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64
“괜찮소. 저리 의견을 여반장(如反掌)으로 바꾸니 참으로 소인이 아니오? 소인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항설에 흔들리지 않음이 곧 군자의 항심이라오, 동지도 기억해 두시오.”
그리 말하며 이징옥이 이아구의 잔에 술을 가득 따른다. 이아구가 받아 마시고는 다시 주위 사람들에게 술을 따른다. 대부분 원산인이나 조선인, 그리고 이아구가 데려온 몇 안 되는 만주인들이다.
그중에서 터번을 두르고 치렁치렁한 백색 천옷을 걸친 선주민이 한 사람, 그는 머뭇거리다가 이아구에게서 잔을 받는다.
“드시지요. 성함이 뭐라 하셨습니까?”
“아즈만(Azman)이라 합니다….”
“일어나시지요. 이제 당신은 잔지바르 서부의 행정 담당 총책입니다. 어찌 눈을 그리 내리깔고 비굴하게 계신단 말씀이십니까?”
이아구가 어깨를 두드리자 터번을 쓴 남자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이아구를 마주 본다.
“이 땅에 참으로 혼란이 많았습니다. 노예상들이 들어오고, 그들이 원주민들과 통혼하고, 사로잡힌 노예들이 이 땅에 모였다가 다시 아라비아 곳곳으로 팔려 갑니다. 이 도시의 부와 명예와 영광은 모두 여러분 노예들의 피와 눈물값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 맞습니다!”
물론 남자 또한 흑인이지만 페르시아계 혼혈로서 오랫동안 이곳에서 무역상 노릇해 왔으니 노예 취급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침 이들이 찾아왔을 때 향신료로 업종 변경을 했으니 이 역시 행운아만이 가질 수 있는 기회일지라.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왜 이 땅에서 흑인 노예들이 그리 사로잡혀 갔는지 아십니까?”
“그건….”
“교만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저는 답을 압니다. 적어도 알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아구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해안을 내다본다. 아직 재건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소련의 자원이 많이 투여되지 않아 곳곳에 허물어진 건물들과 타고 남은 잔해가 눈에 띈다.
그리고 그 해안 너머로 30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대한 대륙.
사하라 사막으로 막혀 유럽과 아랍으로부터 독립된 세계, 생산력이 부족하여 부족 국가 이외의 정치체가 들어서기 어려운 세계.
“바로 아프리카에 민족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과연!”
“우리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민족 국가를 세운다면 부족끼리의 다툼 끝에 노예로 팔려 가는 이들이 있겠습니까? 아랍의 노예상들이 감히 접근이라도 하겠습니까?”
이아구의 일장 연설을 아즈만은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다. 물론 현란하고 복잡한 내용이다.
로밀리와 그 동료들이 어떻게든 그 뜻을 풀이해 가며 전달해 주었기에 그의 납득 과정이 이아구의 생각과 일치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아구가 아즈만의 손을 쥐고서, “저 아프리카를 하나로 통합합시다!”라고 외쳤을 때 보인 그의 감격스러운 반응 역시 그러했다.
아무튼 간에 이아구는 만족하고, 이징옥 역시 아무튼 이 땅을 덕화한다며 기뻐하고, 아즈만과 눈치만 보며 멀뚱멀뚱 있던 다른 도시의 새 대표까지 만세를 부르짖으니 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뭐가 이뤄지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그곳에 아무도 없었지만.
“그러고 보니 로밀리 동지, 제가 아까 맡겨 두었던 서찰들은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아, 마침 제가 가방 주머니에 넣어 두었으니….”
“건네주시겠습니까?”
이아구는 로밀리로부터 습기 먹은 종이 몇 장을 받아 다시금 펼친다.
―“저희는 이아구 동지의 민족 정책을 완전히 지지합니다! 헌데 이아구 동지의 노선이 원산 내에서는 외면받으니…. ―원산 민족자주연맹 당 지도부 배상―”
―“잔혹한 포르투갈과 아랍 노예상들의 손아귀로부터 동포들을 해방해 주신 데 대해 무한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아울러 앞으로의 연대 사업에…. ―흑인 권익 향상을 위한 듀보이스 연대로부터―”
“보십시오! 우리 정책에 대하여 이제 원산에서도 인정하지 않습니까!”
이아구는 활짝 웃는다. 만주인들 역시 덩달아 일어나 손을 들어 올리며 “이아구 동지 우라! 만주 민족 우라!” 하고 외치니 왠지 모르게 창백해진 로밀리와 동료 학자들 말고는 모두가 희망으로 차 있다.
“…그런데 편지에 적힌 당명이 뭐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원산에서 시끌벅적한 큰일이라도 일어났나 봅니다.”
