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2
◈ 162화 루모스 가문 (2)
루드거는 플로라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본인은 애써 강한 척을 하고 있지만, 눈썰미가 뛰어난 루드거는 플로라가 심적으로 불안한 상태라는 걸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그녀의 발걸음은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그때도 아버지를 만나러 왔다면서 정작 마주치는 데 망설임을 보였지.’
헤이백 공작의 말을 듣고서야 플로라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깨달았다.
플로라 루모스는 케이든의 딸이지만 첩의 자식이다.
귀족들 사이에서 첩의 자식이 갖는 불합리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플로라 정도의 재능을 지녔다면 가문에서도 마지못해 인정해 줄 수밖에 없을 터.
플로라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말이 안 된다.
역시 가장 큰 이유라면 그것이리라.
‘루멘시스교.’
루모스 가문은 엑실리온 제국의 3대 공작가 중에서 가장 독실한 루멘시스교 신자 가문이다.
그리고 루멘시스교는 첩의 자식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유일신 루멘시스를 믿는 이 교단은 인간만을 위한 교리를 따른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온갖 이종족들을 탄압해 온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그 화살은 단순히 아인종만을 향하지 않았다.
루멘시스교는 인간을 위한, 인간의 평등함을 주장하는 종교가 아니었다.
그들의 교리에 있는 근간은 결국 우열을 나누는 데 있다.
인간과 아인종의 우열.
상급 시민과 하급 시민의 우열.
적자와 서자의 우열.
루모스 가문은 그런 루멘시스교를 맹렬히 추종한다.
결국.
첩의 자식인 플로라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선보여도 가문에서 결코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버지에게 가는 건가.’
플로라는 자신을 절대 자식 취급해 주지 않는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도,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뒤집어쓴 가면이 언제 깨질지 모를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케이든 루모스 공작의 곁에 있던 한 소녀가 플로라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플로라와 같은 진청색 머리카락을 장발로 길게 기른 소녀.
멀어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표정에서부터 드러나는 조롱의 기색은,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 줬다.
나이는 플로라보다 2, 3살 더 어려 보이지만, 하는 행동에서 그녀의 자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분명 제대로 된 혈통을 이어받은 자식이겠지.
플로라에게 시비를 거는 것은 단지 여동생만이 아니었다.
‘루모스 가문의 차기 가주, 카말 루모스인가.’
그 또한 플로라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카말 루모스와 카트리나 루모스.
나이로 따지면 플로라의 오빠와 여동생이겠지만, 두 사람은 결코 플로라를 자신의 가족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두 남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듣는 플로라는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이윽고 루모스의 가주, 케이든 루모스가 플로라를 바라봤다.
처음부터 필요 없던 존재를 대하는 것 같은 눈빛.
자신의 딸을 향한 그의 시선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것을 본 순간.
루드거는 자기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어, 어어? 이보게 선생!”
헤이백 공작이 말릴 틈도 없었다.
“저희 학생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루드거는 루모스 가문 사람들의 사이에 끼어들며 그렇게 말했다.
플로라를 향하던 케이든의 시선이 루드거를 향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느낀 것인지, 헤이백 공작도 황급히 다가와 루드거의 옆에 섰다.
그때 케이든 루모스의 입이 열렸다.
“집안일입니다. 신경 끄시죠.”
차갑고 단호한 어조로 끊어 내듯이 말하는 케이든의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루드거는 물러나지 않았다.
“제 수업을 듣는 학생의 일입니다. 교사로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교사가 멋대로 집안의 일에 끼어드시겠다는 겁니까?”
“집안의 일로 보이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돌려서 말했지만 루드거의 의도는 다분히도 직설적이었다.
너희들이 하는 짓이 과연 평범한 집안일이 맞냐? 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
주위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귀족들이 경악했다.
그러나 케이든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루드거의 옆에 선 헤이백이 답지 않게 케이든과 루드거 사이에서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
‘아니, 이 선생이 갑자기 왜 이래?’
다른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루모스 가문의 가주와 대립각을 세우다니.
‘설마 학생 때문인가?’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루드거가 플로라 루모스를 지키듯 나섰다.
플로라 루모스는 루드거의 수업을 듣는 학생 중 하나. 심지어 그중에서도 수석을 차지하는 우등생이다.
루드거가 나설 이유는 충분했다.
분명히 충분했지만.
‘그렇다 해도 루모스 공작가를 상대로 저렇게 노골적인 대립각을 세우는 건 그야말로 미친 짓인데.’
상대는 대귀족이라 부를 수 있는 공작이다.
그에게 밉보이면 아무리 세오른의 교사라 하더라도 분명 불이익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같은 공작인 헤이백이 케이든을 놀려먹으면서도 절대 일정 선은 넘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럼에도 루드거 첼리시는 케이든의 앞에 당당히 섰다.
