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27
428화
강진이 임미령을 보자, 그녀가 과자를 하나 집어 먹고는 말을 이었다.
“인호 군대 보내고 바로 입원했어요. 죽을 생각으로 인호를 보낸 것이 아니라 살 생각이었어요. 어떻게든 병 이겨내서 웃으면서 인호 만날 생각이었어요.”
“그렇군요.”
“살고 싶다는 마음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하루하루 병이 몸을 먹어가더군요.”
“그래서 헤어지셨군요.”
잠시 말을 하지 않고 소주를 한 모금 마신 임미령이 미소를 지었다.
“햇살이 좋은 날이었어요. 인호가 제대하고 왔더라고요. 그것도…….”
임미령이 웃었다.
“머리를 저처럼 밀고 왔더라고요.”
창밖으로 내리쬐는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햇살 아래에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 유인호가 왔다.
드르륵!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유인호는 하얀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가 모자를 벗자 임미령은 그저 말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처럼 파랗게 민머리가 보였으니 말이다. 임미령이 웃자 유인호도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웃으며 서로를 보았다. 왜 아프다는 걸 말하지 않았느냐고,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서로 웃으며 보고 있어도 대화가 되었다.
‘많이 아파?’
‘괜찮아. 너는 머리 왜 밀었어?’
‘커플룩도 한다는데 머리라고 커플 헤어 못 할 이유가 없잖아.’
‘……보고 싶었어.’
‘내가 더 보고 싶었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 임미령을 보며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유인호는 자신이 가진 사랑을 모두 주지 못했기에 혼자가 된 지금도 사랑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은 ing, 현재 진행형이었다.
임미령이 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 두 분이 좋은 인연이 되게 도와주세요.”
임미령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괜찮으시겠어요?”
“저는 죽었고, 그는 살았어요. 이제 인호도 저를 마음속에 묻고 자신의 삶을 살아야죠.”
임미령은 유인호와 마주 앉아 있는 이아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아름 씨 좋은 분인 것 같아요.”
임미령의 말에 강진은 김진배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이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기를 바라며 승천했던 그가 말이다.
‘진배 씨는 잘 있으려나?’
강진은 문득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면서도 웃었던 김진배를 잠시 떠올리던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홀을 보았다.
‘저 둘이 잘 되면…… 두 분이 승천하겠구나.’
이아름이 좋은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기를 원하는 이문흠, 유인호가 자신을 잊고 새 사랑을 하기를 바라는 임미령.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만난다고 꼭 사랑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강진도 이아름과 유인호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유인호는 정말 기분이 좋은 듯했다. 자신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는 유인호를 보며 이아름이 말했다.
“아까 말을 한 사랑하는 분은?”
이아름의 물음에 유인호가 미소를 지었다.
“잘 살고 있습니다.”
‘제 마음속에…….’
유인호가 뒷말을 삼키며 웃자 이아름이 마주 웃었다.
“에이! 나는 또 긴장했네요.”
“긴장요?”
“헤어지신 것 아니에요?”
병원에 있다고 했을 때 걱정을 했었다. 유인호가 말을 할 때 조금 먹먹한 감정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잘 살고 있다고 하니 헤어진 것이라 생각한 이아름이었다.
다른 사람을 잘 만나고 있는 남자를 자신에게 소개해 주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이아름의 말에 유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헤어졌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시 보지 못하게끔 헤어지기는 했으니 말이다.
“좋은 여자 만날 거예요.”
“고맙습니다.
그러다가 유인호가 문득 이아름을 보았다.
“그런데 왜 아름 씨는 소개팅 안 하려고 하세요?”
“저요?”
“저는 제가 왜 소개팅 안 하려고 하는지 대충 말을 한 것 같은데, 아름 씨는 이야기 안 했잖아요.”
유인호의 말에 이아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제가 빚이 좀 많아요.”
“빚?”
“학자금 대출에 이것저것 좀 많아요.”
평소 딸의 친구인 자신을 예뻐하던 장현희의 부모님이 학자금을 지원해 준다 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마음으로 여러 도움을 받고 있는데 돈까지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을 받았고,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하지만 장학금보다 학자금이 높아 대출을 받았고 이제부터 갚아 나갈 때였다.
