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585
584화
언제 이렇게 많은 물건을 만든 것일까.
강신은 권영식이 안식년을 핑계로 방으로 들어간 이후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권영식에게 방해가 될까, 따로 장비를 만들어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현장에서 사용한 장비들은 권영식이 아닌 다른 연구원이 만들어준 장비들이나 기존에 만들어 두었던 장비들이었다.
오죽했으면 망가진 건틀릿을 이승훈과 키클롭스 장인이 함께 만들고 차단력이 낮은 보호 장비를 입고 현장에 나갔을까.
하지만 눈앞에 있는 장비들을 보자, 강신은 그간 권영식이 연구만 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 앞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은색 케이스들을 보며 강신은 마치 산더미 같은 장난감을 받는 아이처럼 두근거림을 감출 수 없었다.
권영식이 만든 물건들은 언제나 자신의 상상을 넘어서는 것들이었으니까.
“그간 고생이 많았다는 소리는 들었네, 사용하던 장비가 고장 난 것은 이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욕심 때문인지, 이제서야 건네주게 되었군.”
변명 아닌 변명을 한 권영식은 가장 위에 올려진 은색 케이스를 열며 그 안에 있던 물건을 꺼냈다.
가죽을 기어 붙인 듯한 기괴한 모양의 쫄쫄이, 스판 재질로 보여 입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그 기괴함에 입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을 본 강신이 작게 중얼거렸다.
“내복인가요…?”
“내복이라, 안쪽에 입는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니네만 나는 보조 보호 장비라고 부르고 있지.”
“보조 보호 장비요?”
“이게 보호 장비 안쪽으로 입는 물건이거든.”
권영식은 그간 보호 장비를 만들면서 아무리 차단력을 높이려고 노력해도 U.M.A 공격을 모두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부에서 몸을 지킬 수 있는 보조 보호 장비를 추가로 만들었다.
이전까지 권영식의 마음속에서 현장 요원이라는 요원들은 자신의 연구 재료를 공급해주는 고마운 존재에 불과했었다.
그가 관심 있는 건 그들이 U.M.A를 포획하는 서사가 아니라 포획한 U.M.A 그 자체였으니까.
그래서일까, U.M.A를 연구해 무엇을 만들어도 현장 요원이 사용하는 장비보다는 회사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했으며 그런 물건들을 주로 만들었다.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몰랐다.
회사에서 생각하는 성과는 직원의 안전을 지키는 물건보다는 이익을 벌어다 주는 물건이었을 테니까.
덕분에 권영식은 빠르게 진급했고 비밀 연구소의 연구소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강신이 성신에 입사하고부터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강신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매우 흥분했다.
U.M.A에 대한 정보를 다루고 쉽게 포획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 흥분하지 않는 게 이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임상무가 강신에게 장비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기꺼워하며 강신이 사용할 장비들을 직접 만들어주었다.
그 이후 강신을 위한 장비를 만들었을 때도 대부분 임상무가 건의한 것들이었다.
그 정도만 해도 권영식은 강신에게 다른 요원들과 다르게 충분히 특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자기 시간은 비싼 값어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신기하게도 강신은 자신에게 받은 물건들을 가지고 언제나 그에 걸맞은, 아니, 정확히는 그 이상의 일을 해냈다.
회사에 입사한 후배가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일을 해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일을 해준다면 그 어떤 선배가 좋아하지 않을까.
그때부터 권영식은 강신의 안전을 더 걱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강신이 포획한 U.M.A에서 나오는 부산물의 반 이상을 강신이 현장에서 사용할 장비로 만들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신을 팀장으로 한 테스크포스팀이 결성되었다.
이미 자신도 동의했던 부분이라 전혀 팀 결성 자체는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 울프팀이라는 팀이 결성되었을 때, 강신이 자신을 찾아와 한자리를 맡아달라는 말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고 승인했다.
비록 현장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권영식은 울프팀에 소속감을 느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더불어 시간이 지날수록 팀원들과 유대감은 점점 깊어졌다.
울프팀에 소속된 이들은 더는 일개 현장 요원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말이다.
이전에는 U.M.A를 포획하다 현장 요원 혹은 지원 요원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며 추모만 하고 넘어갔다.
그런 일은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으니, 익숙해졌다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울프팀 요원들과 유대감이 깊어지고 나서는 그 익숙함이 흔들렸다.
마치 잔잔한 수면에 던진 돌에 파문이 퍼지는 것처럼 마음에 동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울프팀 요원들이 다치면 걱정되는 것은 물론이고,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심지어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한 현장에는 나가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권영식은 주변에서 울프팀을 편애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더 차단력이 높은 보호 장비와 U.M.A를 상대할 무기들과 장비들을 제작해 주었다.
권영식은 뭔가를 만들어 낼 때마다 강신과 울프팀 요원들이 보이는 반응을 보며 내심 뿌듯하고 즐겁기까지 했다.
그렇기 시간이 지났고 그날이 닥쳐왔다.
회사에서 명명하길, 지니즈 랜드 대소실의 날이라고 불리는 사건.
1팀 요원 대부분과 소수의 3팀 요원이 특이점으로 생긴 중력으로 뭉친 공간에 빨려 들어가고 거기에 걸친 김대리가 눈을 뜨지 못하게 된 날이었다.
그 사건이 있고 강신은 매우 슬퍼했다.
그리고 권영식 또한 강신 못지않게 극심한 상실감을 느껴야 했다.
