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626
◈ 626화 진실의 끝 (3)
“받아라.”
리네는 루드거가 건네준 종이를 보며 숨을 삼켰다.
“직접 보는 것이 나을 거다.”
언젠가 이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루드거가 상시 챙겨 두고 있던 메모리 스토밍 종이였다.
리네는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알았다.
떨리는 손으로 그 종이를 쥐고, 마력을 일으켰다.
그러자 시야가 바뀌었다.
* * *
리네의 어머니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려 했다.
모두가 잠든 밤, 리네를 두고서 홀로 숲으로 간 그녀는 도망치는 척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니.
그 행동은 분명 지탄받아야 마땅했지만, 과연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그녀와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었을까.
밤중에 몰래 오두막을 떠난 그녀는 숲으로 향했다.
발걸음 한 발 한 발을 내디디는 것만으로도 생살과 근육이 찢기는 고통이 느껴졌을 텐데도 그녀는 걸었다.
리네에게.
사랑스러운 딸에게 자신의 괴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다는 일념만으로.
그렇게 숲속에 도착해 홀로 고요한 죽음을 맞이하려 했던 그녀였지만.
유일하게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루드거가 그 뒤를 몰래 따라왔다는 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독약을 삼키려던 그녀를, 루드거가 나서서 말렸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루드거는 진심으로 분노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저 약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이런 밤중에 나와서 몰래 마실 정도라면 필시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자신의 행동이 들켰을 때 리네의 어머니가 보인 표정만 봐도 그랬다.
-설마, 죽으려고 한 겁니까? 대체 왜?
-이제는 지쳤거든.
결국, 들켜 버린 그녀는 루드거에게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루드거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래서 죽음을 택한 겁니까? 그러면 리네는? 리네는 어쩌고!
-우리 딸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녀는 파리해진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지금 이렇게 루드거와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그녀는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그란데르 씨에게서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어. 내겐 더 이상 살아남을 방법이 없어.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성토하듯 말하는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루드거는 차마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고통밖에 존재하지 않는 삶은 과연 옳은가?
필설로도 형용하기 힘든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과연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안식일 수도 있다고.
그 불온한 생각이 루드거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루드거는 주먹을 까득 말아 쥐었다.
-부탁이야. 부디 고통을 끝내게 도와줘.
루드거에게 웃으면서 당당하게 굴던 그녀는, 고통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비는 모습에 루드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어라 말하려던 루드거의 입술은, 뒤이어 거칠게 기침하는 그녀의 모습에 다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침과 함께 흘러내리는 것은 검게 죽은 피.
그 피를 내려다본 그녀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덜덜 떨리는 손을 품 안에 집어넣은 그녀는 날카로운 비수를 꺼내 들었다.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비수로 자신의 목에 찌르려는 그때, 루드거가 그 손목을 잡아챘다.
루드거는 몸을 흠칫 떨었다.
손목을 붙잡힌 그녀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 어린 감정을 엿보는 순간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수한 생각과 말이 머릿속에 스쳤다.
그러나 루드거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어떠한 설득도 사과도 질책의 말이 아닌.
한 아이의 이름이었다.
-리네는.
-…….
-리네는, 어쩌고요?
흐리멍덩했던 그녀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아, 하고 헛바람을 내뱉은 그녀의 손에 힘이 탁 풀리며 비수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나는…….
-…….
-처음에는 리네에게 솔직하게 말해 볼까, 고민했었어.
-…….
-그런데 그 아이에게, 하나뿐인 엄마가 피를 토하며 고통스럽게 죽는다는 말을 어떻게 해? 그 기분 알아? 소중한 아이에게 최소한 좋은 추억만 남기고 가고 싶은 그 기분을 아느냐고.
고통에 몸부림친 끝에 처량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나쁜 엄마가 되는 것이 나았다.
-끝까지 함께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 내가 떠나면 그 아이는 혼자일 테니까.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질 테니까.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너와 가리엘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더라.
자신이 없어도 리네에게는 보살펴 줄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최후에 이런 선택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미안해.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너에게 떠넘기게 돼서.
-당신은.
루드거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정말로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그러게. 나는 정말 이기적인 데다가 나쁜 엄마인가 봐.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루드거가 잡았던 손목을 놓아주자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비수를 주워 들었다.
