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3
13화
“소주…… 가져오게나.”
자신을 보고만 있는 강진의 모습에 여자가 같은 말을 했지만,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강진이 또 소주를 안 준다고 하면 어쩌나 싶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이러고 있으니 고삐리가 편의점에 화장하고 담배 사러 온 것 같네.’
여자를 보던 강진이 냉장고에서 소주를 두 병 꺼내 잔과 함께 내려놓았다.
강진이 내려놓는 소주에 여자가 눈이 반짝였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이틀 전에 오신 손님이군요.”
흠칫!
강진의 말에 여자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사람을 잘못 본 게야.”
“강두치에게서 손님의 나이가 많으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두치가?”
“그리고…… 여기서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여자가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소주를 들어서는 그대로 뚜껑을 비틀었다.
뜨드득!
소주병 뚜껑이 따지는 특유의 소리에 여자가 웃으며 소주를 한 잔 따랐다.
쪼르륵!
그 모습을 보며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래도 소주는 두 병까지만 드세요. 세 병 먹고 또 쓰러지지 말고.”
주방으로 들어간 강진이 고추 돼지고기볶음을 만드는 사이 이지선이 여자에게 다가갔다.
쪼르륵! 쪼르륵!
이지선이 다가오는 사이에도 여자는 계속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가씨를 뵙습니다.”
이지선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여자가 그녀를 보다가 한쪽에 있는 탁자를 보았다.
방금 전까지 이혜선 일행이 앉아 있던 탁자에 놓인 술병을 본 여자가 입을 열었다.
소주병을 본 여자가 힐끗 주방 쪽을 보고는 살며시 말했다.
“자네들에게는 술을 쉽게 주던가?”
“네?”
“새로 온 주인이 자네들에게 술을 쉽게 주었는지를 물었네.”
왜 그런 것을 묻나 싶었으나 이지선이 공손히 답했다.
“잘 주었습니다.”
이지선의 답에 여자가 작게 혀를 찼다.
“쯧!”
그러고는 여자가 이지선을 보았다.
“내가 너무 어려 보이는가?”
“그야…… 돌아가셨을 때 나이로 보이십니다.”
“하긴…….”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는 여자의 얼굴은 어느새 원래의 어린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자가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소주를 잔에 따라 입으로 가져가자 이지선이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조심히 물러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강진이 주방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확실히 저 처녀귀신이 여기 처녀귀신들 대장인가 보네.’
처녀귀신들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깍듯하게 예를 다했다.
게다가 두려워도 하는 것 같고 말이다.
‘일단 서비스 팍팍 줘야겠어.’
처녀귀신 보스한테 잘 보여서 나쁠 것은 없으니 말이다.
그에 강진이 어느새 다 볶아진 고추 돼지고기볶음을 그릇에 담아서는 그 위에 마늘 플레이크를 잘 뿌렸다.
마늘 플레이크야 따로 먹어도 좋지만 이렇게 먹어도…….
‘나쁘지는 않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그릇을 들고 나왔다.
스윽!
“맛있게 드십시오.”
강진이 그릇을 내려놓자 여자가 그를 보았다.
“주인의 이름은 어떻게 되는가?”
“이강진입니다.”
“어디 이씨인가?”
“대천 이씨입니다.”
“대천 이씨…….”
여자가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뭔가 떠올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천 이씨라면 내 잘 알지.”
“아십니까?”
“이복령 대감께서 우리 조부님과 친분이 아주 깊으셨네.”
‘이복령?’
그게 누군가 싶을 때 여자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이복령 대감을 모르시는가? 병조참판을 지낸 분이신데.”
“그…… 워낙 옛날 조상분이시니…….”
“어찌 그런…….”
혀를 차던 여자가 한심하다는 듯 강진을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참판 어쩌고 하던 것을 보면 조선시대 귀신인 것 같은데…… 그런 몇백 년 전 선조 이름을 어떻게 알아?’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몸을 돌릴 때, 여자가 입을 열었다.
“나는 천의 김씨 소희네.”
‘천의 김씨 소희면…… 김소희, 이름 예쁘네.’
그러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는 강진의 모습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소주를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12시가 가까워지자 술을 마시던 김소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다른 처녀귀신들이 일제히 일어나자, 김소희가 그녀들을 보았다.
“너무 자리를 오래 하면 다른 이들이 들어오지 못하니 적당히 마시고들 가게.”
“저희도 조금만 더 마시고 가겠습니다.”
“그리하시게.”
스윽!
김소희가 주방을 보았다. 마침 홀을 훔쳐보던 강진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 시선을 피했다.
그런 강진의 모습에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신세를 지는 입장이니…… 앞으로는 편히 대하시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잘 마시었네.”
김소희가 그대로 가게 문을 열고 나가는 것과 함께 강진이 침을 삼켰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소희가 문을 열고 발을 딛는 것과 함께 그 모습이 그대로 사라졌으니 말이다.
‘귀신은 귀신이구나.’
하지만 편히 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말투 자체가 사극 톤이니 말이다.
사극 톤으로 말을 하니 자기도 어쩐지 그에 따라 극존칭을 써야 할 것 같고 말이다.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처녀귀신들이 크게 숨을 토했다.
“푸하!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으! 나는 큰언니만 보면 간이 콩알만 해지는 것 같다니까.”
김소희가 나가자마자 처녀귀신들이 답답했다는 듯 푸념을 늘어놓자 강진이 슬며시 홀로 나왔다.
“방금 저 여자가 여기 대장이야?”
강진의 물음에 이혜선이 고개를 저었다.
“대장은 아니고 저희 가장 큰언니예요.”
“큰언니면 대장 아냐?”
