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26
527화
차달자가 없는 한끼식당 점심 장사는 생각보다 더 힘이 들었다. 차달자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평소대로 손님을 받아 버린 탓이었다.
다행이라면 오늘 올라올 때 서문식당에서 게가 들어간 김치를 얻어 와서, 그걸로 게국지를 끓였다는 것이었다.
조금은 심심한 해물탕 같으면서도 칼칼한 김치찌개 스타일인 게국지는 맛이 아주 좋았다. 자극적이지도 않고 말이다.
그리고 미리 끓였다가 손님 상 나갈 때 한 번 더 끓이면 되는 거라 빠르게 음식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손님을 받는데 턴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강진 혼자 정리를 하고 다음 손님들을 받아야 하니 말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하더니…….’
강진은 한숨을 쉬며 손님이 떠난 자리를 치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상섭이 다가와서는 옆 탁자의 그릇들을 같이 치워주며 물었다.
“이모님은?”
“이모님 고향 가셨어요.”
“고향? 쉬는 날이셔?”
“그건 아니고 아예 내려가셨어요.”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고향이 가장 좋기는 하지……. 그런데 갑자기 가셔서 인사도 못 드렸네.”
“며칠 있다가 집 정리하려고 오실 거예요. 그때 인사 전해 드릴게요.”
“그럼 앞으로 혼자 하는 거야?”
“그래야죠.”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탁자를 행주로 닦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직원 한 명 쓰지 그래? 혼자 하기 힘들 텐데.”
“괜찮아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강진은 이상섭이 든 행주를 건네받아 쟁반에 올렸다. 그러곤 그 옆에 그릇들을 마저 쌓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 쟁반을 놓은 강진은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는 정신없이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 한 손으로는 게국지를 끓이면서 틈틈이 반찬도 담고 있었다.
“힘들지?”
강진이 다가와 반찬 담는 것을 도우며 하는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배용수는 웃으며 게국지가 끓고 있는 냄비를 옆에 놓았다.
“삼 인분 나왔다.”
강진은 그것을 들 준비를 하며 말했다.
“내일부터는 전처럼 손님을 줄여서 받아야겠어.”
“너만 괜찮으면 그냥 지금처럼 받아.”
“괜찮겠어?”
강진이 걱정스레 묻자 배용수가 손을 휘저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런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식을 들고 홀로 나왔다.
점심 장사를 마무리한 강진은 어깨를 손으로 두들겼다.
“끄응! 오랜만에 빡세게 일했네.”
중얼거리는 강진에게 배용수가 달달한 믹스 커피를 건넸다.
“당 충전해라.”
그것을 받아든 강진이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무슨 소리야?”
“예전에 아르바이트할 때는 이것보다 더 바쁜 가게에서 정신없이 일했거든? 그래서 식당 처음 할 때 혼자 일해도 힘들기는 해도 할만했어.”
“그런데 지금은 힘들어?”
“이모가 옆에서 도와주던 거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혼자 하려니 힘드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적응의 동물이니 또 적응되겠지. 열심히 적응해라.”
“너는 괜찮아?”
홀도 바쁘지만 음식을 내야 하는 주방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아니, 오히려 쉴 새 없이 음식을 만들고 신경을 써야 하니 홀보다 더 힘들 것이다.
“나는 괜찮아. 오히려 빡세게 일하니 살아 있는 것 같고 좋은데? 물론! 죽었지만.”
귀신만이 할 수 있는 농을 하는 배용수를 보며 강진이 물었다.
“혼자 음식 만들어서 즐거워?”
“호남 씨 못 보게 돼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배용수는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음식 정신없이 만드니 정신없이 즐겁다. 그리고 내 주방을 다시 찾은 것도 같고.”
싱긋 웃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 또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주방 귀신은 되도록 모시지 말아야겠다.”
“그러면 나야 좋지.”
그러고는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다.
“어떻게 보면 난 죽어서 내 꿈을 이룬 격이야.”
“너만의 주방을 가져서?”
“모든 요리사의 꿈이 나만의 주방을 가지는 거니까.”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급히 말했다.
“주방 가졌다고 승천하고 그러면 안 돼.”
“내 주방 가졌다고 승천할 거였으면 진즉에 했겠지.”
배용수는 웃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이모 보고 싶지 않겠어?”
“뭐…… 이역만리 떠나신 것도 아니고, JS 이용하면 바로 볼 수 있잖아.”
JS 금융으로 이어져 있는 문만 두 차례 건너면 차달자를 보러 갈 수 있었다.
서문시장 저승식당을 통해서 가도 되고, 나중에 차달자가 집을 사면 그곳을 통해 바로 만나도 된다.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러 가는 것이야 일이 아니다.
다만 늘 보던 사람이 안 보이니 서운하지 않겠냐는 의미였다.
“보고 싶겠지.”
함께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친할머니 같은 분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달자 이모님한테는 그곳이 집이고 가족이잖아. 아쉽지만 여기보다는 그곳이 더 편하실 거야.”
배용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날 본 차달자의 미소를 떠올렸다.
사람은 역시 편안한 곳이 제일이었다. 멋진 여행지에 있는 최고급 호텔에서 놀아도 편하기는 집이 최고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올라오신다고 했잖아.”
차달자는 실버 힐링 케어 서비스를 받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은 서울에 온다고 했었다.
서울에서 사귄 최순심과도 인연을 이어나갈 겸 해서 말이다.
“게국지 좀 남았지?”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는 안 남았고 한 육 인분?”
“많이 나갔네.”
