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58
물론 그것은 현 정권에 반대하는 맞불 집회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그 ‘효과적인 설득 수단’이란
“더러운 반동들은 수그리고 있어라!”
“저 무늬만 사회주의자들을 박살 내자!”
“우와아아아아!”
부르쥔 주먹과, 무거운 가죽으로 만들어 채찍으로 쓰기 좋은 허리 벨트.
반쯤 우발적으로, 반쯤 계획적으로 각 시위대 간의 무력 충돌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 . . R7 구역에서도 충돌 발생. 반복한다. R7에서도 충돌 발생.”
그리고 세계에서 아마 가장 통신 기술이 발달했을 이 도시의 연락망 한가운데에 놓인 곳은 어디겠는가?
전파와 구리선으로 이뤄진 그물의 한가운데서 그 화음 같은 떨림을 감지해 내는 곳이 어디겠는가?
“트로츠키 동지? 반대파 시위대가 정부에 크게 저항하고 있다 합니다. 지금 주된 무력 분쟁이 일어난 곳은 ‘루소 광장’, ‘자유 거리’, ‘레닌 대로’의 총 세 곳입니다.”
“치안군들을 배치하고 폭동을 적당히 제어하게. 하지만 전체적인 진압은 정치적 표현권의 침해로 보일 여지가 다분하니 그쯤만 해 두게.”
바로 원산 해안의 켈틱 1호, 트로츠키의 집무실.
그 원산 동부에 치우친 해안 지역으로부터 마치 거미줄이 뻗어 나가듯 정보망이 펼쳐졌다.
그곳에서 트로츠키는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처럼 가만히 그물의 진동을 주시했다.
내무인민위원회에 지시를 내리며 트로츠키는 막힘없이 공문을 써 내려갔다. 괜히 사태를 확대하게 될까 싶어 트로츠키 이하 인민 위원들은 논설 외에 직접적인 정치 행동을 자제했다.
또한 어차피 지금의 사태에서 반정권 진영은 소수다. 자연히 이번 시위대 간의 충돌에서 정치적 타격을 크게 입는 것은 그들이 될 수밖에 없다.
트로츠키는 갖은 문서에 서명을 휘날린 뒤 책상 위의 벨을 울렸다. 곧 휘하의 공무원들이 이리저리 해당 문서들을 들고 날라 가기 시작한다.
인구 30만을 넘어가는 대도시에서의 행정력 투사란 치열한 전쟁과도 같았다. 트로츠키의 서명이 날인된 명령서들은 곧 곳곳의 치안 유지 병력에게 닿을 것이다.
시민들과 큰 무장 차이는 없지만, 제복이 주는 안정감과 적법한 폭력이라는 권위 덕에 사람들은 거기에 잘 순응한다. 시위는 일정 온도 이하로 유지될 것이다. 유혈 사태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러나 걸리적거리던 목소리들은 몰락하게 되리라.
* * *
“여러분! 저들의 반동적 행태를 더 좌시할 것입니까?”
“아니요!”
“저, 마리 블레어는 저들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조선의 영의정으로 부임하시며 고아로 지내던 저를 입양하시고 양심과 신념을 가르치셨습니다. 많은 책을 밤마다 읽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구절들 중 어느 곳에도 불의를 좌시하란 말은 없었습니다! 저러고도 저들이 사회주의자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무찔러야 합니다!”
“그럼 갑시다!”
“우와아아아아!!!”
“저기 레닌 대로에 반동들이 있습니다! 투쟁!”
선동가들이 외치는 구호에 따라, 지시에 따라 시위대들은 각기 움직인다. 각 조직의 깃발들이 거의 20년 만에 먼지 쌓인 창고에서 꺼내져 이 대규모 전쟁을 위하여 동원되었다.
영국 독립노동당, 미국 공산당, 프랑스 사회당 등등. 이제 색깔이 바래고 그 쓰인 글씨는 거의 읽을 수 없게 되었더라도 조직적 단결과 신호 전달에는 유용한 것들이었다.
이는 주로 친(親)정부 진영이 차지하였다.
