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30
“메디치는 전후 재건에 들어갈 피렌체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 황제 폐하께서는 판단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소만.”
“피렌체에는 안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안정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적법한 통치자가 필요하지요.”
특사는 품에서 한 장의 서류를 꺼내고, 메디치의 임시 가주로서 루크레치아 토르나부오니는 황제의 밀서를 펼쳐 읽는다.
―‘피렌체 공작의 서임에 관한 증서’
“황제 폐하께서는 피렌체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메디치 가문의 염원을 이루어 줌도 가능하리라 생각하신 듯합니다.”
―‘프리드리히, 하느님의 은총으로 임명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독일의 왕, 로마의 왕, 오스트리아 대공, 케른텐과 크라인과 슈타이어마르크의 공작은 로렌초 데 메디치의 적장자인 피에로 디 로렌초 데 메디치(Piero di Lorenzo de Medici)를 피렌체 공국(Ducato di Firenze)의 공작(Duca)으로 서임한다. 그는 그의 영지에서의 사법권과 징세권을 얻으며….’
“물론 지금 당장은 피렌체의 여론 때문에 그리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또 얼마 전에 대평의회와 맺은 조약에 따라 폐하는 신생 공화 정부의 적법성을 공인하셨습니다.”
“…내가 알기로도 그렇소.”
“허나 피렌체의 무질서와 혼란이 ‘왠지 모를 이유에 의해’ 가중되어 평의회 정부가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낸다면, 마땅히 자격 있는 이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국의 수호자로 나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특히 지금 각하께서는 피렌체 공화당의 명목상 총재를 맡고 계시니….”
황제는 피렌체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보나롤리스타 정부들의 정통성을 약화하고, 그 대신 친(親)제국 정부를 수립시키려는 야망을 아직 접지 않았다. 그 많은 희생을 거치고서 이탈리아의 반토막만 얻어 낸 결과에 납득하지 못한 듯했다.
패배해 놓고서 승부에 불복하다니, 추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황제의 세력에 잘만 올라탄다면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지배할 수도….
“불가하오.”
“어째섭니까?”
루크레치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임명장을 특사에게 되돌려 주었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는 죽어서 영원한 성자가 되었소. 심지어 지금 교황 성하께서 정말 그자의 시성을 추진하신다고 들었소.
우리가 이런 발칙한 짓거리를 시도했다가는 시민들이 메디치의 일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찢어발길 것이오. 이 증서는 그 존재만으로도 전쟁의 불씨요.”
“물론 그럴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론에 대한 섬세한 조율이 들어가야….”
“나는 그 계획의 현실성에 대해 몹시 부정적으로 평가하오. 나가 주시오.”
“하지만….”
“메디치 가문은 이미 판단을 굳혔소.”
루크레치아가 단호히 거부하자, 특사는 한숨을 내쉬며 떠났다.
물론 그들도 메디치 가문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으리라. 다만 메디치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사보나롤리스타 정부에 불안정성을 더하려는 시도일 뿐이었을 터.
황제의 제안을 거절함은 가문에 유익한 것이었다. 가문의 생존을 위한 결정이었다. 나는 황제의 지저분한 속내를 미리 간파하고….
…그와 약속했던 대로 공화국을 지켰다.
서기장이 바라마지 않던 대로 진실된 신앙이, 평등과 자유의 도시가 이어지도록 하였다.
그대는 나와 내 가문에 충성을 다했으니,
나 역시 그대와 그대의 공화국에 신의를 다하겠다.
창밖을 내다보니 온 사방에 공화당의 깃발이, 사보나롤라의 초상이 널려 있다.
인쇄업자들은 돈도 받지 않고 사보나롤라의 초상화를 판화로 새겨 거리에 뿌렸고, 시민들은 그 초상화를 판자에 붙여 흔들면서 행진을 이어 갔다.
“총재 각하, 산드로 보티첼리가 벽화 공개식을 거행하려 합니다. 지금 출발해야 늦지 않게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 알겠네.”
이탈리아는 불바다가 되었고, 아직도 교황과 황제의 야심은 곳곳에서 맞부딪히고 있다.
