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배춧잎 중 시들거나 뜯긴 부분을 손으로 뜯어내고 꼭지를 칼로 자르는 것이 배추 손질이었다.
딱히 어렵지는 않지만 분량이 삼천 포기인 이상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촤악! 촤악! 서걱!
배추 겉을 떼어내고 뿌리를 자른 강진이 한쪽에 그것을 던지고는 새로운 배추를 집었다.
‘요리 연습장에 있던 걸 배운 건데도 힘드네.’
점점 허리와 목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끼며 강진이 고개를 비틀었다.
우두둑! 우두둑!
목을 비튼 강진이 옆에서 배추를 손질하는 귀신들을 보았다. 귀신들은 힘이 들지도 않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웃으며 배추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옆에 있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안 힘드세요?”
“응? 힘들어?”
“목하고 허리가 좀 아프네요.”
“우리는 귀신이잖아.”
안쓰럽다는 말을 한 할머니가 허공에 대고는 손을 몇 번 털었다.
후두둑! 후두둑!
그러자 할머니 손에 묻어 있던 흙과 배춧잎들이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할머니는 강진의 뒤로 와서는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아! 괜찮습니다.”
“괜찮아. 그냥 있어.”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주물러 주는 할머니의 손길에 시원함을 느낀 강진이 잠시 후 몸을 돌렸다.
“저도 해 드릴게요.”
“그럼 나야 좋지.”
웃으며 할머니가 앉자 강진이 그 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손을 타고 서늘함이 느껴지는 것에 강진은 살며시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귀신도 마사지를 해 주면 시원한가?’
“아이구! 시원하다.”
“시원하세요?”
“응. 우리 손주도 내 어깨 자주 주물러 줬는데…… 그때처럼 시원하네.”
웃으며 할머니가 살며시 강진의 손을 잡고는 토닥였다.
귀신의 손길이라 서늘함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 서늘함을 넘어 정이 느껴졌다.
“이제 그만해.”
“더 해드릴게요.”
“괜찮아.”
웃으며 손을 토닥거리는 할머니의 모습에 강진이 손을 떼어냈다.
“힘들면 배추 뜯어서 씹으면서 해. 배추가 아주 달달하고 좋아.”
할머니가 배추를 뜯어서는 강진에게 내밀었다. 먹기 좋으라고 속의 노란 배추를 뜯어 준 할머니를 보며 강진이 그것을 받아 입에 넣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웃으며 배추를 받아먹는 강진을 보며 할머니가 말했다.
“복래가 가서 올해는 김장 안 하나 했는데 이렇게 김장하러 와 줘서 고마워.”
“저야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서 오히려 고맙죠.”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웃었다. 사실 여기 귀신들은 올해에는 김장을 안 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었다.
김장을 하는 날은 일 년에 단 한 번 살았을 때의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날이었다.
“그럼 서로 고마운 건가?”
“그러네요.”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말했다.
“그런데 마을이…….”
강진이 뒷말을 삼키자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황량하지?”
“조금 그러네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집들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마을은 전쟁이 난지도 몰랐어.”
“전쟁요?”
“그 전쟁 말이야.
그 전쟁이라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곧 뭔가를 떠올린 강진이 물었다.
“육이오요?”
한국인들에게 전쟁이라면 육이오가 가장 먼저 떠오르니 말이다.
“맞아.”
“육이오 터진 줄을 모르셨어요?”
“TV 보니까, 우리만 모른 것도 아니던데?”
할머니의 말에 옆에 있던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영화 보니까, 그 마을 사람들도 전쟁 난지도 몰랐던데?”
“그거야 영화 이야기 아닌가요?”
강진은 몰랐지만, 실제 강원도의 어느 산에 사는 사람들은 전쟁이 난지도 몰랐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꼭 영화라고 단정할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독립운동하다가 일본 놈들한테 쫓겨서 산속으로 도망쳐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 아니, 전부였지. 다 같이 도망쳐 왔으니까.”
“독립운동가 후손들이셨어요?”
“후손은 무슨…… 나도 독립운동하다가 일본 놈들 피해서 여기로 도망 온 건데.”
“아!”
강진이 대단하다는 듯 탄성을 토하자 할머니가 흥이 나는 듯 말을 이었다.