그 이외에도 다른 깃발들 역시 보였다. 상대적으로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튼튼하고 깔끔하고, 넓은 텐트 천에 자신들의 소속과 그 상징 문장을 새겨 넣은 것들이었다.
이는 주로 기존의 조직 기반에 의존할 수 없어 취미회나 향우회로 결집하던 반(反)정부 진영의 것들이었다.
옛 깃발과 새 깃발들이 뒤엉킬 때, 흥분에 찬 함성과 땀내 나는 육체들 역시 충돌했다.
젊은 2세대 원산인들이, 부모 세대가 휘날리던 깃발 아래서 행진하며 상대방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뱃가죽에 발길질을 해 댔다.
그러나 양 시위대는 강렬한 열정 속에서 고통을 잊은 듯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좌파들의 전통적인 모욕용 언사들(우익기회주의자 또는 좌익소아병자, 분파주의자 또는 패권주의자, 교조주의자 또는 수정주의자)뿐 아니라 격정에 찬 욕설들이 서로를 향했고, 물론 그 와중에도 벨트를 빙글빙글 돌려 상대의 콧대를 가격하는 일들을 잊지 않았다.
오랜만에 진행되는 대규모 시가전에서 양측 모두 열성적이었으나 무질서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들의 격돌 속에서 길 양편의 가게와 주택들에 있던 주민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의 깃발을 흔들고 쓰레기를 창밖에 던져 댔다.
“바냐?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지?”
“소문으로 듣기로는 당장 존 브라운 대로나 코뮌 거리에서도 전투가 일어났다는데 잘 모르겠어. 연락선으로 보내 놓은 녀석들이 아직 안 돌아왔단 말이지… 마리, 내가 한번 살펴봐야 할까?”
“어차피 치안군에서는 전장을 한곳으로 모으는 게 속 편할 거야. 어느 쪽이 되었건 간에 여기 루소 광장으로 모일 테니 수뇌부 인력을 쪼갤 바에야 여기서 전투에 집중한다.”
마리 블레어는 끼고 있던 장갑을 내던진 뒤, 눈앞의 광란을 노려본다.
역겨운 새끼들. 어차피 저기 있는 것들 중 태반은 폴란드니, 프랑스니 하는 곳들은 밟아 본 적도 없는 2세대들이다. 그러면서도 쇼비니즘의 냄새를 슬슬 풍겨 대니 역겹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그러다 이젠 그냥 트로츠키가 내놓는 정책마다 반대한다. 그가 민족주의를 탄압해서라는 이유 역시 감춰 둔 채 언급하지 않는다. 고상한 혁명적 이상에 더러운 열망을 묻히면서 말이다.
“어차피 시위대 인원들은 치안 병력들이 알아서 여기로 모아 주겠지.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가 이기면 다 이긴다. 싹 다 밟아 버려.”
“좋아. …1열은 뒤로 물러나라! 지친 놈들은 뒤로 빠지고 2열들 준비해! 저 새끼들, 악에 받쳐서 몰려온다!”
* * *
트로츠키가 손가락을 휘젓고 말 몇 마디를 꺼낸다. 지도에 선을 그어 가며 전략 전술을 짜낸다.
“K7에서, R8 구역까지 소개하라. 그리고 해당 경로의 민간인 통행의 통제를 지속하라.”
그러면 전화와 전신을 통해 각각의 부대로 정보가 전달된다.
“빌어먹을! 더 밀어붙여! 지금 여기뿐 아니라 존 브라운 대로에서도 전투가 일어났단 말이야!”
“K7에서 R8까지 막아! 루소 광장까지 시위대를 끌어들인다!”
“퇴로가 막힌다! 치안군들이 가까이 온다!”
루소 광장의 시위대들을 서서히, 내무인민위원회에서 파견한 치안 병력들이 조여 왔다.
보병과 보병 사이의 근접전은 로마 시대 이래 크게 달라진 양상이 없기에, 그들은 방패 벽을 이루어 이들을 포위했다.