피렌체는 승리했으나, 사보나롤라의 이상은 그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려는 교황과 전복해 버리려는 황제 두 사람의 놀이판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리라.
루크레치아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도시 곳곳에서 예언자의 얼굴이 조각되고, 예언자의 몸짓이 그려지며, 예언자의 행적이 노래로 읊어진다.
황제의 군세는 떠났고, 예언자들의 도시에는 여전히 자유의 공기가 살아 숨 쉰다.
메디치는 약속을 지켰다.
공화국은 지켜졌다.
* * *
/ 작가의 말
이번에도 두 편 분량을 조금 조정하여 한 편으로 줄이게 되었습니다. 지켜봐 주신 독자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막간극―로마, 시에나, 피렌체
로마에 낯선 공기가 풍긴다.
산탄젤로 다리에서 내다보이는 테베레강에는 이런저런 나룻배가 거닌다. 그저 뱃놀이를 나온 연인들도 있고, 손님이나 화물을 태운 채 나다니는 노잡이들도 보이지만 소년의 눈은 그런 걸 좇기 위해 강 위에 붙박인 게 아니다.
곧, 목표는 포착된다.
번쩍번쩍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산탄젤로 성을 올려다보며 구경하다 고개를 돌려 다리 위의 소년을 바라본다.
그들은 웃는 얼굴로, 자뭇 어른다운 분위기를 풍기며 소년에게 손을 흔들어 준다. 소년은 그들의 반응에 흥분하여 꺄르르 웃으며 난간으로 몸을 내밀고 무언가 외친다.
그러다 외침은 점차 사그라지고, 병사들은 다시 아까처럼 로마의 이런저런 고적(古蹟)을 구경하는 촌사람 같은 태도로 돌아온다.
하지만 소년은 여전히 흥분감을 참지 못해 방실방실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저들이 로마에 온 뒤로 아버지 로드리고 추기경과 자신은 풀려났고, 누워만 계시던 교황 성하는 살아나셨다.
뭔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리라. 저들이 나쁜 놈들을 물리치고 로마에 평화를 가져온 것이다. 마치 샤를마뉴 왕의 제일가는 기사 롤랑처럼!
“저기, 보아라! 카스티야 병사들이 나에게 손짓을 하였다!”
“도련님? 이대로 오래 나와 계시는 건 아버님께서도 원치 않으실 겁니다.”
“조금만 더… 아니다. 그래, 아버지께서 싫어하실 테니.”
아이 같은 흥분이 서늘한 두려움에 잠재워진다. 그 모습에 시종은 아이의 모자를 씌워 주며 어깨를 다독인다.
“이제 돌아가시죠. 곧 있으면 행군이 지나갑니다.”
“어, 오, 오늘은 어디로 다니느냐?”
물론, 그렇다 하여 체사레 보르자가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다.
아버지께서 특별히 ‘행군’의 구경을 허락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 앞 광장을 지나친다니 그곳으로 가야 할 듯합니다. 교황 성하와 황제 폐하께서도 보실 수 있도록 오늘은 그곳에서 진행….”
“그럼! 가자! 빨리!”
“도련님? 도련님!”
갑자기 다리 난간에 매달려 폴짝폴짝 뛰면서 달려 나가는 체사레의 모습에, 시종은 경악하여 허둥지둥 그 뒤를 따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우 시종에게 붙잡혀 마차에 오르고, 마차 문간 너머로 풍경이 흔들리며 바뀌는 것을 바라본다.
2,000년을 쌓아 올라간 도시라고. 옛날 언젠가는 세상의 수도였던 곳이라고 다들 이야기하지만. 이제 태어난 지 막 세 해 정도 지난 체사레에게 인생의 600배나 되는 시간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또 체사레가 숫자를 100보다 더 많이 세기 힘들어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이곳은 체사레에게 세상의 전부다. 태어난 곳이기도 하고, 자라난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삶의 3분의 1 정도는 (그래 봐야 1년이지만) 작은 빌라에서 다른 추기경들과 부대끼며 감금당해 있지 않았나?
