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88)
협상장은 빠르게 마련되었다.
일본제국의 메이지정부는 은행폐쇄령이 끝나기 전에 이 일을 마무리 짓고 누구의 손이라도 좋으니 구제금융을 받고 싶어했고, 대장성으로 그 자리를 정했다.
일본결제은행 측은 메이지정부의 협상요청에 응답했으며, 그에 걸맞는 이사진들을 꾸렸다.
“도련님, 그런데 일본제국은 왜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숙이고 들어오는 겁니까?”
도쿄 대장성.
나는 협상단에 섞여 대장성의 협상장에 들어왔다.
대장성으로 향하는 길.
제임스는 내게 궁금한 점을 물어왔다.
그들이 고분고분한 이유?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골드만삭스의 사무엘 삭스가 끼어들었다.
“뭐, 가장 간단한 이유로는 미해군의 함포외교가 강력한 억제력으로 작용했을 거네.”
“함포외교가 경제공황보다 강력합니까?”
“전쟁을 불사할수도 있다는 위기감 조성. 더 나아가서 태평양 패권이 미국에게 넘어갔다는걸 보여줬거든.”
삭스의 말이 맞다.
대영제국 왕립해군의 태평양함대가 철수하고 그 자리에 미합중국의 태평양함대가 새로 자리했다.
그런데 미합중국 이 미친놈들이 75억 달러나 되는 예산을 쏟아부어 태평양을 해군기지로 싹 다 도배해놓고 말그대로 공장에서 군함을 찍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입장에선 재앙이지.
“일본은 기본적으로 섬이네. 해상이 봉쇄되면 저들도 답이 없거든. 그런데 미해군이 3개 함대를 파견해버리니 ‘아, 이건 미합중국의 경고구나’ 지레 겁먹은 거지.”
“….!!!”
“재벌은 은행과 산업이 묶여있어. 해상무역이 중지되는 순간 어느쪽이든 파탄나는건 똑같네.”
지금 시국은 제국주의와 전시태세에 눈돌아간 미국이다.
애석하게도 미국에게 일본제국은 아직 그리 중요한 교역국가는 아니었고, 태평양은 이제 막 개척되기 시작했다. 미합중국 연방정부는 가상적국인 일본을 해상봉쇄해서 얻을 이득이 더 많다고 판단되는 순간 바로 옭아메겠지.
당장 식량도 부족한데 쌀수입부터 막히게 될 걸?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지.
이번엔 내가 대답했다.
“사실 일본결제은행의 영향이 가장 클 거다.”
“하하, 디트로이트 이사의 말이 맞네. 이게 또 골때린단 말이지.”
내 말에 사무엘 삭스가 이마를 탁 치며 웃음을 흘렸다. 제임스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물었다.
“예? 일본결제은행이 왜…..”
“제임스 잊어버렸나? HSBC은행은 주미영국대사를 통해 우리진영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본제국은 기본적으로 요코하마 종금은행을 통해 외환거래를 하네. 그런데 그 요코하마 종금은행은 외환수급을 HSBC를 통해 받는단 말이지.”
그들의 취약점.
일본금융이 본격적으로 외환거래에 착수하는건 1913년 언저리. 그전까지 일본금융은 외환거래에 대해 전적으로 HSBC에 의존하고 있었다.
나는 이걸 찌른 것이다.
“일본결제은행은 올해 초, HSBC은행으로부터 요코하마 종금은행과의 외환수급업무를 이관받았네. 당연한 결과였지. 통화스와프를 통해 일본제국의 환거래를 일본결제은행이 잠식하고 있었으니까. 일본의 외환보유고는 우리의 손아귀로 들어왔네.”
“…..그리고 HSBC에겐 청나라와 러시아라는 더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던져줬군요.”
“그렇지.”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일본의 경제는 아직 공업보단 해운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공업도 아직 경공업 위주로 육성중이었고, 우리가 아는 그 일본의 본격적인 산업화는 러일전쟁에서 이기고 재벌들이 득세하기 시작할무렵이니 아직 오지도 않았다.
“즉, 일본의 외환보유고를 우리 일본결제은행이 장악했다고. 그런데 통화스와프를 중지해서 일본결제은행과 대립각을 세운다? 우리가 외환수급을 막아버리면, 외환이 잔뜩 필요한 해상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섬나라 일본경제가 어떻게 되겠나?”
