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71
허나 몽골 제국은 단 두세 세대 만에 세계적인 규모로 발돋움하였으니. 그 유목민적인 제도가 상이한 문화의 정주민들을 통치할 만큼 제대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이 요지이리라.
“그러하옵니다. 금상 폐하께옵서도 적장자로 대통(大統)을 이으시기 위하여 일찍이 태자 전하를 책봉하셨습니다. 어찌 바른 가르침을 세웠다는 이유로 원의 명운이 다했겠습니까?
도리어 옳지 못한 통치 방식을 이어 가던 원의 수명을 늘린 것이 바로 성현께서 가르치신 경세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특히 에센이 가장 염려하고 고민하던 문제인 제위의 상속부터 관제와 행정 제도, 율령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이 거대한 제국을 운용하기에는 부적합했고 결국에는 제국의 쇠퇴로 이어졌다.
카간위를 둘러싸고 형제들 사이에서 벌어진 골육상쟁, 징세보단 차라리 습격과 초토화에 가까웠던 조세와 징세.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구성이 결코 수백 년을 장구히 이어질 천자국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당연히 기존의 학자들 역시 반박을 시작하고 다시 그에 대한 재반박이 이어진다.
작성되었던 초고의 많은 부분들이 폐기되고 재활용되는 종이 위에 새로운 글귀들이 적혀 나가다가 다시금 지워진다.
격론이 펼쳐지는 가운데 서로의 논리들이 한층 날카로워져 간다.
그들의 문답은 결국 이 한 가지 물음에 답하기 위한 것으로 치달았으니,
‘예케 몽골 울루스는 어째서 멸망하였는가?’
단순히 후계 구도의 정당화를 위하여, 성대하게 건설된 제국의 위용을 자랑하기 위하여 시작된 사서의 편찬 작업이었다.
허나 지금 와서 돌아보니, 완전히 다른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이 아닌가?
옛 몽골 제국을 이루었던 조각들은 여전히 지금의 몽골을 이루기도 한다.
그렇지만 조선의 존재와 같이 지금의 몽골은 다시 완전히 새로운 기반 위에 건설되기도 하였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틀린가?
분열과 내홍이라는 그때의 재앙은 오늘날에도 반복될 것인가?
에센의 제국은 어떻게 존속할 것인가?
끊임없이 파기와 재집필이 반복되는 초고를 보며, 보다 정교하게 발전해 가는 내용들을 살피며, 카간의 심려가 깊어 간다.
나의 예케 몽골 울루스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 * *
아락투무르는 길을 나섰다.
도착하는 곳마다 당연히 그 땅의 지배자가 있을 터, 그들의 새 주군으로서 찾아가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겁에 질린 영주들이 새로운 주군의 앞에 부복하며 카간의 영광과 위대한 제국의 번영을 그의 앞에서 노래한다.
유럽인들은 무릎 꿇고 절을 올리기를 굴욕으로 안다 들었는데, 목숨이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빠르게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또한 몇몇 영주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에게 상납할 것이 있다며 꿍쳐 두었던 금은보화를 바쳐 오며.
몇몇은 하도 겁에 질려 있기에 살짝 눈치만 주었더니 우르르 은화 주머니가 쏟아진다. 모두 이들은 아락투무르의 창고로 빨려 들어간다.
이런 순간마다 아락투무르가 하도 행복하게 웃고 있으니 다른 이들은 행차의 본말(本末)을 착각하기도 하였다.
허나 아락투무르는 끝내 잊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흘러들어 오는 부가 아니라 넓어지는 견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부유한 농민들이… 일종의 부족 회의 같은 곳에 참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사옵니다, 전하. 민회에서 지방을 스스로 통치하며 귀족만이 참여하는 것은 결코 아니옵니다. 자격 있는 귀족들과 평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민회에서 정치를 논하옵니다.”
흥미로운 문화와 관습들을 겪는다.
오랜 교류의 역사는 이들에게 몽골의 잔재를 심어 익숙한 데가 있었으나, 그 익숙함을 통하여 아락투무르에게 느껴지는 차이는 더욱 부각되었다.
그 외에도 유럽의 사회 제도들은 아락투무르의 마음을 사로잡고, 가슴에 놀라움을 채운다.
완전히 다른 원리와 토대 위에서 구축된 기묘한 안정성.
―“아베 마리아, 그라티아 플레나!(Ave maria, gratia plena,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하나의 신앙이 그러한 안정에 또한 기여하나니. 아직 다신교 신앙이 백성들 사이에는 파다하나 이 역시 점차 ‘교화’되어 가고 있다.