개중 날붙이가 번쩍이거나 불씨가 붙은 술병이 보이면 그 ‘과격분자’들만 끌어내어 체포했을 뿐 충돌 자체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그저 도시의 넓은 공간을 그들에게 허락한 뒤 중요 시설이나 민간 피해가 없도록 자제시키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관리가 용이하도록 탁 트인 하나의 공간으로 몰아 놓는다.
그러나 싸움에서 밀리는 쪽에게는 느낌이 좀 다를 수밖에 없는 법이다.
“개새끼들! 죄다 한통속인 게 틀림없어! 분명히 트로츠키가 조종하는 게 분명해!”
날아오는 달걀을 피하며 코발치크는 소리친다. 그러자 그의 벨기에인, 체코인 동료들 역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스페인행 의용병들은 히틀러가 라인란트를 재무장하고, 프랑스의 왕당파들이 대로변에서 행진하며, 발칸의 곳곳에서 애국주의적 테러리즘이 자행되던 1936년에서 왔다. 민족과 국가의 이름이 무엇보다 성스럽던 시절에서.
물론 이제 그들도 거의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며 늙었다. 트로츠키 역시 여전히 정력적인 혁명가였으나, 백발의 머릿결에서 점차 힘이 약해지는 노인이 되었듯.
그러나 대부분 20대, 30대이던 의용군들은 40대, 50대가 되어서도 조국을 놓지 않았다. 그들은 자식에게 조국의 역사를 속삭였다.
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공공연히 말하지 못하게 만든 트로츠키를 증오하면서.
이번 사태에서도 이들은 관성적으로 정부에 반대 성명을 냈고 가두 행진을 벌였다.
큰 실수였다.
하필이면 시위대 사이에 연락이 꼬여서 광장 쪽의 인원수가 적다. 여기서 일단 밀리는 중에 다른 병력들이 더해지더라도 각개 격파당할 위험이 크다.
“젠장, 일단 버텨! 특히 레닌 대로 쪽 바리케이드를 놓치면 안 돼! 거길 밀리면 끝장이다!”
“하지만 그쪽에 시위대를 모아 놓으면 광장에서 싸우는 데 우리가 쪽수로 밀려!”
“제발, 폴린! 나중을 생각해 보란 말이야! 레닌 거리 쪽은 우리가 더 쪽수로 밀리는데 그쪽에서 병력들이 합류해 오면?”
“…좋아. 일단 내가 일선에서 사기를 고취시킬 테니까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너희들도 다른 거리들에서 광장으로 통하는 입구들을 통제해! 단, 코뮌 거리 쪽은 막지 마! 그쪽은 우리가 우세하니까!”
명령을 내린 뒤, 코발치크는 바리케이드 설치용으로 가져온 폐(廢)가구를 발로 걷어차며 손에 들고 있던 구깃구깃한 신문지를 펼쳐 보인다.
―“소련 외무인민위원 스피리도노바, 쇼비니즘의 발흥에 ‘깊은 우려’ 표현.”
“다들 기억해! 트로츠키가 던져 주는 떡고물에 만족한 빌어먹을 새끼가 우릴 버렸으니, 이번 전투에서 밀리면 이제 우린 정치적으로 끝장이라고!
요나스? 넌 뭐 해? 당장 독일인 사냥 모임의 병력들을 끌고 광장 서쪽 면으로 나가야지!”
“광장 서쪽 면은 이미 막혔어!”
“뭐? 빌어먹을 짭새들이 코쟁이 트로츠키 말에 홀려서….”
“아니, 시민들이 막아서고 있다고!”
“뭐?”
급히 코발치크가 고개를 돌리자 숱한 플래카드들이 루소 광장의 서쪽 면 상가들에 널려 있었다.
―“표리부동한 쇼비니스트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꺼져라!”
―“구역질 나는 애국주의 돼지들! 너희는 통과 못 한다(No Pasaran)!”
그리고 던져지는 오물과 쓰레기 더미에 반정권 진영의 누구도 다가가지 못한다.
“이… 이… 빌어먹을!”
“아직도 모르겠어? 저 시위대의 수장을 봐! 마리 블레어는 조선 출신이고 다른 시위대 구성에도 조선인 천지야! 그런데 우리는?”