저 거인의 잘린 손가락처럼 여기저기 흩어진 대리석 기둥과 파편들도, 도시 곳곳의 폐허와 붉은 옷을 걸친 할아버지들도 마치 해나 달처럼 체사레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악마가 지었다며 경탄받는 저 판테온(Pantheon)도, 세계의 심장이자 거대한 제국의 중심지였다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 포룸 로마눔)도, 콜로세오(Colosseo, 콜로세움)도 그에게는 마치 자연물과도 같았다.
저기에 강이 흐르고, 저기에 산이 뻗은 것처럼, 로마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 그게 당연하다. 세상이 넓다지만 어디에나 콜로세오 정도는 하나씩 있지 않을까?
체사레는 로마의 아이였다.
그리고 그런 아이에게 로마 밖에서 다가온 새로운 세상이, 바로 저깄다.
“저기! 저기 카스티야 군대다!!!”
“도련님! 난간 너머로 몸 기울이시다 떨어지십니다!”
“다들 뭐 해? 도련님을 붙잡아!”
테베레강 근처에서 남쪽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San Giovanni In Laterano,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이 보이자, 마침 행군을 준비하는 병사들이 들여다보인다. 그 모습을 보고 버둥거리니 시종들은 급히 막아선다.
겨우 입힌 예복이 망가질까 봐 애쓰는 줄도 모르고 체사레는 불편한 옷 따위 벗어 버리고 싶어 움츠락거리지만 시종들은 겨우 그를 막아낼 뿐이다. 결국 지친 그중 한 명이 무심결에 툭 하고 말을 던진다.
“도련님, 로드리고 추기경 예하께서 화를 내실 겁니다.”
그리고, 그 말에 체사레는 급작스럽게 시무룩해진다.
“…아버지께서?”
“저번에도 옷을 망쳤다고 혼나지 않으셨습니까? 부디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게 어떻게….”
“이번에는 별일 없을 겁니다! 곧 있으면 행군이 시작하는 데 여기서 이러고 계시면 안 되지요. 아버님께서 기다리실 겁니다!”
“맞습니다! 곧 행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체사레의 눈빛이 약간 흔들리고, 다른 시종들은 눈치 없고 방정 맞은 입을 가진 동료를 향해 눈총을 보낸다.
혹시 눈물을 흘리지나 않을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체사레는 약간 숙연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알겠다. 그러면 곧 가겠다.”
이내 대성당 앞에 마차는 도착하고, 옷차림을 바르게 한 체사레는 시종들과 함께 뒷문으로 들어가 경계를 뚫고 발코니 근처에 선다. 저 멀리, 아버지와 교황 성하, 황제 폐하께서 나란히 앉아 도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곧,
수많은 걸음걸음이 겹쳐서 마치 거대한 새가 푸드덕거리듯 하는 소리.
같은 높낮이와 리듬으로 울리는 수백의 북소리.
제 생김새처럼 기나길고, 또 높다란 나팔 소리.
시무룩해져 있던 체사레의 눈이 다시 빛난다.
이 지루한 도시에 찾아온 새로운 세계. 저 바깥 미지의 땅에서 날아와 자신과 아버지를 구해 준 영웅들.
그 선두에 선 한 장군.
말 위에 탄 그는 마치 괴물을 무찌르러 가는 이야기 속 기사님처럼 위풍당당하고, 또 그 뒤로 이어지는 수천의 대열을 이끄는 위엄이 얼굴에 서려 있었다.
그를 보며 체사레는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낀다.
처음에 장군은 눈을 들어 교황과 황제를 향하여 경의를 표한다. 교황과 황제는 엄숙하게 손을 들어 그의 경례에 화답한다.
그 뒤로는 보통 시선을 내리고 거리 양옆에 구름처럼 모인 군중들을 위하여 손을 흔든다.
그리고 그 사이에, 체사레가 행군을 구경하는 동안 제일 좋아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대성당의 발코니에서 시선을 돌리면서, 그는 발코니의 유일한 어린아이인 체사레를 향하여 짧고, 또 날카로운 미소를 지어 준다.
