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0
10화
왜? 어째서?
“등이랬지!”
“죄송합니다. 사숙.”
“등을 잡을 때까지 미친 듯이 구르랬잖아!”
“……네.”
“아오, 이 자식이 다 잡은 기회를……. 더럽게 굼떠 가지고는.”
“죄송해요.”
누가 봐도 청상이 졌다.
그런데 진무는 오히려 청우를 잡고 있었다.
어째서?
“마지막에 너무 조급하게 공격하는 바람에 맞았잖아. 진검이었으면 넌 죽었어.”
아!
청상은 그제야 진무가 청우를 나무라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의 손에 들린 게 진검이었다면? 그의 말대로 청우는 죽었을 것이다. 목덜미에 검이 꽂혀서.
“넌, 이틀 동안 고기 구경도 못 할 줄 알아!”
“예? 아무리 그래도 청상 사형을 상대로 선전을…….”
청우가 울상을 지었다.
“닥쳐! 너 때문에 다 잡은 고기를 놓쳤잖아!”
응? 다 잡은 고기?
무슨 말인지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청상은 놀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청우에게 졌다.
그간의 자존심이 모조리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이, 너.”
“예?”
갑작스러운 부름에 청상이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사과하지. 청우가 졌다. 이길 줄 알았는데…….”
이겼으면 분명 한 놈 더 꾀어서 타락시킬 수 있었는데.
“아니, 그건 제가…….”
어느새 말투마저 공손해지고 있었지만, 진무는 더 듣지도 않고 청우의 귀를 잡아당긴 채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뒈진다고.”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사수욱…….”
청상은 우두커니 서서 숲속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기인이다. 자신보다 어린 사숙은…….
* * *
거 참 이상하다.
왜 오지?
진무는 해검지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꿍! 쾅! 콩!
말뚝을 박아 넣는 소리.
해검지 보수를 시작한 지 보름째.
처음에만 해도 다시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청상이 바로 다음 날 청우와 함께 내려왔다.
흠, 분명 녀석이 이겼기에 얻을 것이 없을 텐데.
그리고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 날. 청상은 계속해서 찾아왔다.
뭘까?
더구나…….
“사숙, 마목 열 개 다 박았습니다.”
공손해지기까지.
이런 새끼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근래에 무당의 음식이 상한 건 아닐까? 아무래도 뭘 잘못 처먹고…….
가까이 다가와서 은밀하게 속삭이기도 한다.
“고기를 준비할까요?”
“…….”
“들어 보니 꿩고기가 그리 맛나답니다.”
징그럽게 눈까지 찡긋거리고…… 뭐, 좋은 현상이기는 한데.
진무가 뚱한 표정으로 청상을 쳐다보았다. 이런 자발적인 변화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타락하는 것은 좋은데 기쁘질 않다.
“그, 그래…….”
“알겠습니다. 사숙. 금방 잡아 오겠습니다.”
청상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사제들을 향해 다가갔다.
“청우야.”
“예. 사형.”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더니 요 며칠 새 꽤 친해진 모습이다.
“사숙께서 번거롭지 않으시도록 불을 피워 두거라. 내 서둘러 꿩을 잡아 오마.”
“예. 다녀오십시오. 사형.”
다시 한번 진무를 향해 고개를 숙인 청상이 재빨리 숲으로 뛰어들었다.
“젠장, 이거 뭐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흠…… 음…… 하아…….”
진무가 턱을 괴고 미간을 찌푸리자 불을 피우던 청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사숙,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별건 아니고……. 흠…….”
진무가 청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요?”
“아니 그게…… 흠…….”
아무리 봐도 멍청하다.
무공을 익히는 속도도 늦고, 눈치도 없고.
이 녀석 때문에 청상이 오는 건 절대로 아닌 것 같은데.
“사숙. 고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해 주세요.”
청우가 해맑게 미소를 지으며 살집 속으로 눈을 감추었다.
그래, 역시 그럴 리가 없지.