물론 그 ‘큰일’의 기원이 따지고 보면 자신들의 전쟁이지만 이곳에 서 있는 이들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뭐, 그런 잡다한 생각은 치워 놓고 이제 중대사를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아구의 말에 모여 있던 이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로밀리 동지? 같이 가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어느 경치 좋은 저택에 차려진 임시 사령부를 벗어나 두 사람은 삼엄한 호위 속에서 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곳곳에 포격에 무너진 잔해들과 매캐한 냄새가 가시지 않았으나 잿더미와 깨진 돌무더기는 조금씩 치워졌고, 시신들은 존엄을 지켜 매장되었다.
제대로 된 항만이 없어 정박에 꽤나 고생했지만, 이제 이곳에도 조금씩 방파제와 잔교와 선회장이 갖춰지고 있다.
물론 디에고 가르시아에서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면서 이뤄 내고 있는 결과이기는 하나, 어차피 유럽까지 가는 데 기착지 두세 곳은 더 건설해야 한다고 했으니 상관없으리라.
죽과 나물을 나눠 주는 급식소를 지나고, 간이로 지어진 난민 수용 목적의 천막을 지나치니 이아구는 북청의 수용소에서 머무르던 나날이 떠올라 잠시 감회가 새로워진다.
만주족공산주의대동맹을 세우고, 동지들과 밤낮으로 토론하던 그때!
“이아구 동지 우라!”
“만주 우라!”
“우라, 다들 수고하십시오.”
“넵!”
그 시절 멋모르던 청년들의 독서 모임이, 이제 한 나라를 일으키고 저리 충직한 동맹원들을 수만 명씩 거느리게 되었다!
이렇게 이역만리까지 그를 따라와 전 세계에 문명을 전파하겠다는 저 혁명 정신 가득한 동지들을!
저렇게 힘차게 행진하며 그에게 만주식 경례를 올려붙이는 동지들을! 원산에서 온 인사들은 기겁하지만, 이게 다 저들의 기백에 놀란 탓일 테니!
에드워즈 동지, 아니 스승님, 보고 계신가요? 제가 만주 민족 국가를 세우고 아프리카를 해방하는 중입니다.
부디 멀리 레닌그라드에서 흐뭇하게 지켜봐 주세요.
물론 ‘동아프리카와 인도양의 해방자’, ‘드막의 정복자’, ‘만주국의 건국자’ 이아구를 에드워즈가 봤더라면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라고 했겠지만.
아무튼 그런 시답잖은 생각들을 떠올리며 빙그레 미소를 짓다 보니 어느덧 그들이 타고 온 WRS 프리드리히 엥겔스 호가 눈앞이다.
다리를 건너 승선하니 익숙한 요동감이 발밑으로 올라온다. 복도 몇 개를 지나고 계단을 몇 걸음 오르니 한 객실의 문이 보인다.
“열어 주게.”
“네, 이아구 동지, 이징옥 동지!”
양옆으로 총을 손에 쥔 채 경비를 서던 병사들이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어젖힌다. 깔끔한 침대, 훌륭한 가구들, 그리고 모조리 깨져 있는 유리잔과 도자기 주전자들.
“저런…. 아깝게.”
이아구가 혀를 차며 지켜보는 끝에는 상처 받은 짐승처럼 경계심 가득하게 웅크린 한 남성이 있다. 객실 바닥에, 해도 안 드는 한구석에 초라하게 앉아서.
“어찌 남의 땅을 도적질하던 오랑캐를 이리 융숭히 대접하는지 모르겠소만.”
“그래도 저자는 귀족인 듯합니다. 대화와 협상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대접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징옥의 불만 토로에 대한 로밀리의 설명이 무색하게도, 남성은 호사스러운 객실과 대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고 그들을 노려본다.
“제주스 크리스토(Jesus Cristo)…! #*#%#! $%&#!!!”
“뭐라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겠소?”
“중세 포르투갈어인 것 같은데, 예수 그리스도 말고는 알아들을 수 없군요.”
“말을 걸어 보시오.”
“알겠습니다.”
로밀리가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서자, 그는 적과 대화하는 유럽인이 있다는 사실에 잠시 놀란다. 그러다….
“레바테(Levate, 일어나시오).”
“마, 마, 맙소사… 당신은 누구요? 어째#%#… 저 잔인한 야$#인들과 함께 …$^%는 것이오?”
“내가 누군지는 알 것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잔지바르를 침공하던 당신네들을 막아섰을 뿐입니다. 잔인한 것은 이 땅을 침공한 그대들이 아니겠습니까?”
“대화가 진행되오?”
“예, 이아구 동지. 라틴어로는 온전하지 못하더라도 소통이 되는군요.”