“그때 독립운동하다가 잡혀가면 병신 돼서 나오거나 아니면 거기서 죽는 것이 비일비재했어.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산 아래로는 아예 안 내려가고 여기서 뭉쳐 살았지.”
“그럼 독립이 되신 것도 모르셨겠네요.”
“몰랐지.”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독립이 된 줄도 모르고 단절된 채 살았다면 전쟁이 난 것을 모르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약초 캐러 간 돌석이가 다친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이 가서 데려와 치료해 줬지.”
“그게…… 문제였나 보군요.”
“어떻게 알았어?”
“이야기 흐름이 그런 것 같아서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배추를 만지작거리다가 겉잎을 떼어냈다.
툭! 툭!
겉잎을 떼어내며 할머니가 말했다.
“애들이었어.”
“애들요?”
“다친 애들이 세 명이었는데 열일곱 살 정도밖에 안 되는 애들이었어.”
“그렇군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할머니가 말을 이었다.
“애들 치료해 주고 두 계절 지났을 때인가? 군인들이 왔어.”
“군인들요? 어디 군인들요?”
“한국군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요.”
“배고파하는 것 같아서 밥을 줬는데…… 다친 애들을 본 거야.”
“다친 애들이…… 북한군이었군요.”
“우리야 사투리라고만 생각했지. 북한군이고 남한군이고 우리한테는 다 조선 사람일 뿐이었으니까.”
“그럼 설마…… 남한군이 마을을 이렇게 만든 겁니까?”
강진의 물음에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어떻게 같은 나라 사람을…… 아니, 그보다 개도 밥 준 사람은 안 무는 법인데?”
할머니 말대로라면 국군이 마을을 몰살시킨 것이 아닌가? 배고파 보여서 밥을 준 마을 사람들을 말이다.
강진이 놀람과 분노를 느낄 때, 할머니가 말했다.
“그때 죽은 국군 애들하고 나중에 이야기를 해 봤는데. 그 애들도 어쩔 수가 없었대. 이곳이 빨치산 본거지인 줄 알았더라고. 그 청년들도 무서워서 그랬대. 자신들이 함정에 걸렸다고 여겼더라고.”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죽느냐 사느냐의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킨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할머니 얼굴이 조금 침울해진 것 같아 분위기 반전을 할 겸 김복래와의 이야기를 물었다.
“김복래 여사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의 얼굴이 밝아졌다.
“복래는 좋은 애지. 아! 복래 처녀 시절 때 엄청 미인이었어.”
“언제 처음 보셨는데요?”
“복래가 스무 살 때인가? 혼자서 여기를 찾아왔더라고.”
“여기를요?”
“우리를 보고 말을 거는데…… 우리가 얼마나 놀랬는지.”
김복래 여사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진은 배추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삼천 포기의 배추를 손질하는 사이 강진은 마을 귀신들과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어디를 가도 눈치가 빨라서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들과 빨리 친해지던 강진의 친화력이 귀신들에게도 통용되었다.
하지만 허리가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끄응!”
허리를 비틀며 몸을 일으키는 강진의 모습에 귀신들이 웃으며 말했다.
“강진이는 좀 쉬었다가 해.”
“어른들도 하는데 저만 쉴 수 있나요.”
“에이! 우리야 귀신들이라 삭신 쑤실 일 없지만, 강진이는 이렇게 계속하면 내일은 일어나지도 못해. 괜찮으니까 산책이라도 하고 와.”
“괜찮습니다.”
“그럼 뒷산에 가서 약초라도 좀 캐와.”
“약초요?”
“이따 수육 할 때 약초 좀 넣으면 맛이 더 좋아.”
그러고는 할머니 귀신이 한쪽에서 강철남자를 가지고 노는 아이 귀신에게 소리쳤다.
“만복아! 형 데리고 가서 약초 좀 캐와!”
“내가?”
“그럼 네가 해야지. 형은 여기 길도 모르잖아.”
“호나 용이 시키면 되잖아.”
“걔들은 여기서 우리 심부름을 해야지. 네가 심부름할 거야?”
할머니의 말에 만복이 신수호와 신수용을 보았다. 그 둘은 귀신들의 심부름을 하며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을 보던 만복이 강진을 보았다.
