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18
919화
불은 짜장면을 천천히 씹어 삼키는 할머니를 보며 강진은 다른 음식을 준비했다. 강진이 골뱅이 통조림을 까자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골뱅이네.”
“골뱅이 어떻게 해 드릴까요? 야채하고 무쳐서 드릴까요?”
“그렇게 줘요.”
“알겠습니다.”
강진은 오이를 썰고 무를 채 썰었다. 그러고는 양념장을 만든 뒤 섞은 강진이 마지막에 깨를 뿌렸다.
“완성.”
골뱅이무침을 뚝딱 만든 강진이 그것을 접시에 담아 아주머니에게 내밀었다.
“특제 골뱅이 한 통! 무침입니다.”
“골뱅이 한 통이 들어간 무침이라니…… 정말 호사스럽네요.”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접시를 하나 더 꺼내 골뱅이무침을 담았다.
“대진아, 이거 아저씨 가져다드려.”
“네.”
장대진이 골뱅이무침을 가져다주자, 아저씨가 웃었다.
“이야, 이거 오늘 정말 거하게 먹네.”
“그러게 말이야.”
“오늘 네 덕에 호강한다.”
“많이 먹어. 많이 먹어.”
아저씨는 기분 좋게 웃으며 강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아주머니는 골뱅이와 오이를 같이 집어 입에 넣고 있었다.
그렇게 맛을 본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골뱅이를 자르지 않고 통으로 했나 보네.”
“크게 드시라고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골뱅이와 오이를 다시 집어 입에 넣었다.
“아주 맛이 좋네.”
강진도 그릇에 남은 골뱅이와 오이를 집어 입에 넣었다.
“제가 만들었지만 아주 맛이 좋네요.”
“골뱅이가 참 맛있어요.”
아주머니가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어느새 짜장면을 다 먹고 입을 닦고 있었다.
“골뱅이무침도 좀 드세요.”
“많이 먹었어. 더는 못 먹을 것 같아.”
“배부르시면 조금만 드시지 그러셨어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선반에 놓인 티슈를 뜯어 입을 마저 닦으며 말했다.
“배는 부른데…… 어쩐지 다 먹고 싶었어.”
할머니는 웃으며 강진을 보았다.
“마치 우리 영감이 총각을 나한테 보낸 것 같아.”
“맞아. 내가 보냈어.”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지그시 가게를 보다가 말했다.
“예전에 우리 영감이 그러더라고. 나중에 죽을 때 되면 나보고 먼저 죽으라고 말이야.”
“먼저요?”
아주머니가 의아한 듯 보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없으면 당신 외로우니까.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자기가 가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자기가 먼저 죽으면 자기 장례식 당신이 챙겨야 하는데 힘들다고. 그러니 당신이 먼저 죽으면 내가 좀 더 살다가 당신 보러 가겠다고.”
할머니가 웃었다.
“그때는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 뭐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영감이 나 생각해서 한 말인 것 같아 나 혼자…… 이렇게 살까 봐 걱정해서 그런 것 같아.”
할머니가 쓰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각 말이 맞아. 내가 좋아하는 짜장면도 한 그릇 마음대로 먹지 못하면서 가게에만 있는 거…… 우리 영감이 보면 기함을 할 일이야.”
강진을 보던 할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짜장면 먹으러 다닐지 모르겠지만…… 총각 말대로 좁은 가게에서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시간을 이렇게 보내는 건 아닌 것 같아.”
“그 말씀은?”
강진이 보자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오전 열한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거야. 먹고 싶은 것도 먹고, 보고 싶은 것도 보고…….”
“가게는 안 접고? 접지 그래. 저거 운영한다고 돈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할머니를 보았다.
“가게 접지는 않으시고요?”
“가게를 접지는 않을 거야. 소일거리라도 해야 그나마 살아 있는 것 같으니까. 놀기만 하면 바로 늙어.”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가게를 보았다.
“그리고 저 가게에 우리 영감 손때 묻은 물건들이 많아. 그래서…… 나 죽을 때까지는 가게 하려고.”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 편한 대로 해. 자네가 먹고 싶은 것 먹고, 자네가 보고 싶은 것 보고…… 나나 여기 총각이 뭐라고 하든 자네가 하고 싶은 것 하는 게 정말 좋은 거겠지. 자네 하고 싶은 거 다 해. 대신 하나만 약속해 줘. 끼니 대충 때우지 말고 먹고 싶은 거 꼭 먹어야 해.”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할머니를 보았다.
