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70
이 새 사서를 통하여 에센의 제국은 칭기즈 칸이 건설한 예케 몽골 울루스의 적통이 되리라.
또한 새로운 제국이 무구한 번창의 길로 들어섰음을 만방에 알리리라. 새로운 역사가 그 기념비적인 시금석이 되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아들이, 그 아들의 아들이 다스릴 제국의 초석이 되리라.
이 빛나는 영광이 영원토록 이어지도록, 광활함과 역동성을 잃지 아니하도록.
학사들은 바삐 붓을 놀리고, 오랜 사서들을 다시금 발굴하여 먼지를 불어 가며 읽어 나간다.
에센이 불태워 버린 보르지긴의 족보와 중요한 자료들의 부재에 조심스레 한탄하기도 하고, 서로가 가져온 사료 중 무엇이 옳은지 옥신각신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에센의 기대가 가득 담긴 사서는 완성되어 간다.
주치인 울루스를 정벌하고 돌아온 에센이 만족스레 그 집필 현장을 시찰하니, 족히 수백의 학자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학자들의 이런저런 설명과 후원자인 자신에 대한 추앙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에센은, 문득 한 가지 잊고 있던 바를 떠올린다.
아락투무르는 잘하고 있나?
* * *
―“전리품을 분배하겠다! 각자 줄을 서라!”
―“황금 십자가? 흠, 아랍 놈들에게 팔아먹기는 애매하겠는데?”
―“가끔씩 이교도 문화에 관심 있는 놈들이 있으니 그런 작자들을 찾아가 봐야지. 아니면 그냥 녹여서 금으로 팔게나.”
밖에서는 전장이라기보다는 시장 바닥에 가까운 분위기가 풍기는 왁자지껄한 잡음이 들려온다.
주치인 울루스와의 전장이 마무리되자마자 아락투무르는 곧바로 돈강을 건너 우크라이나 일대로 넘어갔다.
그는 초토화되어 있을 성채들과 곳곳에서 지펴질 연기, 화마에 춤추는 군중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폴란드 왕 전하께서 이 마을에 머무신다!”
“뭐? 폴란드 왕?”
“한번 구경이나 나가 봄세. 타타르 상전을 모시게 되었으니 한번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그래.”
평화롭고 목가적인 농촌.
잘만 가꿔진 밀밭과 보리밭.
거기서 세금이나 따박따박 걷어 가는 루스인들과 몽골 전사들.
아무리 봐도 그의 천막과 행차를 구경하러 나온 인파는 꺾이고 무릎 꿇려진 피정복민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냥 팔자 좋은 농군 무리가 아닌가?
“흠….”
아락투무르는 웅성거리는 이들의 무리를 보며 의아함을 느낀다.
한편에서는 몽골 전사들이 전방에서 얻은 전리품을 분배하며, 한편에서는 앞서 언급한 구경꾼들이 그를 보고서 손도 흔들어 보고 뭔가 외쳐도 본다.
대체로 나른한 분위기. 그것도 전쟁이 한참인 와중에.
그래도 이 지역 정도면 주치인 울루스와의 접경지대이니 전투를 겪을 일이…
…있을 리가 없나?
이미 한참이나 세력이 꺾여 있던 주치인 울루스, 카간의 치세 아래 재건된 교역망을 통해 다시금 부흥하나 싶었던 주치인 울루스.
생각해 보니 그걸 마지막으로 작살낸 게 자신의 군세 아니었나?
그가 열심히 도시를 불태우고 인마(人馬)를 척살하는 동안, 지금은 목이 달아난 사라이의 칸에게 루스 방면에 세력을 투사할 여유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그 상태에서 몽골―러시아 군은 끊임없이 서진하여 이 일대는 평정되었을 터이고.
어쩌다 보니 최전선에서 최후방이 된 우크라이나는 어느덧 동유럽계 원산인들이 대피시킨 인파들이 하나둘씩 정착한 민족의 박물관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의 도래를 보고 이 유럽인들 중 상당수는 두려워하긴커녕 기쁜 마음으로 환영하기까지 한다.