“맛있잖아.”
“김 사장님한테 부탁해서 게국지 김치 좀 사야겠다.”
“저승식당에서 하게?”
“서울 촌 귀신들이 그런 도시 김치 먹어봤겠어? 맛있는 음식은 나눠 먹어야지.”
배용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강진이 핸드폰을 꺼냈다.
김대현이 알겠다고만 한다면 지금이라도 JS 금융을 통해 서문시장에 가서 김치를 가져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간 김에 차달자도 한 번 더 보고 말이다.
강진이 핸드폰을 꺼내 김대현의 번호를 누르려 하던 찰나, 화면이 바뀌면서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그에 발신자를 확인한 강진이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강진이 기다리던 전화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유훈입니다.]“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화 주셔서 반갑습니다.”
전화를 한 사람은 추나를 해 주는 유훈이었다.
[오늘 가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저야 괜찮죠. 언제 오시려고요?”
[퇴근하고 출발하면 여섯 시쯤 도착할 것 같습니다.]“여섯 시 알겠습니다. 그럼 음식은 어떻게 준비해드릴까요?”
[제 취향 아시잖아요. 그렇게 해 주세요.]“아! 혹시 몇 분이서 오세요?”
“혼자 오세요?”
[친구들은 다 결혼을 해서 같이 밥 먹으려면 며칠 전부터 약속을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문득 사장님이 말을 한 유부초밥이 먹고 싶어서 오늘 가려고요.]“알겠습니다. 그럼 여섯 시 기다리겠습니다.”
그걸로 통화를 마친 강진에게 배용수가 말했다.
“유훈 선생 오늘 온대?”
“응. 선생님 쪽은 됐으니 이제 멤버를 모아 봐야겠지.”
말을 하며 강진은 전화를 걸었다.
[어, 강진아.]“민성 형, 오늘 바쁘세요?”
[왜? 형이 보고 싶드나?]“웬 사투리예요?”
[얼마 전에 조폭 영화 하나 봤는데 말투가 내 밑에 있었던 동생하고 비슷하더라고. 왜, 이상해?]“형하고는 안 어울리죠.”
[후! 하긴, 형이 사투리하고는 좀 어울리지 않지. 형이 워낙 샤프하고 스마트하잖아.]“참으로 그러시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다.
[형 보고 싶어서 전화한 거면 이따 일곱 시쯤에 갈게. 소주나 하자.]“음…… 좀 일찍은 안 돼요?”
[왜? 무슨 일 있어?]“사실 오늘 여섯 시에 손님 한 분 오는데…… 배고픈 귀신이 있어요.”
강진이 짧게 설명을 해 주자, 황민성이 작게 탄식을 토했다.
[아…… 그래서 그 사람을 잡아 둬야 하는군.]“술 많이 먹여서 재우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배고픈 귀신이라…….]황민성은 잠시 있다가 말했다.
[배고픈 것처럼 고통스러운 게 없지. 알았다. 그럼 여섯 시까지 갈게.]“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저녁 약속을 좀 앞으로 당기면 돼. 그럼 이따가 보자.]황민성과 통화를 끊은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죄송하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형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하시겠지. 정말 중요한 약속이면 안 된다고 했을 테고.”
그러고는 배용수가 핸드폰을 가리켰다.
“그리고 통화할 사람 더 있잖아.”
그에 강진이 강상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을 기다리는 강진을 보며 배용수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착한 일을 할 기회가 생기면 민성 형하고 같이 좀 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대가 바라고 하는 건 좀 그렇지만 착한 일 하면 민성 형 저승 노후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
“민성 형 저승 노후 미리 준비하는 거야?”
“그럼. 외국 속담에 부자가 천국 가는 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잖아. 민성 형이 보통 부자도 아니고 미리미리 저금해 놔야지.”
“민성 형이 부자기는 해도 좋은 일도 많이 하잖아. 생각보다 JS 금융에 저금된 돈 많을 거다.”
황민성은 학교에서 잘리고 갈 데 없는 불량학생들을 모아다가 공부와 직업 훈련을 시키는 곳을 만들고 계속해서 지원하고 있다.
불량학생들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범죄자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는 의료 연구에도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었다. 어머니 조순례의 치매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지만, 어쨌든 그 연구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고 슬픈 이별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런 강진의 생각과 달리, 배용수는 고개를 저었다.
“저승에서는 착한 일도 다루지만, 나쁜 일을 더 중하게 보잖아.”
“아…….”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민성은 출소 후에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그 전에는 불효자이자 일진이었고 조폭이었다.
그러니 지옥이란 지옥에는 다 걸릴 터였다. 그래서 배용수가 걱정하는 것이다.
안색이 어두워진 배용수를 보며 강진이 피식 웃었다.
“귀신인 놈이 산 사람 걱정하는 거냐?”
“저승 돌아가는 거 듣다 보니 걱정이 많이 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배용수의 말을 들으니 걱정이 되었다.
“좋은 변호사 사귀어 두는 것이 좋겠네.”
신수호를 떠올리며 작게 중얼거린 강진에게 배용수가 말했다.
“근데 전화 안 받나 보네?”
“그러게. 바쁜가 보네.”
전화를 끊은 강진은 강상식에게 문자를 보냈다.
강상식에게 문자를 보낸 강진이 이번에는 원승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반갑게 전화를 받는 원승환의 목소리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반갑게 받아 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전보다 한결 밝아진 목소리에 강진이 작게 웃었다.
‘결혼 준비가 잘 되어 가시는 모양이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