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372
◈ 372화 체셔 타이거 (1)
숲은 고요했다.
조금 전부터 은근하게 들려오던 소리가 전부 환청이었던 것처럼.
짐승의 소리는 둘째치고, 은은히 들리던 풀벌레마저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루드거의 본능과 오랜 경험이, 절대 평범한 상황이 아님을 알리고 있었다.
이건 징조다.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징조.
“아르파. 뭔가 보이나?”
“아니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이곳으로부터 반경 500m까지. 전부 사라졌어요.”
“최소한 한두 마리 정도는 얼굴을 비출 법도 한데, 이상하게 지금은 그마저도 없는가.”
루드거는 자연스럽게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네? 네?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로이나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이 빽빽한 숲에서도 500m까지 보는 아르파의 능력부터, 무언가 심각함을 느낀 루드거의 태도까지.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일이라 미처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루드거 선생님. 혹시 지금, 뭔가 일어나려고 하는 건가요?”
“예. 그래서 제가 한번 추측해 봤습니다.”
“뭐죠……?”
“야생의 짐승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300명이나 되는 외부 집단? 분명 경계는 하겠지만,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이렇게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은 이상하다는 거죠.”
“그렇다면 짐승들이 두려워하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거예요?”
“예. 그리고 그것은, 오래전부터 이 땅에 자신의 구역을 정해 놓은 최상위 포식자일 겁니다. 으레 최상위 포식자가 움직일 때면, 모든 짐승은 숨을 죽이고 모습을 감추죠.”
바로 지금처럼.
로이나의 표정이 덩달아 심각해졌다.
그녀도 이 기묘한 긴장감을 읽어 낸 것이다.
그런데도 머리로는 채 납득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만큼 위험한 존재가 왜 지금 갑자기…….”
“로이나 씨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이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그, 그렇다면…….”
불안해하는 로이나에게 루드거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히려 이렇게 많이 모였기에, 지금까지 반응이 없던 녀석이 움직이게 된 걸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괜한 걱정에 지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끼기기긱───!!!
한차례 불어오는 바람에 섞인 기묘한 소리를 듣는 순간.
그 생각은 깔끔하게 지워졌다.
“뭐지?”
“방금 무슨 소리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짐승의 울음소리는 숲의 경계에 들어섰을 때부터 계속 들려왔지만.
이번 것은 묘하게 달랐다.
정확히 뭐가 다르다고는 확신할 수 없으나 본능적으로 모종의 거리낌을 느낀 것이다.
주로 어리둥절해하는 마법사들은 탐구를 위해 찾아온 지식의 추종자들이었다.
반대로 실전 경험이 있는 전투 마법사들의 반응은 달랐다.
“다들 경계해라! 무언가 있다!”
과연 이 위험한 곳까지 대가를 받으며 온 이들답게, 당황하는 사람 하나 없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원진이 형성되었고, 최전선에 선 것은 전투 마법사들이 됐다.
스스스슥.
은근하게 불어오는 바람의 사이로, 무언가 수풀을 스치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무언가 있다.
은밀하고 빠르며, 아주 위험한 녀석이.
그러나 눈으로 좇으려 해도 빽빽하게 자란 나무 때문에 제대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탐색대원!”
선두에 선 험상궂은 인상의 마법사가 외쳤다.
얼굴에 큰 상흔이 새겨진 그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능수능란하게 지휘했다.
“일단 대지 속성 마법사는 벽을 세운다! 그 뒤에 금속으로 보강해! 보통 녀석이 아니다!”
“탐색대원은 주위로 마력을 펼쳐!”
쿠르르릉.
삽시간에 지면이 일어나 간이 벽이 생성되고, 그 위에 철이 덧대어졌다.
하지만 마법을 펼친 마법사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리더. 저 사람들, 안색이 좋지 않아요.”
“환경 때문이다.”
“환경이요?”
“마력이 적은 환경은 마법을 펼치는 데 문제가 되지. 반대로 지나치게 과포화된 마력도 마법을 펼치는 데 썩 좋은 환경이 아니야. 이 숲은, 전초 기지보다 마나의 밀도가 최소 5배 이상이다.”
아마 이곳에서 마법을 펼치려면, 평소 사용하는 마법보다 훨씬 더 많은 정신력과 마나를 소모해야 할 것이다.
땅 위에서 걷던 사람이 갑자기 물속에서 달리는 기분이겠지.
그것을 증명하듯, 펼쳐진 마법은 마법사의 실력에 비해 꽤 엉성한 부분이 있었다.
지휘관은 그것에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대신 여러 마법사가 힘을 합쳐서 장벽을 더 보강하게 했다.
“겁먹지 마라! 하던 대로 행동해! 어차피 이렇게 많은 마법사가 있는 이상, 한낱 짐승 따위가 뭘 할 수는 없을……!”
안전하게 보강된 벽을 보고 그렇게 외치던 용병 출신 마법사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말을 내뱉어야 할 그의 머리가, 이미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었다.
“어?”
바로 옆에서 지휘를 전해 듣던 마법사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얼이 빠져 버렸다.
