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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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저를 기억하고 있냐는 듯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며 반가운 얼굴로 짖자 아일리가 다가와 물었다.
“뭐야, 너 어떻게 이 개 이름을 알아? 진짜 이름이….”
아일리가 풉 소리가 나게 웃으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하운이야? 내가 알고 있는 그 하운?”
“응, 맞아. 주인분이 하운 님 이름을 따와서 지은 거랬어.”
아일리는 리엘라의 품에서 하운을 안아 들더니 귀엽다는 듯 혀를 차며 부르는 소리를 내었다.
“아이고 하운이 누나 보러 왔어요? 하운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거 좋아해서 어쩌니. 그렇지 하운아? 아, 그래 하운이 이거 물어 올래?”
“멍! 멍!”
개는 영문도 모르고 제 이름이 불리자 그저 좋다며 짖어 대었다. 때마침 우물가에서 손과 얼굴을 씻고 온 하운은 갑자기 불리는 제 이름에 인상을 찌푸리며 아일리를 바라보았다.
“그 개는….”
“아침에 같이 양 떼를 몰았던 하운이랍니다!”
개는 하운을 보자 아일리의 품에서 내려와 그의 주변을 뱅뱅 맴돌며 꼬리를 흔들었다. 기억에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예전에 무섭게 저를 노려보았던 것도 같이 기억을 하는지 하운의 눈치를 슬슬 보며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결국 하운이 먼저 몸을 숙이고 손을 내밀자 개는 ‘가도 돼?’라는 눈빛으로 하운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무릎 위에 다리를 올리고 얼굴을 핥았다.
“으, 읍!”
갑작스러운 침 세례에 하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개의 몸을 붙잡고 끙끙거렸다. 리엘라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여기까지 혼자 무슨 일로 왔니? 정말로 언니 찾아온 건가?”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일까. 하운의 얼굴을 핥던 개는 몸을 돌려 제가 왔던 길 쪽으로 뛰어가더니 큰 소리로 컹컹 짖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덕으로 이어진 길에서 사람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누구지?”
저택을 수리할 사람들은 아침에 다 도착했다. 그러니 추가로 올 사람들은 없었다.
“다 해서 열 명. 여자 여섯에 남자 넷. 복장이나 손에 들린 짐을 보니 멀리서 온 사람들은 아니네. 옆 마을 사람들인가?”
눈이 좋은 아일리가 다가오는 사람들의 정보를 빠르게 말하자 하운과 네아는 조금 굳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리엘라는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여전히 눈 좋네. 그런데 누가 들으면 무슨 정찰하는 병사인 줄 알겠어.”
“그런… 가?”
사실 자신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아일리는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곧 리엘라는 무리의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개의 주인이자 저번에 자신과 하운을 대접해 주었던 농부였다.
“엇, 아저씨는!”
“앗, 아가씨는!”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이 반갑게 인사하자 뒤에 서 있던 아일리가 다가왔다.
“리엘라, 너 아는 분이야?”
그 말에 농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리엘라?”
“…아차.”
저번에 그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다른 이름을 말했었던 리엘라는 멋쩍게 웃으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네, 제가 그 리엘라 테니어인데요… 저번에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잠깐만요. 그럼 그때 같이 오셨던 남자분은….”
“나 말인가?”
하운이 뒤에서 나타나자 농부는 ‘설마?’ 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운 아렐 팬드래건이다.”
“허어어억!”
농부는 당장이라도 거품을 물고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그때는 몰라뵙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이 음식을 차려 주는 것이 무례인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저희 집 개… 아니, 개 님 … 아니 개….”
하운의 이름을 붙인 자신의 개를 뭐라 칭해야 하는지 농부가 혼란스러워하자 하운은 됐다는 듯 다시 제 옆으로 온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음대로 놀라는 듯 등을 툭툭 쳤다.
“전국에 내 이름 붙은 개가 한 마리일 것도 아닐 테니 상관없네.”
“당장 개명하겠습니다!”
“됐다니까.”
농부가 울먹거리며 하운의 앞에 무릎을 꿇으려 할 때, 그와 함께 왔던 사람들이 땀을 닦으며 들고 온 것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무슨 일이긴요. 아침에 양 떼 몰아 주신 것도 고마운 데다 마침 이 저택 수리를 하신다고 들어서 환영의 의미로 찾아왔는데….”