이는 당연히 몽골에서 보낸 군주가 파견되었다는 사실이 곧 교역의 재개를 의미하는 바이기 때문이었다. 군주의 뒤를 따라서 곧 다시금 동방의 상인들이 이곳으로 돌아오리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다.
“하지만 유럽은 지금 전쟁터 아닌가? 어떻게 무역을 재개한다는 것이지?”
“크림반도 쪽에 제노바인들의 식민지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와 암암리에 동맹을 맺은 상태인데 그들이 흑해와 지중해를 통하여 유럽으로 상품을 유통하는 역할을 도맡습니다.”
거기에 더해 궁여지책으로 한자 동맹의 상인들과 협약하여 만든 발트해 교역선까지.
그 모든 숭고한 종교적 신념보다도 한 줌 은화가 더 귀했던 상인들이 만들어 낸 위업이었다.
이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숨통 트일 정도만큼은 교역이 재개되리라.
그렇게 뜻밖의 환영 인파를 헤치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입성한 민스크(Minsk)에서 그는 세 ‘방면군 사령관’이라는 이들의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폐하께서 자신을 폴란드 왕으로 봉하면서 ‘유럽 방면 총사령관’이라는 생소한 호칭을 내렸었는데, 이게 소련식 관제와의 호환을 염두에 둔 것이었나 보다.
“우선 우크라이나 일대는 지나오면서 보셨듯 모두 평정되었습니다, 전하. 크림 칸국 역시 복속되었는데 모두 아카토프의 공이지요.”
우선 바토르스키가 설명했다.
“현재 폴란드인은 자신들의 영역으로 도망쳐 가고 있으며, 리투아니아에서 꽤 넓은 영역이 우리의 차지입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몰다비아를 손에 넣어 육로로 오스만, 헝가리와 연결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르바초프가 자신만만하게 덧붙였고.
“리보니아 연맹 역시 궤멸 직전입니다. 그 덕에 발트해 교역로가 안정되었으니 전하께서 데려오신 상단들 역시 레닌그라드를 통하여 안전하게 발트해 판로로 접촉할 수 있습니다.”
아카토프가 차분히 정리했다.
우크라이나의 동부와 남부는 순조로이 점령되었다. 리보니아(Livonia, 지금의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일대)와 이곳 민스크도 장악이 되었다.
허나 키예프, 릴스크, 슬루츠크 등의 도시는 아직 정복되지 않았으니 지도를 펼쳐 보면 북쪽의 발트해 인근과 남쪽의 우크라이나 인근으로 펼쳐나간 몽골―러시아군이 유럽을 둘러싼 형국이었다.
“왜 키예프와 이 인근은 정복하지 않을 건가?”
“아, 그곳에 남겨 둔 중부 전선은 일종의 ‘수확’을 위한 공간입니다.”
그러니까, 한 번 크게 약탈한 뒤 저항에 못 이긴 척 군세를 뒤로 물린다.
안도한 유럽인들이 방어를 위해 전사와 농부를 그곳에 내려놓는다.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쳐들어가면 짠, 인력이 재생된다?
다시 쳐들어가서 크게 약탈하고 이하 무한 반복.
그러니 요약하자면 잘 이겨 가고 있고, 사실상 뒷정리와 한탕 챙기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핏 전선의 돌출부로만 보이는 곳들이 실상은 인구 충원 겸 전리품 약탈을 위한 가두리 양식장이라는 것.
이곳에 적을 둔 이들이 많은 원산인들의 애원으로 우크라이나의 그 수많은 정착촌이 건설되었다는 것이고.
전쟁 중 후방에 그런 걸 마련할 정도라면 얼마나 전황이 널널한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이쯤 되면 전쟁이 아니라 사냥에 가깝지 않은가?
그렇기에 뭐, “크으윽! 전하, 이렇게 지원군을 끌고 와 주시다니 감개가 무량하옵고….” 하는 장렬함이나, “만세! 예케 몽골 울루스의 영광된 승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는 환희도 없었다.
‘뭐, 와 주셔서 고마운데. 우리끼리 그냥저냥 잘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편해졌습니다.’
…이 정도의 뜨뜻미지근함?
“크흠, 그러하다면 내가 줄 도움은 무엇이 있겠는가?”