뒤늦게 머리를 잃은 몸통이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끼기기기긱!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기괴한 소음과 함께, 벽 위로 한 짐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랑이를 닮은 짐승이었다. 눈동자는 붉고 털은 검었으며 꼬리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길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길게 찢어지듯 웃고 있는 얼굴.
입이 거의 귀까지 찢어질 정도로 길었고, 이빨은 상어처럼 날카롭고 촘촘했다.
루드거는 호랑이를 보며 한 이야기 속의 고양이가 떠올랐다.
찢어질 듯 웃으며, 불쑥 나타나고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그 고양이를.
만일 저 호랑이의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면.
체셔 타이거(Cheshire Tiger)라 불러야 하리라.
끼기기기긱!
호랑이의 새빨갛게 물든 입이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
그것은 조금 전까지 지휘를 내리던 마법사의 머리였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녀석이 오기도 전에 방벽을 설치했는데, 그것을 너무나도 쉽게 뚫고 들어와 지휘를 내리던 마법사의 목을 물어 가 버린 것이다.
비록 방벽으로 인해 방심했다고 하나, 그것을 보고 반응한 마법사가 없다는 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
“포식자 등급이다!”
“저런 녀석이 왜 갑자기 나온 거야!”
“됐고, 마법을 써! 저 녀석을 죽이라고!”
마법사들이 일제히 체셔 타이거를 향해 마법을 쏘았다.
여러 마법이 날아오는 걸 본 체셔 타이거의 입이 더욱 찢어지듯 올라갔다.
그리고 체셔 타이거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가장 먼저 몸이 투명화되었고, 그 뒤를 따라 눈과 입만 허공에서 잔상처럼 남았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직후 온갖 마법들은 허공을 때리고 벽 너머로 날아가 폭발했다.
“갑자기 사라졌어요!”
로이나가 체셔 타이거가 보여 준 믿기지 않는 모습에 경악했다.
루드거는 그 말에 반응하는 대신 아르파를 돌아봤다.
“봤나?”
“네.”
“어땠지?”
“순간이지만, 대기의 공기가 굴절되어 투명화가 됐어요. 사라진 것처럼 보인 것은, 엄청나게 빨리 움직였기 때문이에요.”
“대기 굴절. 그걸 가능케 한 것은 바람의 마력 때문인가.”
일개 짐승이 마력을 다룬다는 것이 믿기지 않겠지만, 카사르 분지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이곳에 사는 모든 짐승과 식물은 저마다의 마력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렇게 특정 속성을 발동시켜 사냥에 사용하는 개체는 흔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더 성가신 건…….”
루드거의 날카로운 시선이 다른 쪽을 향했다.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다른 곳에서 마법사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끼기기긱!
“여기다! 이곳에도 있어!”
“이쪽에도 있다! 한 마리가 아니었어!”
체셔 타이거의 숫자가 3마리까지 늘었다.
놈들은 혼자서 활동하지 않았다.
끼기기기긱!
여러 방향에서 울려 퍼지는 체셔 타이거의 울음소리에 심약한 마법사들이 공포에 질렸다.
그리고 체셔 타이거는 겁에 질린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다.
“으아악! 살려 줘!”
젊은 마법사가 눈물을 흘리며 외쳤지만, 체셔 타이거는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체셔 타이거의 검은 덩치가 마법사를 집어삼키려는 순간이었다.
“물러나라.”
마법사가 주저앉으며 생긴 그림자가 꾸물거리며 움직이더니, 이윽고 무수한 송곳처럼 솟으며 체셔 타이거를 노렸다.
체셔 타이거는 송곳을 보더니 전신으로 강력한 마력을 방출했다.
티티티팅!
강렬한 소용돌이가 체셔 타이거의 몸을 휘감으며 송곳과도 같은 가시들을 모조리 쳐 냈다.
화륵.
그 순간 화염으로 이루어진 창들이 체셔 타이거를 노렸다.
고작 바람을 두르는 것으로는 막아 낼 수 없는 강력한 공격.
그 순간 체셔 타이거는 앞발로 허공을 밟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체셔 타이거의 몸이 위로 솟구치며 화염창을 가볍게 피해 냈다.
“바람 마법을 이용해 저런 것도 할 줄 아는 건가.”
모처럼 날린 기습이 실패로 돌아가자 루드거는 쯧 하고 혀를 찼다.
바닥에 쓰러진 마법사는 그런 루드거를 떨리는 눈동자로 응시했다.
“루, 루드거 첼리시?”
“음?”
루드거는 자신을 부른 마법사를 슬쩍 쳐다봤다.
어딘가 낯이 익다 했더니,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던 그 젊은 마법사였다.
셈파스를 보고 겁에 질려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탐험대에 끼어들어 있었나.
딱히 구해 줄 생각으로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될 줄이야.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고 생각하며 루드거가 입을 열었다.
“비켜라. 여기에 있으면 방해만 될 테니까.”
“바, 방해라고……?”
자기도 싸울 수 있다고 말하려던 젊은 마법사는 다시금 이쪽을 노리려는 체셔 타이거의 모습에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젊은 마법사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고, 귀찮게 할 녀석이 사라지자 루드거는 온전히 체셔 타이거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체셔 타이거 또한, 본능적으로 루드거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섣불리 덤비지 않았다.