“대장은 우리가 부하 개념이지만…… 큰언니는 그냥 큰언니예요.”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입구를 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혹시 너희들이 있으면 다른 귀신들이 들어오지 못해?”
방금 김소희가 나가면서 오래 있으면 다른 이들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아닌데…… 들어오지를 않죠.”
“왜?”
“왜기는 왜겠어요.”
이혜선이 양손을 얼굴 앞에 축 늘어뜨리고는 혀를 길게 내뺐다.
“베에! 우린 무서운 처녀귀신이니까.”
무섭다기보다는 귀엽게 보이는 이혜선을 보며 강진이 물었다.
“귀신들도 처녀귀신을 무서워해?”
“여자가 한이 맺히면 여름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 우리는 처녀귀신이에요. 어지간한 귀신은 우리들을 보면 백 미터 앞에서 도망친답니다.”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그녀와 다른 처녀귀신들을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귀…….”
“거기까지 하고, 이만들 일어나자.”
이지선이 몸을 일으키자 이혜선과 다른 처녀귀신들이 같이 일어났다.
그런 처녀귀신들의 모습에 강진도 따라 일어나자, 이지선이 강진을 보았다.
“한이 깊어 승천하지 못하고 귀신이 된 자들에게 과거 일을 묻는 것은 좋은 물음이 아니네.”
이지선이 주의를 주는 것을 안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주의하겠습니다.”
강진의 답에 이지선이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오는 귀신들은 젯밥도 얻어먹지 못하는 이들이네…… 그리고 자네는 그 안쓰러운 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주는 것이니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할 말만을 하고는 이지선이 처녀귀신들을 데리고 가게를 나섰다.
문을 열고 나가는 것과 함께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에 강진이 침을 삼켰다.
가게 안에 있을 때는 조금 무섭기는 해도 사람처럼 느껴졌는데, 이렇게 사라지니 딱 귀신이었다.
잠시 문을 보던 강진이 힐끗 탁자를 보았다.
탁자 위에는 처녀귀신들이 먹고 간 소주와 안주들이 늘어져 있었다.
“따뜻한 밥이 아니라 술 먹으러 오는 것 아냐?”
오늘 온 처녀귀신들이 먹은 거라고는 술과 안주밖에 없으니 말이다.
식탁에 있는 빈 술병과 안주 그릇들을 주방으로 치우던 강진의 귀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덜컥!
고개를 든 강진의 눈에 슬며시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청년이 보였다.
“저…….”
“들어오세요.”
“처녀귀신들은 다 갔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강진의 말에 청년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문을 닫았다.
“응? 왜 안 들어오지?”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다시 문이 열리며 청년과 일단의 남성들이 우르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처녀귀신들의 말대로 그녀들이 가자마자 남자 귀신들이 몰려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도…… 처녀귀신이 나은 건가?’
시커먼 남자들만 계속해서 우르르 들어오니 어쩐지 일할 맛이 안 나는 것이다.
하지만 곧 강진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일단은 손님들이 왔으니 음식 준비를 해야 하니 말이다.
“여기 김치찌개!”
“갈비 주세요!”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는 귀신 손님들의 모습에 강진이 홀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되는 음식은 고추 돼지고기볶음하고 밥뿐이에요!”
“김치찌개 안 돼?”
“안 됩니다!”
“아니 그냥 김치 넣고 물 넣고 끓이면 되는데, 왜 안 돼? 그리고 전 주인 때는 달라는 것 다 해 줬는데!”
손님 한 명이 고함을 지르자 강진이 힐끗 그를 보았다.
“제가 손이 두 개뿐이라 몇 가지 음식을 동시에 못 해요. 그리고…… 지금 한 시까지 오십 분 남았는데, 음식 골고루 하다가는 한 시 넘어요.”
강진의 말에 다른 귀신들이 김치찌개 달라는 이를 노려보았다.
“그냥 주는 대로 먹읍시다!”
그 말에 김치찌개 먹겠다는 귀신이 몸을 일으켜서는 주방으로 들어왔다.
“왜 들어와요?”
“주인 말대로…….”
슬쩍 귀신이 홀을 보고는 말했다.
“혼자서 저기 많은 귀신들 음식 언제 다 만들어. 같이 합시다.”
탁! 탁!
프라이팬을 불 위에 올린 귀신이 소리쳤다.
“먹고 싶은 것 빨리 이야기해!”
“나 갈비요!”
“김치볶음밥!”
귀신들이 자신들이 먹고 싶은 것을 소리치는 것에 강진이 주방에 들어온 자를 보았다.
이십 대, 아니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사내는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자 두툼한 팔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쪽은 고추 돼지고기볶음 만들어요. 내가 다른 메뉴들 뽑을 테니까.”
“아니, 갑자기 이러시면…….”
“괜찮아요. 전에 엄마 있을 때도 자주 들어와서 일 도왔습니다.”
말과 함께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꺼낸 사내가 김치를 잘라 프라이팬에 올리고는 빠르게 볶으며, 다른 재료들도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강진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와…… 빠르다.’
동시에 몇 가지 메뉴를 만들어내는데도 사내의 움직임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막힘이 없었다.
“뭐 해요? 음식 안 만들어요?”
사내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주섬주섬 고추 돼지고기볶음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 갈비! 가져가요!”
“밥은요?”
“안에서 퍼가요! 바쁜 것 안 보여요?”
사내의 말에 갈비 그릇을 받은 귀신이 주방 안에 들어와 밥솥에서 밥을 퍼 갔다.
“여기 김치볶음밥! 제육볶음! 계란 프라이!”
그리고 사내의 손과 입에서 음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