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8
(8)
“응.”
“저번에 재활 아니면 영상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때는 그랬는데 마음이 바뀌었어.”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는데? 조금 전에 치프님이 말한 대로 힘들고 고생하는 만큼 돈도 못 벌고 심지어 걸핏하면 의료 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겠다는 거야?”
화부는 자신과 동기들이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치프를 비롯한 레지던트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럴 때는 어떤 말을 해야 치프와 레지던트가 자신을 그럴듯하게 볼까?
조금만 생각하면 바로 답이 나왔다.
“다른 과에 비하면 고생한 만큼 돈을 못 벌기는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직접 다루잖아. 수술을 통해 죽어 가는 환자들을 살리는 것을 계속 보다 보니 나도 그런 의사가 되고 싶어졌어.”
이민호의 대답에 세 사람의 입은 잠시 벌어진 채로 다물어지질 않았다. 이게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린가?
잠시 후 김형선이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에 짜증을 가득 담아 말을 이었다.
“젠장, 너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뭐가?”
“뭔지 몰라서 물어?”
“조금 억울한 면이 있긴 하지만 어쩌겠냐? 그래도 마음을 고쳐먹었으니 고쳐먹은 대로 가야지.”
“허, 참. 도통 이해를 못 하겠다. 어쨌든 아무리 그렇더라도 네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선언을 해 버리면 우린 뭐가 되냐?”
“그 점은 내가 깊이 생각하지 못했네. 미안하다.”
화부는 대충 사과를 하며 안지수가 봉합 연습을 해 놓은 인조가죽을 바라봤다.
여자답게 봉합 자국이 꽤 꼼꼼했다.
‘안지수는 성형외과를 지원하겠다고 했었지. 그래서 봉합 연습을 하고 있었던 거군. 그런데 성형외과를 지원하겠다고 한 것치고는 엄청 서투네. 연습을 많이 해야겠어.’
안지수 나름 열심히 연습을 한 거지만 아까 수술실에서 펠로우 오국환이 봉합한 것과 비교해 보니 형편없는 실력이었다.
화부는 예전에 구부러지지 않은 일자형 바늘로 사람 피부를 꿰매다 자주 손이 찔렸던 것을 생각하며 needle holder(파침기: 수술 중 바늘을 잡는 도구)를 쥐어 보았다.
needle holder 같은 기구로 바늘을 쥐면 미끄러질 염려가 없으니 손이 바늘에 찔릴 염려도 없다.
‘봉합을 한번 해 볼까?’
중심 정맥을 확보했을 때의 손 감각보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을 때의 손 감각이 더 좋아져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자판을 두드렸을 때보다 더 좋아져 있지 않을까?
화부는 needle(바늘)에 봉합사를 연결한 후 holder(파침기)로 잡고 인조가죽의 단면을 맞춘 후 봉합을 시작했다.
따가닥 푹 푹 푹…….
처음 바늘을 인조가죽에 찔러 넣을 때는 신중했지만 몇 바늘 꿰매고 나자 요령이 생겨 절로 속도가 붙었다.
‘역시 예상대로 아까보다 손놀림이 더 자연스러워졌어. 그나저나 위급환자일수록 얼마나 빨리 수술을 하느냐가 관건이니 하는 김에 최대한 빨리 해 볼까.’
화부는 실제 환자를 수술한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빠르고 꼼꼼하게 봉합을 하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이, 이 새끼 뭐야?’
‘무슨 손이 이리도 빨라!’
이민호의 파격 선언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세 인턴은 그가 인조가죽을 가지고 봉합을 연습하자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봤다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이 인조가죽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리 빨리 봉합을 하면 엉망이기 마련인데 간격도 깊이도 일정하잖아! 이 미친놈이 그동안 봉합만 연습했나?’
‘한 뼘 길이를 오 분도 안 돼서 봉합했어! 거기다 손 매듭이 아닌 needle holder 매듭까지! 허어! 이놈 우리랑 같은 인턴 맞아?’
이민호가 봉합을 순식간에 끝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며 세 인턴은 눈을 몇 번이나 끔뻑거렸다.
“너, 너 민호 맞지?”
고봉길이 맞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듯한 눈으로 물어보자 이민호는 잠깐 멈칫했다 이내 피식 웃었다.