그는 기독교인들의 전례에 참가하였다. 주교들이 그에게 예를 갖춰 고개 숙였고, 모두가 이 이교도 군주를 개종시킬 수 있을까 하여 기대감에 찬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기묘한 음악과 낯선 제례는 마음을 조금 감동시키는 바가 있었으나 그들이 기대한 것처럼 개종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아락투무르가 보기에 개종에 따르는 별다른 이익이 없었기 때문이라.
여정 속에서 아락투무르는 유럽이라는 사회의 놀랍고도 다양한 면모들을 마주하였다.
무수한 족속들이 뒤엉켜 다투었기에 고을마다 성채마다 문화가 다르고 제도가 다르니 어찌 흥미롭지 아니하랴?
그러면서도 또 서로를 먼 형제라 여기고 교류하니 이 역시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다종다양한 문물을 겪으며 아락투무르의 여로는 다시 서쪽에서 동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카간 폐하께서 내심 가장 궁금해하시던, 그곳을 향하여 간다.
루스 총관부, 아니 이제는 러시아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의 수도.
레닌그라드로.
초원을 뒤덮는 숲 (4)
라트비아 연방, 그 중심에 위치한 한자 동맹의 항구 도시 리가(Rīga).
역사가 300년이 채 안 되는 젊은 도시는 여러 차례 이어진 전투의 소란을 정리하지 못해 나이에 맞지 않게 곳곳에 상처와 흉터가 그 얼굴에 남아 있었다.
성벽은 많은 부분 허물어졌으니 상인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된 것이 한 가지 나아진 점이랄까.
적어도 한자 동맹과 몽골―러시아와의 밀약으로 이곳이 주요 대(對)동방 무역항으로 자리 잡으며 빠르게 활기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락투무르의 입장에서 폐허가 남은 도시라면 불편하기는 매한가지.
애초에 지붕과 벽체가 있는 집이 싫어 여전히 왕의 지위에 걸맞은 화려한 천막을 이끌고 다니는 아락투무르다.
어쩔 수 없이 영주들이나 도시의 의회들에 인사치레를 하고자, 폴란드 왕으로서 의무감에 초청받은 저택과 성관에서 머무를 뿐.
불편하기 짝이 없는 구조의 건물들에 혀를 내두르고 잠을 설쳐야만 했다.
그렇기에 리가의 뭇 시민과 대강의 인사치레를 끝내고, 이런저런 연회에 참석하여 입맛에 맞지 않는 요리들을 꾸역꾸역 삼킨 뒤에는 다시 성벽을 넘어 떠났다.
새로운 왕에게 어떻게든 눈도장을 찍어 보려던 상인들이 크게 실망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들에게 몽골 제국은 가장 막강한 무력 집단이었고, 또 그들에게 가장 막대한 부를 안겨 준 집단이었으니 아락투무르에게 잘 보이려 그리 애쓴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그 노력이 아락투무르에게는 도리어 피로감을 안겨 줬지만 말이다.
목적지는 리가 시외 인근의 어느 한적한 어촌. 어차피 리가에서 제대로 배편이 준비될 때까지 하루 이틀은 더 체류해야 하기에 멀리 떠나지는 않았다.
“파란왕 전하께서 납신다!”
“다들 길을 비켜라!”
예의 그 화려한 천막들이 척척 세워지고, 그 고용인과 경비병이 수백씩 오가니 더 이상 ‘한적한’ 어촌은 아니게 되었다. 그래도 나름 북적이는 도시들보다야 적적한 맛이 있다.
“폴란드 왕 아락투무르 전하를 온 마음을 다하여 환영하옵니다.”
“…건물들이 오래되지 않았군.”
그러나 이 크지 않은 어촌은 곧 아락투무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잘 정돈된 집과 거리.
헐벗지도 않고, 굶주리지도 않은 채 거니는 주민들.
벽돌 벽체로 단단하게 쌓아 올린 벽체, 그 위의 목조 지붕으로 마감한 주택들.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곳은 리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고, 부유한 무역항 겸 소도시가 하나둘쯤 딸려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이곳이 도시라면 말이다.
고작해 봐야 500명 정도를 넘지 않는 작은 어항이다.
바닷가에 묶여 있는 선박들은 비록 튼튼하고 그 수효가 많아 보이지만 역시 어선 수준이다. 저 크기와 구조로 막대한 물자를 실어 발트해를 건널 수 있을 성싶지도 않고.
무역항으로서 상업적 이익을 벌어들이는 것도 아니고, 건물들 대부분이 오래된 것도 아니며, 기묘할 정도로 여유롭고 부유한 분위기가 오가는… 그냥 어촌.
