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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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는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에 익숙한 천장이 보이자 그녀는 중얼거렸다.
“꿈이었구나….”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네아가 들어오더니 재빨리 리엘라의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아가씨, 일어나셨군요! 그럼 어서 말해 보세요! 어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루시안 님이 아닌 하운이 아가씨를 안고 들어온 건가요! 대답에 따라 지금 아침식사에 독을 탈지 말지 고민 중이거든요!”
네아의 말에 리엘라는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신음 소리를 내었다.
“어떡해. 꿈이 아니었어….”
***
우느라 퉁퉁 부은 눈을 힘겹게 깜박이며 씻고 옷을 입을 때까지 네아의 질문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도대체 연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루시안 님은 어디 가고 왜 하운이 아가씨랑 온 거죠? 그리고 왜 눈이 그렇게 되신 건데요? 옷도 흐트러져 있었고!”
“으아아, 몰라요. 몰라!”
리엘라는 안 듣겠다는 듯 귀를 막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원망스러울 정도로 어제의 일은 무엇 하나 희미한 부분 없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러니까… 하운이 이마에 입을 맞출 때의 감각이라거나 하는 것까지 말이다! 리엘라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달뜬 뺨을 손등으로 꾹꾹 눌렀다.
‘일단은 아침부터 먹자.’
어제 연회에 가기 전 긴장을 한 탓에 아무것도 먹기 못했던 데다가 오고 나서도 바로 잠이 들었던 탓에 일어나자마자 지난 기억의 민망함과 함께 허기가 몰려왔다. 아무래도 식음을 전폐하고 고민하는 건 제 방식이 아닌 것 같다 생각하면서 리엘라는 힘차게 식당의 문을 열었다. 멜다 부인의 아침을 먹으면 머리도 좀 돌아가겠지 생각하며.
“허억!”
하지만 리엘라는 문을 열어젖힌 순간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식탁 앞에는 이미 하운이 앉아 있었으니까. 그냥 앉아만 있으면 이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소라면 하운의 자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반대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앉은 곳은 리엘라의 바로 옆 자리였다. 게다가….
‘엄청 가까워!’
의자가 거의 붙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다. 게다가 리엘라를 더 얼어붙게 만든 것은 그렇게 가까이 앉아 있는 하운이 자신을 보면서 ‘뭐 문제라도?’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서 봐. 기다리고 있었어. 눈은 좀 괜찮아?”
하운의 말에 리엘라는 주춤거리며 한 걸음 물러났다.
“어… 와, 왕궁에 가지 않으셨어요?”
그 난리가 났었으니 당연히 수습을 위해 왕궁에 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공작저에 있었을 줄이야. 그러자 하운이 대답했다.
“일어나는 모습 보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
그 목소리에 마침 빵을 들고 들어온 멜다 부인이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하는 얼굴이 되어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덕분에 잘 구운 빵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지만 아무도 그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얼어붙은 것은 멜다 부인뿐만이 아니었다. 네아 역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하운에게 집어던질 수 있지만 리엘라에게는 해가 되지 않을 것을 찾아 미친 듯이 주변을 살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땅한 것을 찾을 수 없었지만,
그렇게 모두가 얼어 버린 가운데 하운 혼자서만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
식사는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끝났다.
정신을 차린 멜다 부인은 눈치 없이 자신들이 여기에 있었다며 편히 식사하라 말하고는 당장이라도 하운에게 달려들 기세인 네아의 뒷덜미를 붙잡더니 식당을 나섰다.
왜 하필 오늘 아침 식사는 평소보다 푸짐하게 차려진 것인지. 맹렬하게 거의 쑤셔 넣듯이 입에 집에 넣었는데도 음식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즉, 그 시간 내내 하운이 옆에서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는 소리다. 그 시선을 견뎌 내며 리엘라는 마지막 음식을 입에 넣은 다음, 차는 응접실에서 마시겠다며 도망치듯 식당을 떠났다. 그 뒤를 하운이 졸졸 따라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리엘라는 응접실에서 1인용 소파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본 하운은 아쉽다는 얼굴로 바라보다 긴 소파에 앉았다. 다행히 그것을 옮길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리엘라가 안도의 숨을 내쉬자 하운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옆에 있는 게 싫은 건가?”
“아니요!”
긴장한 탓에 리엘라는 큰 소리로 외치듯 대답했다. 그러자 그 대답에 하운이 다시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보며 리엘라는 눈이 부시다는 듯 눈을 깜박였다. 그동안 하운의 얼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무표정이 아닌 미소 짓는 하운의 얼굴은 생각보다 더 강력했다.
저도 모르게 따라 웃을 뻔했던 리엘라는 두 손으로 뺨을 꽉 눌렀다. 정신 차려! 정신!
이대로 있다가는 하루 종일 하운을 따라 헤실헤실 웃기만 하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새 리엘라의 시선은 다시 하운의 얼굴을 향하고 말았다. 그러다 그의 얼굴에 남아있는 붉은 자국을 발견한 순간 벌떡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맞다, 얼굴! 괜찮으세요? 왕비님께서 엄청나게 세게 때리셨는데!”
그의 뺨을 때리던 소리가 온실 안에 울리고 얼굴이 휙 돌아갔던 것이 기억났다. 그리고 공작저로 돌아오기 전, 눈이 감기기 전에 봤던 그의 뺨 한쪽이 잔뜩 붉어진 채 조금 부어 있는 것도.
