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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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집을 이루는 것들
저택의 수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손을 본 것은 지붕과 창문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내버려 둔 탓에 이끼와 잡초가 자란 기왓장을 전부 걷어 낸 다음 적갈색 흙으로 새롭게 구운 기와가 지붕 위에 올라갔다. 또한 여기저기 깨진 채로 방치되어 있던 창문들도 전부 들어내 가볍고 단단한 나무로 만든 창틀을 새로이 끼워 넣었다. 물론 더욱 두껍고 투명해진 유리도 함께.
비바람과 먼지를 막을 수 있게 되자 이제는 저택 내부의 먼지를 치울 차례였다. 물이 샌 얼룩과 곰팡이가 슨 벽지는 전부 뜯어내고 벽을 깨끗이 소독한 다음 새로이 칠을 했다. 그것이 마른 다음에는 새로 칠한 벽에 흠집이나 얼룩이 나지 않도록 종이를 붙여 준 다음 바닥 공사에 들어갔다.
쾅쾅쾅! 쿵! 쿵!
저택 안에 하루 종일 크고 둔탁한 소리가 울리면서 오래된 나무 바닥이 하나씩 철거되었다. 대리석으로 된 곳은 사람들이 쌓인 먼지와 때를 벗겨 낸 다음 열심히 문질러 광을 내 예전의 모습을 되살렸다.
그렇게 바삐 공사가 진행되는 사이 가장 먼저 수리가 끝난 것은 역시 화장실과 욕실 그리고 주방이었다.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는 거였어요?”
저택의 공사는 짧아도 몇 달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화장실과 욕실이 일주일 만에 끝난 것을 본 리엘라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리엘라의 뒤에서 담당자는 피곤하지만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돈과 인력이 들어가면 안 되는 게 없습니다!”
“역시….”
리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분도 아니고 하운 대공님께서 머무실 저택 아닙니까. 서로 와서 일하겠다고 난리 치는 바람에 사람 뽑는 것도 일이었답니다. 물론 이 일이 좋은 이력이 될 게 자명한 탓도 있지만, 대공님 덕분에 북부도 안정을 찾고 목숨을 구한 사람도 많으니 너 나 할 것 없이 오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이지요. 자, 그보다 이 타일 어떻습니까?”
“저보다는 대공님께 물어보셔야 하는 것 아닐까요?”
“대공님이 레이디 리엘라께 물어보라고 하시던데요?”
“…….”
담당자의 대답에 리엘라는 이마를 짚었다.
“대공님은요?”
“아까 정원에 계시는 걸 봤습니다.”
“그럼 일단 타일 고르는 건 잠깐 멈춰 주시구요, 다른 부분들 먼저 부탁드릴게요. 전 대공님을 끌고 올게요.”
리엘라는 팔을 걷어붙이고 밖으로 나갔다.
현관 앞은 뜯어낸 나무 바닥을 쌓아 둔 터라 정신이 없었다.
“비켜요, 비켜!”
역시 가장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사람은 네아였다. 보석술사이면서 힘도 센 그녀였다. 저택 안의 다른 물건들 때문에 함부로 보석을 쓸 수 없는 곳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역시 네아의 힘뿐이었다.
성인 남자 다섯이 힘겹게 들어 올리는 것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면서 너무도 평온하게 “어디에 두면 돼요?”라고 묻는 네아의 모습에 일꾼들은 감격한 얼굴로 “혹시 하녀 말고 다른 직업을 생각하고 계시면 꼭 연락 주십시오.”라고 말하며 네아에게 자신들의 회사 주소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네아는 그때를 제외한 다른 시간에는 언제나 운석 옆에 달라붙어 있었다. 어떻게 옮긴 거냐는 질문에 하운은 끝까지 대답해 주지 않았고, 네아는 치사하고 더러워서 더 안 물어보겠다 말한 다음 혼자서 어떻게든 옮겨 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네아는 뜯어낸 나무를 멀리 짐마차에 올려놓은 다음 손을 털고 돌아왔다.
“운석 옮기는 일은 잘되어 가고 있어요?”
그러자 네아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 니… 오….”
“어, 그, 그럼 힘내요!”
더 물어봤다는 다시 하운에게 달려가 방법을 알려 달라고 멱살을 잡고 흔들 것 같은 분위기에 리엘라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그때 정원으로 향하려는 리엘라의 옷을 누군가 잡아당겼다.
“응?”
고개를 돌려 아래를 바라보자 하운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하운이 왔구나!”
“멍!”
