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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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의 목 위에 역사적인 문화재가 걸려 있다고 생각하니 목에 느껴지는 무게가 갑자기 수십 배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그 무게에 비틀거리다 주저앉을 뻔한 순간 머리 위로 하운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그의 팔이 허리를 감았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허우적거리던 리엘라는 놀라 하운의 몸을 붙잡았다.
“괜찮아?”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하운이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 목소리에 리엘라는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언제나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대부분 그다지 높낮이도 없고 말도 짧아 그가 말할 때면 그 서늘함에 움츠러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하운이 제게 물어보는 목소리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모습에 리엘라는 어지러웠다. 하운이 저를 안아 들었다. 그저 조금 비틀거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하운은 한 번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적이 없었다. 먼저 잡았던 것은 언제나 그녀였다. 그렇기에 리엘라는 스스럼 하나 없이 저에게 다가오는 하운이 지독하게 낯설었다. 지금 저를 안고 있는 사람이 제가 알고 있는 하운이 맞나?
하지만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이런 그가 싫지 않았다.
리엘라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를 바라보자 하운은 고개를 들어 레티시아에게 따지듯 말했다.
“겁주지 마십시오. 놀라잖습니까.”
“…….”
하운의 말에 할 말을 잃은 것은 레티시아뿐만이 아니었다. 안겨 있는 리엘라 역시 입을 뻐금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운이 자신을 감싸 주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도 때와 장소와 상대는 가려야 하는 거잖아!’
반역죄를 물을 수 있는 물건을 가져와 목에 걸어 두고 그 사실을 지적하는 왕비 앞에서 할 행동으로는 무척이나 부적절한 것이다.
도대체 겁을 왕비가 주고 있는 것인지 하운이 주고 있는 것인지 리엘라는 구분되지 않았다.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라 아무래도 엎드려 빌어야 하지 않을까?
리엘라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덜덜 떨고 있자 하운은 레티시아를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는 다시 리엘라를 향했다.
“아무래도 공작저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더 있다가는 몸이 상할 것 같군.”
하운은 그렇게 말하더니 더 고개를 숙여 리엘라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
“…….”
하운의 행동에 온실에 침묵이 흘렀다. 리엘라는 이미 혼이 나가 버린 것처럼 입을 벌린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레티시아 역시 리엘라와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샤를로테가 무슨 보석을 사용한 거지?’
정확히는 하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쯤 연회장 안에서 이쪽과는 다른 이유로 제정신이 아닐 샤를로테 공주를 떠올렸다. 레이안이 웃으면서 상대하고 있기에 아무도 눈치 못 채고 오늘의 연회는 조용히 끝날 것이다. 그 증거로 제가 자리를 빠져나올 때는 대부분의 참가자가 하운의 일은 그새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파트너와 춤을 추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연회가 끝난 후에 샤를로테는 편하지 않을 것이다. 그 즉시 비공식적으로 별궁에 구금이 될 것이며 무슨 목적으로 어떤 보석을 사용했는지에 대한 심문이 이루어지겠지.
레티시아는 여전히 리엘라를 끌어안고 있는 하운을 보았다.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가 브릭스 거리의 식당 한가운데서 리엘라 테니어에게 청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레티시아는 리엘라를 계속해서 주시했다.
하운에게 리엘라 테니어와 결혼하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레티시아는 조금도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 하운이 누군가를 좋아한다니. 그게 가능할까.
열 살을 겨우 넘긴 왕자가 스스로 왕위 계승권을 다 내려놓고 죽으러 전쟁터로 가기까지 얼마나 가지각색의 꼴을 보았는지 레티시아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떠날 때는 울먹거리기라도 했었는데. 왕궁으로 귀환할 때마다 하운은 표정을 잃었다. 그것이 10년이 넘다 보니 이젠 레티시아도 하운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에서 희미해져 갔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냉담함과 싸늘한 조소뿐.
그런데 지금 제 앞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표정을 짓고 있는 하운이 서 있었다. 마치 지난 시간 잃었던 것을 모조리 한 번에 되찾은 것처럼 하운의 얼굴은 짙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레티시아는 그것이 걱정되었다. 저것이 하운의 진짜 감정이어도, 보석이 불러온 거짓된 감정이어도 문제가 되니까.
‘돌아가는 즉시 알아봐야겠군.’
미리 샤를로테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보석진을 설치해 두어서 다행이었다. 보석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고 그것은 증거가 된다. 레티시아는 고개를 돌려 온실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하운이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탈취해 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믿을 만한 자들만을 골라 이곳으로 왔다. 그러니 저들이 이대로 목걸이를 제 자리에 돌려두고 보석의 방에 있던 자들의 입만 다물게 하면 오늘의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하고.’
만약 막지 못하면 귀족들 전체가 소란스러워질 것이다.
이번 일이 기회라고 생각해서 하운을 압박하는 자가 나올 수도 있고 반대로 하운을 충동질해 왕권을 노리자 권유하는 자가 나올 수도 있고. 그 모든 것을 막는 게 자신의 일이지 않던가. 그러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려놔야 했다.
“하운 대공, 그대에 대한 처분은 샤를로테 공주의 혐의가 확인되는 대로 다시 묻겠어. 그러니 지금은 왕실의 보물을 회수했으면 좋겠군.”
레티시아는 전에 없이 긴장하며 말했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하운이 요구를 거절하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니까. 하지만 뺨을 때렸을 때 즉시 반격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 제정신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했기에 레티시아는 그것에 희망을 걸었다.
레티시아의 말에 하운보다도 먼저 움직인 사람은 리엘라였다.