여전히 네다섯 세기 정도 되는 시대적 간극이 있기야 하나, 이제 적어도 대화가 가능하기는 하니 로밀리는 그에게 편집증적으로 라틴어를 가르치던 원산의 잉글랜드계 노귀족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 세상 쓸모없어 보이던 언어가 언젠가 쓰일 때가 있을 줄이야.
그래도 조금씩, 이건 뭐고 저건 뭐냐, 같이 어린아이 말 가르칠 때와 같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두 사람 사이의 오차가 점차 줄어들어 간다.
그리고 나서야 초조하게 기다리는 이아구와 이징옥 동지를 위하여 본격적인 대화로 진입한다.
“어쩌다, 무슨 목적으로 잔지바르를 침공했습니까?”
“아프리카 남단을 따라 연안 항해를 진행하는데, 이교도들의 무역선이 있기에 약탈하였소. 이들이 도망치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이곳이었고.”
“왜 침공했답니까?”
“단순 약탈 목적이랍니다.”
“도적은 역시 목을 베어야 하지 않겠소?”
모르는 말로 로밀리가 이아구, 그리고 (특히 험상궂은 데다가 기골도 장대한) 이징옥과 대화를 나누니 상대는 점차 겁에 질리기 시작한다.
“죽이기 전에 신분부터 물어봅시다, 이징옥 동지. 로밀리 동지? 계속 진행해 주십시오.”
“당신의 이름과 신분을 말하십시오.”
“…에스테방 다 가마(Estêvão da Gama).”
“당신의 주군이 포르투갈과 알가르베스의 왕 아폰수 5세가 맞습니까?”
“그렇다.”
“어떻게 이곳까지 온 겁니까?”
로밀리가 손짓하자, 선원들이 부서진 가구와 유리 조각들을 쓸어서 치우고 카펫과 의자를 놓는다.
헝클어진 머리로 짐승처럼 옹송그려 있던 다 가마에게 자리를 권하자, 그 역시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나 차분해졌는지 자리에 앉았다.
“…이교도의 재앙이 둘이나 도래하였소.”
“에센과 메흐메트 2세 말입니까?”
“당신들은 어느 곳의 사람들이기에 유럽의 상황을 그리 꿰고 있는 거요?”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네들 사정이나 계속 얘기하시죠.”
위기와 공포감이 전 유럽을 뒤덮었고, 유럽 세계는 구심점을 필요로 하였다. 이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 다양한 세속 군주들 간 갈등을 봉합하고 그 힘을 하나로 모을.
그리고 그 유일한 구심점으로서의 교회가 힘을 얻고 부상한다.
“새로이 선출된 교황 성하께서는 프레스비테르 요한네스(Presbyter Iohannes, 동방에 있다고 여겨지던 전설 속 기독교 군주 사제왕 요한)을 찾으라 포르투갈의 주앙 2세께 명하셨소.”
그렇게 동쪽에서 동맹을 맺어 함께 이교도들을 몰아낼 기독교 군주를 찾아, 포르투갈인들은 반쯤은 소금물, 반쯤은 전설과 허구로 이루어져 있던 미지의 바다를 탐험했다.
유럽보다 거대한 아프리카의 해안에 크게 놀라기도 하고, 중간 기착지들을 급한 대로 건설하며 이 광대한 영토에 욕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희망봉을 넘어 인도양에 진입하며, 그 대표적인 무역항 잔지바르에 닿았다.
“그들은 우리가 요구한 교역(물론 초라한 가죽옷에 막대한 식량과 향신료를 요구했으니 로밀리가 듣기에는 실상 약탈이지만.)을 거부했고, 우리는 전투에 돌입했소. 그러다 마주치게 된 거요.”
“그럼 이제 자세한 사정은 되었습니다.”
로밀리는 이아구와 이징옥의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던져야 할 질문들을 천천히 선별했다.
조선과 원산이, 소련이 달성해야 할 목적은 무엇인가?
“당신들은 잔지바르를 침공했습니다.”
“그게, 뭐 어떻다는….”
“그리고 잔지바르는 우리 조선 고유의 영토입니다.
‘잔지바르’라는 도시의 이름을 듣고도 모르겠습니까? 섬의 드넓은 잔디들을 보고 조선인들이 ‘잔디밭’이라 부른 것이 잔디밭… 잔지밭… 잔지발… 잔지바르… 로 변한 것 아니겠습니까?
본래 조선인들이 세운 식민지를 침공했으니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할 수밖에요….”
“…뭐요?”
“요지는 당신들은 우리 영토를 불법적으로 침공했고, 정벌되었다는 겁니다. 배상금을 요구합니다.”
포르투갈과의 무역.