주방의 수리가 얼추 끝나자 멜다 부인은 아예 아침부터 이곳으로 와 사람들의 음식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공작저에 들어온 식재료를 가져와서 썼지만 잠시 리엘라와 머리를 맞댄 이튿날부터는 근처의 마을에서 재료들을 공급받기로 했다. 그러잖아도 냉해를 입고 맛에는 문제가 없지만 상품성이 떨어져 팔지 못하게 된 작물을 두고 고민하던 마을 사람들은 그냥 가져가도 된다면서 짐마차 가득 재료들을 올렸다. 게다가 우유나 치즈도 신선한 것을 바로 옆에서 공급받으니 맛이 더욱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하운은 아침에 식재료를 가져다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온 모양이었다.
“하운아, 하운 님 좀 찾아 줄래?”
“멍!”
정말로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걸까. 개는 빠르게 정원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멀리서 하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이 개 왜 이러나!”
저기 있었군. 리엘라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원에는 어느새 사람 키를 넘는 관목들이 들어와 곳곳에 울타리처럼 심겨 있었다. 덕분에 위에서 내려다보아도 사람들을 한눈에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당황하는 하운의 목소리를 따라가면서 리엘라는 발아래를 보았다.
나무들뿐만 아니라 주문한 꽃들도 도착해 하나씩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빈 곳이 많단 말이지.’
워낙에 큰 저택이다 보니 농원 한 곳에 있는 것들만으로 다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농원 주인은 주변의 다른 농원의 것도 가져오겠다 했지만 역시 직접 보고 고르기 전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에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내일쯤 다시 가 봐야겠다.’
게다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은 화단뿐만이 아니었다. 정원의 가운데에 놓여 있는 분수 역시 아직 물 한 방울 없이 말라 있는 상태였다. 처음에는 하운이 보석으로 물을 끌어와 우물과 욕실에 물을 대는 것에 성공했지만 그의 보석이 워낙에 강한 탓에 물 저장고가 흘러넘칠 지경이 되어 다시 물을 끊어 놓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보석의 힘을 빌리는 것도 힘들다고 했고.’
보석술사가 곁에 있으면 모를까 보석의 힘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꽤 힘든 일이며 그것이 가능하도록 설정을 할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다고 했다. 강한 힘이 필요한 게 아니라 복잡한 계산이 필요해서 그런다나? 그때 짖는 소리와 하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멍! 멍!”
“털에 묻는다니까. 저리 가!”
“끼잉….”
“아니, 혼낸 게 아니라!”
리엘라는 개를 막아서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는 하운을 보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작업복을 입은 채, 한 손에는 삽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과 옷에는 검은 흙과 구정물이 가득 튀어 묻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하운이 더 다가오지 말라는 듯 손을 들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려던 리엘라는 고약한 냄새를 맡은 순간 그 이유를 알았다.
“퇴비 작업을 직접 하고 계셨어요?”
하운의 옷과 얼굴에 튄 것은 퇴비 찌꺼기들이었던 것이다.
정원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정원의 한쪽 구석에서는 퇴비 더미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여름에는 잘 하지 않는 작업이지만 사람도 많고, 주변 정리하느라 나온 낙엽들도 많겠다 겨울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그냥 지금 해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쪽으로 의견이 흘렀다.
사실 퇴비는 만들어지는 동안 고약한 냄새가 나는 데다가 침출수가 흘러나올 수 있어 사서 쓰는 저택들도 많다고 하지만, 되도록 같은 곳의 부산물로 만드는 것이 제일 좋기에 정원의 가장 구석에 퇴비장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목수들이 순식간에 기둥을 올리고 비를 막을 수 있는 천장을 만들어 주었고, 그 밑에는 톱밥을 깐 다음 정원을 정리하면서 나온 낙엽과 나뭇가지, 베어 낸 풀들을 모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남은 채소와 과일들도 전부 퇴비장으로 향했다.
그러다 한번은 아일리가 먹고 남은 음식을 버리려다 리엘라에게 등을 찰싹찰싹 맞기도 했다.
‘유제품이랑 빵이랑 소금 들어간 것들 넣지 말라고 그렇게나 말했는데!’
썩어 가며 발효가 되어야 퇴비지 그런 것들을 넣었다가는 자칫 독성이 생겨 어디에도 쓰지 못할 썩은 흙이 되어 버린다. 염분은 말할 것도 없이 독이고.
정원의 흙도 3분의 1 정도 섞은 다음 좀 더 빨리 발효시키기 위해 농원에서 가져온 퇴비도 가득 섞었다. 덕분일까. 바람을 타고 풍겨 오는 냄새를 맡으니 아주 잘 발효되고 있던 모양이다. 의문이라면 이 퇴비 더미를 왜 하운이 직접 삽을 들고 섞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게… 섞어 주면 좋다고 했잖아. 그래서 보석의 힘을 빌려 섞어 보려고 했는데….”
그때 리엘라의 눈에 멀리 떨어진 곳에 흩어져 있는 퇴비들이 보였다.