“…!!!”
“작살난다고 아주.”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미국에게 이런식으로 경제재제를 먹고 나라경제가 아작났다. 외환보유고라고 자국내에 있다고 착각하기 마련인데 전혀 아니었다.
해외의 중앙은행에 보관하고 있던 달러. 국제결제은행(BIS)에 있던 달러. 국부펀드를 통해 해외에 투자해놨던 달러.
미국이 묶어버리니 순식간에 다 ‘없는 돈’이 되어버렸다.
루블화는 펑.
러시아 경제도 펑.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그래도 금본위제인데요?”
“상관없지. 국제무역에 쓰이는 외환이 없는데 자국화폐를 보증해주는 금본위제가 무슨 소용이 있나. 자국 무역회사가 외환을 지불하지 못하는 순간 디폴트(채무불이행) 파산이다.”
“……”
경제적으로 일본결제은행에게.
군사적으로 미국해군에게.
일본제국은 절대적으로 속박되어 있는 상태였으니, 통화스와프에 어깃장을 놓는 순간 국가경제 파탄은 더 최악으로 치닫는다.
차라리 일단 쳐맞고 이렇게 협상장을 마련하는게 더 낫다는 의미다.
아직 파산한 은행도 몇 없었으니.
“알겠나? 저들은 우리에게 절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네. 아직 우린 재제조치 카드를 단 한장도 뽑아들지 않았으니까.”
“……처음부터 이기고 시작하는 게임.”
제임스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는 피식 웃고는 그의 등을 툭 쳤다.
“도착했군. 들어가지.”
끼이익-
우리는 협상단에 섞여 대장성의 협상장으로 도착했다. 대장성의 관료들이 문을 열어주자, 내부엔 미리 도착한 내각의 대신들이 우리를 굳은 얼굴로 맞이해주었다.
“……”
그리고.
이례적으로.
메이지 천황이 상석에 굳은 얼굴로 앉아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
일본결제은행.
일본제국의 대외무역에 있어 환거래 중개를 독점하고 있는 환거래은행이자 통화스와프를 전담하고 있는 이번 협상의 최중요 금융기관.
협상단의 구성은 간단했다.
일본결제은행의 이사들.
골드만삭스의 이사들.
미해군측의 듀이제독과 장교들.
이 속에 미합중국의 재무부와 국무부의 직원들이 섞여있는건 모두가 알고 있는 비밀이었고.
협상을 이끌어갈 대표는 골드만삭스의 사무엘 삭스였다.
그가 내 얼굴마담을 자처했다.
탁-
나는 일부러 눈에 띄지 않는 중간 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무엘 삭스가 내 쪽을 바라보았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입을 열었다.
“그럼 현 일본제국의 금융개혁을 위해 저희 일본결제은행측이 요구할 조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침묵.
일본제국측의 인사들은 쥐죽은 듯 조용히 이자리에 앉아있었다.
모든것을 받아들이겠다고는 했지만, 무슨 조건이 튀어나올지 그 누구도 몰랐으니 긴장했다.
“우선 자본시장의 개방입니다.”
“자본시장의…..개방입니까.”
일본측 협상단의 대표.
대장성의 마쓰가타 대신이 되물었다. 사무엘 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폐쇄적’이고 ‘불안정’한 일본금융의 자본시장을 개방해 외국인투자한도를 최소 50%로 시작해 올해 안에 100%까지 늘리는 것이 조건입니다.”
“…..”
우선.
메이지정부가 철옹성처럼 쌓아둔 제한의 벽부터 철거한다.
외국투자자본인 우리가 일본의 휘청이는 우량기업들을 싹쓸이해 주워갈 수 있도록 제한을 풀어버린다. 우량자산도 마찬가지.
“자세하게는 외국금융기관이 진입할 수 있도록 법인설립제한 해제, 내국인들과 같은 조건으로 주식취득한도를 늘리는 것. 외국자본이 일본내 부동산 등 국내자산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 등을 포함합니다. 은행들 망해가고 있는데 살려야지요?”
“…!!!!”
“당연히 자이바츠의 주식취득한도 제한조치와 출자제한조치도 해제합니다.”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눈을 부릅떴다.
