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90
제90화
위상인의 다리에는 상처가 있다. 흐리고 비 오는 날만 되면 고질병이 재발하여 참기 힘든 통증이 시작되곤 했다. 오래 앓다 보니 익숙해지긴 했지만, 매번 통증을 견디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하인을 따라온 사람은 주(周) 의원으로, 성경성에서 꽤나 명성이 있고 해묵은 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해 왔다. 지난 몇 년간 위상인은 주 의원 덕분에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양옥용은 좋지 않은 상황임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다리가… 많이 아프신가?”
하인이 대답했다.
“요즘 날이 습해서 통증이 심하신 것 같습니다.”
하인이 꾸벅 인사를 올렸다. 위상인의 치료가 지체되면 안 되었기에, 그는 의원을 모시고 서둘러 용원으로 향했다.
위라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양옥용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라야, 우리도 상인 오라버니께 가 볼까?”
이쯤 되니, 두 사람을 떼어 놓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거절하려던 위라는 문득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양옥용이 위상인의 다리를 보면 두 사람 사이의 장애물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될 것이고, 불필요한 감정이 사라질지도 몰랐다. 생각을 마친 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 *
두 소녀가 용원에 도착했을 때, 마침 의원이 위상인의 다리를 치료하고 있었다.
대부인은 위라와 양옥용이 위상인을 보러 왔다는 말을 듣고 그녀들을 내실로 안내했다. 그녀는 가까스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라야… 와 줘서 고맙구나.”
내실에서는 코를 찌르는 약 냄새가 풍겼다.
이렇게 진한 약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없는 터라, 위라와 양옥용은 들어가자마자 기침을 해 댔다. 가까스로 기침이 가라앉은 후에야 자연과 사람을 그려 넣고 구름 문양을 새긴 강향단 병풍 뒤로 갈 수 있었다.
병풍 너머에서, 위상인이 홍목 태사의에 앉아 두 다리를 나무통에 담그고 있었다. 의원은 나무통에 약재를 조금씩 추가했다. 나무통 아래에 숯불을 피워 놓아서 물에선 김이 피어올랐다. 다시 위상인을 보니 준수한 얼굴은 이상할 정도로 창백했고, 이마에선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평소의 고고하고 우아한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차분한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눈을 감은 그는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인기척을 들었는지, 그가 눈을 떴다. 소녀들을 발견한 위상인이 힘겹게 웃어 보였다.
“너희들 왔구나…….”
이런 광경을 처음 본 양옥용은 소매 안에서 비단 손수건을 꽉 쥐었다. 두려웠지만, 그만큼 위상인이 걱정되었다.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 그에게 다가가 살며시 물었다.
“오라버니, 많이 아프세요?”
위상인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별로 안 아파.”
어떻게 안 아플 수가 있을까?
안색이 이렇게 어둡고 옷은 식은땀으로 다 젖었는데, 별로 안 아프다고?
양옥용은 위라와 한쪽에 섰다. 위상인이 괜찮은지 보러 온 거였는데, 막상 보고 나니 오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 그랬다면 그가 이렇게 아파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그가 걱정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두 소녀는 치료에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적어도 방해는 되지 않기 위해, 대부인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갈 채비를 했다.
나가기 직전, 양옥용의 시선이 무심결에 침상 머리맡 탁자에 머물렀다. 그곳엔 포장이 뜯긴 간식거리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지난번 사다 준, 팥과 우유를 넣어 돌돌 만 찐빵이었다. 찐빵 속에는 몇 겹의 팥이 들어 있고, 겉에는 얇게 찹쌀가루가 뿌려져 있어 달콤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맛이었다. 그때 여덟 개를 샀는데, 남은 건 두 개뿐이었다.
맛있었나?
양옥용은 멍한 표정으로 위상인을 돌아보았다.
마침 위상인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살짝 웃어 보이는 위상인의 표정은 온화했다. 힘든 상황에도, 그는 차분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 * *
그렇게 양옥용이 간 후 며칠이 훌쩍 지났다.
삼월 열닷샛날은 조유리가 외출하는 날이었다.
위라는 일찍 일어나서 경대 앞에 앉았다. 분은 바르지 않았다. 나이도 어린 데다, 피부가 가장 좋을 나이에 화장을 하면 오히려 본연의 색을 덮어 버린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신 숯으로 버들눈썹을 그리고 연분홍빛 입술연지만 찍어 발랐다. 거울을 보니 부드럽고 윤이 나는 입술 덕분에 훨씬 생기 있어 보였다.
여의문이 수놓인 짧은 담홍색 웃옷에 나비와 꽃이 수놓인 월백색 추사 치마를 입은 후, 금루를 불러들였다. 양 갈래로 머리를 틀어 올리고, 꽃 장식과 보석이 박힌 머리 장식을 꽂는 것으로 외출 준비가 끝났다. 매화와 초승달이 수놓인 비단신을 신자 마자 시녀가 들어와 말했다.
“아가씨, 천기 공주마마께서 문 앞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걸어 나갔다.
영국공부의 대문 앞에 화려하게 꾸민 팔보(八寶) 마차가 있고, 마차 옆에는 푸른 직철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양진이었다.
양진은 걸어 나오는 그녀를 향해 인사를 대신한 예를 갖췄다.
디딤판을 밟고 마차에 오르면서 가림막을 걷은 위라가 순간 멈칫했다.
마차 안에는 조유리 말고도 이무기 문양이 수놓인 검붉은 금포를 입은 조개가 있었다.
