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57)
* * *
쿠워어어어어!
우워어어억!
사람보다 두 배 이상 큰 판테라 무리가 괴성을 지르며 뛰쳐나가자, 앞만 보고 달려가던 말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히이이잉!
이히히힝!
“이것들이 왜 갑자기 이러…… 우와아악, 모, 몬스터다!”
“몬스터가 나타났다.”
“사람 잡아먹는 판테라가 나타났다!”
병사들의 고함과 판테라의 괴성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힌 말들은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위험에서 벗어나 멀리 도망치는 것.
맹수를 만난 초식동물의 본능이 발동한 것이었다.
두두두두두두!
“으아아악!”
“허억!”
말들의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으로 말을 타고 있던 기사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덩달아 후방에서 그들을 뒤따르던 보병들이 깔렸다. 아니면 뒤따라 전진하는 병사들에게 짓밟히거나. 병사들은 서로 밀치고 부딪치고 깔렸다.
순식간에 수백의 병사가 뒤엉킨 채 쓰러지자, 지금까지 기세등등했던 아크리스 부대원들의 사기가 뚝 떨어졌다.
“도망치자!”
그 말이 시작이었다. 병사들은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대열을 이탈했다.
도망가야 한다. 저 무시무시한 괴물로부터 멀리, 최대한 멀리 도망가자.
겁에 질린 병사들은 칼 한번, 활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쿠와아아!
뒤로 돌아 도망치던 병사들 앞에 판테라가 막아섰다.
우워어어어어!
퍽! 퍽! 퍽퍽!
“으허헉!”
“크어어…… 억!”
판테라들이 무자비하게 병사들을 공격했다. 그들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단 한 방에 병사들을 쓰러뜨렸다.
“겁먹지 마라. 저놈들은 그저 덩치 큰 바보일 뿐이다.”
기사들이 검을 들고 판테라에 맞섰다.
휘우웅!
번뜩이는 검을 휘두르며 판테라 무리에 뛰어드는 용감한 기사들 역시.
퍽!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 * *
이탈한 병사들, 이탈하려는 병사들, 부상당한 병사들로 아크리스 부대는 붕괴되었다.
이미 전력을 상실한 병사가 즐비한 상황.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아크리스 국왕이 소리 질렀다.
“저, 저것들은 뭐냐?”
“……판테라라는 몬스텁니다.”
왕의 뒤를 따르던 기사단장이 대답했다.
“누가 몰라서 물어보나? 왜 저것들이 여기에 나타났냐 이 말이다. 몬스터 웨이브 경고가 발생하기라도 했나?”
“아닙니다. 저 몬스터는 여기보다 북쪽 지역에서 서식합니다.”
“그런데 왜! 지금 이곳에 저놈들이 있는 것이냐?”
“그건 저도 잘…….”
“뭣이라? 그게 말이라고 하는 소리냐?”
고성을 내지르는 국왕에게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당연히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판테라는 여기보다 훨씬 더 추운 지방에 사는 몬스터가 맞으니까.
한두 마리면 여럿이 덤벼들어 잡을 수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한두 마리가 아닌, 수백 마리의 판테라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전투라는 것을 시작도 하기 전에 전멸할 위기.
그러나 국왕은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니 믿으면 안 되었다.
“들어라. 몬스터는 불을 무서워한다. 궁수, 불화살을 장전하라.”
“장전!”
“장전!”
궁수들은 왕의 명령에 화살에 불을 붙였다. 이번에 검은 상단으로부터 사들인 신무기. 시중에 나온 활 중에 가장 멀리 날아간다는 활!
“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궁수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당겼다.
슉슉슉슉.
불화살이 판테라 진영을 향해 날아갔다.
* * *
“이거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기겠는데?”
나는 로이칸을 타고 상황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그때.
“아니, 저놈들이!”
놈들의 진영에서 화살비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도 불화살이.
“속성변환!”
주문을 외치자.
후두두둑.
날아가던 화살들이 순식간에 궤적을 달리해 땅으로 떨어졌다.
파바바박박!
불화살들이 땅에 꽂혔다.
처음에는 불꽃이 꺼지는가 싶더니, 이어지는 화살로 불꽃이 더해져 화르르 일었다.
판테라와 아크리스 진영 사이에 불꽃경계가 생긴 셈.