시작부터 이권침탈.
심지어 자이바츠까지 집어삼키려는 의도를 엿보이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입꼬리를 스윽 말아올렸다.
‘이걸로 우리가 일본 국내의 자산들을 인수할 수 있게 된다.’
대장대신은 으드득 입술을 물어뜯어 피가 흘렀지만, 사무엘 삭스는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그리고 재정의 긴축입니다. 뭐, 얘기는 거창하지만 별것 없습니다. 일본재정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기준금리를 최대 15%까지 끌어올릴 것을 조건으로 걸겠습니다. 이를 통해 시중에 과도하게 풀린 엔화를 시중은행이 흡수해 과잉통화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잠시만!!! 기준금리 15%라니!!! 그럼 우리 일본의 기업들, 은행들 다 죽으란 소리 아닌가!!!”
쾅!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기준금리 15%.
한마디로 대출이자를 최소 15%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
아무리 일본의 통화안정과 재정을 위해서라고 혀에 기름칠을 해도 자신은 속지 않는다.
하지만 사무엘삭스는 또 가뿐히 무시했다.
“다음 조건입니다. 일단 다 듣고 얘기하시죠.”
“….!!!”
“구제금융위원회라는 기구를 출범시켰으면 합니다. 이 기관은 앞으로 모든 구제금융 업무를 총괄할 기관이며, 구제금융이 필요한 법인들에 자금을 수혈하고 해당 법인들의 자산매각과 경매를 독점해 전담하는 기관입니다. 물론 일본결제은행이 관리감독합니다.”
“….구제금융.”
그래.
구제금융이 아예 없는건 아니구나.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주먹이 하얘지도록 꽉 쥐며 일단 꾸역꾸역 들었다. 외부에서의 구제금융이 있으면 일단 기업과 은행들은 살아난다.
이자율은 15%이상의 살인적인 금리가 되겠지만 말이다.
나는 한 풀 수그러드는 마쓰가타 대장대신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니까.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데. 앞으로 일본법인들은 반드시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신용평가를 의무적으로 받아 신용등급을 공시할 것. 이건 최우선 사항으로 올리겠습니다.”
“…..?”
갑자기 등장한 신용등급.
이건 마쓰가타 대장대신 역시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런데 이 신용등급을 최우선 사항으로 올린다는 게 어떤 이득이 있기에 그런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안쓰러울 지경이군.’
나는 사무엘 삭스의 말에 시시각각 얼굴색을 바꾸는 관료들을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곧 신용등급의 뾰족한 첨단은 순식간에 그들의 숨통을 끊기 위해 찔러들 것이었다.
다음 조항.
사무엘 삭스는 냉기가 풀풀 풍기는 얼굴로 조항을 읊었다.
“이어지는 조건은 종합금융회사의 설립입니다.”
“……종합금융회사?”
“예, 종합금융회사는 이하 종금사로 통칭하겠습니다. 종금사는 직접적인 일본은행의 자금수혈이 불가능한 제2금융권의 금융기관이며, ‘신용등급이 낮은’ 법인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예금을 할 수 있는 기관입니다.”
낮은 신용등급.
슬슬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는지,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상체를 점점 앞으로 숙였다.
사무엘 삭스는 말에 힘을 주었다.
“현 시중은행들은 제1금융권으로 분류. 일정 신용등급 이하의 법인들은 제1금융권으로부터의 대출을 금지합니다.”
“…..뭐?”
마쓰가타의 동공이 흔들렸다.
참석한 대표단이 포함된 행장들도 눈을 부릅떴다. 자이바츠에 소속된 자신들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못받는다고?
보나마나 흔들리는 기업이나 은행들은 부실기업으로 분류될게 뻔한데?
“그럼 대출은 어떻게……”
“부실한 법인들은 새롭게 설립될 종금사를 위시한 제2금융권을 통해 대출대금을 수혈받을 것이며 이자율은 신용등급의 리스크에 맞춰 ‘재측정’될 것입니다.”
“자, 잠깐……”
“구제금융위원회는 해당 종금사를 통해 달러를 대출해줄 것이고, 종금사는 다시 일본법인들에게 자금을 수혈해 줄 것입니다. 해당 종금사들은 국제신용평가기관의 관리감독하에 이자율을 재측정할 것입니다. 당연히 법정최고금리도 당분간 폐지합니다.”