잠시 뒤, 청상이 양손 가득 꿩을 잡아 왔다.
한 손에 두 마리씩.
도합 네 마리나 되었다.
“사냥술이 모자라 이것밖에 잡지 못했습니다, 사숙. 이놈들이 어찌나 날렵한지.”
손에 든 꿩을 내밀며 히죽히죽 웃는 청상의 손과 얼굴에는 영광스러운(?) 상처가 가득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지 모른다고 했던가. 고기 맛을 몇 번 보더니 아예 꿩 씨를 말릴 셈인가 보다.
진무가 되레 당황해 입을 떡하니 벌리는데 청우가 신이 난 듯이 꿩을 나뭇가지에 꿰어 불 위에 올렸다.
“아, 아니 털은 좀 뽑고…….”
이 무식한 놈아!
말릴 새도 없이 꿩이 활활 타오르는 불 속으로 사라졌다.
고기 맛을 보면 뭘 하나. 처먹을 줄을 모르는데.
노릇하게 구워져야 할 꿩이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
아까운 꿩고기 맛을 다 버려 놓았다. 자고로 고기는 바싹 익은 껍데기가 제맛인데.
그래도 뭐가 그리 좋은지 죄 타 버린 꿩을 한 마리씩 들고 청우와 청상이 진무를 쳐다보았다.
먼저 먹으라는 말이다.
굽는 법은 몰라도 예의는 바르다.
‘하아…….’
진무가 한숨을 내쉬며 그나마 타지 않은 속살을 발라 먼저 한입 베어 물자,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아귀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니들 굶었냐?
“마, 맛있다!”
그거 탄 거야.
“이런 맛이라니!”
탄 거라니까?
그을음으로 떡칠이 된 얼굴을 해서 서로를 마주 보며 웃는 청상과 청우.
고기를 먹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먹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사숙 덕분에 이런 맛을 다 보고, 정말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고기를 먹고부터는 힘이 더 나는 것 같습니다. 수련할 때도 전보다 덜 지치는 것 같고요.”
뭐지? 이런 아부성 발언?
물론 금방 배가 꺼지는 채식 위주의 식단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며칠 고기 먹었다고 갑자기 그리 변할 리는 없었다. 필시 심리적인 효과가 분명하다.
“청우의 체력이 좋아진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저걸 들다니.”
청상의 말에 청우가 우쭐거리며 어깨를 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는 한숨만 나왔다. 씨발, 이놈의 꿩고기 진짜 더럽게 맛없네.
얼굴과 손이 시커메지고 기름기에 입술이 번들거리는 두 놈의 모습에 식욕까지 감퇴하는 느낌이었다.
“저, 사숙.”
맛없는 꿩고기를 맛있게 먹고 흔적까지 알아서 싹 치워 버린 뒤 청상이 은근한 어조로 불렀다.
“뭐?”
“저, 지난번에 그 유운검의 단점 말입니다.”
“…….”
“그게 생각보다 고치기가 쉽지 않던데…….”
이거였군.
이 새끼가 꿋꿋이 오는 이유가.
어쩐지 계속 아부를 해 대더라니.
진무는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하긴 멍청하고 해맑기만 한 청우가 새끼는 쳤으되 키울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절대로 보상이 과해서는 안 된다.
하나씩, 하나씩 배가 고플 때 허기를 면할 정도로만 던져 줘야 하는 것이다.
“아, 고기를 많이 먹었나? 입이 텁텁한 게 물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사숙, 물 떠 올까요?”
멍청한 청우가 또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끼어든다 싶을 때, 이미 청상은 저만치 달리고 있었다.
부하 이 호는 다행히 눈치는 좀 있는 편이었다.
* * *
“뭣이? 또? 계율을 어겼다고!”
명공의 고함에 정동궁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예. 제가 지켜본 결과, 해검지 마목을 보수하기는커녕 아주 대놓고 고기 잔치를 열고 있습니다.”
진혜의 말에 명공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육식을 하고 있더냐?”
“예, 사부님.”
