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80
181화
저녁 11시가 되어갈 무렵, 강진은 가게에 모여 있는 귀신들을 상대로 메뉴를 받고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촤아악! 촤아악!
귀신들이 부탁한 메뉴를 준비하고 있을 때, 배용수가 욕설을 뱉었다.
“이런 제길!”
“왜, 뭐 잘못됐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너 좋아하는 아가씨 온다.”
“나?”
말을 하던 강진이 무슨 말인지 알고는 눈을 찡그렸다.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안 것이다.
“장난하지 마. 목 달아난다.”
“없으니까 하는 거다. 어쨌든…… 나 간다.”
그러고는 서둘러 배용수가 주방을 나와 홀에 있는 귀신들을 데리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그런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하던 준비들을 대충 마무리 지었다.
김소희가 오고 있다면 이 음식들을 먹을 귀신들도 도망쳐 갔을 것이니 일단 스톱을 하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11시가 되었다.
띠링! 띠링!
익숙한 풍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김소희가 안으로 들어왔다.
김소희가 들어오는 것에 강진이 힐끗 그녀의 뒤를 보았다. 김소희는 혼자였다.
갈 때는 이태문과 함께였는데 지금은 김소희 혼자만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르신이 가셨구나.’
하긴 갈 시간이 되기는 했다. 장례식을 치르는 삼 일 동안만 이승에 머물렀다가 승천한다 했으니 말이다.
그에 강진이 홀로 나왔다.
“오셨어요.”
강진의 인사에 김소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한잔하고 싶군.”
“준비하겠습니다.”
“그…….”
강진의 말에 잠시 말을 멈췄던 김소희가 말을 이었다.
“태문이가 한 닭발과 육개장이 되겠나?”
김소희의 목소리에 외로움과 쓸쓸함이 담겨 있는 것을 느낀 강진이 최대한 웃으며 말했다.
“육개장은 육수를 내기에 시간이 부족하지만 닭발은 가능합니다.”
“그럼 닭발만 부탁하네.”
김소희의 말에 고개를 숙인 강진이 주방에 들어갔다. 다행히 오늘 이강혜에게 닭발을 해 주느라 매운 고추기름이 준비가 되어 있어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빠르게 매운 닭발을 만들어 낸 강진이 계란찜과 주먹밥을 만들어서는 가지고 나왔다.
김소희는 어느새 소주를 가져다가 마시고 있었다.
“음식 나왔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매운 닭발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태문이가 잘 가르치고 갔군.”
“어르신이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 주시고 갔습니다.”
“앉게.”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말없이 소주를 마시는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황구는?”
“가족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가족이지.”
“어르신을 따라갔군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친구가 좋다고 해도 가족하고 비교할 수는 없죠.”
“맞네.”
“그런데 어르신께서 황구를 두고 가실 줄 알았는데…….”
“그러려 했지.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더군. 그리고 황구도 태문이를 따라가고 싶어 했고. 후! 당연한 것 아닌가? 황구가 나를 좋아한다 해도 태문이는 황구에게 아버지와 같으니 말이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를 한 잔 마셨다.
‘맞지. 죽어서도 주인 기다리는 개도 있는데…… 황구에게 가장 행복한 건 이태문 어르신 옆이지.’
속으로 중얼거리던 강진이 문득 김소희를 보았다.
“아가씨.”
강진의 부름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개 좋아하세요?”
“황구 말하는 건가? 황구라면 좋아하지.”
황구를 떠올리는지 얼굴에 미소가 어리는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다른 개들은요?”
“좋아하네. 옛날 우리 집에서도 개를 몇 마리 키웠지.”
다시 말을 하는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황구가 아가씨를 무서워하지 않더군요.”
“어릴 때부터 나를 보았고 내 품에서 잠도 잤는데 무서워할 이유가 없지 않나?”
“처녀 귀신은 모든 귀신들이 두려워하잖습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피식 웃었다.
“사람 귀신과 짐승 귀신을 어찌 같이 비교하겠나?”
“그럼 짐승 귀신들은 아가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흠…….”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무서워하는 애들도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네. 아니, 오히려 애교를 부리고 하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녀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저기 공원 있는 거 아세요?”
“공원이라…… 저쪽에 있는 것 말인가?”
김소희가 손을 공원 쪽을 가리키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이만 한 개 지박령이 있습니다.”
강진이 자신의 손으로 흰둥이 크기를 묘사하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개 지박령?”
“무척 귀여워요.”
“혼자 있던가?”
“네.”
“개들은 보통 지박령이 되면 그 주인에 깃드는데…… 그 장소가 특별한 것인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소주를 한 잔 마시고는 그 사정을 말해 주었다.
그 사정을 들은 김소희가 한숨을 쉬었다.
“충견이로군.”
“바보 같은 충견이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충이란…… 어찌 보면 바보스럽지.”
김소희의 목소리는 씁쓸했다.
“그렇습니까?”
“충이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충의지사들이 죽어 나갔는지 자네가 알면 깜짝 놀랄 것이네.”
말을 하던 김소희가 한숨을 쉬었다.
“충을 받을 가치도 없는 왕인데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이들을 보면…… 한심하면서도 연민이 느껴졌지.”
“여럿 보신 모양이군요.”
“바보 왕을 모시던 내시는 정말 불쌍했지. 천한 내시의 몸이었으나 그 기개와 절개는 가히 사육신에 비할 만했지.”
‘바보 왕을 모시던 내시? 조선 시대 바보 왕이면…… 누구지?’
조선 시대 왕 중 바보라 불릴 무능한 왕이 어디 한둘이던가?