“….이 빌어먹을 개자식들이 지금 뭐 하자는 건가!!!”
쾅-!
마쓰가타 대장대신의 눈이 뒤집혔다.
종합금융회사? 말은 번지르르하지 일본은행의 직접적인 자금수혈이 불가능하다면 대부업자들과 다를게 없지 않나.
제2금융권이라 포장했지만 이자율을 신용등급에 맞춰 재측정하겠단 소리는 이자율을 어마무시하게 때려버리겠다는 의미.
국제신용평가기관이 부실기업이라는 딱지를 이마에 붙이는 순간 이자율은 25%, 50%, 100%로 얼마든지 뻥튀기 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최소금리가 15%니까 말이다!!!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삭스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멱살을 틀어쥐었다.
“이 개자식들아!!! 니들이 사람이냐!!! 니들이 사람이냐고!!! 어찌 감히 우리가 쌓아놓은 이 대일본제국을 이리 처참하게 뭉갤 수가 있나!!! 어?!!!”
“….이거 놓으시죠.”
“마쓰가타 대장대신!!! 제발 참게!!! 지금은 참아야하네!!!”
“이거놔!!! 놓으라고!!!! 으아악!!!”
다른 내각대신들이 화들짝 놀라 잡아먹을 듯이 달려드는 마쓰가타 대장대신을 뜯어말렸다.
콱-
멱살이 잡힌 사무엘 삭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잡힌 멱살을 풀었다. 그는 무덤덤하게 검은 정장의 옷매무새를 탁탁 털었다.
“뭐, 안심하십시요. 국제신용평가기관의 공정성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 국가들이 공인한 사실이며, 이자율도 비정상적으로 책정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상식’적인 신용등급에 ‘상식’적인 이자율을 부과할 뿐이니까요.”
“…..!!!”
일본측 협상단 사이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나왔다.
나는 이쯤에서 쉴 타이밍이라 생각해 삭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너무 조여도 역효과가 난다. 삭스도 공기를 읽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쉬었다가시죠. 차분히 흥분을 가라앉히시면 다른 조항들을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일단 휴게했다.
***
“긴축을 명분으로 살인적인 금리인상, 외국자본의 침투, 신용등급을 이용한 대출제한, 그리고 이자펌핑까지. 어떻게 이렇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짜낼 수 있는지 참…..”
휴게시간.
사무엘 삭스는 내 옆으로 와 털썩 앉았다. 그는 아무리 유대계라도 이렇게까지 쥐어짜본 적은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도 하나하나 배워가는게 그 나물에 그 밥풀이지만.
‘나도 배운거라고. 이거.’
“일본경제를 이렇게 옭아메면 미국의 경상수지의 흑자(국가수입)폭이 엄청나게 오를 겁니다. 월스트리트로 자본들이 쏟아져들어오겠죠. 미국의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하겠죠.”
“그래서 국무부와 재무부 놈들이 저리 좋아하는거겠지.”
삭스는 피식 웃으며 협상단에 앉아있는 이사들을 검지로 가리켰다.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펜을 놀리는 손놀림은 가벼웠으며 누구는 허벅지를 손으로 꼬집기까지 하고 있었다.
“국세청도 노나겠고.”
“일본의 부를 쫙쫙 흡수하면 미국의 부가 늘어나겠죠. 경제 식민지랄까요.”
“어허 식민지라니. 우리는 구제금융을 하러 왔을 뿐이네. 단어를 조심하게.”
“하하. 뭐, 그런 셈 치지요.”
어찌되었든.
이걸로 월스트리트는 진공청소기로 돈을 빨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게 대출해준 이자만으로도 한해 매출을 뽑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웃는 동안.
일본측은 초상을 치르고 있었다.
“이 무슨 수난이란 말인가…..”
털썩.
마쓰가타 대장대신은 혼이 탈출한 얼굴로 털썩 주저앉았다. 방법이 없었다.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면 당장 은행들이 죽어나갈 판이었으니.
하지만 덴노(천황)께서 몸소 행차하셨다.
일본 측 대신들은 한숨조차 못쉬고 안색이 시커멓게 죽어가기만 할 뿐이었다.