끼기긱.
“썩 듣기 좋은 울음소리는 아니군.”
철판으로 유리를 긁는 것 같은 체셔 타이거의 울음소리는 정신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호랑이가 내뱉는 저주파가, 마력을 머금으면서 더욱 강해진 탓이었다.
하지만 루드거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끼이익.
녀석도 자신의 울음소리가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지 자세를 더욱 낮췄다.
입가는 여전히 찢어진 것 같은 미소가 맺혀 있었지만, 조금 전 먹잇감을 사냥하던 것과는 그 느낌이 자못 달랐다.
“고맙다고 해야 할지 영광이라고 해야 할지. 비록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최소한 나를 동등한 포식자로 봐주고 있구나.”
루드거는 체셔 타이거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여기 말고도 다른 두 곳에서도 체셔 타이거가 날뛰고 있었지만, 그곳에도 뛰어난 마법사들이 있으니 오래 걸리지 않아 제압하리라.
그러니 이쪽은 눈앞의 적에게만 집중하면 됐다.
“와라. 고양아.”
말을 알아듣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도발을 날려 보았다.
말뜻은 몰라도 이쪽을 놀린다는 건 알았는지, 체셔 타이거의 미간에 약간이지만 힘이 들어갔다.
끼기기긱!
끔찍한 울음소리와 함께 웃는 얼굴의 호랑이가 달려들었다.
그 모습은 악몽에서나 볼 법한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괴함이 있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라도 체셔 타이거를 코앞에 둔다면 공포에 질릴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런 걸 무서워하기엔, 내가 지금까지 봐 온 것이 너무 많아서.”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발을 쿵 하고 굴렀다.
그러자 지면에 흙이 불쑥 올라오며 토벽이 생성됐다.
체셔 타이거는 그걸 비웃듯 토벽을 가볍게 뛰어올랐다.
바람을 머금은 체셔 타이거의 움직임은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벽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법이 쏘아졌다.
3위계 얼음 원소 마법.
[폭발하는 얼음꽃]얼음으로 이루어진 꽃잎이 비산하며 사방에서 체셔 타이거를 노렸다.
토벽을 뛰어넘은 체셔 타이거는 허공을 발판 삼아 몇 번 더 회피하려 했지만, 꽃잎은 집요하게 체셔 타이거의 뒤를 쫓았다.
허공에서 회피에 전념하던 체셔 타이거는,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는지 몸에 바람을 둘렀다.
티티티팅!
강력한 바람이 소용돌이치듯 회전하자 얼음의 꽃잎이 맥없이 튕겨 나갔다.
이건 어떠냐고 체셔 타이거가 루드거를 보며 씨익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루드거가 기다리고 있던 반응이었다.
[좌표 지정 술식]체셔 타이거의 머리 위에서 커다란 불덩어리가 생성됐다.
체셔 타이거도 뒤늦게 불덩어리의 존재를 인지하고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늦었다.
허공에서 난데없이 마법이 나타났으니, 미처 반응할 틈도 없었다.
끼야아아악!!!
녀석이 회피에 돌입하기도 전에, 시뻘건 화염이 체셔 타이거의 몸을 집어삼켰다.
“바람의 마력을 다루지만, 사용 기술은 한 번에 하나가 전부로군.”
허공에서 폭발이 일어난 뒤 체셔 타이거가 검은 연기를 꼬리를 그리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바람을 몸에 두르면 날지 못하고, 대신 날기 위해서는 바람을 몸에 두르지 못하지.”
쿠웅.
바닥에 쓰러진 체셔 타이거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몸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녀석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단순히 마력을 다루는 것 이상으로, 신체 능력이 말도 안 되게 올라간 것으로 보였다.
맷집도 그렇고 재생력까지.
일반적인 생태계에서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빨은 남겨 둬라. 선물로 줘야 하니까.”
“네.”
체셔 타이거의 등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아르파가 녀석의 꼬리를 맨손으로 붙잡았다.
끼이익?!
체셔 타이거가 꼬리의 날로 저항하려 했지만, 놀랍게도 아르파의 맨손은 그 칼날 같은 꼬리를 쥐고도 상처 하나 없었다.
“얍.”
아르파는 그대로 꼬리를 잡고 휘둘러 체셔 타이거를 지면에다가 패대기쳤다.
꽈앙!
굉음과 함께 먼지구름이 크게 치솟았다.
거대한 충격과 함께 지면에 거미줄 같은 금이 쩍쩍 갔고, 부서진 돌조각들이 허공에 가볍게 비산했다.
아르파는 그 상태에서 곧바로 체셔 타이거의 머리를 다리로 짓밟았다.
콰직!
아무리 뛰어난 재생력을 지닌 짐승이라도 머리가 통째로 으스러지면 살아날 방도가 없었다.
끼, 끼이익.
마지막에 죽기 직전, 체셔 타이거는 원통하다는 눈빛으로 루드거를 응시했다.
“내가 언제 당당하게 일대일로 싸워 준다고 했지?”
체셔 타이거의 몸이 이내 힘없이 축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