마을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멜다 부인과 그 앞에 펼쳐진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딱 보아도 수도의 귀족가에서 잔뜩 만들어 온 것이 분명했다. 그사이 정신을 차린 농부는 식은땀을 흘리며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기… 이거 그냥 가져가는 게 낫겠는데….”
“네? 그게 뭔가요?”
리엘라가 앞으로 나서며 그들이 들고 온 바구니를 보았다. 아까부터 뭔가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네아도 그 냄새를 맡았는지 다가왔고, 개 역시 바구니 주변을 돌며 몇 번이고 코를 가져다 대었다.
농부는 머뭇거리다 힘겹게 대답했다.
“아침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오늘도 밤까지 머물면서 일하신다기에 간단한 요깃거리를 조금….”
“환영합니다!”
농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아는 열 개가 넘는 그들의 바구니를 한 번에 척척 제 손에 걸어 테이블로 다가가 안에 담긴 것들을 꺼냈다.
바구니 안에 있는 것은 샌드위치였다. 하지만 그것을 감싼 기름종이를 푼 순간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게… 간단한… 요깃거리?”
리나의 가게에 있는 대왕 샌드위치에 뒤지지 않는 두께였다. 물론 빵만 두꺼운 것이 아니었다. 전부 다른 종류임이 분명한 여러 장의 햄과 치즈, 싱싱한 토마토와 양상추, 파프리카와 잘게 썬 올리브. 거기에 계란과 살짝 볶아 낸 버섯까지. 게다가 재료 사이로 살짝 새어 나오는 하얗고 노란 소스와 버터는 이미 식사를 받은 사람까지도 군침이 돌게 만들 정도였다.
종류는 샌드위치 하나라지만 절대 간단한 요깃거리가 아닌 수준에 아직 식사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식사다!”
“잘 먹겠습니다!”
다들 우르르 몰려가 샌드위치를 집어 들자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안심이 된 얼굴로 다른 바구니를 열었다.
“아침에 짠 우유와 과일 주스도 가져왔는데, 이것도 좀 드세요.”
사람들은 샌드위치를 잘라 서로에게 건네주면서 갑자기 얻게 된 음식을 즐겼다. 리엘라도 그중에 한 조각을 건네받아 한 입 크게 물었다.
“맛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초대받았을 때 먹었던 음식들도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전부 맛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왁자지껄한 점심시간이 끝나 갈 때쯤 리엘라는 어느새 정리를 끝내고 있는 저택의 2층으로 올라가 테라스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리엘라가 바라보는 쪽은 언덕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방향이었기에 햇살 아래 넓게 펼쳐진 파르멜 영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봐도 봐도 실감이 안 난다….”
이게 전부 다 제 것이라니. 보고만 있어도 숨이 탁 트이는 넓고 멋진 들판인지라 리엘라는 연신 감탄했다.
“풍경을 소유할 수 있다니… 생각도 못 해 본 건데… 좋긴 좋구나.”
지금까지는 기껏해야 풍경이 그려진 엽서나 그림을 사서 액자에 끼워 두는 게 전부였는데 이제는 풍경 그 자체를 살 수 있다니. 호슨 공작이 들었으면 ‘그래서 내가 열심히 벌었던 것 아니겠니.’라며 웃었을 말을 중얼거리며 리엘라는 눈을 감았다. 조금 전 욕실을 먼저 고쳤다길래 리엘라는 하운의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 몸을 씻었다.
돌아다니면서 흘렸던 땀이 시원하게 씻겨 나가고 네아가 언제 준비해 왔는지 모를 시원한 여름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니 기분이 무척이나 상쾌했다. 게다가 멜다 부인과 마을 사람들이 정성스레 만든 음식으로 든든하게 배도 채웠고.
“맨날 이러면 좋겠다.”
하운이 있고, 네아가 있고, 아일리 언니도 있고. 공작저의 사람들에 정원을 만드는 사람들. 신나서 뛰어노는 하운의 짖는 소리까지.
공작저도 매일매일이 즐거웠지만 리엘라는 어쩐지 이 저택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흐아암….”