“주군께 근래 잡은 가장 크고 좋은 생선을 요리해 바칩니다. 통째로 구워 반으로 쪼개 뼈를 발라내었습니다.”
“고맙네.”
마을 포구 중심 해안가 어귀에 자리 잡은 커다란 통나무집으로 초대받으니, 생각보다 널찍한 구조와 한쪽에서 타오르는 화톳불, 곳곳에 내걸린 큼지막한 물고기와 사냥감 박제들이 눈에 띈다.
“이곳이 저희 조합 회관입니다. 조합장인 제가 주로 머무르며 집무를 봅니다. 레닌그라드에서 오는 연락선에다 필요한 물자와 세금을 부치는 것 외에는 별일이 없습니다만….”
“…조합이라?”
아락투무르는 노인의 말을 자르고 질문을 던진다. 가벼운 무례에 노인은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말을 잇는다.
“이곳은 바토르스키 장군께서 구출해 오신 어민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마을입니다. 이제 한, 3년에서 4년쯤 되었겠군요.
러시아에서 집과 배를 주고 떠난 뒤, 협동조합을 일구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락투무르로서는 잠시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낀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때가 있다.
바로 우크라이나 일대의 정착촌들을 마주했을 때.
그곳의 ‘조합장’이라는 이 또한 그리 말했다. ‘아카토프 장군께서 저희를 구해 오셨으니 협동조합 농장을 꾸리고…’ 어쩌고저쩌고, 그때는 유럽으로 향하는 여정이 급하여 무시했으나 지금 찬찬히 보니 기이한 것투성이다.
“허면, 그대가 이곳의 영주인가? 아니면 제일 부유한 선주인가?”
“저는 그저 늙은 몸이라 할 일이 없으니 젊은이들이 뽑아 준 것일 뿐입니다. 어선 또한 러시아의 수반께서 내리셨기에 저희 중 한 사람 것은 아니고 다 같이 나눠 씁니다.”
“그렇다면 이곳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아락투무르의 질문에 조합장이라는 노인네는 두 눈을 끔벅이다가 이내 말을 잇는다.
“굳이 따지자면… 파란왕 전하이십니다.”
“그것을 물은 게 아닐세. 협동조합이란 건 또 뭐고, 이곳을 다스리는 건 또 누구냔 말일세.”
“사회주의적 협동조합은 사회주의적 원칙에 따라 생산 수단을 사회화하는 한 수단으로서… 커흠, 어… 저도 잘 모릅니다.”
“모른다고?”
“높으신 타타르 귀족들께서 뭔가 중얼거리다 가셨는데, 그걸 주저리주저리 외워 두기는 했습니다만 잘 모르겠군요.”
“타타르?”
“아, 아니, 송구하옵니다. 몽골인이 아닌 듯한데 다른 가리킬 말이 없어서….”
“그자의 이름은 무엇인가?”
“듣기로는 시시푸스(Sisyphus)라고 하였사옵니다.”
시시푸스? 그게 누구지?
수많은 질문 속에서 결국 답을 얻어 내기는커녕 의문만 무더기로 떠안은 채 천막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카간께서 물어 오신 질문들에 답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는데.
다음 날, 생각보다 빠르게 준비된 배편을 타고 떠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핀란드만 깊숙이 붉게 타오르는 등대가 보인다.
“맙소사….”
거대한 추상물들, 기하학적인 형상을 신이 미처 다듬지 못하고 지상에 내던진 듯한 모습.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삼각형, 사각형, 구 형태의 구조물이 지상에 있을 수 없을 법한 도시를 이룬다.
레닌그라드다.
아무튼, 모든 질문의 답은 저곳에 있다.
도착하고 보니 지난 원정에서 카간의 옆을 따르던 익숙한 조선인 선비가 보인다. 김시습이다.
“파란왕 전하를 뵈옵습니다.”
“그대가 환송을 나왔는가?”
“네, 그렇습니다. 어서 관사로 드시지요. 이보게! 궤도 마차는 비워 두었는가?”
“예, 시시푸스 각하.”
…시습, 시십, 시시프, 시시푸스.
아하.
* * *
타타르, 결국 타타르다.
사회주의적 대의가 뭐시기,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이 저시기, 하더라도 결국에는 이교도 타타르가 말하니 흰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고, 또 한편으로는 권위를 세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는가?
“에드워즈 동지, 공맹(孔孟)을 영어로 무어라 일컫는다 하였소?”
“컨퓨셔스(Confucius)와 멘셔스(Mencius) 말입니까?”
“바로 그거요.”