이미 한시적으로 해지된 금기였다.
명공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건 말건 진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명진 사숙을 생각하는 마음에 장로님들께서 인정을 베푸신 것을 압니다. 하지만 감사하기는커녕 다시 잘못을 범하고 있으니 반드시 일벌백계하여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무, 물론 그렇긴 한데.”
장문인이 원한 것은 무당의 변화였다.
이미 장로 회의를 통해 십계 중 나머지 부분도 수정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무당의 변화를 위해 조금씩 나아가려 하는 것이다.
진혜의 마음이야 알지만, 한시적으로 해지된 금기를 어겼다는 것으로 책임을 물을 순 없었다.
물론 이미 발표를 했음에도 나머지 제자들은 여전히 금기를 지키고 있었다.
“근래에는 청상까지 그놈에게 휩쓸려 개인 수련 시간만 되면 해검지로 가고 있습니다.”
“청상까지?”
“예. 청우에게 진 뒤로는…….”
“응? 누가 누구한테 져?”
명공이 눈을 크게 떴다.
“청상이 청우에게요.”
“…….”
과거라면 몰라도 이대제자가 몇 되지도 않는다.
더욱이 무당의 계율을 담당하는 영은궁의 궁주였다. 지금의 무당 제자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청상이라면 이대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아이가 아니냐?”
“예. 그러니 큰일이지요. 전도유망한 녀석이 진무 녀석의 꼬임에 넘어갔습니다. 제자는 혹여 이러한 분위기가 다른 제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칠까 두렵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처벌을…….”
진혜가 진무의 잘못을 재차 거론했지만, 명공의 귀에는 한 가지밖에 들리지 않았다.
“허, 도명을 받은 청자 배 중에 가장 모자라는 녀석이 청상을 이겼다고?”
“예!”
“어, 어찌 이겼더냐?”
명공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묻자 진혜가 물 만난 고기처럼 고해 바쳤다.
“그도 문제입니다. 아예 대놓고 나려타곤을 쓰며 청상이 검을 쥔 손의 측면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뭣이! 나, 나려타곤을?”
“예! 정말 부끄러움도 모르는 건지. 나려타곤이라니요. 반드시 처벌해야 합니다.”
명공은 놀라움에 한동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나려타곤은 당나귀가 바닥을 구르는 것과 같아 모든 정파인이 수치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유운검의 단점.
하단이 취약하고 검을 쥔 손 쪽의 공수 전환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기에 유운검을 익힌 이들은 다른 무공으로 그 단점을 보완한다.
물론 일대제자들은 그러한 단점을 알 리가 없다.
그들은 유운검에서 불편함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다른 무공을 익혀 보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진무가 어찌 알았을까?
무공에 대한 깊은 고뇌와 통찰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익히기 이전에 파훼하기 위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생각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대단하구나. 누가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 아이가 스스로 무당을 변화시키고 있음인가?’
들을수록 놀라운 기행이었다.
명진의 제자.
이미 도동으로 지내며 스승을 모셔 온 그 착한 됨됨이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거늘, 발전의 속도가 실로 경이롭지 않은가.
“그놈 참…….”
명공이 제 턱수염을 쓸며 입맛을 다셨다.
“당장 진무를 계율원으로 부를까요?”
“흠…….”
‘그놈 참’과 ‘흠’이 좋은 뜻을 품고 있었으나 진혜는 조금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사부님?”
“…….”
자꾸만 처벌을 입에 담는 진혜의 말에 난감하기 짝이 없던 명공이 다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아!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그러고 보니 오늘 청양상단이 온다 하지 않았더냐?”
“아, 예. 조금 있다가 제가 해검지로 나가 볼 참입니다.”
“오냐, 그래. 장문인께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니 대접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그보다 진무의 처벌에 대해서는…….”
“……거 참, 흠.”
“사부님?”
“허허, 참.”
명공은 진혜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고 천천히 일어나 ‘허 참.’을 연신 내뱉으며 영은궁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