“그럼 내가 민호지 민순이겠냐?”
“너 suture(봉합) 많이 늘었다. 언제 우리 몰래 연습이라도 했냐?”
“연습? 아! 연습은 예전에 엄청나게 많이 했지.”
화부는 예전 신의로 불리던 시절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바늘이 다르지만, 그동안 꿰맨 양으로만 따지면 현대의 어지간한 교수보다 몇 배는 많을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한 거야?”
“그냥 아주 오랫동안 엄청나게 했어.”
화부는 고봉길의 말에 대답하며 자신이 봉합해 놓은 인조가죽을 바라봤다.
‘손놀림은 자연스러워졌지만, 속도를 내보니 그래도 아직 약간의 이질감은 남아 있네.’
이질감이 느껴지자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사실 아무리 손이 좋으면 뭐 하겠는가? 자신은 언제 빙의가 끝나 영면에 들지 모르는 사람인데.
‘쯧, 손 기술이 좋으면 뭐 하나, 환자를 상대로 제대로 써 볼 일도 없을 건데!’
화부가 인조가죽을 내려놓자 안지수가 그걸 들고 꼼꼼히 살펴봤다. 그리고는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허얼! 바깥뿐만 아니라 안쪽 깊이까지 일정하다니!”
“뭐야? 뭔데 그리 호들갑이야?”
그때 치킨과 피자 주문을 마친 홍유나가 인턴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민호가 방금 suture를 했는데 너무 잘해서요.”
“난 또 뭐라고 인턴이 suture를 잘해 봤자 거기서 거기…… 어?”
안지수의 대답에 피식 웃던 홍유나는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인조가죽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리 줘 봐.”
“여기 있습니다.”
홍유나는 인조가죽을 좌우로 벌려 안쪽까지 꼼꼼히 살피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민호를 바라봤다.
“이거 정말 네가 suture한 거야?”
“네.”
“나보다 잘한 거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한 거야?”
“아주 예전부터 꾸준히 연습했습니다.”
홍유나가 호들갑을 떨자 다른 레지던트들뿐만 아니라 치프인 곽상도까지 관심을 보였다.
잠시 후 곽상도가 다가오더니 홍유나의 손에 들린 인조가죽을 바라봤다.
“이거 정말 이민호 선생이 한 거야?”
곽상도가 관심을 보이자 홍유나는 들고 있던 인조가죽을 그의 손에 넘겼다.
“그렇다고 하네요. 제가 살펴보니 suture를 저보다 잘한 거 같아요.”
“흠!”
곽상도도 인조가죽을 꼼꼼히 살피더니 놀람 가득한 눈으로 이민호를 바라봤다.
“이게 정말 이민호 선생이 한 거라고?”
“네.”
“믿기지 않는군. 이 정도면 혈관도 문합하겠어.”
“네? 에이, 치프님도! 아무리 인조가죽을 잘 꿰매도 어떻게 혈관을…….”
“아니야. 이 정도 꼼꼼함이면 가능하지. 지오야.”
“네, 치프님.”
“인조혈관 문합 세트 가져와 봐.”
“고작 인턴에게 인조혈관 문합 세트는…….”
“뭐! 허, 참. 요즘 다들 고생하는 것 같아 조금 풀어줬더니 이제 내 말이 말 같지 않은가 보네?”
“아닙니다.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곽상도가 인상을 쓰자 송지오가 후다닥 달려가더니 이내 인조혈관 문합 세트를 가져왔다.
곽상도는 그걸 받아 이민호에게 내밀었다.
“대동맥부터 한번 문합해 봐라.”
대동맥은 인조혈관 세트에서 가장 크고 두꺼운 혈관이다.
화부는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살짝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세트를 받아 들었다.
손으로 만져 보니 진짜 혈관보다는 튼튼했다.
조금 전 만졌던 인조가죽도 진짜 사람의 피부보다는 더 질긴 느낌이 있었는데, 비슷한 것이다.
“인조혈관은 처음 문합해 보는 건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화부는 많은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자 살짝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인조가죽을 봉합하며 이미 감각을 숙지했기에 잘할 자신이 있었다.