“따라와.”
“존댓말 해야지.”
“나보다 어려!”
소년 귀신이라고 해도 죽은 지 수십 년 지났으니 생년으로 따지면 강진에게는 할아버지 뻘일 것이다.
“이 녀석이!”
“몰라!”
그러고는 만복이 강진을 보았다.
“따라와.”
“네.”
만복의 말에 강진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는 그를 따라갔다.
“야!”
“네?”
“약초 캘 거면 뭐라도 가지고 와야지.”
“아…… 네.”
강진이 급히 아줌마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려 할 때, 신수조가 봉지와 호미를 내밀었다.
“만복 오빠가 이 주변 잘 아니까, 잘 따라다녀요.”
“알겠습니다.”
강진이 봉지와 호미를 받아서는 자신을 보고 있는 만복에게 다가갔다.
그에 만복이 뒷산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만복의 뒤를 따라 산으로 들어선 강진은 생각보다 산이 험한 것에 놀랐다.
아니, 험한 것을 떠나…… 길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적이 아예 없는 심산이니 길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만복은 잘도 올라갔다. 귀신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참 잘 올라간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빨리 와.”
만복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고는 강진이 만복이 올라갔던 곳에 발을 올리고 나뭇가지를 잡고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며 강진의 머릿속에는 몇 가지 약초들이 떠올랐다.
‘수육 할 약초니까 천궁, 당귀, 작약, 숙지황, 감초가 있어야 하는데. 숙지황하고 감초는 몰라도 다른 세 개는 시기가 아니라서 못 구하겠는데?’
약초 시장에 가면 구할 수야 있는 것들이지만, 여기 야산에서는 제철이 아니면 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쌀을 봄에 구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만복에게 말했다.
“약초 뭘 캘 겁니까?”
“보이는 것.”
“보이는 거요?”
“우리 산에 약초들 되게 많아. 먹을 만한 걸로 골라서 좀 많이 가져가면 돼.”
말을 하며 산을 오르던 만복이 멈췄다.
“여기 파.”
만복의 말에 강진이 호미로 땅을 파려 하자, 만복이 말했다.
“조심히 파.”
“뭐 있는데요?”
“도라지.”
만복의 말에 강진이 조심스럽게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땅을 얼마를 팠을까. 땅에서 곧 도라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강진이 생각하던 도라지가 아니었다.
“우와!”
땅에서 나온 건 도라지가 아니라 인삼처럼 보였다. 크기도 크고 두툼한 것이 시중에서 보던 도라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멸치와 고등어의 차이라고 할까?
강진이 놀란 눈으로 도라지를 보는 사이, 만복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삼십 년 조금 넘었네.”
“삼십 년요?”
“이 정도면 산삼하고도 약효가 비슷하지.”
“산삼요?”
강진의 말에 만복이 웃으며 말했다.
“너는 TV도 안 보냐?”
“저는 볼 시간이 없어서…… 형님은 TV 자주 보세요?”
형님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은 듯 만복의 얼굴이 해맑아졌다. 나이는 더 많아도 어릴 때 죽어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다 큰 어른인 강진이 형님이라고 하니 어린 마음에 뭔가 된 것 같은 치기를 느끼는 것이다.
“내가 산속에만 살고 있지만 TV를 많이 봐서 세상 돌아가는 건 잘 알지.”
그러고는 만복이 도라지를 보며 말했다.
“시중에 이런 도라지는 구하기 어려워.”
“그렇겠죠. 저도 이런 도라지는 처음입니다.”
“도라지 좋아해?”
“맛있잖아요.”
강진의 말에 만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지. 복래가 가끔씩 와서 화로에 굽고 양념 발라주면 맛있더라고.”
“제가 내려가면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할 줄 알아?”
“그럼요.”
요리 연습장에 도라지 구이도 있었으니 강진도 할 줄 알았다.
“그럼 좀 더 캐자.”
“어? 이런 것이 더 있어요?”
“지천에 널렸지.”
만복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널렸어요?”
“그럼. 여기는 캐 가는 사람이 없잖아. 발로 툭 차면 도라지고, 넘어지면 산삼이지.”
“산삼?”
“산삼 먹을래?”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는 만복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꼭 먹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