“앞으로는 혼자 드시더라도 끼니 대충 때우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걸로 드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놓친 끼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대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그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러네. 오늘 놓친 끼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그러니 좀 번거롭더라도 정말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드세요.”
“그래야겠네. 앞으로는 한 끼 한 끼…… 정말 소중하게 잘 챙겨 먹어야겠어. 앞으로 먹어야 할 끼니가 이때까지 먹은 끼니보다 적으니까. 앞으로 한 끼 한 끼 정말 소중하게 먹어야겠어.”
그러고는 할머니가 강진에게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오늘 정말 맛있게 먹었어.”
“그만 드시려고요?”
“많이 먹었어. 정말 잘 먹고 가네.”
“더 드시라고 하고 싶지만, 과식하면 안 좋으실 것 같으니 들어가서 쉬세요.”
“그래.”
할머니가 웃으며 몸을 돌리려 하자, 강진이 급히 말했다.
“어르신.”
강진의 부름에 할머니가 그를 보았다. 그에 강진이 국그릇에 김칫국을 떠서는 내밀었다.
“기름지게 드셔서 속이 좀 거북하실 거예요. 불은 면도 드셨고요. 이거 좀 개운하게 드세요.”
“거절해야 하는데…… 총각 말대로 속이 좀 거북한 것도 같네. 고마워. 그리고 이거 안에서 먹고 그릇 가져다줘도 될까? 내가 보는 드라마가 있어서 안에서 먹고 싶네.”
“편하게 하세요.”
“고마워.”
할머니가 국그릇을 조심히 들고 가게로 향하자, 할아버지가 의아한 듯 말했다.
“지금 시간에는 할망구 보는 드라마 안 하는데?”
할아버지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이야기 많이 하다 보니 어르신 생각이 나서 사진이라도 좀 보시려나 보죠.”
“호오!”
배용수의 말에 할아버지가 푸드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나도 잘 먹고 가네.”
말을 하며 할아버지가 서둘러 가게로 가려 하자, 강진이 배용수를 쳤다.
툭!
“어르신.”
그에 배용수가 바로 할아버지를 불렀다. 강진이 자신을 친 이유를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할아버지를 부르고 본 것이다.
할아버지가 뒤를 돌아보자 강진이 잘 했다는 듯 배용수의 무릎을 토닥였다. 사람이 있어 차마 설명을 못 했는데 배용수가 용케 눈치를 채 줘서 고마운 것이다.
강진은 푸드 트럭에서 내리며 말했다.
“음식 냄새를 하도 맡았더니 질리네요.”
“그래. 이제 그만하고 여기 앉아서 같이 먹자.”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배용수가 “이거 때문이었구먼.”하고 중얼거리더니 할아버지를 보았다.
“강진이 옆에 가서 서세요. 향수 뿌려 줄 거예요.”
“향수?”
“귀신들 귀기 없애 주는 거예요. 어르신 할머니 몸 상하실까 봐 가까이 오래 못 있잖아요. 향수 뿌리면 하루 정도는 할머니 옆에 있으셔도 돼요.”
“정말?”
배용수의 설명에 할아버지가 서둘러 강진의 옆에 가서 섰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향수를 꺼내고는 장대방을 보았다. 옆에 와서 서라는 의미였다.
그에 장대방이 할아버지 옆에 서자, 강진이 자신을 향해 향수를 뿌리는 척하며 둘에게 뿌렸다.
칙! 칙!
향수를 뿌린 강진이 두 귀신을 보았다.
“된 건가?”
할아버지 귀신의 말에 강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할아버지 귀신이 서둘러 가게로 뛰어갔다.
스르륵!
닫힌 문을 뚫고 안으로 사라지는 할아버지 귀신을 보던 강진이 장대방과 함께 어머니 옆에 가서 앉았다.
“이야! 이제 저도 좀 먹어 볼까요?”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방금 뭘 뿌린 거야?”
“방향제 같은 겁니다.”
“방향제?”