민족주의자들은 봉기에 있어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지난 20년 동안 의용군 출신들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던 것은 그들이 사회주의적 이념과 사상에 익숙하고, 그들이 숙련 노동자의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30만 명이 넘어가는 도시 인구 대부분은 조선인이다.
그들과 동떨어진 일부 의용군들의 애국주의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저쪽 시위대가 우리랑 규모부터 차이 나는 이유를 모르겠어? 우린 이미 진 거야!”
“아냐!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어! 지금 코뮌 거리에서 지원 인력만 오면!”
“여, 여기! 코뮌 거리 쪽에서 도착했다!”
“이제 됐….”
그러나 잠시간의 희망을 찾으러 고개를 돌린 수뇌부들은 좌절했다.
“A조! 지금 거리를 통제해! B조! 코뮌 거리에서 해산한 이들에게는 귀가로를 터 줘!”
코뮌 거리의 전투는 이미 끝나 있었다. 그 말인즉, 인력이 우세하던 곳에서도 패배해 해산됐으니 유일한 병력 우세의 가능성이 무너졌다는 뜻이다.
―파샥!
그리고 마침내 왼뺨에 썩은 달걀이 날아들고 나서야 그는 깨닫는다.
“일단… 패배다.”
전투의 열기가 식으니 그제야 사방의 상가 건물에서 날아오는 휴짓조각과 손가락질이 자신들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 보인다.
그들은 조선계를 포섭하는 데 소홀했고, 그 대가를 치렀다.
조여 오는 치안군의 포위망이 그들을 가두리 망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방패 벽의 연동 운동에 시위대는 뿔뿔이 쪼개져 해산되어 간다. 몇몇은 이제 피아 식별조차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전투는 끝났다.
“이제야 앓던 이가 빠졌군.”
그리고 그 보고를 듣자마자 트로츠키는 안도감 어린 미소를 지으며 등받이로 몸을 기댄다.
이 짜릿한 승리를 자축하면서.
* * *
/ 작가의 말
2부 시작합니다.
마리 블레어는 물론 가상 인물입니다.
그 많던 사회주의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1)
20년 전의 원산이 아무리 궁벽한 어촌이었을지라도, 그래도 잘사는 사람 한 명쯤은 살았을 것이고 잘 지은 기와집 한 채쯤은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년 전 원산의 호장이던 김밀이 자리하던 저택을 살펴보자. 그래도 나름 근방에서는 나으리 소리도 듣고 직첩도 받던 어르신이다.
아무리 나라가 속현을 폐하느니, 호족을 짓누르니 하여도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처럼 꽤나 그럴듯한 저택 지어 놓고 떵떵거리며 살았다.
호족이라고 관로도 막힌 이가 굳이 청빈의 도를 따를 필요도 없었으니, 꽤나 드넓은 와옥을 지어 놓았다. 거기에 청기와니 금박이니 이런저런 장식으로 꾸며 그럴 듯한 외관을 아직까지도 유지하지 않았는가?
그런 건물들 중 몇몇은 원산이 여러 번 개발되는 와중에도 헐리지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개발 예정 구획들에서 운 좋게도 벗어나 있었던 것들, 그중에서도 세월에 못 이겨 폭삭 주저앉지 않은 것들, 자재가 다른 곳에 활용되기 위해 헐렸거나, 보존되는 대신 공원으로 개조되거나 하지 않은 것들.
거기서도 다시 입지 조건이 잘 맞는 가옥들은 곧 창의적인 젊은이들의 손에 개조되었고, 그들의 회합 장소로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정치 경제학을 전공하는 이들의 토론장이 되었고, 용접공 실무 시험을 준비하는 연습 장소가 되기도 했다.
별생각 없이, 그저 대학을 다니며 성인이 되어 가는 청년들의 만남의 장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방치된 목조 주택에 입주해 있기 마련인 바글바글한 개미 떼와 새로운 인간 입주자 사이의 전쟁이 벌어졌지만.