영웅과 눈을 마주친다.
저 영웅은 바다 건너에서 이교도들과 맞서 싸우고, 이탈리아에서는 분홍 망토를 걸친 주님의 따분한 적들을 물리쳤다고 하는데….
…그게 전부 사실일끼?
“시뇨레 곤살로는 언제까지 이런 짓거리를 계속할 건지.”
“과시지. 아무리 황제의 권세가 굳건해도 자신과 카스티야 역시 어느 정도 공훈이 있다는 것 아니겠나? 꾸준히 과시해 주지 않으면 카스티야의 면이 서지를 않지 않나?”
“매번 번거롭게 되었네, 하여든.”
옆에서 들려오는 어른들의 불평불만 따위 체사레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저 영웅과 함께 베헤모스(Behemoth)나 레비아타노(Leviatano) 같은 괴물을 무찌르러 가고 있으니….
그 꿈이 세 살배기 체사레 보르자의 머릿속을 가득히 채웠다.
* * *
로마에는 그렇게 카스티야의 병사들과 황제의 병사들이 유례없이 길게 체류하니, 마치 언제까지나 전쟁이 지속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황제는 이탈리아를 한동안 통제하고 통치해야 하니 로마에 틀어박혔고, 그런 황제를 두고서 로마를 비울 수 없는 곤살로 데 로드리고도 주기적으로 무력 과시나 하면서 교황령에 박혀 있다.
사실 그들이 지금 이탈리아를 정복하고 있기도 하니 전쟁이 끝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 그 바로 위의 시에나에 쏟을 자원도 그리 풍족하지 않았다.
“다들! 길에서 바위 좀 치워 주게!”
“셋 세면 밀어! 하나, 둘, 밀어!”
“파, 파, 팔이 깔렸네! 잠시만!”
길지는 않았지만, 시민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던 시가전은 도시에 치명적인 내상을 안겼다.
“피렌체의 앞잡이들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도시를 장악했구나! 이 망할 쓰레기들이.”
“아직도 로마의 주구들이 여기 남아 있었나? 너희 개새끼들은 교수형 당한 추기경들 따라 목이나 메지그래!”
도시를 둘러싸던 애국심과 시민들 사이의 일체감은 위협받았고, 시에나는 한동안 다시금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지역이라 하여 모두가 기피하였다.
황제와 교황이 둘 모두 혼란스러운 시에나에 끼어들기를 꺼린 이유도 그러했다.
허나, 놀랍게도 시에나는 재건되고 있다.
시민들의 굶주림도 조금씩 줄어들고, 길에서 잠자던 이들을 위한 숙소도 세워진다.
“받으십시오! 혁명을 위하여 싸웠던 동지들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여기, 구호물자요, 카메라타(Camerata, 동지)! 그대들의 주린 배를 채워 줄 죽과 빵이오!”
어디선가 흘러들어 오는 의료 인력, 식량, 그리고 재건을 위한 자재와 자금.
공화당이 제대로 자리 잡고 조직되지도 못했고, 또 그 반대파는 대부분 내전의 결과에 따라 축출된 도시에서 이런 것들을 제공할 조직은 단 한 곳뿐이었다.
“붉은 깃발 아래로 모이시오!”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만세! 공산당 만세!”
붉은 깃발의 무리들은 그렇게 그늘 속에서 슬며시 나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연대할 이유를 주었다.
암암리에 퍼진 사보나롤라의 저작에도 분명 저들에 대한 호의 어린 묘사가 나와 있기도 하니, 한 번이라도 피렌체파와 함께 싸웠던 시민들은 공화당의 아류 조직이라 생각하고 그들과 연대했다. 시에나에 눌러앉은 소수의 피렌체 시민군 인원들 역시 그랬고.
그렇게 머지않아 자신들의 고향 사정이 정리된 피렌체의 동료 사보나롤리스타들이 시에나를 도우러 왔을 때, 그들은 기묘한 풍경을 보게 된다.
