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96
597화
윤두식을 보던 황민성은 고개를 저었다.
“족보가 그런 것이 아니지.”
“족보?”
“네가 나보다 두 살 위라도 데뷔 연도는 내가 너보다 빠르지.”
황민성의 말에 윤두식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황민성은 고등학교를 중간에 자퇴하고 조직에 들어간 터라 데뷔 연도는 자신보다 빨랐다.
“이 나이 먹고 형 동생 따지는 것도 우습다. 그래, 친구 하자.”
“그래. 앞으로도 착한 일할 기회 보이면 바로바로 해라. 그래야 저승 가서 밥 먹고 산다.”
“무슨 소리야?”
윤두식이 의아한 듯 보자, 황민성이 힐끗 주방 쪽을 보고는 말했다.
“나중에 죽으면 알게 될 거다. 내가 한 이야기로 밥 먹으면 그냥 고맙다 생각해.”
윤두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어보면 알 거라니…… 이상한 것이다.
그러던 윤두식은 탁자에 만 원짜리를 하나 올렸다.
“네 건 네가 계산해라.”
“하여튼…… 옛날에 멸치로 안주할 때부터 알아봤다.”
황민성의 말에 윤두식이 피식 웃고는 주방을 향해 말했다.
“나 간다.”
그에 강진이 홀로 나왔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강진의 말에 윤두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오늘 수고했다.”
윤두식은 입맛을 다시며 자신이 마신 소주를 보았다. 아무래도 일을 할 시간에 술을 먹은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하긴, 한 푼이 아쉬울 때인데…….’
그의 사정을 알고 있는 강진은 조심스레 입을 뗐다.
“가장이라고 매일 일만 할 수 있나요. 가끔 이런 시간도 있고 이런 자리도 있어야 숨을 쉬죠.”
“숨이라…….”
잠시 생각하던 윤두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숨 잘 쉬고 간다.”
말을 하며 윤두식이 가게를 나서자 황민성이 그 뒤를 따라 나왔다. 그때 중년 남자 둘이 급히 다가왔다.
“황 사장님.”
남자 둘이 다가와 고개를 숙이자 황민성이 윤두식을 보았다.
“대리 불렀어.”
“내가 불러도 되는데.”
“내가 아는 곳이야. 이왕이면 내가 아는 곳 매상 좀 올려줘.”
황민성의 말에 윤두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키를 주자, 대리 기사가 그것을 받았다. 그러고는 키의 버튼을 누르자 택시 라이트가 켜졌다가 커졌다.
그 모습에 대리 기사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택시?’
대리 기사가 의아해할 때, 황민성이 말했다.
“제 친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대리 기사가 급히 고개를 숙이자, 황민성이 뒷좌석을 열어 윤두식을 태웠다.
“잘 가라.”
“그래. 간다.”
윤두식이 택시를 타고 출발하자, 이수현이 강진을 보았다.
“꼭 부탁드리겠습니…….”
이수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이 휘이익! 빨려 가듯이 택시의 뒤로 끌려갔다. 수호 대상과 거리가 멀어지자 강제로 끌려가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죽었겠네.’
달리는 차의 뒤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끌려가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바닥에 질질 끌려가는 모습은 아니고, 수상 스키 타는 것처럼 서서 끌려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강진이 택시에 끌려가듯이 가는 이수현을 볼 때, 황민성이 자신을 보고 있는 다른 대리 기사에게 말했다.
“저기 가는 분한테 요금은 제가 드리겠다고, 따로 받지 말라고 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리 기사는 먼저 간 동료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황민성이 이용하는 대리 업체는 외제 차나 고급 차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다.
그래서 서비스도 좋고, 기사들 보험도 잘 되어 있다. 그 대신 요금이 일반 대리보다는 확실히 비싼 편이었다.
그런데 택시 기사를 태우고 갔으니 혹시라도 요금으로 실랑이가 날까 봐 걱정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안에 들어가서 차나 한잔하세요. 저 좀 있다 가려고 하니까요.”
“아! 그럼 저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안에서 차라도 한 잔 드세요.”