혹시나 싶어 아락투무르는 다시금 물었다. 그래도 정예하며 장비도 잘된 그의 군세는 주치인 울루스를 선봉에서 무찌른 이들이다.
“변함없는 신뢰를 저희에게 주십시오. 전하의 신뢰와 지도가 저희를 승리로 이끌 것입니다.”
바토르스키라고 했나? 필요 없습니다, 라는 말을 참 세련되게 할 줄 아는 인재다.
카간 폐하께서 괜히 파란왕 작위를 상으로 내리신 게 아니었다. 벌어들일 일만 많으리라 말씀하신 바는 과연 공언(空言)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할 일이 없어진 아락투무르는 그들에게 신뢰와 응원(만)을 줬다.
그 보답으로 그들은 끝도 없는 전리품을 그의 호주머니로 꽂아다 주었다.
아, 카간의 은혜여! 정복자의 정신이여!
그날 창고에 쌓인 금은보화를 시찰하며 그는 마유주를 마시지 않고도 취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한세월을 그렇게 흥청망청 보내던 아락투무르는 어느 날 금화로 가득한 침상에서 눈을 뜬 뒤에 무언가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폐하께서 부탁하신 용무!’
“그래서 내가 맡긴 바는 어떻게 된 건가?”라고 물으며 머리가 텅텅 빈 아락투무르를 노려보는 카간.
그 광경을 상상하기만 해도 목 뒤 털이 삐죽 솟아오른다.
어차피 군공은 못 쌓고 재산만 쌓이는 신세.
당연히 시기와 질투 역시 쌓여 가고 있으니 아락투무르가 기댈 바는 카간 폐하뿐이다.
―“주치인 울루스의 반란과 같은 일을 방지할 대책을 생각해 오라.”
주치인 울루스의 불만 근저에는 결국 황금씨족이 아닌 페하에 대한 불만이 숨어 있었다.
폐하는 그런 그에게 제국의 새로운 정통성을 마련하는 문제를 맡기신 것이다.
이 역시 ‘우리는 한배를 탔으니 딴생각 말라’는 속뜻을 품고 있을 터.
그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폐하께 무슨 의미로 읽히겠는가?
아락투무르는 그제야 의관을 갖추고 동유럽 곳곳을 쏘다니기 시작한다.
예케 몽골 울루스가 존속해 나갈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서.
“그대의 왕이 도착했거늘 어찌 은화를 제때 준비해 놓지 않는다는 말이냐?”
“저, 저, 전하… 송구하옵니다! 지금 이 궤짝 안에 든 것이 저희가 마련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특별히 이번만은 봐주겠다만 다음에도 이런 불충을 보인다면 카간 폐하의 군세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야!”
…그리고 물론 새로운 수금처도 찾아서.
아락투무르의 뒷주머니는 두둑해지고, 폐하의 눈과 귀는 넓어지고, 항복하여 목숨만은 건진 어느 기독교도 영주는 수명을 연장하고.
모두에게 행복한 결과만이 이어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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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을 뒤덮는 숲 (3)
에센이 학자들을 위해 궁전 내부에 건설한 드넓은 전각.
청녹색의 유리 기와가 올라가 청명한 느낌을 주며, 그 아래로 붉은빛을 띠며 뻗은 기둥들이 대비감을 주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금이 입혀진 단청이 처마 아래로 들어온 햇빛을 반사하며 불이 붙은 것처럼 일렁이는데, 이 모든 화려하고 꼼꼼한 장식들에서 에센이 얼마나 이곳에서의 작업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지가 드러나 보인다.
그 아래로 쉼 없이 오가는 학자들, 책장에서 꽂히고 뽑히길 반복하는 고서들, 그중 많은 것들이 반쯤 불타거나 찢겨 있기에 손만 대면 바스러질까 하여 학자들은 조심스레 낱장 낱장을 넘겨 가고 있다.
80여 년. 제국의 후예들은 영락하여 서로를 물어뜯고, 명국이 그런 이들을 두려워하면서도 비웃던 세월에 제국의 많은 흔적들이 사그라들었다.