순식간에 전장은 불바다로 변했다.
눈앞에서 불길이 솟아오르자, 판테라들이 당황했다. 자신들의 앞길을 막은 불꽃에 화를 내는 판테라. 겁에 질린 판테라.
쿠워어어어어!
크아아아악!
판테라들의 괴성이 전장을 울렸다.
몬스터들이 불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아크리스 입장에서는 기회일 수도 있는 상황이 전개됐다.
이를 알아차렸는지, 아크리스 진영에서 계속해서 불화살을 쏴 올렸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팅거!”
나는 다시 한번 속성변화를 외쳤다. 팅거까지 힘을 합세했다.
[속성변화!]끊임없이 날아오는 불화살은 끝이 구부러져서 바닥에 꽂혔고, 치솟는 불길은 물줄기로 변했다.
팅거와 나의 합작품.
치이이익!
불타오르던 땅바닥이 소화되자, 전세는 순식간에 판테라 쪽으로 넘어갔다.
쿵쿵쿵쿵!
지면을 울리면서 아크리스 진영으로 쳐들어간 판테라들이 눈에 보이는 것은 무조건 집어 던졌다.
우워어어어어!
기세등등해진 판테라들은 더욱더 아크리스 부대를 조여 갔다.
때맞춰 하늘 저편에 까맣게 날아오는 것들이 있었다. 바로 이글나이트!
게다가 파리에토 공국 쪽에서도 군사들이 밀어닥쳤다. 제국군들이 도착한 것이었다.
두두두두두두!
기마대가 일사불란하게 달려오고 있었고, 그 뒤를 수많은 보병이 받쳤다.
“후후후, 드디어 쇼 타임이 왔군!”
이제는 놈들의 숨통을 끊을 시간이다.
손끝으로 마나를 끌어 올린 나는 팔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펑!
불을 뿜었다.
그 순간.
슈우웅 슝슝슝슝.
하늘에서 비처럼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내 신호에 맞춰 이글나이트가 집중공격을 한 것.
파바박박. 파박박박.
나는 팅거와 벨라에게 외쳤다.
-팅거! 벨라! 판테라들을 보호해!
[이호호! 얍.] [알았어.]판타라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을 구부리며 날아다니는 팅거는 신이 난 모습.
벨라는 보호막을 치며 팅거가 미처 속성변화를 시전하지 못한 화살을 튕겨 냈다.
마력의 끝판왕들이었다.
거기에 하나 더. 나는 샤렌이 만들어 준 마법 폭탄을 투하했다.
[어! 저기 이탈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동체 시력이 뛰어난 벨라가 한 곳을 가리켰다. 제국군을 막으면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모습.
보아하니 도망가는 모습이다. 보나 마나 윗대가리가 도망치는 거겠지.
-로이칸! 하강!
[간다!]로이칸은 순식간에 땅으로 활강했다.
척!
도망가는 놈들 앞에 로이칸이 착륙했다.
“으허헉! 그리핀이다!”
“공격! 쏴. 활을 쏘란 말이다.”
“검사, 검사 뭣들 하느냐?”
로이칸이 소리도 없이 나타나자 다들 까무러치게 놀랐다. 저런 놈들이 한 왕국의 대표 기사들이라니.
겁에 질린 말들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도망쳤다.
말들에게 소리쳤다.
-들어라! 너희들 등에 올라타고 있는 녀석들을 떨어뜨리고 도망가라! 그러면 그리핀은 너희들을 공격하지 않을 거다!
히이이잉.
말들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요동치며 등에 올라탄 기사들을 떨어뜨린 채 도망갔다.
다다다다다다.
“이놈의 말들이 왜…… 으아악!”
후두둑, 말 위에 탄 기사들이 떨어져 나갔다. 난 로이칸에서 뛰어내려 그대로 내달렸다.
나는 단 한 명. 아크리스 국왕만 쫓았다.
아크리스 국왕? 만난 적 없다. 그러나 팅거와 벨라가 그를 알고 있다.
[저놈이다!]두다다다!
그대로 아크리스 국왕의 뒤통수를 갈겼다. 최대한 힘을 빼고 죽지 않을 정도의 힘으로.
퍽!
“억!”
국왕이 단말마 비명을 지르고 쪽 뻗었다.