헤이백의 시선이 차분해졌다.
‘차가워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자신의 학생을 아끼는 남자였는가.’
뜨겁군그래.
카다투샨은 자신에게도 경고했던 루드거의 그 기세를 떠올렸다.
그는 상대가 누구라 하더라도 굽히지 않는다.
공작인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말을 전했던 것만 봐도 그렇다.
루모스 가문에 연줄을 대기 위해 모인 귀족들도 당황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플로라는 루모스 가문에서도 언급 자체를 꺼리는 아픈 손가락이다.
아니. 과연 손가락 취급이라도 해 줄까.
말 그대로 없는 존재처럼 여겼다.
그것은 루모스 가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깊게 관여된 사람이라면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루모스 가문과 척을 지겠다는 건가?’
‘쯧. 주위에서 치켜세워 준다고 자기가 뭐가 되는 사람인 줄 아나 보군.’
대부분 귀족은 속으로 혀를 찼다.
루드거는 최근 대단한 명성을 거머쥔 사람이지만, 결국에 일개 몰락 귀족일 뿐이다.
가지고 있는 권력 자체가 케이든 루모스와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이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짙은 고요가 내려앉았다.
루드거 첼리시와 케이든 루모스.
두 남자는 그 누구도 시선을 피하는 이 없이 계속 서로를 응시했다.
서로의 손에 칼이 쥐어졌다면 당장이라도 휘두를 기세였다.
그 순간, 차녀 카트리나가 나섰다.
“와! 안녕하세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루드거에게 인사를 건네는 카트리나.
그녀는 은근한 시선으로 루드거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루드거 첼리시 선생님이시죠? 어제 대련 잘 봤어요. 정말 멋지시더라고요! 막 마법을 엄청 빠르게 쏘시고, 빛 마법까지 사용하고요.”
“그쪽은…….”
“이런. 제 소개가 늦었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카트리나 루모스라고 해요. 루모스 가문의 정통성 있는 후계자죠.”
카트리나는 양손으로 치맛자락의 끝을 살짝 들어 올리며 절도 있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정통성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루드거 뒤에 있는 플로라를 힐끔 살피기까지.
그 행동은 마치 여우와 같았다.
“그보다 루드거 씨, 정말 저기 있는 플로라의 선생님이에요?”
카트리나는 곧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초승달처럼 샐쭉 휘어진 그녀의 눈동자가 플로라를 향했다.
입가에는 참지 못한 미소까지 맴돌고 있었다.
“정말 놀랍네요. 가문에서 버림받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플로라가 여기서는 우등생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게.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건가 봐요? 뭐, 꼴에 마법 재능은 타고났으니 당연하겠지만요. 아, 혹시 모르셨나? 플로라 저 아이, 가문에선 반쪽 취급이거든요.”
카트리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그 말을 들은 플로라는 거기에 반박하기는커녕 오히려 고개를 푹 숙였다.
‘들켰어.’
가문에서 제대로 된 취급을 받지 못했다는 말에 플로라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루드거 선생님한테 들켰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수치스러웠다.
‘차라리 여기에 오지 말걸.’
이제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른 걸 바라지 않았다. 그저 잘 지냈냐는 그 한마디만 해 줘도 상관없었다.
그런 걸 바란 것이 그렇게나 큰 잘못이었을까?
온정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사람처럼 대접받고 싶은 것이 그렇게 나쁜 짓이었나?
참으려 했던 눈물이 다시 흘러넘칠 것 같았다.
이미 옛날에 다 흘려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난 멍청이야.’
재능 하나로 아버지가 자신을 인정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멍청한 바람인가.
‘나는…….’
“실례지만.”
루드거의 목소리가 플로라의 상념을 모조리 지워 버렸다.
루드거는 카트리나의 말에 맞장구를 치지도 않았고, 플로라의 상태를 힐끔 살피지도 않았다.
단지.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얼굴로 타인을 응시하며.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을 할 뿐이었다.
“카트리나 아가씨는 혹시 세오른 아카데미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학생이 아닌 외부인이기에 카트리나를 상대로 높여 부르는 루드거.
그 말에 카트리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이죠. 저 또한 내년에 세오른에 입학할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그것도 수석으로요. 자, 이걸 보세요.”
손바닥 위로 2위계 마법 술식을 펼쳐 보이며 자신 있게 말하는 카트리나.
2위계 얼음 마법 [빙정탄].
날카로운 얼음덩어리 하나가 순식간에 손바닥 위에 떠오른다.
술식을 이루는 속도도 마력의 농도도 그 또래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나다.
실제로 카트리나는 이미 자신이 내년에 수석을 딴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훌륭한 마법이군요.”
“호호. 별거 아니에요. 이런 것쯤은 식은 죽 먹기죠.”