하지만 몸에 가해지는 고통 탓인지 비수를 제대로 쥐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최후의 최후에 이기적인 선택을 내렸다.
자신의 비수를 루드거에게 건네준 것이다.
-네가 선택해.
-…….
-이걸 그대로 버려도 좋아. 그게 아니라면…….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루드거는 그녀가 뭘 바라는지 알 수 있었다.
루드거는 말없이 자신의 손에 쥐어진 비수를 내려다보았다.
머릿속으로 온갖 상념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것은 비극이다.
그릇된 세상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비틀거리는 선택지다.
루드거는 비수의 손잡이를 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슬픔과 분노, 자괴감, 미안함이 점철된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눈빛과 태도만으로도 그녀에게 자신이 뭘 할지 충분히 전할 수 있었다.
-고마워.
그녀는 마지막에 해맑게 울었다.
마침내 자신은 자유라는 듯.
동시에 슬프게 웃었다.
남겨진 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짐을 지우게 했다는 듯.
푸욱.
비수를 쥔 손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감촉.
누구보다도 이런 선택을 내리고 싶지 않았던 루드거였지만, 그의 비수는 정확하게 그녀의 심장을 찔렀다.
고통 없이, 최대한 빠르게 보내 주기 위해.
이것은 구원의 죽음.
고통받는 자에게 선사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안식이었다.
───.
어둠 속에서 속삭임이 들렸다.
머리가 핑하고 돌고, 세상의 모든 것이 수채화에 물을 끼얹듯 혼탁하게 뒤섞였다.
그 일그러진 세상 속에서 서서히 눈을 감으며 쓰러지는 그녀의 모습이, 슬로 모션처럼 천천히 잡혔다.
비수를 타고 흐르는 피가 손바닥을 적셨다.
그 끔찍할 정도로 따스한 온기에 루드거는 마음속에서 깊게 탄식했다.
-엄, 마?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어깨를 흠칫 떤 루드거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곳에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었다.
리네와 프로이덴.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몽롱한 얼굴의 리네가, 어딘가 멍한 시선으로 루드거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 옆에 리네를 데리고 나온 것으로 보이는 프로이덴은, 눈앞에서 펼쳐진 참상에 눈을 부릅뜬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루드거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허공에서 가리엘이 나타나 루드거를 향해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아, 아아아아!
루드거가 쓰러지고, 그 위에 올라탄 가리엘이 루드거의 멱살을 두 손으로 쥐었다.
일그러진 그의 표정에서 나오는 것은 언어조차 되지 못한 흐느끼는 아우성이었다.
-왜, 왜! 대체 왜!
그러게. 대체 왜일까.
루드거는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대답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은 선택을 내렸다는 점이었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그녀의 고통을 덜어 주기로 했다.
그녀의 짐을 기꺼이 대신 짊어지기로 했다.
영혼의 깊은 곳에 슬픔의 상처를 아로새긴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루드거는 곧바로 자신의 멱살을 쥔 가리엘의 옆구리를 손으로 가격해, 그의 균형을 흩트린 뒤 역으로 바닥에 쓰러뜨렸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루드거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리네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다, 다가오지 마!
프로이덴이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루드거를 노려보며 앞길을 막아섰다.
용암이 끓기라도 하는 것처럼 뜨거운 눈빛이었다.
루드거는 그런 프로이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푸른 마력이 프로이덴의 머리를 휘감았고, 저항하려던 프로이덴은 기절하고 말았다.
루드거는 쓰러진 프로이덴을 뒤로하고 리네에게 다가가, 주저앉아 있는 그녀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오, 빠? 나, 나 엄마 찾으러 왔는데.
리네의 눈동자가 곤히 잠든 것처럼 죽어 있는 어머니의 시체를 향했다.
-그랬는데 엄마가…….
-리네.
루드거는 리네를 향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내민 검지손가락이 그녀의 이마에 툭 닿았다.
-이건 단지 악몽일 뿐이야.
마법이 발동했다.
리네의 눈이 스르륵 감기며 그녀의 기억 깊은 곳에 자물쇠가 잠겼다.
-분명 꿈에서 깨어나면, 전부 잊을 그런 악몽이지.
루드거는 수그렸던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리엘은 죽어 버린 그녀의 시체를 붙들고 오열하고 있었고, 리네와 프로이덴은 잠들어 있었다.