이제 살아생전에 몽골 제국의 영화로웠던 나날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본디 전조(前朝)의 사서는 그 왕조가 멸해지고 난 직후부터 편찬되는 것이 상례이다. 허나 명에서 집필한 사서는 부실하기 짝이 없고 이미 소실된 사료들도 많은지라 (뜨끔하게도, 에센이 일조한 바가 컸다.) 많이들 곤경에 처해 있는 듯하였다.
곳곳에서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불완전한 사료를 노려보는 문관들의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 넘쳐흐르던 자금과 인력을 쏟아 넣으니 안 되는 것이 없더라.
“다들 어떤가.”
“폐하! 집필은 아주 순조로이 진행되고 있사옵니다!”
그러기에 지금 시찰을 나온 에센의 앞에 무릎 꿇은 학사들 역시 밝은 얼굴로 그 성과를 자랑할 수 있던 것이고.
그들이 한 반쯤 완성되었다며 웃는 얼굴로 초고를 가져오니, 에센 역시 흡족한 얼굴로 그중 몇 장을 펼쳐 훑은 뒤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러다 나온 이야기.
“하여, 게겐 칸(원의 9대 황제인 영종의 칸호)가 살해당하고 실패한 연유는 무엇인가?”
에센 딴에는 일종의 중간 점검차 물어본 말이었다.
게겐 칸, 영종(英宗), 원나라에서 최초로 적장자로서 카간위에 오른 이.
선황인 인종이 형 무종의 쿠데타를 도움으로써 카간위를 물려받았으나, 형의 자식들에게 제위를 물려주겠다던 약속을 깨고 자신의 아들을 황태자로 삼아 즉위시켰다. 그가 바로 영종.
그런 실정이기에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태황태후 다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 애썼으나 결국 재위 3년 만에 살해당하고 만다.
놀랍게도 3년이라는 재위 기간은 원나라의 카간 중에서 평균 수준이었다. 11명의 카간 중 무려 4명이 2년을 못 넘기고 퇴위당한 바 있으니 말이다.
그런 혼란이 결국에는 대원을 뿌리부터 갉아먹고 주중팔이 이끄는 한족 반란군들이 제국을 갉아먹게 만든 것이다.
대원이 북쪽으로 도망하자 마침내 명목상으로나마 유지되던 몽골계에 대한 수위권 역시 크게 훼손되었고 제국은 완연한 분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학사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흥미로웠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영종의 실패는 결국 한족의 문물을 지나치게 흠숭한 때문이 아니겠사옵니까?”
“흠.”
“혹시 마음에 걸리시는 부분이라도…?”
“아닐세. 계속 이야기해 보게.”
“폐하께 아뢰옵건대 영종이 지나치게 한인들의 법률과 제도를 본뜨니 뭇 왕공의 불만이 가중되었으니 결국 살해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요컨대, 몽골인 귀족들의 권한을 약화하고 한화(漢化)를 추진하다가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예상과도, 기대와도 다른 결과물.
에센은 어쩌다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그가 지시한 바는 결국 ‘명조의 엉터리 원사를 대체할 새로운 원사의 집필’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한족 왕조에서 편찬한 기존의 사서에서 가장 칭송받을 카간은 한족의 문화를 좇았던 영종이 아니겠는가?
이들끼리 서로 기존의 원사가 가진 관점에서부터 벗어나 생각해 보자고 머리를 맞대다가 나온 결론이 바로 이것이었다.
“귀족들이 한족의 문물에 찌드니 양 허벅지에는 살이 찌고, 마구는 낡아 가며, 활 또한 그 줄이 삭아 끊어졌습니다. 늙고 병든 마음에 머지않아 나태함이 자라났으며, 나태함이 다시 대원의 쇠잔함을 낳았습니다.”
즉, 몽골의 힘은 잘 조직되고 훈련된 무력에서 나오는 것일진대, 한족의 문화에 젖어 그 힘에 균열이 일어나니 결국 수적 열세를 이겨 내지 못하고 제국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본래 몽골은 수많은 유목민의 통칭. 기동력과 무력이 제일의 근본으로서, 주위의 농경민을 약탈하고 지배해야만 유목민들은 살아남는다.
헌데 요와 금의 모범을 본따 엄격하게 시행된 분리 정책에도 불구, 한족과 동화되고 뒤섞이면서 가장 근본이 되어야 할 무력을 잃었으니 패배는 기정사실이 아니었던가?