“세오른의 교사로서 카트리나 아가씨에 대해서 평가를 내려 봐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이에요.”
어차피 칭찬밖에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 카트리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루드거의 기세가, 그 순간 변했다.
“카트리나 루모스. 태도 불량 벌점 10점.”
“네?”
칭찬을 기대했던 카트리나의 웃는 얼굴에 금이 갔다.
“술식 구현속도 기준치 미달 벌점 5점. 술식 전개 미흡 벌점 10점. 마법에 대한 가벼운 사고방식 벌점 10점.”
“자, 잠깐만요! 그게 대체 무슨……!”
“질문하나 하지. 조금 전 2위계 마법 빙정탄의 술식을 보여 줬는데, 빙정탄은 총 4개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위력을 확장시키는 술식의 구조가 어떤 건지는 알고 있나?”
“그건…….”
“자신이 다루는 마법의 구조조차 분석하지 않고, 그저 가르친 대로 따라만 한 건가? 그걸 자랑이라고 드러냈던 거고? 마법에 대한 이해 부족 벌점 20점까지 가산됐군.”
“…….”
루드거의 기세에 밀려 카트리나는 제대로 된 반박을 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쌓여 버린 벌점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자신이, 어딜 가서 이렇게 노골적인 취급을 받아 본 적이 있던가?
없다.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왜냐면 그녀는 제국의 3대 공작가의 사람이니까.
모두가 그녀에게 좋은 말만 해 주고 듣고 싶은 아부를 떨었으니까.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그랬을 텐데.
“세오른이 우습게 보였습니까? 고작 그따위 실력으로 세오른에 오면 수석은커녕 등수는 고작 절반에서 그칠 겁니다.”
카트리나를 노려보는 루드거의 얼굴에 음영이 졌다.
이 남자는 상대가 누구라도 말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분함에 이를 악물고 주먹을 말아 쥐는 카트리나를 보던 루드거의 시선이 케이든 루모스를 향했다.
“케이든 루모스 공작님.”
시종일관 관심이 없던 그의 눈빛에 처음으로 루드거를 향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루드거는 그런 케이든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세오른에 입학시키려면 교육을 다시 시켜야겠습니다.”
경악의 감정이 퍼져 나간다.
카다투샨이 입을 쩍 벌렸고, 루드거의 뒤에 서 있던 플로라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위에서 구경하던 루모스 추종자들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저질렀다.
지금 루드거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케이든에게 모욕을 준 것이다.
“이, 이이……!”
귀족 중 하나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루드거를 가리켰다.
“이놈이 감히 누구 앞에서 그런 망발을……!”
“세오른의 교사라고 치켜세워 줬더니 미치기라도 한 건가!”
“몰락 귀족 출신이 건방지다!”
이 기회에 케이든 루모스에게 잘 보이려던 사람들이 버럭 소리 지르며 대신 분노했다.
루드거는 새벽녘의 호수처럼 잔잔한 시선으로 그들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가씨가 부탁하셨기에 세오른의 교사로서 평가를 내렸을 뿐입니다.”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는……!”
“거기까지만 하게.”
노발대발하며 당장이라도 루드거를 쫓아내려던 귀족은 앞으로 나선 노인을 보며 입을 합 다물었다.
루드거에게 경박하게 굴 때와는 전혀 다른, 그 깊이를 감히 헤아리기 힘든 혜안으로 좌중을 압도한 헤이백 카다투샨.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로 부득이하게 의견이 충돌해서 열이 많이 올랐군. 모처럼 즐거운 자리인데, 조금 진정하는 게 어떤가? 루드거 선생. 자네도 말이 좀 지나쳤네.”
“주의하죠.”
“그리고 자네들도 마찬가지네. 자네들은 별말 안 들었으면서 왜 그렇게까지 열을 내는 건가?”
“……하지만!”
한 중년 귀족이 나서서 항의하려 했지만, 그는 자신의 말을 끝맺지 못했다.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제지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케이든 루모스였기 때문이다.
“그만. 거기까지.”
영혼을 울리는 웅대한 목소리가 귀족들을 제지했다.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처럼 끓어오르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빙하기를 맞이한 것처럼 훅 꺼졌다.
모두가 케이든 루모스를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행동을 취할지 기대하는 시선을 담은 채로.
“루드거 첼리시 선생이라 했나.”
케이든 루모스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마치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것처럼.
“우리 딸아이가 아직 뭘 몰라서 무례를 범했군. 어른으로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게.”
하지만 그의 시선을 직접 마주하는 루드거는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노기(怒氣)는 너무나도 뜨거워, 당장이라도 그를 태워 버릴 것 같다는 걸.
그 시선을 마주하면서도 루드거는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
케이든 루모스의 이마에 처음으로 주름이 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