광장마다 들어 서 있는 사보나롤라의 조각상은 별것 아니다. 피렌체 역시 사보나롤라의 시성(諡聖)을 위하여 매일 기도를 올리고 벽화와 조각을 교회마다 바치고 있으니.
또한 사보나롤라의 초상을 내걸고 이뤄지는 사보나롤리스타들의 주기적인 행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쑥대밭이 된 도시에서 자부심과 통합을 되찾으려면 위대한 상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제대로 된 공화당 당 조직도 없이 이뤄졌다니?
이는 시에나인들이 ‘자발적으로’ 예언자를 추모하고 그 뜻을 기린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오랜 반목의 역사를 쌓아 왔던 이웃 나라가, 온전히 공화주의의 형제국이 되었다는 생각에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고.
그들은 시에나에서 펼쳐지는 사보나롤라의 추모 집회를, 공화당이 아니라 공산당이 주도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사실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공화주의 만세. 이 도시는 이제 폭군을 죽이는 성채가 되리라.
* * *
그런 신기한 꼴을 보고 돌아온 피렌체 시민군들은 시에나의 기묘한 이야기를 동료 시민들에게 전달했다.
“자네, 그래서 듣고 있나? 시에나도 이제 사보나롤리스타들의 도시가 되었다네? 한때 피 튀기게 싸웠던 도시들끼리 이렇게 동지적인 관계가 되다니 오래 살고 볼 일 아닌가?
…그러니 떠나지 않는 것은 어떻겠나? 시에나가 그랬듯이 이 도시도 계속 변할 걸세. 자네가 아무리 쓰라린 기억이 많다 하더라도 말일세. 앞으로 많은 것이 바뀐다면….”
한때의 스승은 제자가 짐을 싸는 모습을 본다. 이 피렌체에 공방을 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도시는 그에게 약속했던 영광보다도 아픔과 슬픔을 더 많이 안긴 듯하였다.
빗질도 제대로 하지 않아 부슬부슬한 머리를 넘기며, 제자는 스승을 마주 본다.
“저는… 서기장 각하가 돌아가시기 직전의 모습을 봤습니다. 그 앞으로도 뒤로도 너무 많은 죽음을 봤습니다. 제 동료와 도제 중 반이 이제는 시체입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말게나. 그들의 희생으로써 해방된 도시가 아닌가….”
“저도 알지만, 마음이 힘들군요. 스승님의 배려는 감사하지만, 저도 이제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가족들은 자네를 신경 쓰지 않겠나?”
“사생아에게 누가 그렇게 마음을 써 주겠습니까? 유산을 다툴 사람이 줄었다고 좋아할지도 모르죠.”
제자의 손에 담긴 것은 전단이다. 얼마 전, 아메리고 베스푸치 선장이 피렌체로 올라와 뿌린 홍보용인데, 그곳에는 서지중해의 간략한 약도와 함께 “이 땅은 모험가를 기다린다.”라고 쓰여 있다.
“저는 새로운 땅에서 새 출발이나 하렵니다. ‘경건공’도 그림 그릴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자네 작품이라도 챙겨 가지 않으려나? ”
“됐습니다. 적당한 값으로 팔아 주시고 잔돈만 부쳐 주십시오.”
젊은 사보나롤리스타, 젊은 화가이자 조각가는 그렇게 등짐을 매고 스승 베로키오에게 인사를 올린다.
“저는 갑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길….”
“어딜 가나 잘 지내게, 레오나르도.”
“걱정 마십시오. 저는 황제도 폭군도 없는 땅으로 갑니다.”
그렇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방문을 열고 대로로 나간다. 덜컹거리는 피사행 마차가 그를 기다리고, 피사에서는 신대륙행 범선이 그를 기다린다.
곧 마차가 서쪽 성문을… 아니, 무너진 성곽 잔해 사이를 벗어나자 다 빈치는 저도 모르게 잠시 뒤를 돌아본다. 그러자 그와 비슷한 사연과 아픔을 짊어지고 있을, 손바닥만 한 예언자의 초상을 한 손에 쥔 다른 청년들도 함께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