“괜찮아. 치료했으니까. 아직 조금 붉은 기운은 남아 있지만 곧 없어질 것 같고.”
하운은 리엘라가 보기 편하게 살짝 고개를 돌려 뺨을 보였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부기는 사라졌고 남은 것은 희미한 붉은 자국뿐이다. 그 흔적을 보고 있자 울컥 화가 밀려 왔다.
“말로 하셔도 되었을 것을 왜 이렇게 때리신 거래요?”
그 상대가 왕비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저절로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고 말았다. 왕비는 정말 인정사정없이 하운의 뺨을 갈겼다. 마치 사람들이 그동안 두 사람의 사이에 대해서 했던 말들이 정말인 것처럼.
“왕비 전하를 원망하진 마. 예전에 내가 부탁드렸던 것이니까.”
“부탁…?”
하운의 대답을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해 하고 있자 어느새 하운이 고개를 돌려 제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물었다.
“그런데, 걱정해 준 거야?”
“……!”
달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리엘라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하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는 걸 깨닫고는 황급히 물러섰다. 그런 리엘라를 붙잡으려던 하운은 제 손을 거두며 중얼거렸다.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붙잡아도 되겠지.”
리엘라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가 믿어지지 않았다. 그가 어떤 의미로 저런 말을 하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으니까.
‘아니야, 정신 차리자! 지금 대공님은 이상한 상태라고!’
어젯밤 왕비가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샤를로테가 알 수 없는 보석을 사용했다고 했어.’
레티시아 왕비는 하운에게 넌 지금 정상이 아니라고 했다. 샤를로테가 알 수 없는 보석을 사용했고 그 영향이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무단으로 강탈했던 사실은 비밀리에 붙이겠다고.
그렇게 말하는 왕비의 손에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왕비는 그 모습을 보며 머리 아프다는 듯 이마를 누른 다음에 이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자 말하며 리엘라를 바라보았었다. 그때 왕비의 시선을 생각하니 갑자기 먹었던 아침 식사가 목에 걸리는 기분이 되었다.
잠시 만난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무서운 왕비였는데 다시 만나야 하는 건가?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보다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이상한 곳은 없으시고요?”
솔직히 하운의 어디가 이상한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샤를로테의 보석이 몸에 이상을 남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리엘라의 말에 하운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멀쩡해. 돌아가서 보석진의 기록을 살펴보고 샤를로테를 취조하면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일단 지금으로서는 아무 문제도 없어.”
아니오. 문제가 있는데요.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리엘라는 여전히 웃고 있는 하운을 보며 샤를로테가 정말로 무서운 보석을 사용했음을 실감했다. 몸에는 이상이 없는 만큼 정신에 영향을 끼친 보석이 분명하리라.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하운이 보이는 이 웃음이 자신이 아니라 샤를로테에게 향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모습을 상상하자 입 안이 모래를 씹은 것처럼 꺼끌거렸다.
만약 샤를로테의 수상함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해서 그녀가 보석을 사용한 것도 몰랐다면? 그래서 하운이 저에게 대하는 것처럼 샤를로테를 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모습을 생각하며 리엘라는 입술을 물었다.
‘정말 싫어.’
그 순간 리엘라는 깨달았다. 보석의 방 두 번째 문을 여는데 필요한 사람을 찾았다는 것을. 지금 정말로 샤를로테가 싫었으니까. 그리고 카밀라 때와는 달리 그녀에게는 어떠한 사정이 있다 한들 마음이 풀리지 않을 것도 알았다.
“대공님. 샤를로테는 어떻게 되는 거죠? 저 이제 그분이 정말로 싫어서….”
“입술.”
“네?”
“입술 그렇게 물면 다치잖아.”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하운의 손이 불쑥 다가왔다. 그의 손이 닿으려 하자 리엘라는 눈을 감고 말았다. 모든 것이 아찔해서 차마 직접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저놈! 저럴 줄 알았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네아가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범죄 현장을 목격한 치안대와 같은 표정으로 하운을 노려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흔들며 뒤를 향해 소리쳤다.
“저놈입니다, 변호사님들! 저 놈이 서약을 어겼어요!”
“…서약?”
서약이라는 말에 하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혀를 차며 손을 물렸지만 그런다고 네아의 험악한 표정이 풀리는 건 아니었지만. 뒤따라 들어온 크레이튼은 곤란하단 얼굴로 하운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공님. 네아 양이 말한 대로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만…저보다 더 급한 사람이 있는 것 같군요.”
크레이튼은 그렇게 말하고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섰다. 그 뒤에는 왕궁의 시종이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다. 저번에 왔던 시종인 것을 보니 보나마나 왕비가 보낸 시종임이 틀림없었다.
***
레티시아는 인상을 찌푸린 채였다. 책상 위에는 샤를로테에 관련된 보고서가 놓였고 다른 한 쪽에는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든 케이스가 있었다.
“하아….”
그녀는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었다.
에르첼라의 목걸이는 왕실의 보물 중에서도 무척이나 강한 것이었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도 지금까지 수면기 한 번 들어가지 않았으며 과거 첫 번째 주인이었던 에르첼라의 고집 센 성격까지 그대로 닮은 보석. 그리고 이것은 호불호가 무척이나 확실한 보석이었다.
유리 케이스의 아래에서 에르첼라의 목걸이는 한눈에 보일 정도로 부르르 진동하고 있었다. 목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기분 나빠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원하는 곳으로 보내 주지 않아 저렇게 심통을 부리는 거겠지.
레티시아는 목걸이를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리엘라 테니어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