“우리 식구가 될 거면 혈관도 척척 잘 문합해야지. 가장 크고 두꺼운 대동맥이니까 부담 갖지 말고 연습하는 셈 치고 한번 해 봐.”
“네.”
잠시 후 이민호가 인조혈관의 단면을 가위로 잘라 맞춘 후 맞대고 문합을 시작하자 곽상도가 뭔가를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따그닥 푹 푹 푹…….
이민호의 손은 처음 인조가죽을 봉합할 때처럼 느리고 신중했다. 하지만 몇 바늘 꿰매더니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 바늘 정도 꿰맸을 때는 바늘을 찌르고 손목을 돌리는 게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러워 그 손놀림이 마치 문합만 수십 년 동안 해 온 달인의 그것 같았다.
이민호의 문합 과정을 보고 있던 곽상도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어떻게 혈관 문합을 나보다 더 잘할 수가 있지? 거기다 이 녀석 loupe(확대경)도 쓰지 않고 있는데!’
사실 조금 전에 이민호가 혈관 문합을 하려고 할 때 loupe를 쓰란 말을 하려다 말았다. 때문에 문합이 끝나면 loupe를 쓰고 해야 했다고 조언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굳이 loupe를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스르륵.
잠시 후 이민호가 문합을 끝낸 후 양손 매듭으로 마무리를 하자 곽상도는 인조혈관을 받아 들고 사이를 벌려 봉합사가 혈관벽 너머까지 들어갔는지 꼼꼼히 살펴봤다.
‘허어! 믿기지 않는군. 이렇게 촘촘한데 간격마저 균일하고 벽을 넘은 봉합사가 하나도 없다니!’
자신조차 loupe를 쓰고 아주 신경 써서 문합을 해야 이렇게 할 수 있다.
시간을 재 보지는 않았지만, 이민호가 인조혈관을 문합하는 데 걸린 시간이 자신이 문합할 때 걸리는 시간의 반도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거기다 속도도 나보다 두 배 이상 빠르다니!’
생각해 보니 이 정도면 흉부외과 담당 교수나 부교수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곽상도가 인조혈관을 한참 동안 살피고 있자 옆에 있던 레지던트 3년 차 임자훈이 넌지시 물었다.
“치프님, 어떻습니까?”
“어떤지 네가 한번 봐 봐.”
곽상도가 인조혈관을 건네자 임자훈이 받아 들고 꼼꼼히 살폈다.
“어떠냐?”
“어, 엄청난데요. loupe도 쓰지 않았는데 이 정도라니! 야, 이민호!”
“네. 선생님.”
“너 뭐냐? 인조가죽을 suture한 것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는데 이건 더하잖아! 혹시 집안에 의사라도 있냐? 어렸을 때부터 suture 기구 가지고 논 거 아냐?”
“집안에 의사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럼 이거 뭐냐? suture만 미친 듯이 연습해야 이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의사는 없지만, 예전에 suture 연습을 많이 하긴 했습니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허, 참. 손기술을 타고나는 천재가 가끔 있다더니 아무래도 네가 그런 놈인가 보다.”
“임 선생님, 도대체 어느 정도인데 그러십니까?”
옆에 있던 최용수가 궁금함을 드러내자 임자훈은 들고 있던 인조혈관을 최용수에게 넘겼다.
“너희도 한번 살펴봐라.”
인조혈관이 최용수에게 넘어가자 홍유나를 비롯한 레지던트 2년 차들이 살펴봤고 잠시 후 송지오를 비롯한 레지던트 1년 차들도 살펴봤다.
인조혈관의 문합 부위를 살펴본 레지던트들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이민호를 바라봤다.
“허어! 하도 빠르기에 대충한 줄 알았더니…… 정말 임 선생님의 말씀처럼 손이 아주 타고났구나.”
“야, 이렇게 손이 좋은 놈이 왜 그동안 처치를 그렇게 엉망으로 했던 거냐?”
최용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화부는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심했다.
원래 이 몸의 주인인 이민호는 수술과 관련 없는 과를 택할 생각이었기에 흉부외과 인턴과정을 시간만 때우자는 식으로 대충했지만, 신의로 불렸던 자신은 마인드 자체가 다르지 않은가.
화부는 살짝 머릴 긁적인 후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