“저, 전하가 잡히셨다. 전하를 구하라!”
“이야압!”
뒤늦게 알아차린 적군이 화살을 쏘고 단검을 날렸지만.
탁, 탁, 탁.
죄다 손으로 잡아 낸 후, 기절한 국왕을 들쳐업고 유유히 로이칸 등에 올라탔다.
이착륙을 좋아하는 팅거가 로이칸 머리 위로 내려앉더니, 소리쳤다.
고오!
로이칸이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 * *
“우리 원로원은 크리턴슨 백작을 34대 국왕으로 추대합니다.”
탕탕탕!
아크리스 국왕이 폐위되고 그 자리를 크리턴슨 백작이 차지했다.
물론 여기에는 크고 작은 잡음이 세어 나왔지만, 대세를 거를 수는 없었다.
거기에 제국의 힘도 작용했다.
이왕이면 엘라로투스 제국과 파리에토 공국에 호의적인 인물을 왕으로 추대하자.
거기에 부합하는 인물이 바로 크리턴슨 백작. 이제는 크리턴슨 왕이다.
원로원의 결정이 나자, 크리턴슨 왕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율리시즈 삼공자 덕분입니다. 이 사람은 나의 은인입니다.”
나는 일국의 왕의 은인이 되었다. 게다가.
“축산국을 부탁드립니다.”
아크리스 왕국의 축산국 고문 자리를 차지했다.
고문은 왕국의 실세인 축산국 국장의 세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로, 원래대로라면 크리턴슨 왕이 그 자리에 앉아야 했다.
그러나 크리턴슨 왕은 왕의 권한으로 그 자리를 내게 넘겨주면서 이렇게 선포했다.
“우리 아크리스 왕국은 앞으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압도적으로 1등 낙농 국가로 거듭날 것이다. 이에 축산국은 전문경영체제를 도입할 것이다. 우리 왕국에 도움이 될 인재라면, 누구든 찾아가서 도움을 청할 것이다.”
크리턴슨 왕의 선포로 누구도 나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나를 인정한 건 아니다.
“허허, 큰일이군. 앞으로 우리 왕국이 어떻게 될 건지.”
“누가 아니랍니까? 아무리 제국에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저렇게 어린 공자 말을 들어야 한다니. 이참에 때려치우고 영지로 내려가 농사를 지어야 하나 싶습니다.”
“굴러온 돌 하나 때문에 박힌 돌이 뽑힐 수야 없죠. 한번 두고 봅시다. 제 발로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나갈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농가 상황이 누가 나선다고 나아지겠습니까? 나빠지면 나빠졌지.”
“그 말이 맞습니다. 조금만 버팁시다.”
꼰대들. 다 들리거든?
축산국 관료들이 모여서 일은 하지 않고 내 흉만 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농가가 회복하면 다들 자기 덕분이라 자화자찬할 인간들이다. 일단 목소리를 기억해 놓고.
나는 준비된 자료를 들고 크리턴슨 왕의 집무실로 갔다.
왕의 즉위는 크나큰 행사다. 일주일을 넘게 축제를 펼쳐 백성들이 배불리 먹게 하며, 모범 무기수들을 석방하고…… 그러나 작금의 아크리스 왕국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크리턴슨 왕은 즉위하자마자 집무실에서 서류에 파묻혀 있었다.
지금은 나와 함께 축산국 자료를 훑어보는 중이고.
“하아, 율리시즈 공자, 이를 어떻게 하면 좋단 말입니까?”
크리턴슨 왕이 보고서를 읽다 말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 또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크리스 왕국 전 지역의 소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그나마 방어하고 있던 안전지대까지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었고.
“이러다 왕국민들이 들고 일어날까 걱정입니다.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제가 전권을 행사해도 되겠습니까?”
“전권이라니?”
“방역은 물론이고 치료까지 말입니다.”
“지금 이 사태를 잡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허락합니다.”
나는 조금 전 꼰대들을 떠올리며 왕에게 말했다.
“처음 보는 치료법이라 반발이 심할 겁니다.”
“우리 왕국의 근간이 되는 축산업이 무너지는 것을 이대로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반발하는 자는 잡아들일 겁니다.”
크리턴슨 왕이 의지를 보였다. 그렇다면.
곧장 콘스턴 왕국의 마밸리로 연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