아주머니가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를 맡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방향제라고 해도 향은 없어요. 그냥…… 기분 전환할 때 쓰는 거예요. 아, 그리고 말씀 편히 하세요. 음식 만드느라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그래. 자, 너도 어서 먹으렴.”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칫국을 국그릇에 담은 뒤 수저로 떠먹었다.
“고기부터 좀 먹지 그래?”
“칼칼하게 이것 좀 먹고요. 김치 맛이 좋아서 그런지 김칫국이 아주 맛있게 끓여졌거든요.”
“김치 들어가는 음식은 김치만 맛있으면 기본 이상은 하는 법이지.”
아주머니가 웃으며 콩나물과 대패 삼겹살을 싸서는 내밀었다.
“먹어 보렴.”
강진이 웃으며 대패 삼겹살을 받아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만들었지만 참 맛이 좋네요.”
“그러게. 이렇게 손맛이 좋으니 장사가 정말 잘 되겠어. 다음에 강진이 가게에 가서 음식 좀 팔아 줘야겠어.”
“그럼 저야 좋죠. 아! 대신 점심시간은 피해서 오세요. 저희 가게에 직장인 손님들이 많아서 점심엔 자리가 없거든요.”
“그렇구나. 그럼 좀 늦게 갈게.”
고개를 끄덕인 강진은 음식을 먹으며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할머니는 늘 앉아있는 계산대 뒤쪽에 있는 담배 진열대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당신이 참 손재주가 많았어.”
가게 안에 있는 상품 진열대들은 모두 생전에 할아버지가 만든 것이었다. 나무로 된 진열대를 손으로 쓰다듬던 할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 만들었을 때는 나무색이었는데 지금은 손때가 다 타서…… 나처럼 색이 다 변했네. 이 녀석도 늙나 봐.”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은 여전히 이렇게 뽀얀데.”
“나도 젊었을 때는 참 예뻤는데…….”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도 충분히 예뻐요.”
할아버지는 슬며시 할머니의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웃으며 걸상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 걸상을 내가 참 잘 만들었어. 당신하고 내가 앉으면 부족하지도 않고 남지도 않고 딱 좋잖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잠시 보다가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은 늘 이렇게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왼쪽에, 할아버지는 오른쪽에…… 이렇게 둘이 앉아서 손님을 맞거나 TV를 보았다.
“당신…… 늘 내 자리를 비워 두고 있었네.”
할아버지는 지금 앉아있는 자리가 평소에도 계속 비어 있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없는데도 할머니는 자신의 자리를 비워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미소를 지은 할아버지가 앞을 보았다.
“이렇게 있으니 내가 살아 있던 때 같네.”
살아 있을 때, 이렇게 같이 앉아서 같은 곳을 보았다.
젊었을 때는 사랑하는 여인과 좋은 곳을 보았고, 나이 먹어서는 부부로서 자식을 같이 보았다. 그리고 늙어서는 인생 대부분을 같이 한 반려이자, 친구로서 함께 가게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녀와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미소를 지으며 멍하니 있는 할머니를 슬며시 본 할아버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머리 쓰다듬어 주는 걸 당신이 참 좋아했는데…….”
할머니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밀가루 많이 먹어서 속 안 좋을 텐데 김칫국 마셔요.”
할아버지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할머니가 김칫국을 보았다. 그러더니 김칫국을 들어서는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꿀꺽!
그렇게 맛을 보더니 마음에 드는 듯 다시 몇 모금 마셨다. 그리고…….
“꺼어억!”
개운하다는 듯 트림을 크게 하는 것에 할아버지가 웃었다.
“하하하! 이 사람 트림 참 시원하게 하네. 그래. 앞으로는 먹고 싶은 거 많이 먹고 이렇게 시원하게 트림도 해 버려.”
웃으며 할머니를 보던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래. 이런 모습이었어. 당신과 내가 나이 들어서 보던 풍경은 말이야.”
할아버지는 슬며시 할머니 손을 잡았다.
“기다리고 있을게. 나 지긋지긋하지 않으면…… 올라와서도 같이 앉아서, 같은 곳을 보면서 같이 살아 보세나.”
할아버지는 그녀의 손을 꼬옥 쥐었다.
“그동안 고마웠어.”
화아악!
그 말을 끝으로 빛과 함께 할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