가장 안쪽에 앉아 있던 조개는 시선을 느끼고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깊고 검은 눈동자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는 듯 빛났다.
그의 눈빛에 위라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하마터면 몸을 돌려 마차에서 내릴 뻔했다.
아쉽게도 조유리가 조금 더 빨랐다. 그녀는 신이 나서 위라를 자기 옆으로 끌어 앉힌 후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라야, 너 오늘 더 예쁜 것 같다?”
위라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지를 발랐거든.”
위라의 자리는 썩 좋지 않았다. 조유리와 조개 사이에 앉게 된 것이다. 왼쪽은 조유리, 오른쪽은 조개. 아무리 생각해도 불편했다. 자리가 비좁은 건 아니었지만, 조개가 그녀의 바로 옆에 있었다. 너무 가까웠다.
마차가 널찍해서 조개가 안으로 좀 더 들어가도 될 것 같았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위라는 결국 참다못해 고개를 돌리고 동그란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정왕 오라버니,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 주실 수 있나요?”
그는 생각에 잠긴 듯 그녀를 바라보며 눈썹을 추켜올리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반문했다.
“왜, 너무 좁으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가 몸을 일으켰다. 조개가 새로 앉은 자리는 위라의 맞은편이었다.
“…….”
그 위치는 더 나빴다. 그의 긴 다리는 접지 않는 이상 위라의 다리에 닿을 게 뻔했다. 자연스레 부담감은 그가 옆에 있을 때보다 심해졌다.
위라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일부러 저러는 게 틀림없었다! 그녀는 두 다리를 오므려 조유리 쪽으로 향하고, 그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조유리의 말을 열심히 듣기 시작했다.
조개는 두 손을 몸 앞에 포개어 놓았다. 맞은편의 소녀를 바라보는 그의 검은 눈동자에 찰나의 미소가 스쳤다. 미소에는 반드시 그녀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마차가 옥기(玉器, 옥을 세공한 기물) 상점 앞에 섰다. 조유리와 위라가 마차에서 내렸다. 보름 후면 조유리의 급계례였기에, 이번 외출에서는 필요한 물건을 사러 온 것이리라.
상점에 들어서자 아름다운 옥기들이 가득했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조유리는 주인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한 쌍으로 된 물건 있나요?”
주인은 장사를 오랫동안 해 온 덕분에 그녀가 원하는 것을 단번에 파악했다. 게다가 눈앞의 두 소녀는 용모가 단정하고 귀티가 흐르는 게 딱 봐도 큰돈을 안겨 줄 손님이었다. 그가 얼른 말했다.
“그럼요, 그럼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금방 가져오지요.”
잠시 후, 그가 뒤편에서 활짝 핀 목단화를 새긴 주홍색 함을 가져와 그녀들 앞에서 열어 보였다.
“저희 가게에서 소장하고 있는 진귀한 물건입니다. 한번 보세요.”
붉은 비단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한 쌍의 목걸이 장식이 놓여 있었다. 세밀하게 조각된 백옥은 흠 하나 없이 매끄럽게 빛이 났다. 한눈에 봐도 최고급 옥이었다.
그러나 이 장식의 가치는 다른 곳에 있었다. 주인은 일부러 햇빛 아래로 물건을 가져가더니, 두 개의 옥 장식을 포개었다. 그대로 햇빛이 통과하면서 어떠한 형상이 보였다. 아주 희귀한 동심결 모양이었다. 게다가 이 옥 장식은 심장의 모양과 매우 비슷했기에, 주인이 ‘동심옥(同心玉)’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조유리는 이 옥 장식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게다가 목에 걸고 옷 안에 넣으면 다른 사람들 눈에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주인은 성심성의껏 손님을 대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걸 보면서도 가격을 올려 부르지 않았다. 그는 적정한 가격을 제시했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깜짝 놀랄 가격이긴 했다. 천팔백 냥. 먹지도 입지도 않고 평생을 일만 해도 벌 수 없는 돈이었다.
조유리는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외출할 때 추 어멈이 돈을 잔뜩 주었고, 목걸이 옥 장식 두 개를 사고도 한참 남았다. 그녀는 궁녀를 시켜 계산하게 한 후, 신이 나서 옥 장식 두 개를 쥐고 상점을 나섰다. 함도 받지 않은 채였다.
상점 앞, 양진이 소나무처럼 서 있었다.
마차 쪽을 바라보던 조유리는 조개가 내리지 않는 걸 확인한 후에야 양진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손을 잡고 옥 장식 하나를 그의 손에 올려 주었다. 양진을 올려보는 조유리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오늘이 양진 오라버니 생일이잖아. 선물이야.”
양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생일을 기억해 줄 줄이야.
“그리고 이건 내 거.”
그녀가 다른 하나를 손에 쥔 채 당부했다.
“항상 걸고 다녀야 해. 내가 매일 확인할 거야.”
그의 심장이 꿈틀거렸다. 냉랭하고 적막하던 눈에 미세한 파동이 일었다. 조유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졌다. 그는 애써 자신을 억눌렀다. 사람들이 다니는 큰길이었고, 마차에는 정왕 조개가 있었다. 단둘만 있었다면, 참지 못하고 그녀를 안아 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는 한참 만에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말했다.
“예.”
조유리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마차에 올라탄 그녀는 위라에게 옥 장식을 목에 걸어 달라고 했다.
조개가 고개를 들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조유리는 조개에게 목걸이가 한 쌍이라는 사실도, 목걸이를 산 이유도 말하지 않았다. 조개도 굳이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