“재개하겠습니다.”
협상장의 휴게시간이 끝나자, 사무엘 삭스는 조약서 초안을 집어들었다.
“……가장 중요한 2개 조항을 말씀드리고 나머지는 조약서에 명시되어 있으니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드르륵-
사무엘 삭스는 의자를 뒤로 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 저벅.
“미합중국 해군의 주둔에 관한 조항입니다. 일본결제은행을 위시한 미국의 은행들은 일본제국해군의 연합함대에 의해 불합리하게 억류당했고, 이에 저희 일본결제은행측은 일본제국의 치안을 불신하는 바이며 자국의 법인을 보호하기 위해 미합중국 해군의 태평양함대를 도쿄만의 요코하마항에 주둔. 이외에도 오사카항, 나가사키항을 포함한 개항장의 자유로운 출입을 요구합니다.”
“……”
대장대신에 이어 외무대신은 할말을 잃은 듯 멍하니 협상장을 걷기 시작한 삭스를 바라보았다. 듀이 제독은 당연히 그래야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들부들.
“도고. 이거 놓게.”
“참아야합니다. 야마모토 해군대신. 잘못하면 군축당합니다. 군축당하면 일본해군도 연합함대도 없습니다.”
“……젠장.”
꾸우욱.
해군대신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토하려 했지만 동석한 도고 제독이 필사적으로 그를 억눌렀다.
연함함대가 해체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이성의 끈을 겨우 붙잡게 했다.
사무엘 삭스는 헛기침했다.
“마지막으로, 배상금에 관련된 안건입니다. 페소화를 실은 미합중국 국적의 선박을 억류해 미국 국익에 손해를 끼친만큼 그리고 태평양함대를 파견하고 주둔시킨 비용의 일체, 배상금으로 책정해 파운드 스털링 ‘금화’로 지불할 것을 요구합니다.”
“….!!!!”
마지막으로 막대한 금의 유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일본의 껍질을 벗겨먹는 조치들이었다.
“이상이 저희 일본결제은행 측에서 통화스와프 계약을 파기하고 구제금융을 실시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더 이상의 협상은 없으며, 이 조건에 불응할 시 구제금융 철회는 물론이고 통화스와프를 강행합니다.”
쾅-!
사무엘 삭스는 조약서를 책상위에 박았다. 그 빳빳한 종이위엔 일본경제의 모가지를 틀어쥘 혹독한 조항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일본제국 측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공포할 뿐이었다.
나는 협상단에 섞여 다리를 꼬고 앉았다.
“….흠.”
이래서 통화스와프를 이쯤에서 멈춘 것이다. 국립은행들은 소수를 제외하곤 파산하기 직전의 벼랑끝에 몰려있었다.
이게 구제금융으로 대출해주기는 최상의 조건이거든.
15%이상의 이자율로 막대한 달러 빚을 지게 되면, 일본경제는 미국에 속박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항을 좀 뒤틀어서 종금사라는 지금 이 시대엔 그 누구도 모르는 폭탄을 강제로 이식했다.
그리고 그 스위치는 구제금융위원회가 쥐고 있었다.
국무부와 재무부 직원들이 손잡고 탭댄스를 출 환상의 조건.
‘그러니 망하게 두는 것보단 마른수건이라도 있는대로 쥐어짜는게 훨씬 이득이지.’
위 7가지 핵심조항은.
내가 1997년 대한민국의 외환위기 및 IMF구제금융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으며, 제국주의 시대 일제가 조선에게 내밀은 불평등조약을 참고했다. 정확히 같은건 아니다. 반대로 뒤집은 조항도 있고, 입맛대로 뜯어고쳤으니까.
악랄해서 참고하기 딱 좋았다.
‘뭐, 일본제국 입장에서는 3일 타임어택이니, 협상할 여지도 없이 통과되겠고.’
메이지천황이 앉은 상석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은 짓이겨져 피가 세어나오고 있었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을 꽉 감은 채, 하지만 반발은 하지 못하고 그저 화를 삭히고 있었다.
좋은 흐름이다.
나는 경직된 회담장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슥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끝이군.”
그 이후, 3일도 되기 전.
메이지정부는 무력하게 무너졌고, 굴욕적인 제1차 도쿄조약이 체결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