니 말이야.”
“아… 한결같으신 부분도 멋있으십니다…”
하.
이놈의 매력.
넘쳐 흐르다 못해 폭발하는구나.
뿌듯하다.
성아.
보고 있니?
이 애비가 이정도는 된단다.
내가 뿌듯해 할 때 문이 열렸다.
“가신다는 분이 왜 바깥에서 그러고 계세요?”
“아오! 깜짝이야!”
문이 열리며 영이가 나왔다.
시녀들은 허둥거리며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도망쳤다.
영이는 내 손에 들린 바구니와 멀어지는 시녀들을 보며 웃었다.
“헤에.”
무섭다!
진짜 무섭다!
난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 영아?”
난 슬그머니 서황의 뒤로 숨었다.
그의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야. 네가 떨면 안되지.
“역시 문제가 있네요.”
감정따위 느껴지지 않는 삭막한 어조에 나와 서황 둘다 움찔했다.
“아까 신년제 이야기를 했는데… 미안하지만 여보. 취소해야겠어요.”
“아, 무, 물론이지.”
“앞으로 이런 일은 절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웃는 얼굴로 저리 무감정히 말하니 더 무섭다.
“네.”
이럴때는 그냥 납작 업드리자.
영이는 생긋 웃으며 서황을 보았다.
무척이나 예쁜 웃음을 마주하는 서황은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 부인. 걱정마십시요.”
“고마워요. 서 교위. 그리고 부탁인데… 부디 합비성에 있을 때 제가…”
마른 침을 간신히 넘겼다.
“쓸데없는 행동을 하지 않게 해주시겠어요?”
평소에는 서황에게 말을 편하게 하는 영이다.
그런데 이런 존대라니.
더 무섭다.
“무, 물론입니다.”
서황은 식은땀을 흘리며 힘겹게 대꾸했다.
“좋아요.”
영이는 휙 몸을 돌리고 방으로 들어가다가 멈췄다.
“여보?”
“네. 말씀하셔요. 부인.”
“성주님을 만나고 나서 잠깐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모든 유부남들이 두려워하는 말이다.
‘여보. 우리 잠깐 얘기 좀 해.’
그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이의 입에서 나왔다.
진짜 무섭다.
수많은 전장을 겪으면서도 이런 공포는 없었는데.
살며시 매력 넘치는 미소를 지은 영이가 문을 닫고 들어가자 나와 서황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야. 이거 어떡하냐.”
“제 경험으로는 그냥 바로 굽히고 들어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입니다만… 딱히 주군께서 잘못한 것은 없으시잖습니까. 그러니 그냥 달래주시면 될듯 싶습니다.”
“그, 그렇긴 하지. 그렇지. 그게 낫겠다.”
시녀들의 동경과 연심에 철벽을 쳐서 방어했다.
그럼 된 것 아닌가?
난 쓰게 웃었다.
“하… 이놈의 매력이 넘치는 것도 마냥 좋은 일은 아니군.”
“뭐… 방탕한 종자라면 좋아하겠지만 주군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시니. 그리고 부인께서도 그저 속이 상해 저리 말씀하시는 것일 겁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요.”
“그렇겠지?”
현장을 걸린 것도 아니고.
내가 철벽을 친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와 서황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장료의 집무실로 향했다.
예상대로 장료가 날 부른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오자 장료는 우리를 데리고 곽가가 머무는 곳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던 곽가는 씩 웃었다.
“어서 오게. 이야기는 들었어. 아주 멋있다고 했더군. 예인으로서 자질이 넘치는 것 아닌가?”
실실 웃는 곽가를 향해 난 이를 갈았다.
“아오. 당신 때문에 내가 지금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압니까?”
“응? 무슨 일이라니?”
의아해하는 곽가에게 아까 일을 말해주었다.
그것을 잠자코 듣던 곽가는 피식 웃었다.
“한심하긴. 사내대장부가 계집애의 손톱따위를 무서워하다니.”
“애처가들은 원래 이런 법입니다만.”
“그런 것은 공처가라고 한다네.”
옆에 있던 장료가 고개를 끄덕인다.
장료!
너마저!
“애처가고 공처가고 일단 제쳐두고. 이제 끝났습니다.”