“뿐만 아닙니다. 드넓은 예케 몽골 울루스의 강역을 머리에서 잊고 오로지 중화에서의 종주권만을 중시하며, 또한 중화를 차지하면 자연히 모든 울루스의 종주권을 차지하리라 생각하였으니 그 방만함으로 말미암아 서방의 강역들이 흩어지고 쪼개졌습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중원을 경략하고 유지하는 데 치중하여 더 큰 것을 잃었으니 어찌하겠습니까? 한족의 수효는 많고 몽골족의 수효는 적으니 이를 다스리는 데만 마음이 팔린다면 필히 다른 것을 잃는 것이옵니다.”
“그말 또한 일리가 있으나 중원은 천하에서 가장 사람과 물산이 풍부한 곳이 아닌가? 이를 경략하는 데 진력을 쏟지 않는다면 어느 곳에 쏟는다는 말인가?”
“폐하, 단순히 노력을 쏟는 데 대한 이야기를 하는 바가 아니옵니다. 중원을 쟁취하는 데만 정념을 쏟은 원의 카간들은 결국 서방의 칸국들과 사이가 멀어지니 다른 몽골인들과 교류가 잦아들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기존의 원사에서 소홀히 다루어졌던 주치인 울루스 등 서방의 영토까지 포괄적으로 다루니, 그를 잃어버리고 중원화된 원나라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일어난다.
중국이라는 제국의 ‘작은 일부’에 집중하여 눌러앉으면서 한족들의 천하관을 받아들인 카간들.
그들은 중원이 곧 세계의 중심이며, 더 나아가 세계 그 자체라는 한족적인 관념에 심취하였다.
결국에는 그러한 인식 속에서 옛 제국의 형제들이 갈라져 나가고, 중원의 왕조는 안에서부터 곪아 들어가더니 결국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만 것이다.
에센은 잠시 생각에 잠겨 고개를 기울인다. 그 모습에 혹여 자신이 몽골의 지배자의 심기를 거슬렀나 싶어 전전긍긍하던 학사들은 이어지는 에센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주의를 기울인다.
“내가 듣기로는 그 말에 반박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을 듯하네만.”
“그렇사옵니다. 아마 한족들은 물론이고 유학 한다는 이들이 볼멘소리를 낼 듯하옵니다.”
“허면 그들의 의견 역시 들어 보아야 하겠지.”
“…예? 하오나 이미 많은 부분 집필이 되어 이제 초고들을 추려 내기만 하면….”
“다시 집필하라. 재촉하지는 않을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
그들이 뭔가 서로 눈치를 주고받는 듯했으나, 별 신경 쓰지 않고 에센은 각사를 걸어 나온다.
등 뒤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니 곧 저 전각에서 파란이 일어나리라.
* * *
“경학을 널리 진흥하여 대원이 패망하였다니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옵니다!”
명의 북조에서 한인 유학자들을, 그리고 몽골과 만주 인근의 유학자들을 불러오고 얼마 안 지나, 이렇게 분통을 터뜨리며 달려오는 이들이 생겨났다.
“부당하다니? 그 무슨 이야기인가?”
물론 그들의 태도는 정말 카간이 왕림하니 누그러졌다. 제아무리 경학이 중하고 논쟁의 승패가 중하다 한들 카간의 앞에서 언성을 높이는 이는 없었다.
한층 가라앉고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새로 초빙한 유학자들과 이전의 학자들끼리의 대화가 재개된다.
“모름지기 천하의 대세가 올바르게 되려면 모든 실제가 그 이름에 걸맞게 되어야 하는 것이옵니다.
헌데 대원의 신하들은 제각기 신하란 이름에 맞게 행하기를 꺼려 주군의 지위를 탐하였고, 하여 보위에 핏자국 지워질 날이 오지 않았으니 대원의 쇠락은 예정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몽골 이전에 유목민들의 제국은 그토록 거대했던 적이 없었다.
그토록 짧은 시간 만에 그토록 드넓은 영역으로 팽창한 적도 없었다.
중원의 천자국으로 거듭난 여러 유목민 국가는 오랜 기간 동안 나라의 기틀을 다졌고, 문물을 정비할 시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