미치광이 왕이라고 했으면 연산군 때 김처선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연산군이 바보는 아니었으니 김처선은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김소희가 말없이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김소희는 별다른 말없이 닭발을 집어 뜯어 먹었다. 그러곤 소주를 마시고 안주를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먹고 마시는 김소희를 보던 강진의 눈에 우려가 어렸다.
‘평소보다 좀 많이 드시네.’
평소 김소희는 소주 한 병 정도를 한 시간에 걸쳐 나눠 마셨다.
그리고 12시가 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야 다른 귀신들이 음식과 술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벌써 탁자에는 빈 소주가 세 병이나 놓여 있고 지금 막 새로운 병이 따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김소희의 얼굴은 술기운에 붉은 홍조를 띠고 있었다.
‘이러다 주무시는 거 아냐?’
전에 술을 못 마시게 했을 때, 그녀는 갑자기 술을 막 퍼마셔서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때 몇 병 마셨더라?’
몇 달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때도 한 세 병인가 마셨던 것 같았다.
물론 그때는 급하게 막 마시고 지금은 시간을 두고 마신다는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많이 마시고는 있었다.
‘그만 드시라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하긴, 귀신 되면 다시 멀쩡해지는 것 같으니까 숙취는 없겠네.’
술을 많이 먹고 취한 귀신들도 새벽 1시에 밖으로 나갈 때는 멀쩡해져서 나간다.
술에 취해도 현신이 풀리면 취기는 사라지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귀신은 육체가 없으니 말이다.
‘많이 먹어도 어디 가서 실수할 일은 없겠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문이 열렸다.
띠링! 띠링!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강진은 황민성이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셨어요.”
“오늘은 한가하네?”
평소 이 시간에는 귀신들로 북적거리는데 오늘은 김소희 단 한 명만 있으니 말이다.
“이런 날도 있는 거죠. 어떻게, 식사하시겠어요?”
“라면하고…… 비엔나 주라.”
“알겠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은 두말하지 않았다. 전에 황민성이 분식 안 좋아한다는 말을 해서 알고는 있지만, 그가 분식을 시키는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싫어해도 형한테는 이게 어머니 손맛인 거지.’
황민성의 어머니는 분식집을 했다. 그래서 반찬도 분식집 반찬이고, 분식집 메뉴를 주식으로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질리고 질렸을 것이다.
하지만 맛있어도 맛이 없어도…… 질리고 질려도 그것이 어머니의 손맛인 것이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불을 켜고는 계란을 삶았다. 황민성이 반숙 계란을 좋아하니 몇 개 삶는 것이다.
그리고 라면 물과 비엔나를 삶을 물도 올렸다.
‘아가씨도 드시게 좀 더 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강진이 음식을 조리하기 시작했다.
황민성은 탁자에 앉아 젓가락을 꺼내고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하나 꺼내 자리로 가져왔다.
“강진아.”
“네.”
강진이 고개를 내밀자, 황민성이 맥주를 들어 보였다.
“먹을 것 좀 줘.”
“잠시만요.”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냉장고에서 멸치볶음을 꺼내 내밀었다.
“이거 드시고 계세요.”
“고마워.”
황민성이 멸치볶음을 받아 들고 자리에 가서 뚜껑을 까고는 잔에 따라 시원하게 마셨다.
꿀꺽! 꿀꺽!
맥주를 마시던 황민성이 입가를 닦다가 김소희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에 황민성이 작게 고개를 숙이며 목례를 하자, 김소희가 그를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죄인아.”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이 그녀를 보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 보이는 것은 딱 황민성 한 명이었다.
“저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누워도 편하지 않고,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고, 짝을 만나나 그 짝은 너의 것이 아니니…… 안쓰럽고 또 안쓰럽구나.”
“네?”
의아한 듯 보는 황민성을 보며 김소희가 한숨을 쉬곤 고개를 저었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거라. 비록 너로 인해 네 어미의 가슴에 박힌 못이 셀 수 없다 해도 너로 인해 기쁨을 느끼고 위안을 느끼는 이들로 인해 어미의 가슴에 박힌 못도 하나씩 빠질 것이다.”
김소희의 말에 황민성이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당신…… 지금 무슨?”
“앞으로도 열심히 살거라. 그것이 네 어미의 눈물을 줄어들게 할 것이다.”
무슨 소리인가 김소희를 보던 황민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당신이 뭔데 지금 우리 엄마를……!”
쿵!
어미의 눈물이라는 말에 발작을 하듯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황민성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방금 전까지 이상한 말을 하던 여자가 그대로 탁자에 머리를 박은 것이다.
동시에 강진이 급히 홀로 나왔다.
김소희가 하는 말을 강진도 들었다. 그래서 이게 무슨 소리인가 생각을 할 때 황민성이 소리를 질러서 급히 나온 것이다.
그런데 김소희가 탁자에 머리를 찧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가?
“아가씨!”
귀신이니 두 번 죽지는 않겠지만 강진이 김소희를 걱정스럽게 불렀다.
그만큼 식탁에 머리를 아주 강하게 박은 것이다.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대려던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이거 건드려도 되는 건가?’
괜히 김소희에 손을 댔다가는 그녀가 가지고 다니는 검으로 손목을 자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 아가씨이니 정조 관념이 범상치 않을 테니 말이다.
그에 강진이 숟가락을 하나 꺼내 슬며시 그녀의 어깨를 밀었다.
스윽! 스윽!
숟가락으로 김소희를 밀며 강진이 말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숟가락으로 김소희를 건드는 강진의 모습에 황민성이 눈을 찡그렸다.
“……뭐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