리엘라는 왕비의 말을 듣고 허겁지겁 제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풀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몸이 굳어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데다가 목걸이의 잠금쇠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몰라 손이 헛돌 뿐이었다. 게다가 하운의 품 안에서 움직인다는 게 쉽지도 않았고.
리엘라가 필사적으로 꿈틀거리자 하운은 아쉽다는 듯이 짧게 한숨을 쉬고 리엘라를 조심스럽게 내려놓더니 물었다.
“이 목걸이가 마음에 안 들어?”
“어…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
이건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걸어도 되냐 안 되냐의 문제였다. 리엘라는 급히 몸을 돌려 레티시아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왕비 전하, 전 결코 이것을 원한 적이 없습니다! 대, 대공님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냥 아무거나 걸어도 상관없는데…. 그러니까 대공님께서는 절대로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가져온 게 아니고….”
어떻게 말해야 하운도 안전하고 자신도 안전할 수 있을지 몰라 애원하듯 말하자 레티시아는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대답했다.
“알겠으니 어서 돌려주기나 하게.”
“네, 넵!”
리엘라는 다시 허겁지겁 목 뒤로 손을 뻗었다. 이거 왜 이렇게 안 풀리는 건데?
좀처럼 풀어지지 않는 목걸이에 그녀가 울상이 되자 뒤에 서 있던 하운이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내가 벗겨 줄게.”
그 말과 함께 내뱉어진 숨결이 목덜미에 닿자 리엘라는 소름이 돋았다. 별것 아닌 말인데 왜 이렇게 위험하게 들리는지. 리엘라는 고개를 끄덕거려 대답을 대신했다.
하운의 큰 손이 리엘라의 목에 닿았다. 거친 굳은살이 박여 있는 긴 손가락이 닿는 순간 리엘라는 움찔거리며 눈을 감고 말았다. 하운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마치 목걸이를 푸는 게 꽤 즐거운 일이라는 듯 그 행동을 즐기며 느긋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잠시 후 작은 소리와 함께 목걸이가 풀렸다. 가벼워지는 느낌에 리엘라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목을 떠난 목걸이는 하운의 손에 들려 레티시아의 손으로 건네졌다.
이것으로 된 걸까?
이제 왕비의 질책이 이어질지 몰라도 일단은 목걸이를 넘겼다는 마음에 리엘라가 숨을 돌리려고 할 때 갑자기 목걸이가 레티시아의 손에서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
왕비가 목걸이를 놓친 건가 싶어 바라보던 리엘라의 눈이 커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목걸이가 눈을 한 번 깜박한 사이에 한 걸음 정도 자신의 가까이 다가온 것이 보였다.
뭐지? 내가 헛것을 보는 건가?
리엘라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다시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그사이 목걸이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이번에는 눈을 깜빡이지 않고 가만히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목걸이가 슬금슬금 기어오듯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뭐야 저거? 살아 있는 거야?
“헉!”
있을 수 없는 일에 놀라 리엘라는 곧바로 하운을 붙들고는 그의 뒤로 숨었다.
“뭐, 뭐죠? 왜 목걸이가…?”
리엘라가 떨며 중얼거리자 하운과 레티시아가 신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맙소사. 에르첼라가….”
“…마음에 들어 하는군요.”
두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리엘라는 점점 제게 가까워지는 목걸이를 보며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사람 살려!”
***
네아는 현관의 계단에 앉아 입구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오실 때가 훨씬 지났는데.’
꽃 축제 연회는 큰 연회인 만큼 늦게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나 밤에 보는 온실과 정원의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연회가 끝나고 난 다음에도 좀처럼 그곳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는 것도.
그래서 네아는 처음부터 리엘라가 늦게 돌아올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턱을 괸 채로 하늘을 보던 네아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운, 이 자식 땅을 치고 울고 있겠지.”
열과 성을 다해 리엘라를 꾸며 보냈다. 그 모습을 본 하운의 속이 얼마나 뒤집어졌을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원통해 죽으려고 했을게 분명해.’
리엘라의 첫 연회 파트너를 놓쳤다는 생각에 분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알 게 뭐람? 그 멍청이는 제대로 손도 내밀지 못하는데. 이러다간 10년 정도 지나야 손 한번 잡아볼 것 같았다.
‘거기다 심지어 샤를로테의 파트너로 참석한다고.’
그걸 알고 리엘라가 속상해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역시 하운은 굴러도 싸다. 그놈이 원통해하건 말건 제가 알게 무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입맛이 썼다. 그러기에 내가 이런 짓을 하기 전에 제대로 고백하고 리엘라와 함께 연회에 갔으면 얼마나 좋아?
네아가 애꿎은 돌멩이를 툭툭 건드리며 지루해하고 있을 때 멀리서 마차 소리가 들렸다.
“오셨다!”
네아는 벌떡 일어나 길 끝을 살폈다.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보이는 그녀의 시야 끝에 달려오는 마차가 보였다.
“…어?”
제가 기다리던 루시안의 마차가 아니었다. 왕실의 문장이 붙어 있는 저것은 분명….
그사이 마차가 미끄러지듯 달려와 저택의 앞에 멈췄다. 네아는 서둘러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 있던 사람이 재빠르게 내렸다. 그것은 기절한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리엘라와 그녀를 안고 있는 하운이었다.
“뭐야? 왜 네가 나와?”
루시안은 어디 가고 왕궁에 있어야 할 하운이 왜 여기 있는 건데?
네아는 서둘러 하운의 품에 안겨 있는 리엘라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가가 발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본 순간 망설임 없이 리엘라를 빼앗듯이 안아 들고 하운의 무릎을 걷어찼다.
“아가씨께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