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25
526화
차달자를 보며 김대현이 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그에 차달자가 강진의 옆에 있는 테이블 근처에 앉았다. 뒤이어 차연미와 귀신들이 자리에 앉자, 김대현이 말했다.
“육개장 한 그릇씩 드릴까요?”
“주세요.”
김대현은 빈 그릇을 들고는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것을 보던 차달자가 가게를 둘러보았다.
“많이 변했나요?”
강진이 묻자 차달자가 고개를 저었다.
“하나도 안 변해서…… 더 놀랍네요.”
그러고는 차달자가 식탁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식탁도 그대로고…… 젓가락과 숟가락도 그대로네요.”
차달자가 젓가락을 들어 보는 것에 강진이 자신의 손에 들린 젓가락을 보았다.
그저 평범한 젓가락과 수저일 뿐이었다.
“이걸 알아보세요?”
“제 기억 속에서는 또렷이 남아 있으니까요.”
차달자는 식탁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모습 그대로라 기분이 좋은 것이다.
차달자가 수저를 천천히 내려놓을 때, 육개장을 든 김대현이 다가왔다.
“저희 식당에서 자랑하는 파 듬뿍 육개장입니다.”
김대현의 말에 차달자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육개장을 식탁 위에 놓은 김대현이 그녀를 보다가 의자를 끌어 옆에 앉았다.
그 모습에 차달자가 김대현을 보았다.
“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차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저로 국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그렇게 한입 맛을 본 차달자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국물이 좋네요.”
“마음에 드셔서 다행입니다.”
차달자는 몇 숟갈 더 국물을 맛보더니 젓가락으로 건더기를 집어 먹었다.
그런 차달자를 보던 김대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강진이 보자, 김대현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저녁 장사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차달자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니에요. 혼자 하는 것이 편합니다.”
홀로 주방에 들어가는 김대현의 뒷모습을 차달자는 아쉬운 듯 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돌연 차연미를 보았다. 차연미는 기분 좋은 얼굴로 육개장을 먹으며 가게를 둘러보고 있었다.
“좋니?”
“집에 오니 좋지. 엄마는 안 좋아?”
“나도 좋아.”
싱긋 웃는 차달자의 모습에 차연미가 마주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대철 아저씨하고 홍군 오빠, 아직도 안 가고 시장에 붙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네.”
“홍군이가 너 보고 울더라.”
“그 오빠가 예전부터 나 좋아했잖아.”
변대두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도 십 년 짝사랑이면 받아줄 만도 한데…… 홍군 그 친구는 거의 삼십 년을 넘게 연미 너에게만 마음을 주니, 이제 적당히 마음 받아 주지 그래?”
변대두의 말에 차연미가 웃었다.
“귀신끼리 짝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받아주기는 뭘 받아줘요?”
“안 될 것이 뭐 있나? 영혼결혼식이라는 것도 있잖아.”
차연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산 사람들이 자식 죽어서라도 결혼하라고 시키는 거고요. 그리고 양쪽 의사 생각도 안 하고 강제로 이뤄지는 거잖아요.”
이야길 듣던 변대두가 웃었다.
“이 외로운 귀신 생활에 말 걸어줄 이 하나 있으면 덜 외롭지 않겠어?”
변대두의 말에 차연미가 웃으며 주위를 보았다.
“나야 이렇게 가족이 있는데 뭐가 외로워요?”
“연미 말이 맞아요. 홍군 총각이 안쓰럽기는 하지만 남녀 사이의 일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연미는 하고 싶은 대로 해.”
차달자가 편을 들자 차연미가 활짝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예요.”
그러고는 변대두를 보며 말했다.
“어쩐지 홍군 오빠가 어르신 모시고 이야기하더라니, 이거 말해달라고 했어요?”
“하하하!”
변대두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 것을 보며 차연미 또한 고개를 저었다.
그런 차연미와 변대두를 보던 강진이 차달자를 보았다.
“언니들은 만나 보셨어요?”
차달자는 쓰게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손으로 주무를 뿐이었다.
“어휴, 말도 말아요. 우리 엄마 엄청 맞았어요.”
차연미가 과장조로 말하자 차달자가 웃었다. 그런 차달자의 모습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맞으셨는데 웃으시네요?”
“몸은 아팠는데…… 마음은 풀리더라고요.”
“마음요?”
“언니들이 나를 손으로 막 때리는데…… 한 대 한 대 맞을 때마다 헤어져 있던 시간들이 일 년씩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웃었다.
“그럼 많이 맞으셨겠네요.”
강진의 농에 차달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런 차달자의 모습을 지켜보던 강진은 한 가지 일을 예감했다.
‘이모님은 남으시겠구나.’
그런 생각을 할 때 차달자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녁에 언니들 온다고 했으니 그때 소개해 드릴게요.”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소주를 한 잔 따라 그녀의 앞에 놓았다.
“한 잔 드세요.”
차달자는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미소를 지었다.
‘고맙고…… 미안해요.’
***
김대현의 저승식당에는 시장 귀신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 차 사장님, 정말 반갑습니다.”
“사장님! 이게 얼마 만이에요!”
귀신들의 화제는 단연코 차달자였다. 귀신 중엔 차달자를 잘 모르는 이가 더 많았지만, 차달자를 아는 고참 귀신들의 입을 통해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것이다.
자신을 아는 귀신들이 웃으며 말을 걸자 차달자가 마주 웃으며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차 사장님 떠나고 많이 걱정했습니다.”
차달자는 귀신들이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시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떻게, 아예 돌아오신 겁니까?”