“…힘 조절에 실패해서 주변에 다 흩뿌려졌군요.”
“…….”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정답이었다. 어제 공작저로 돌아가는 마차에서 슬슬 퇴비를 한번 섞어 줘야 할 것 같다고 지나가듯 말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혼자서 이곳에 와 작업을 하려 했던 모양이다. 문제라면 물을 끌어왔을 때처럼 하운의 힘이 섬세한 조절에 있어서는 자꾸 실패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혼자 삽으로 이걸 처리하려고 했던 거고.”
“미안, 금방 치울게.”
“저에게 미안해하실 일은 아니죠. 삽 하나 주세요. 저도 도울게요.”
“안 돼! 이렇게 냄새나는데!”
확실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던 개도 몇 번 킁킁거리더니 슬그머니 먼 곳으로 도망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냄새나는데 거기에 계속 있을 거냐 물어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때 리엘라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엘라 양! 여기 있습니까?”
“어? 이 목소리는….”
리엘라는 반갑게 대답했다.
“루시안 님!”
저택을 찾아온 사람은 루시안 혼자가 아니었다. 모리스 경과 클로에 그리고 왕실의 정원사들 여럿. 그리고 그들은 짐마차 여러 대에 온갖 나무와 꽃을 가득 싣고 왔다. 평소 모리스 경의 자랑이었던 장미 묘목도 가득 실려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에,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왕실의 인력이 움직였다는 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모리스 경의 대답에 하운이 손등으로 얼굴에 묻은 퇴비를 닦아 내며 한숨을 쉬었다.
“전하께서 보내셨군.”
“그렇습니다.”
모리스 경은 며칠 전 보았던 국왕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운이 저택을 수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신난 레이안은 왕실 정원을 통째로 들고 가도 상관없으니 그곳의 정원이 모자람이 없도록 할 것과 왕족이 거주하는 저택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게 하라고 모리스 경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사실 모리스 경도 그 명령이 싫지 않았다.
“역시 저택의 정원이라면 장미 정원이 제일 아니겠습니까? 카르디아의 내로라하는 귀족의 정원에서 장미 정원을 만들지 않은 곳이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것 보십시오. 이번에 새로 만들어 낸 품종입니다.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았는데 대공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대공님의 이름을 붙이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아, 진짜! 또!”
점점 흥분하는 모리스 경의 팔을 옆에서 클로에가 사정없이 때렸다. 스승에게 존경을 보이라는 모리스 경과 장미 변태냐고 클로에가 맞받아치는 사이 루시안은 두 사람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리엘라의 앞에 섰다.
“참고로 국왕 전하께서는 저택에 보석술사의 힘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주저 말고 손쓰라며 따로 원탁회의에 거금을 주고 의뢰를 하셨답니다.”
그 말에 하운이 코웃음을 쳤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저택에 보석술사를 보내셨다고? 그럼 자네는 이만 돌아가도 상관없겠어.”
하운의 말에 루시안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
“보아하니 수도 시설이 아직 미비한 것 같군요. 분수와 정원의 흙이 말라 있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겠다 이거죠.”
루시안은 품에서 보석이 든 상자를 꺼내더니 몇 개의 작은 푸른 보석을 허공으로 던졌다. 하늘로 떠오른 보석들은 갑자기 자기들끼리 동그란 원을 만들며 빙빙 돌더니 땅으로 내려와 물을 불러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주변의 흙이 젖어 들며 분수대에 서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우와….”
리엘라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놀라워하며 변하는 주변의 풍경을 보았다. 주방에서는 수도에서 콸콸 쏟아지는 물에, 마구간에서는 여물통에 채워지는 물에, 정원에서는 솟아오르는 분수대에 모두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루시안은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힘 자체야 대공님이 월등하게 강하시겠지만, 저희는 그 시간에 이렇게 생활에 바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쪽으로 연구를 해 온지라.”
그 말에 리엘라가 손뼉을 치자 하운의 얼굴이 구겨졌다.
“일 끝났으면 자네는 이만 돌아가게.”
“받은 만큼 일은 하고 가야 할 것 아닙니까. 자, 그럼 저택에 소소하게 보석의 힘이 필요한 곳이 어딘지 좀 들어 볼까요?”
“주방이요!”
“아니야, 욕실부터 봐주세요!”
루시안은 저에게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즐거운 듯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하운은 한숨을 쉬었다.
초대한 것도 아닌 인간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왜 이 저택으로 몰려드는 건데?
살면서 처음 겪는 이 소란은 역시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리엘라가 하운의 옷 소매를 잡아끌며 정원 구석의 수돗가를 가리켰다.
“우리는 씻고 들어가요.”
즐거워하는 리엘라의 얼굴을 보며 하운은 생각을 바꾸었다. 이 상황이 꼭 싫은 것만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