그러면서 분홍색과 청록색으로 칠해진 독특한 단청이 칠해지거나, 사방에 낫과 망치가 그려지는 등의 기묘한 외관 변화를 겪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젊은이들의 미감은 난잡하고, 유지 보수 작업은 게을렀다. 수백 명의 기술자와 수십 명의 디자이너가 어떠한 감독도 받지 않고 따로따로 움직인 결과 저택은 지구상에 존재하던 온갖 예술 양식들이 난교한 결과물 같은 기기묘묘한 외양을 띄었다.
“건배!”
“승리 만세!!!”
그래도 상시 활기찬 분위기를 유지하기는 했다.
“그 새끼들 봤어? 전부 도망갔다고! 전부! 방패 벽까지 부딪혀서는 어떻게, 움직일 데도 없이 벌벌 떨다가 말이야!”
“아하하하! 진작 도망가려고 했던 놈이 말은 많아!”
특히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오늘 같은 날은 더더욱 열광으로 도취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말과 말이, 술잔과 술잔이, 고성에 고성이 부딪혔다. 그러나 이 흥분된 젊은이들을 굳이 말리려 드는 주위 주민들은 없었다.
2층으로 가는 계단에는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이리저리 휘갈겨 놓은 낙서들이 벽에 걸려 있고, 당연히 분위기에 취한 젊은이들 역시 이리저리 걸터앉아 어제의 무용담을 떠벌리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2층으로 걸음을 옮긴 마리 블레어는 곧 바깥의 발코니(당연히 제대로 된 조선식 가옥에 그런 게 달려 있을 리 만무하니 불법 증축의 성과였다.)를 통해 몸을 내밀었다.
모두가 그를 발견하자 흥분감에 소리쳤다. 노래를 부르던 이들은 노래를 멈췄고, 대화를 나누던 이들 역시 환호성을 지르며 그에게 술잔을 흔들어 댔다.
선전용 포스터들이 외벽과 지붕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대문에는 붉은 깃발과 ‘혁명이 아니면 죽음을’ 같은 다소 유치한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휘날렸다.
그 모든 광경이 몹시도 비현실적이었다.
그저께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치기 어린 젊은이들의 모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처음으로 거대한 정치적 승리를 거두고 나니 다들 의기양양함과 정열로 가득 차 있다.
자신들이 소련의 정치 지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자부심으로 모두가 벅차오른 듯했다.
“동지 여러분!”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마리 블레어가 외치자 다들 박수와 건배와 함성으로 답한다. 마리 블레어 역시 술잔을 들어 보이다, 단번에 그 내용물을 마셔 넘기고 집어 던진다. 구리로 된 술잔이 마당 바닥에 팅, 팅, 소리를 내며 튕겨 올랐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맞다! 맞다! 우리가 이겼다!”
“우라! 트로츠키 우라! 소련 우라!”
“우리가 반동주의적인 쇼비니스트들을 꺾고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와아아아아!”
이들, 원산의 2세대들, 원산이 아닌 다른 곳에 대한 기억이 없는 이들.
이들의 눈에 얼마나 저 ‘반동주의적인 쇼비니스트’들은 이상할 뿐이었다. 어째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추억한다는 말인가?
심지어 반대 시위대도 그들처럼 원산 이외에 다른 고향이 없는 2세대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하다. 일단 무력 충돌이 일어나고 힘을 써야 한다면 20대는 된 젊은이들이 주축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들이 자신들의 반대편에 섰다는 사실, 그리고 밟아 보지도 못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움직이는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이 바라는 것이 자신들 민족의 생존과 부흥이라면 더더욱.
‘민족’이라는 개념이 아직 유럽에 존재하기도 전에, 민족적 착취를 막아야 한다느니 민족에 대한 억압을 끝내야 한다느니 하는 언어도단이 발생하지 않는가?
그걸 트로츠키가 ‘허깨비를 위한 쇼비니즘’이라며 비웃기도 했고.
어찌 되었건 싸움은 일어났고 그들은 나섰다.
그리고 이겼다.
“사회주의 만세! 혁명 만세!”
“우라아아아!”
“우리가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