황민성의 말에 대리 기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 않아도 열대야로 더운 서울 길거리에 서 있으려니 좀 힘들었던 것이다.
황민성이 대리 기사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 강진이 시원한 오미자차를 내왔다. 그것을 받아든 대리 기사가 오미자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맛있다는 듯 보자 강진이 웃어 주고는 황민성에게 다가갔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
“두식이한테 무슨 일 있어?”
“어? 어떻게 아셨어요?”
“몸이 많이 안 좋아졌던데?”
“몸이요?”
강진은 의아한 듯 황민성을 보았다. 윤두식의 몸이 안 좋은 건 사실이지만 워낙 건장한 몸을 가지고 있다 보니 딱히 아파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몸이 막 이랬거든.”
황민성은 몸을 부풀리는 시늉을 하고는 자신의 허벅지를 가리켰다.
“그때는 허벅지가 사람 허리만 했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더라고.”
“예전에는 몸이 정말 크셨나 보네요.”
“그렇지. 어디 몸이 아픈가? 그 수호령한테 들은 것 없어?”
황민성이 묻고자 한 것은 이것이었다. 혹시 수호령과 무슨 이야기 한 것 없는지 말이다.
강진은 잘 됐다는 듯 아까 전해 들었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황민성이 한숨을 쉬었다.
“애가 아프구나.”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두식 형이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자기 몸도 많이 상했고요.”
“일 때문에 상했겠어? 아픈 아이 때문에 마음고생하니 몸이 상한 거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던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두식 형?”
“형하고 친구 하기로 했으면 저에게는 형 친구잖아요. 그럼 저에게도 형이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었다.
“그 말도 맞네.”
“그래서 어떻게, 도와주실 수 있겠어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답게 사는 녀석인데…… 그리고 애가 아프다는데 도와야지.”
그러고는 황민성이 말을 이었다.
“내가 기부금 내는 병원에 애 입원시키면 되니 쉽지.”
“그래요?”
“다만…… 그 녀석 자존심이 걸리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겠네요.”
젊었을 때는 서로 치고받기까지 했던 사이다. 나이 먹고 만나서 옛 기억에 친구 하기로 했지만…… 도움을 주고받기에 쉬운 사이는 아니었다.
혹시라도 ‘나를 동정하냐.’ 같은 말을 들을 수도 있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황민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면…….”
황민성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턱을 쓰다듬었다.
“왜요?”
“학교에 취직을 시킬까?”
“학교? 형네 학교요?”
황민성은 고등학교를 운영 중이었다. 자신처럼 사고 치고 학교에서 잘린 문제아들이 사회 나가서 조폭이나 어두운 길에 가지 않게끔 하기 위해 세운 학교였다.
일반 학교처럼 운영이 되는데, 공부보다는 취업 준비와 기술 취득에 초점을 맞춘 전문학교였다.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학교에 두식이 하기 좋은 자리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조폭의 무서움을 알려주는 조교?”
“조교요?”
“어떻게 보면 우리 학교 학생들 조금만 삐딱했으면 바로 조폭 됐을 애들이야. 그런 애들한테 전직 조폭이 그쪽 세상의 무서움을 알려주고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말을 하던 황민성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턱을 쓰다듬었다.
“음…… 이거 좋은 생각인데.”
“뭐가요?”
“손 씻고 착하게 살려는 전과자들…… 몇 더 고용할까?”
“더요?”
“나쁜 놈들도 종류가 여럿이지. 예전의 나 같이 주먹으로 먹고사는 조폭, 돈으로 나쁜 짓 하는 사채, 도박도 있고. 그런 쪽 손 씻은 사람들 고용해서 애들한테 그쪽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려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러다가…… 물들면요?”
윤두식이야 완전히 손 씻고 택시 기사 하면서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믿고 학교에 고용할지가 문제였다.
혹시라도 애들이 그런 사람들한테 기술이라도 배워서 그쪽으로 빠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잘 알아보고 고용해야지. 두식이처럼.”
그러고는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그리고 알아야 안 당하는 거야. 애들이 사채 무서운 줄 모르고 가져다 썼다가…….”