한 귀신의 말에 차달자가 그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한 말씀 드릴게요.”
가게 안의 귀신들이 일제히 그녀를 주목했다. 자신을 쳐다보는 귀신들을 보며 차달자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말도 없이 떠나서 죄송합니다.”
차달자는 귀신들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한쪽에서 강진과 자리를 하고 있는 김대현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차달자의 모습에 귀신과 사람들은 입을 다문 채 그녀를 보았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식사를 해 주는 식당 주인의 자리를 포기했어요. 죄송합니다.”
차달자가 사과하자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었는지 아는 귀신들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계속 이 일을 했다면, 저승식당을 하지 않아도 되셨을 김 사장님과 전 사장님에게 죄송합니다.”
차달자가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자, 김대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저승식당 맡은 것에 대해 불만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감사한 마음입니다.”
김대현은 주위에 있는 귀신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저 같은 놈에게 작지만 이런 2층짜리 건물이 생겨서 너무 좋았습니다. 게다가 5년만 일하면 이 가게가 제 거라니…… 하하,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긴 행운에 너무 좋았습니다.”
김대현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5년? 나하고 같은 조건이었나 보구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김대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뭔지 알게 됐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해 주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됐으니까요.”
김대현은 다시 차달자를 바라보았다.
“전 사장님 역시 시작은 어떠했을지 몰라도 차 사장님에게 감사해하고 있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김대현의 말에 차달자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말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대현의 말에 차달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귀신들을 보았다.
“손님들에게는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사장님.”
잠자코 그녀를 지켜보던 귀신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냈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귀신이었다.
차달자가 그녀를 보자, 아주머니 귀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엄마란…… 밥을 먹어도 죄스럽고, 물을 마셔도 죄스럽죠. 그리고 어느 날 웃을 일이 생겨 웃으면 그것마저 죄스러운…… 그렇게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죠.”
아주머니 귀신은 차달자를 보았다.
“죽지 않고 미치지 않고 이렇게 살아서 다시 보게 된 걸 나, 아니 여기 있는 귀신들 모두가 고맙게 생각해요.”
차달자는 아주머니 귀신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언니는 빨리 올라가기나 해요.”
“가야 되는데 잘 안 가지네요.”
아주머니 귀신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차달자가 작게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 차달자의 얼굴에는 후련함이 어려 있었다. 오랜 기간 속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조금이지만 풀어졌기 때문이었다.
새벽 1시가 가까워지자 귀신들이 하나둘씩 차달자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여기도 한끼식당처럼 1시가 다가오면 귀신들이 알아서 자리를 비우는 것이다.
그렇게 1시를 넘겨 한산해진 홀에 강진과 차달자는 마주 앉아 있었다.
덜그럭! 덜그럭!
주방에서 김대현이 설거지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차달자가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강진을 보았다.
“사장님.”
강진 또한 차달자를 보았다. 자신을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 차달자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나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죠.”
강진이 내뱉는 말에 차달자는 놀라며 물었다.
“아셨어요?”
“언니들 만나고 돌아오셨을 때 지었던 미소를 보고 알았어요. 아쉽지만 이모님이 여기 남으시겠구나, 하고요.”
“아…….”
차달자가 미안해하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를 아껴주고 좋아해주는 사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바로 집이죠. 이모님에게는 여기가 그런 곳이고요.”
“정말…… 미안해요.”
“미안하기는요. 저야 그동안 이모님한테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아서 고맙기만 한데요. 그리고 여기가 외국도 아닌데 자주 보러 올게요. 아니면 이모님이 한 번씩 올라오셔도 되고요.”
차달자는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강진을 고마움과 미안함이 어린 눈으로 보았다.
강진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아직도 병원 구내식당에서 음식을 하며 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을 만나면서 차연미, 이호남, 변대두를 다시 만났다. 아니, 정확힌 자신의 곁에 있던 그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아껴주고 그리워해준 이들도 다시 만나게 되었고 말이다.
잠시 강진을 보던 차달자가 입을 열었다.
“언니들 나이 먹은 것을 보니…… 그분들과 같이 있고 싶어졌어요.”
“아까 임석신 아저씨 보고 더 그러셨나 보네요.”
차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석신이 바로 얼마 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고…… 조금만 일찍 왔으면 하고 아쉬워했었다.
그러다 친한 언니들을 보니, 그녀들도 나이가 많아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음을 알게 됐다.
그런 언니들이 자신을 열렬히 반겨주자 여기에 남아서 여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 여기에서 일을 하실 건가요?”
강진이 식당을 둘러보며 묻자, 차달자가 주방을 보았다.
덜그럭! 덜그럭!
설거지 소리가 들려오는 주방을 보며 차달자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돕지 않아도 여기 사장님은 혼자서도 잘 해내실 거예요.”
“그럼 앞으로 어쩌시려고요?”
강진의 물음에 차달자가 웃으며 말했다.
“국숫집을 해 볼 생각이에요.”
“국숫집?”
“언니들이 국수를 좋아해서요. 그리고 나도 좋아하고.”
“자리 잡고 준비하려면 바쁘시겠네요?”
차달자는 고개를 저었다.
“미선 언니가 자리 알아봐 준다고 하셔서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다 아는 사람들인데…… 힘들 것이 있나요?”
차달자가 하는 말을 듣던 강진은 김대현이 썼던 소주잔에 소주를 따랐다.
쪼르륵!
그러고는 차달자의 빈 잔에도 소주를 따르고는 잔을 들었다.
“이모님의 행복한 귀향을 위하여.”
강진의 말에 차달자가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어서는 살짝 부딪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