압도적인 조건 아래서 이뤄지는, 그런 무역.
* * *
약을 쳐 보자고 생각한 계기는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만나 보았던 기이한 사학자들.
“원산에서 온 박물학자라 하셨소? 마침 우리 사족들끼리 원산의 학술서들과 아조의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서를 모아 독자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데, 한번 보시겠소?”
“물론입니다.”
―“아메리카의 부족 ‘아파치’는 사실 ‘아버지’에서 유래했다.”
―“고대 ‘수메르’ 문명은 사실 조선인이 세운 ‘소머리’ 문명이다.”
“음… 어… ‘독특한’ 주제들이군요.”
“하하하, 우리 민련 소속의 뜻있는 재야 사학자들이 이렇듯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려 노력하고 있다오!”
물론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예수가 태어난 갈릴리(Galilee) 지역의 유래가 갈리아(Gallia, 프랑스의 옛 이름)이며, 그게 바로 켈트인들이 초고대 문명을 세워 유럽을 정복하고 소아시아에 식민지를 건설한 증거라는 주장이 횡행했다.
지금 저들이 공자는 사실 조선인이었다고 주장하듯, 그들 역시 예수는 프랑스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런 약간 정신 이상한 소리는, 지금도 의용병 출신 중 파시스트 냄새가 나던 노친네들과 어울리다 보면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으니 로밀리 역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런 날조를 하는가?’이다.
“조선(Tioson)…? 나, 난 몰랐소. 이곳이 그대들의 강역인지는, 이리도 강대한 함대를 꾸린 이들의 땅인 줄 알았더라면 침공하지 않았을 것이오. 헌데 이 근방을 나다니는 아랍인들에게서 그런 얘기는 못 들었….”
“대리 통치를 맡긴 이들이 불충하게도 본국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그리하여 위엄을 드러내고자 이리 소소한 함대를 이끌고 온 것이죠.”
“강철로 된 괴물 두 척이 소소하다고 했소? 저건 배가 아니라 레비아탄(Leviathan)이오!”
“조선에서는 흔한 고깃배 수준입니다만.”
“맙소사.”
뭔가 한 번이라도 안 밟아 본 땅을 내 것이라 주장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은가?
“이곳은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에 우리 측에서는 페르시아의 상인들과 동아프리카의 흑인들에게 간접 통치를 맡겼으나, 근래 노예 무역이 횡행한다기에 다시금 통치권을 회수하러 왔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징옥 동지?”
“무슨 얘기를 하는 거요?”
“그냥 무서운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여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거구의 이징옥이 그를 향하여 눈을 부라리자 다 가마는 이제 반박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우리는 관대한 제국입니다. 당장 리스본을 불바다로 만들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불… 바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바라는 겁니까?”
“그, 그건 결코 아니오!”
“그렇다면 금화 30만 두카트라는 배상금 액수에 대해서도 합의를 볼 수 있겠군요.”
“나, 나는 외교관이 아니라 한낱 탐험가요. 모든 건 오직 포르투갈의 주앙 2세께서 결정 내리실 따름이오.”
“그렇습니까? 그러면 일이 쉬워지겠군요. 혹시 당신들 후속 함대 같은 건 없습니까?”
“그, 3개월쯤 뒤면 우리의 항로를 따라 한 12척 정도가 이곳에 도착할 것이오.”
“잘됐군요. 그럼 그들과도 ‘대화’를 나눠 보겠습니다.”
다 가마의 얼굴은 사파래진다.
“이징옥 동지, 감사합니다. 이제 무서운 얼굴은 푸셔도 됩니다.”
“어떻게 되었소?”
“말씀하신 대로 저들에게 목줄을 한번 감아 보려고 합니다. 해적질 따위 다시는 못 하도록 말입니다.”
바다 건너에 있던 것은 사제왕 요한이 아니라 공산왕 이홍위였으니,
유럽인들과의 첫 조우는 그렇게 화려하게 막을 올린다.
* * *
/ 작가의 말
플롯 담당이 현재 일정이 생겨 당분간은 연참이나 본편 진행이 더뎌질 듯합니다.
기억의 재현 (1)
정당이란 결국 근대 국가의 정치와 시민 사회를 연결하는, 국가와 시민 사회의 사이에 낀 조직이다.
시민 사회에서 올라오는 다양한 요구들을 취합하고 정리해서, 정치에 반영하는 결사체인 것이다.
정당은 그렇기에 좁게는 당원들을, 그리고 넓게는 그 지지자와 정당이 타깃으로 삼은 지지층을 대변한다. 정당을 통해서 일개 인민들 역시 거대한 규모로 돌아가는 국가 대소사에 참여하여 자신의 의지를 (부분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