낮의 햇살이 아직은 따가워서 해가 기울 때까지는 다들 치워 둔 거실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러니 조금 더 게으름을 부려도 괜찮을 것이다. 리엘라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잠시 후, 리엘라를 찾아 위로 올라온 하운은 그녀가 잠든 것을 보고 테라스의 문을 닫았다. 안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음이 차단되자 남은 것은 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새 소리뿐이었다.
하운은 조심스레 리엘라의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그녀를 보았다.
“……?”
리엘라의 목에 보지 못했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아르펠트의 진주를 제외하고는 딱히 장신구를 걸치지 않는 리엘라다. 그래서 처음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걸었을 때도 어쩐지 답답하다며 귀찮아하는 기색이었는데, 갑자기 안 하던 목걸이를 걸다니? 그가 몸을 내밀어 기웃거리자 리엘라의 가슴 위에 올려진 목걸이의 장식이 보였다.
“…….”
그것은 하운이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소르디아에서의 마지막 날, 오팔 뽑기를 위해 샀던 원석. 그중에서도 리나에게 줄 것을 때로 뺀 탓에 다른 원석들보다 훨씬 작은 것을 그 자리에서 갈라 보았다. 그중에 절반은 그날 밤의 기억을 간직하게 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비어 있는 상태가 되어 두 사람은 의논 끝에 기억이 있는 부분은 하운이, 아직 기억이 없는 부분은 리엘라가 갖기로 했다.
‘그걸 어디에 두려나 했더니.’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 다닐 줄이야. 하운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리엘라가 이 작은 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습에 기뻤다.
하운은 턱을 괴고 앉아 잠든 리엘라의 모습을 보았다.
이 저택을 다시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이래 하루하루가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다. 버려졌던 저택은 하루가 다르게 깔끔해지고, 또 새로운 것들이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하운은 이 저택의 복원이 끝났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자신과 리엘라가 함께 고른 나무와 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분수대에서는 다시 물이 솟아오르고, 후원에 있는 온실에서는….
“…….”
그는 슬쩍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곧 그의 손에 리엘라가 걸고 있는 것의 나머지 반쪽이 들려 나왔다. 리엘라가 항상 갖고 다니는 것처럼 하운 역시 기억이 담긴 원석을 항상 갖고 다녔다.
워낙에 품질이 좋지 못한 원석이다 보니 안에 들어 있을 기억은 선명하지도 않을 것이며, 몇 번 다시 불러내면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하운은 아직 한 번도 안에 있던 기억을 다시 불러내지 못했다.
몇 번 망설이던 그는 제 것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제가 앉아 있는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러고 보니.’
리나에게 갔던 그 돌 안에는 뭐가 들어 있었으려나.
***
같은 시각, 리나는 브릭스 거리에 있는 세공소에서 반으로 갈라진 원석을 받아 들고 있었다.
“자, 여기 있다.”
“감사합니다! 근데 정말 돈 안 받으셔도 되나요?”
“그냥 가르는 것뿐인데, 뭐 이런 걸 공임비를 받아? 저기 소르디아의 지독한 장사꾼들은 그런다고 한다만 나까지 그럴 순 없지.”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건 받아 주세요.”
리나는 제 가게의 무료 음료 시음권을 세공소 주인에게 쥐여 준 후 밖으로 나왔다.
“자아, 이게 우리 가게의 새 출발을 점치는 돌이라 이거지….”
리엘라가 건네주면서 마지막에 남아 있는 걸 사 와서 별로 품질이 안 좋을 거라고 했을 때, 리나는 그런 게 어디 있냐며 다시 사 오라고 매달렸다. 당연히 먹히지 않을 협박이었지만.
“난 진지하다고.”
어쨌거나 보석으로 유명한 소르디아에서 가져온 오팔이 아닌가.
“뭐든지 좋아. 제발 돌 말고 아무거나 나와라….”
말을 들어 보니 정말 꽝은 갈라 봤자 그냥 돌멩이라고 했다. 그것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리나는 천천히 반으로 갈라진 원석을 열어 보았다.
“응?”
깔끔하게 잘린 단면에는 흰색의 바탕 위에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빛의 파편들이 박혀 있었다.
“오, 오팔이다아아아아!”
브릭스 거리에 리나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