“그럼 빚 때문에 연애를 안 하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제가 월급 한의사기는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는 않거든요.”
월급 닥터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연봉도 남부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녀 정도 연봉이면 쓸 것 쓰면서도 학자금 대출 갚기에 충분했다. 싱긋 웃는 이아름을 보며 유인호가 웃었다.
“정말 열심히 사시네요.”
“이 험한 세상 열심히 살아야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 강진이 오징어 숙회를 들고는 다가왔다.
“서비스입니다.”
오징어 숙회 두 마리가 담긴 그릇을 본 유인호가 웃었다.
“감사합니다.”
“서비스 드렸는데, 저도 좀 앉아도 될까요?”
“그럼요.”
유인호가 자신의 옆을 가리키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앉았다.
강진의 잔에 소주를 따라 준 유인호가 오징어 머리를 집었다. 자르지 않고 통으로 놓인 오징어 머리를 초장에 찍은 뒤 입에 넣었다.
“맛있게 드시네요.”
“제가 오징어를 좋아합니다.”
오징어를 먹은 유인호가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강진이 보자 유인호가 오징어를 젓가락으로 들어 보이며 말했다.
“보통 오징어 숙회 집 가면 좀 두툼하게 썰어주는데 왜 이렇게 얇게 하셨는지요? 그리고 오징어 머리는 왜 안 자르고 주십니까?”
유인호의 말에 강진이 슬쩍 임미령을 보았다. 그 시선에 임미령이 오징어 숙회를 보며 말했다.
“인호가 오징어를 면처럼 먹었으면 좋겠다고 해서요. 그리고 머리는 통째로 씹으면 식감이 좋대요.”
임미령의 말에 강진이 유인호를 보았다.
“제가 오징어도 좋아하고 면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몸통은 채 썰 듯 잘랐고, 대가리는 통으로 씹어야 식감이 쫄깃해서 그냥 두었습니다.”
“아! 저하고 비슷하시네요. 저도 면하고 오징어 좋아하는데.”
“오징어를 얇게 썰어서 먹으면 면처럼 후루룩 먹는 느낌이 날까 싶어서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강진의 말에 유인호가 문득 그를 보았다.
“면……처럼요?”
“이렇게 잘라서 보니 면처럼 보이잖습니까.”
강진의 답에 유인호가 그를 멍하니 보았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좀 다르게 잘라 봤어. 이렇게 자르니까 꼭 면 먹는 것 같지?
웃으며 오징어 채 썬 것을 먹던 임미령을 떠올린 유인호가 잠시 있다가 강진을 보았다.
“예전에…… 저에게 이렇게 오징어를 해 준 여자가 있었습니다.”
“아까 병원에 계신다는 분?”
이아름의 물음에 유인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주잔을 보았다.
그에 강진이 비어있는 그의 잔을 채워주자 유인호가 미소를 지으며 한 모금 마시고는 오징어를 먹었다.
“여자 친구가 해 준 것과 똑같은 오징어 숙회를 보니…… 센티해지네요.”
유인호의 말에 이아름이 웃었다.
“헤어진 여자 친구 많이 좋아하셨나 보네요.”
“좋아한 건 아니고 사랑합니다.”
“지금도 좋아…… 아니, 사랑하시나 봐요.”
이아름의 말에 유인호가 웃으며 소주를 마시고는 강진을 보았다.
“제가 음식 맛있다고 이야기를 했나요?”
“아까 하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맛있으면 열 번도 말을 해야죠.”
웃으며 유인호가 가게를 둘러보았다.
“강남에 이런 가게가 있을 줄은 생각을 못 했습니다.”
“강남과는 어울리지 않죠?”
“그런 의미가 아니라…… 마음이 편해지는 가게라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강진의 말에 유인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남에 오면 좀 부담스럽습니다.”
“건물 살 것 아니고 그냥 놀러 오는 거면 부담스러울 것까지 있겠어요?”
“그래도 강남 오면 뭐든 비쌀 것 같고 좀 그렇더라고요.”
“변호사는 돈 잘 벌지 않나요?”
강진의 물음에 유인호가 웃었다.