말을 하던 황민성은 입맛을 다시며 말을 멈췄다. 사채 쓰다가 잘못되면 어떻게까지 나빠지는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강진에게 굳이 해 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애 병원비는 어떻게 해요?”
전문학교 선생님 월급이 얼마인지 몰라도, 개인택시 기사도 돈은 꽤 번다. 직장인보다는 수입이 나은 것이다.
“우리 학교 취직하면 학교에서 가족 병원비는 지원해 줘.”
“병원비를요?”
“가정이 건강해야 일하는 사람도 건강한 거야. 그리고 일하는 사람이 건강해야 학생들도 건강한 거고. 그래서 우리 학교는 가족 복지를 잘해 줘. 병원비, 휴가비, 그리고 자녀 교육비.”
“좋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잘 돌아가는 거야.”
그러고는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좋으면 우리 학교 취직할래?”
“제가요?”
“우리 학교에 조리학 과정도 있어.”
“제가 가면 귀신들이 배고파요.”
“아! 그것도 일리가 있네. 탈락!”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럼 언제 일자리 제안하실 거예요?”
“일단 그 친구 애 어디가 아픈지 좀 알아보고. 그 친구 쉬는 날 우리 학교 한 번 데려가서 이야기 좀 해 봐야지.”
“그때 저도 같이 가요.”
“시간 되겠어? 학교가 지방이라 오고 가는 데 시간 좀 걸려.”
“어딘데요?”
“강원도.”
“강원도요?”
“강원도 땅값 좀 싸고 산세 좋은 곳에 있어.”
“심산유곡이라는 것처럼 들리네요.”
“맞아. 심산유곡.”
그러고는 황민성이 말을 이었다.
“정신 수양에 산만 한 곳이 없지.”
“저는 일요일밖에는 시간이 안 될 것 같은데…….”
“그럼 일요일에 가자.”
“일요일에는 학생들 없잖아요.”
“우리 학교는 애들이 다 기숙사 생활 해서 주말에도 있어.”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겠네요.”
“그럼…… 그 친구 쉬는 날 봐서 일정 잡아 보자고.”
“되도록 빨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애가 아프니…… 두식 형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황민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형 간다.”
그에 강진이 따라 일어났다.
“그럼 조심히 가세요.”
황민성은 양손에 배용수가 챙겨 준 반찬과 복분자를 들고는 웃었다.
“근데 이거…….”
“왜요?”
“시골집에 갔다가 오는 것 같다.”
웃으며 황민성이 주방 쪽을 향해 소리쳤다.
“형 간다!”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주방이 아니라 강진의 옆에 있었으니 말이다.
“점심때 꼭 도시락 가져가거나 식사하러 오세요. 내일부터 형 점심 제가 준비할 테니까요.”
강진이 배용수가 한 말을 전해 주자, 황민성이 웃었다.
“그래. 형 정력은 앞으로 용수 너에게 맡기마.”
“맡겨 주세요.”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민성이 대리 기사를 보았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대리 기사는 웃으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기다리면 기다린 만큼 황민성이 챙겨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민성이 건넨 차 키를 받아들고 가게 밖으로 나서던 대리 기사는 잠시 멈춰 서더니 강진을 보았다.
“차 잘 마셨습니다.”
“다음에 목마르거나 쉴 때 필요하면 오세요. 식사 안 하셔도 시원한 차와 의자 정도는 내어 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대리 기사가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는 가게를 서둘러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이 황민성을 배웅해 주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홀에 있던 배용수는 어딘가에 문자를 하고 있었다.
“민성 형한테 보내는 거야?”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고개를 저었다.
“신수용 씨한테.”
“용 씨한테?”
“혹시 내일 장어하고 돼지 등심 좀 보내 줄 수 있냐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다가 말했다.
“민성 형 정말 정력 왕으로 만들 생각인가 보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어.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면 해 드려야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그 어깨를 두들기고는 말했다.
“내 것도 있는 거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았다.
“부실해?”
“무슨…… 그냥 다다익선이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힐끗 그의 허리 쪽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먹어서 나쁠 것은 없지.”
그러고는 배용수가 문자를 마저 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