“그렇지.”
함정을 완성하는 제사까지 지냈다.
그럼 이제 곽가가 합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난 곽가를 보았다.
“갑시다. 이제.”
“그러지.”
지금까지 끈질기게 버티던 것과 다르게 곽가는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그나마 다행인가.
밧줄은 안 쓰게 되었군.
내가 한숨을 쉬자 곽가는 두루마리를 장료에게 넘겨주었다.
“주의해야 할 사항을 몇가지 적어놨네. 부디 잘 이행해주길 바라겠네.”
“뜻을 따르겠습니다.”
합비성주인 장료도 이번 함정에 대해서 잘 안다.
이번 일을 아는 사람은 단 네명.
나, 그리고 장료, 곽가, 화타.
화타와 곽가, 그리고 나는 합비를 떠나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함정을 활용할 수 있고, 전권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장료 뿐이다.
무관인 그가 이 함정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괜찮겠나?”
“무엇이…?”
“북방의 공포께선 힘의 대결을 좋아하시는 것 아닌가? 이런 함정은…”
내 말에 장료는 희미하게 웃었다.
“힘도 좋고 싸우는 것도 좋지요. 다만…”
장료는 손에 쥐고 있는 두루마리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군의 피해가 없는 승리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지요.”
“그래?”
“예. 승상복야와 정북장군께서 저를 북방의 공포로 만드신 것처럼 말입니다.”
장료가 북방의 공포로 불리게 되며 장료가 온다는 말이 나오면 모두가 두려워했다.
그와 그의 부대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그냥 항복해버린 이민족들이나 도적이 한둘이 아니다.
덕분에 큰 피해 없이 이민족과 유목민을 관리할 수 있었다는 보고서를 떠올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훈련을 멈추지는 않습니다. 걱정마십시요.”
장료가 서황을 보며 씩 웃었다.
뭐지?
둘이 한번 붙었었나?
서황은 난감해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더 강해진 것 같더군요.”
“하아…”
“무기의 차이입니다. 언월도가 좋았을 뿐이지요. 하마터면 제가 질 뻔 했습니다.”
“웃기는 소리를. 실력 면에서 본다면 자네가 나보다 한수 더 높아.”
서황이 웃으며 말하자 장료는 그저 마주 웃을 뿐 이었다.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니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무관들끼리 치고박고 싸우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일이지. 그렇게 싸워가며 실력을 올리면 좋은거야. 장 성주. 아무튼 뒷 일은 잘 부탁하겠네.”
“대부의 말씀을 마음 속 깊숙히 간직하겠습니다.”
“그렇게 깊숙히 간직할 필요는 없어. 그냥 때가 되면 잘 움직여줬으면 해. 관리도 잘 하고.”
“예.”
곽가와 화타도 이번에 서주로 갈 때 함께 가기로 했다.
그럼 된건가?
나머지 문제는…
방문 앞에 서 있던 나는 머뭇거렸다.
율이는 하후상에게 가 있었다.
그럼 지금 방에 영이만 있다는 건데.
긴장하던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안으로 들어갔다.
“영아?”
“오셨어요?”
“어? 어어…”
생각보다 밝은 모습이다.
그것에 오히려 더 긴장된다.
“뭐해요? 거기 서서? 어서 들어와요.”
그녀에게 이끌려 방에 들어왔다.
날 자리에 앉힌 영이는 나를 마주하며 신음했다.
“왜그래?”
“아뇨. 아무래도 좀 불안해서. 당신을 좀 못생기게 만들어야 하는데.”
“…하하…”
“으… 어딜 손대도 잘 생긴 것 같아서.”
시무룩해진 영이는 탁자에 있는 화장도구를 잡았다.
“한번 도전 해봐야겠네요. 과연 제 실력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영아? 나 아까 제대로 막았거든?”
“알아요. 들었으니까.”
역시나 들었구나!
내가 나쁜 마음을 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진짜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그러니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내 말에 영이는 생긋 웃었다.
“그렇긴 하지만 주제파악 못하는 날파리들을 잡으려고 손을 더럽히기는 싫거든요. 제 남자는 제가 관리해야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자. 가만히 있어봐요.”
“어…”
“최선을 다해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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