“저희처럼 작은 회사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요즘 발에 차이는 것이 변호사인걸요.”
그러고는 유인호가 잔을 내밀자 강진도 잔을 들어 맞부딪쳤다.
“아름 씨가 여기 비싸지 않다고 하던데…….”
“저희 메뉴가 보통 오천 원에서 육천 원 정도 합니다.”
“오! 좋네요.”
“다음에 직원들하고 한번 오세요.”
강진의 말에 유인호가 웃었다.
“알겠습니다.”
유인호의 말에 이아름이 말했다.
“오픈톡에 한끼식당이라고 치면 여기 점심 메뉴 나와요. 그거 보고 메뉴 마음에 드시는 날 오세요.”
“그렇습니까?”
유인호가 핸드폰을 꺼내 바로 한끼식당 오픈톡에 들어갔다.
“앞으로 자주 오겠습니다.”
“자주 오세요.”
웃는 강진을 보며 유인호가 미소를 짓고는 이아름을 보았다.
“오늘 좋은 가게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가게는 많이 알려져야죠. 그래야 사장님도 돈 많이 버실 테고.”
이아름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도 많이 알려 주세요.”
“그럴게요.”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유인호가 강진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 나이가 몇입니까?”
“저는 올해 스물아홉입니다.”
“동갑이네요. 저도 스물아홉입니다.”
웃으며 유인호가 소주병을 들자 강진이 잔을 들었다.
쪼르륵!
잔에 소주를 따라 준 유인호가 말했다.
“보통은 동갑이면 친구 하던데…… 저하고 친구 하죠.”
유인호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친구가 친구 하자고 해서 되는 건가요. 자주 오세요. 자주 오다가 편해지고 서로 말 놓게 되면 그게 친구 아니겠어요?”
“하하하!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자주 올게요.”
“자주 와서 매상 올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기분 좋은 얼굴을 한 유인호가 이아름을 보았다.
“아름 씨 덕에 좋은 음식도 먹고 친구 후보도 생겼네요.”
유인호의 말에 이아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술값은 인호 씨가 사면 되겠네요.”
“그럼요. 사 드려야죠.”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제가 생각을 좀 해 봤습니다.”
“무슨 생각요?”
이아름이 보자 강진이 말했다.
“아름 씨나 유인호 씨 두 분 다 연애를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강진의 말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아름은 대출 갚고 난 후에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할 생각이었고, 유인호는 아직 임미령을 잊지 못했기에 다른 사람을 만날 생각이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그럼 두 분이 만나시는 것 어때요?”
“네?”
“네?”
만나 보라는 말에 두 사람이 놀라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만난다고 해서 꼭 연애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금처럼 저희 가게에서 식사도 하시고 술도 드시고 심심할 때 영화도 한 편씩 보세요.”
“그건 연인들이 하는 것 아닌가요?”
이아름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현희 씨하고 식사 안 하세요? 영화도 안 보고?”
“그건 그렇지만…….”
이아름이 유인호를 보자, 강진이 말했다.
“친한 오빠 동생으로 가끔 보세요. 그리고 친구들한테는 좋게 만나고 있다고 하면 소개팅 자리 주선 안 하겠죠.”
소개팅 주선이 안 온다는 말에 유인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아름을 보았다.
“저는 괜찮을 것 같은데 아름 씨는 어떠세요?”
“저요?”
“오늘 이야기해 보니 대화도 잘 통하고 편하더군요. 게다가 아름 씨나 저나 서로 연애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아니 편하게 밥 먹고 한잔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일종의 계약 썸이라고 하면 될 것 같네요.”
“계약 썸?”
“연애라고 하면 친구들이 소개해 달라고 할 수 있으니 썸으로 해 놓죠. 어떠세요?”
유인호의 말에 이아름이 잠시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약 썸 타는 거로 하죠. 그리고 밥은 여기에서 먹는 거로 해요.”
이아름의 말에 유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는 것도 먹고 간단하게 술도 한잔하고 좋네요.”
두 사람이 계약 썸에 합의를 하자 강진이 속으로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잘 됐네.’
두 사람이 계약 썸으로 끝날지, 사랑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인연의 끈은 만들어 놓았으니, 언젠가 그 끈이 붉은 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