-결국, 일이 이렇게 되었구나.
그란데르가 숲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때였다.
-스승님.
-어리석은 놈. 굳이 네가 그런 일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알고는 있느냐?
-…….
-고통을 겪는 사람을 내버려 두지 못하다니. 대체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네놈 처지부터 신경을 쓰지 그러느냐.
그란데르는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루드거를 강하게 질책했다.
루드거는 그런 그란데르의 말을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하아. 내가 지금 무슨 의미 없는 말을 하는 건지. 욕봤다.
-저, 찾을 겁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더 이상은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찾아낼 겁니다.
그날 루드거는 다짐했다.
무속성 마력의 비밀을 밝혀내자고.
그 탓에 죽는 사람이, 고통받는 사람이 더는 나오지 않게 하자고.
-반드시.
* * *
“이후의 이야기는 너도 알 것이다. 기억을 봉인한 너를, 나는 네 스승에게 보냈고. 나는 나의 스승님과 함께 세상을 떠돌아다녔지.”
“그런…….”
리네는 그날의 모든 진실을 목격하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렴풋이 루드거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진실은, 너무나도 괴로워서.
리네는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저는, 여전히 모르겠어요. 그런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오빠는 제 어머니를 죽였고, 제 기억을 봉인했잖아요.”
“네가 그 진실을 아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 나는 네가 슬퍼하고, 망가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 진실을 알게 됐을 때는 생각하지 않았고요?”
“그걸 알면서도, 사람은 당장의 급한 불을 끄는 데 급급해지더군. 알고 있다. 이건 순전히 나의 이기심 때문에 비롯된 일이라는 걸. 아무리 잔혹한 진실이라 하더라도 너에게는 알 권리가 있었는데, 나는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았지.”
루드거는 리네에게 거짓된 세상을 선사했다.
그것이 리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고 애써 치장했지만.
아무리 선의로 했다고 한들, 이것은 결국 기만에 지나지 않았다.
“리네. 나는 그날 이후 세상을 돌아보며 많은 것들을 봐 왔다. 넓은 세계를 보았고, 다양하고 많은 사람을 만났지. 드높은 이상에 닿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 재능이 있음에도 각박한 현실에 막히는 사람들. 가혹한 운명 앞에 주저앉아 결국에 포기해 버린 사람들까지.”
정말 많은 사람을 봐 왔다.
그리고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의 삶은 무수한 방점으로 찍혀 있는 여정이었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스러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았다. 누군가는 도울 수 있었고, 때론 내가 손을 뻗을 기회조차 없었지. 돌이켜 생각하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더 많았다.”
루드거는 사람들과 화합하거나 그들의 삶과 충돌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그 혼란스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바를 밀고 나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두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리네. 그건 너도 마찬가지일 거다.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알게 된 너 또한 괴로울 테니까.”
그래서 배려라는 핑계로 진실을 감추며 정체를 속여 왔던 걸지도 모른다.
아는 것이야말로 끔찍한 저주니까.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루드거는 깨달았다.
대부분은 편안한 거짓을 원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너는 잔혹하다 하더라도 진실을 알아내는 길을 택했다. 네 삶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며 선택을 내렸어.”
힘든 현실이지만, 사는 것을 택했고.
잔인한 진실이지만, 마주 보는 것을 택했다.
그러니.
“정말 미안하다.”
루드거는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리네는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넘어오는 걸 느꼈다.
그 진심 어린 사과에 리네는 슬픔과 고마움을 느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걸 망쳐 버린 루드거가 미웠지만, 또 동시에 루드거가 짊어진 삶이 너무나도 가혹하다는 걸 알기에.
그의 기억을 읽었기에 누구보다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날의 슬픔을. 괴로움을. 절망감을.
그럼에도 루드거는 굴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계속 찾아왔던 것이다.
“아마, 우리는 이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
오빠와 동생처럼 친하게 지내던 그때로도.
선생과 제자로 가르침을 주고받는 그때로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너무 먼 곳까지 와 버렸으니까.
“하지만 이 하나만큼은 확실히 약속하마.”
“무슨, 약속이요?”
“언젠가, 내가 내 모든 목표를 이루게 되는 순간, 그렇게 이 혼란을 마침내 잠재우게 되는 그날.”
루드거는 리네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너에게, 내 목숨의 선택권을 주겠다.”
그게.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속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