이례적으로 해외로 직접 나가 그들을 구하려고 했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으니, 깊은 무력감이 권영식을 잠식했다.
그 이후로 강신이 쉬지 않고 여기저기 들쑤시며 돌아다니는 동안 그도 쉬지 않고 그들을 구할 수 있는 방도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후에 강신이 세그레드 조라에서 얻은 헬리오륨이라고 불리는 특수 성질을 가진 금속으로 중력침을 만들어 냈다.
중력침으로 공간을 뚫어내 갇힌 이들의 건강을 확인하고 나서야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었으니, 잠을 줄이고 계속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고 임상무가 죽었다.
그것도 그가 팬이라고 말하며 그토록 챙겼던 강신의 손에….
처음 임상무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권영식이 떠올린 단어는 ‘왜’ 였다.
‘아무리 배신했다고 해도 그렇게 죽였어야 했나?’
처음에는 임상무를 죽인 강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들은 그는 강신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극심한 무력감에 시달렸다.
‘나를 믿지 못해서 말해주지 않은 것일까?’
임상무가 혼자서 모든 것을 끌어안고 죽음을 맞이할 정도로 자신이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것에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다.
그가 죽여주길 원했다고 해도 임상무를 죽인 강신도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정보 보안 등급이 매우 높았기에 일반 연구원들에게는 퍼지지 않았지만, 상부에 앉아있는 임원들은 달랐다.
상부 회의에 출석한 권영식은 그곳에 앉아있는 이들 중 태반이 임상무를 욕했고 그 모습에 매우 실망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언제나 즐거웠던 연구가 더는 손대기 싫어질 만큼….
그래서 그는 방에 처박혀 안식년을 보내기로 했다.
권영식은 정말로 방안에서 아무것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쉬었을까, 수염이 자라고 머리가 기름에 떡이 졌지만, 그는 방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폐인처럼 살아가는 권영식을 찾아온 이가 있었다.
‘이수진 선임.’
그녀는 평소 자신을 따라다니며 연구를 도와주는 연구원이었다.
그간 아무리 그녀가 자신을 도왔다고 해도 권영식은 그녀를 만날 생각이 없었지만,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편지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임상무님이 배신하기 3일 전 저에게 맡겨둔 편지입니다.
그녀가 들고 있던 것은 임상무가 자필로 작성한 편지였다.
-복잡한 상황이 끝나면 팰로우님에게 전하라고 하시더군요.
당시에는 그 복잡한 상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임상무가 죽고 나서야 그 의미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권영식은 임상무가 자필로 적은 편지를 확인했다.
간단한 인사로 시작해 일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적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자세히 쓰여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일은 강신의 잘못이 아닌 자신의 계획으로 일어난 일이라며 강신을 두둔했다.
‘멍청한 사람 끝까지….’
살아생전에도 그렇게나 챙겼으면서도 죽어서도 한결같이 강신을 걱정하는 것이 참 임상무답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슬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저의 죽음이 두렵지 않으니까요. 다만, 팰로우님과 강책임, 그리고 울프팀 요원들과 더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조금 아쉬울 따름입니다. 여러분들과의 시간은 긴 저의 삶에 아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면 할 정도로요. 하지만 뭐든지 끝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인간의 종말을 위해 태어난 존재지만, 인간을 사랑해 그 운명을 비틀었던 볼품 없고 초라한 새를….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조금의 눈물만 흘렸던 권영식이 그날은 방에서 아이처럼 엉엉거리며 울었다.
그렇게 모두 털어내고 후련해진 권영식은 수염을 밀고 깨끗이 씻었다.
-이렇게 떠나 염치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부탁이 있습니다. 척부장과 김대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렇게 임상무의 편지 마지막에 적혀 있는 유언이자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권영식은 안식년을 핑계 삼아 자신이 생활하는 주거 시설 내부를 개인 연구실로 꾸미기 시작했다.
안식년을 철회하면 다른 회사 일을 해야 할 테니, 그런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구소장이 머무는 주거 시설이 작을 리가 없었기에 공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연구 인력과 설비들이었다.
‘내가 방에서 나가면 다른 이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라붙겠지.’
그게 임원들이든 연구원이든 상관없었다.
그저 자신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연구에 몰두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떠오른 것인 임상무의 편지를 전해준 이수진 선임이었다.
평소 자신의 연구를 도와 아는 것도 많으면 자신의 연구 스타일을 알고 있으며 입도 충분히 무거웠으니, 자신의 수족처럼 움직여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이수진은 권영식이 진행하는 연구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권영식을 돕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권영식은 외부 소식을 모두 차단하고 연구에만 몰두했다.
필요한 재료와 설비는 모두 이수진이 가지고 왔다.
그렇게 연구에 몰두한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누가 마음의 병은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임상무를 잃은 슬픔과 강신을 보기 껄끄러움이 많이 사라졌을 때, 권영식은 차단했던 연구소의 정보를 듣기 시작했다.
강신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과 자신이 만들어준 장비가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러다가는 강신까지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권영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너무 무관심했어.’
이미 자신이 만들어준 건틀릿보다 좋은 건틀릿을 만들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보호 장비는 양산품을 쓴다는 말에 바로 수리에 들어갔다.
다만, 너무나 많이 망가진 것도 있었고 차단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추가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한 권영식은 강신이 보고 있는 내부 보호 장비를 추가로 제작한 것이었다.
“보기에는 좋지 않다는 건 아네만, 성능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