권람의 뇌리를 스치고 간 한 가지 발상.
라틴어 이름이다.
김시습은 시시푸스 크리소스(Sisyphus Chrysos), 리처드 에드워즈는 리차르두스 에두아르두스(Ricardus Eduardus) 등등… 조선인들의 이름은 문관들의 솜씨로 재빠르게 번역되었다.
어차피 귀족들과 라틴어로 소통해야 할 때가 있기도 하였으니, 꽤 합리적인 조치이기도 하였다.
“환영하오. 레닌그라드의 건설자이자,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지도자, 내전 속에서 ‘티오손(Tioson)’ 왕국의 적법한 군주를 수호한 충직한 자, 라무스 아욱토리타스(Ramus Auctoritas)라 하오.”
“권람 동지, 유난 떨지 맙시다.”
“왜 그러시오, 에두아르두스?”
“몽골인 앞에서 왜 라틴어 이름으로 소개합니까?”
뭔가… 권람 동지가 헛바람이 든 것 빼고는 말이다.
이름이 지나치게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어찌… 되었건, 큼, 환영합니다.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수반 에드워즈입니다.”
“부수반 권람이옵니다. 파란왕 전하를 뵙사옵니다.”
“…환대에 감사하오.”
다행히도 아락투무르는 두 사람의 기묘한 투닥거림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태였다.
드넓은 공간,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설계로 이루어져 오히려 그 광대함과 엄숙함을 여지없이 보여 주는 모더니즘적인 설계.
낯설고도 기이한 관저의 모습에 아락투무르는 한동안 정신이 팔려 있었다.
두 사람의 안내를 받아 레닌그라드와 그 인근을 구경하면서도 경탄할 것투성이였다.
“여기서 벽돌들을 생산한 뒤에 궤도 마차에 실어 레닌그라드로 나릅니다. 레닌그라드 건설에 사용되고 남은 건설 자재는 곳곳으로 운반하여 전쟁 난민들의 정착촌을 건설하거나, 러시아 농촌 사회의 생활 조건 개선을 위해 활용됩니다.”
차례차례, 일전에 보았던 광경들이 해명되기도 하였다.
눈앞에서 무서운 속도로 구워지고 찍혀 나오는 적벽돌들.
지난날 리가 근처의 어촌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의 농장에서 보았던 벽체들을 이루던 벽돌들이다.
이리 놀라운 생산량으로 전 국토에 자재를 흩뿌리니 한낱 농군의 오두막조차 견고하게 지어질 수 있던 것이었다.
허나, 아락투무르가 가장 궁금해하던 바는 농민들을 따뜻한 집에서 배불리 먹여 살리는 법에 관한 것이 아니니.
“에드워즈 수반 전하.”
“왜 그러십니까, 폴란드 국왕 전하?”
“내 듣기로는 동유럽에서 나오는 소출이 몽골 초원을 먹여 살리는 수준이라 들었소.”
“예, 맞습니다! 그 점 하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겠군요. 저희가 도래한 이후 이 러시아 땅의 생산력은 날로 혁신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날로 부유해지고, 상공업이 번성하니, 백성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세입을 늘릴 수 있습니다!”
에드워즈가 뿌듯해하는 표정으로 답한다. 마치 아락투무르가 그에 대하여 물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투다.
그러나 아락투무르의 질문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질문의 주체는 실상 그가 아니라, 카간 폐하이기 때문에.
“어떻게 그리하였소?”
아락투무르는 처음에 카간께서 누구에게도 동유럽 땅을 분봉하지 않고 신생 러시아에 그 통치권을 통째로 넘겼다는 사실에 경악하였다.
정복 사업은 더 많은 귀족에게 더 넓은 영역의 이권을 보장해 주고 세력 안정을 꾀할 주된 수단이다.
헌데, 가뜩이나 기반이 불안한 카간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시다니? 그것도 주치인 울루스의 불만과 분노에 기름을 끼얹으시면서?
아락투무르에게 한 자리 마련해 주려 억지로 아직 정복되지도 않은 폴란드의 왕작을 창설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오로지 러시아 공화국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허나 결과는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금화와 은화 궤짝이 너무도 많이 실려 있어 수레가 주저앉았사옵니다.”
―“나선 총관부가 모피 3천 장을 바치옵나이다.”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가 아니던가? 저들은 어찌 저리 부유하단 말인가?”
본래 바쳐 와야 할 것보다 몇 배나 되는 재물들이 카라코룸으로 흘러들어 왔고, 그를 온전히 손에 움켜쥔 카간께서는 측근들에게 그 산물을 분배하시며 많은 이들의 충성을 얻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